Editor's Note

지난해 9월 안철수 의원은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대선 출마 기자회견 자리에서 주목을 끈 사람은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였다. 이 전 총리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당시 구조조정으로 위기를 극복해 긍정적인 평가를 받은 바 있지만, ‘론스타 먹튀 사건’의 당사자로 관치금융과 신자유주의적인 경제관료로 비판을 받기도 했다.

ㆍ이념 아닌 ‘정치적 측면’만 고려돼 세 확장 한계로 작동…

ㆍ“노동 상징성 강한 최장집 ‘중도’와 안 어울려”

 

지난해 9월 안철수 의원은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대선 출마 기자회견 자리에서 주목을 끈 사람은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였다. 이 전 총리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당시 구조조정으로 위기를 극복해 긍정적인 평가를 받은 바 있지만, ‘론스타 먹튀 사건’의 당사자로 관치금융과 신자유주의적인 경제관료로 비판을 받기도 했다. 즉각 진보진영에서는 반발의 목소리가 나왔다. 출마 선언이 있던 다음날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안 후보가 정치적·정책적 공백을 메우기 위해 이 장관 같은 ‘모피아’에 의존하는 순간 실패의 길로 들어설 것”이라고 말했다.

 

5월 22일 무소속 안철수 의원이 서울 마포구 창비카페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연구소 ‘정책 네트워크

내일 ’을 출범한다고 밝혔다. 간담회를 마친 뒤 연구소 이사장직을 맡은 최장집 전 교수와 인사하고

있다. | 김영민 기자

 

지난 대선 단일화 과정에서는 강점으로 작용

 

5월 22일 안철수 의원은 정책연구소 ‘내일’의 이사진을 발표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주목을 끈 사람은 최장집 전 고려대 명예교수였다. 최 전 교수는 노동의제를 강조해온 진보진영의 대표적 정치학자다. 최 교수는 5월 25일 열린 한 강연회에서 “내가 연구소에서 할 수 있는 범위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노동문제”라며 “안 의원의 정치 조직화든 활동이든 이런 것에서 노동문제가 중요한 구성 요소가 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은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다”고 말했다.

 

최 교수 발언이 알려지자 이번에는 보수진영이 술렁였다.

안철수 측의 김민전 경희대 교수는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최장집 교수님이 말하는 진보라는 것은 사회민주주의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진보자유주의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최 전 교수가 ‘진보자유주의’인 만큼 큰 틀에서 ‘자유주의’ ‘중도’ 이념과 맞닿아 있다는 것을 강조한 셈이다.

 

‘확장성’은 지난 대선의 단일화 과정에서 안철수 의원이 내세운 강점이었다. 여·야, 좌·우가 아닌 ‘중도’ 노선이 중도 유권자층을 흡수할 수 있을 것이라는 논리였다. 그러나 정치세력화를 모색하는 과정에서 안 의원의 ‘중도’ 노선은 오히려 ‘세력 확장’에 걸림돌이 되고 있는 모양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중도도 억압적이고 부정적인 속성을 가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안철수 의원이 중도라는 위치를 유지하게 되면서, 이헌재 전 부총리나 최장집 전 교수처럼 상대적으로 자기 정체성이 분명한 주장들이 나오면 대비되면서 이것이 억압되는 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중도’는 안 의원에게 정치적 기반이면서 동시에 한계로 작동하고 있다. 안 의원이 제시하는 ‘새정치’의 명분은 여·야, 좌·우를 뛰어넘는 중도를 기반으로 한다. 하지만 안 의원이 현실정치에서 ‘세력화’를 모색할 수 있는 공간은 야권 및 진보진영이다. 민주당 및 진보정당의 지지층을 흡수하기 위해서는 최장집 교수와 같은 ‘진보적 명망가’가 필요하다. 하지만 ‘노동’이라는 상징성을 강하게 띤 최 교수가 영입되면서 안 의원이 제시했던 ‘중도’와 쉽게 어울리지 못한다. 정치적 명분과 정치적 현실이 다른 만큼 세력화 과정에서 잡음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김만흠 한국정치아카데미 원장은 “안철수 의원 측에서는 스스로의 노선 상의 문제뿐만 아니라 기존 정당과의 관계설정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면서 “안 의원 측은 제3세력을 지향하지만, 현실적으로 가져올 표밭의 90%는 야권과 민주당 지지세력이다”라고 말했다. 김 원장은 “안철수 의원이 지난 대선 때처럼 ‘야권의 범주’에서 정치세력화할 것인지, 여야를 넘어서는 차원에서 정치세력화를 할 것인지를 선택해야 한다”며 “원래 안 의원이 이야기한 ‘새정치’ 명분에 맞으려면 여야를 넘어서는 새누리당과 민주당 간의 등거리 관계게 있는 게 맞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한울 동아시아연구원 여론분석센터 부소장은 “안철수 의원은 자신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지 못한 것 같다. 자신을 중도세력을 대표하는 사람으로 생각하는 건지, 아니면 기존의 야권 진영을 대표하는 사람으로 생각하는 건지가 불투명하다 보니까 혼란이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안 의원에게 이헌재·최장집은 다를 바 없어”

 

안철수 의원 측은 중도노선의 방향을 ‘안보는 보수, 경제는 진보’라는 관점으로 제시하고 있다. 5월 23일 동아시아연구원이 발표한 <안보이슈는 이념적 쟁점인가>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이념적으로 유권자들이 중도화하는 경향성은 강화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 보고서는 유권자들이 안보문제에 대한 태도를 이념적·정치적 이분법으로 바라보던 시각에서 탈피하여 객관적인 안보상황 변화에 실용적이고 균형적으로 반응하는 방식으로 변하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변화가 안보인식뿐 아니라 이미 정당 태도 및 복지 이슈 등에서 진보와 보수의 가치를 대립적으로 보지 않는 상충적 태도가 증가하고 있는 현상과도 맥을 같이하는 현상이라고 지적했다.

 

보고서를 작성한 정한울 부소장은 “중도층은 자기 고유의 정치적 선호도를 분명히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 부소장은 정치적 유권자로서의 중도는 있지만, 이념으로서 체계화할 수 있는 중도는 없다고 지적했다.

 

각 사안에 대해 다변화하는 유권자의 선호도를 이론화하고 이를 정당의 형태로 체계화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는 “태도로서의 중도는 있을 수 있지만 이론으로서의 중도는 사실상 없다”고 말했다. ‘시장의 역할’ ‘재분배의 문제’ ‘정부의 개입’ 등은 좌우를 나누는 보편적 기준인데, 이 기준으로 나눠지지 않는 ‘중도’의 영역은 없다는 뜻이다. 안철수 의원 측이 ‘중도’에 구체적 내용을 담아내지 못하는 것은 이러한 한계 때문이라는 지적도 제기됐다. 박상훈 대표는 “한국 정치의 큰 특징은 모호성”이라면서 “과도한 중도주의는 ‘좋은 말들의 집합소’로 나타나게 되면서 권력의 내용이 무엇인지 알 수 없게 된다. 그럴 경우 중도노선의 폐해가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안철수 의원의 ‘중도’가 이념이 아닌 정치적인 측면에서만 고려되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정치학 교수는 “지금 안철수 의원은 ‘표 되는 포지셔닝’에 머물러 있다”고 지적했다. 경제적 관점이 다른 이헌재 전 부총리나 최장집 교수를 영입하려는 것은 논리적으로 모순이지만, ‘이념의 잣대’가 아니라 ‘정치적 잣대’로 본다면 전혀 모순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교수는 “안철수 의원은 이념적 잣대가 아니라 정치적인 잣대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대선 출마 선언 당시에는 보수층의 지지가 필요했고, 지금 신당 창당을 앞두고는 야권의 지지가 필요한 만큼 “안철수 의원에게는 이헌재 전 부총리나 최장집 교수나 다를 바가 없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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