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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문재인의 ‘어게인 2002’는 왜 실패했나
kor_eaiinmedia | 2013-01-02
정한울
아마도 문재인 후보를 지지했던 지지자들이나 어쩌면 문재인 후보 자신 역시 2012년 12월 18일 쯤엔 바로 10년 전 2002년 12월 19일을 꿈꿨는지 모르겠다. 그 만큼 2012년 대선대결구도는 2002년 선거에서 나타난 사회적 균열구도에서 유사성이 컸다.
정한울
동아시아연구원 여론분석센터 부소장
아마도 문재인 후보를 지지했던 지지자들이나 어쩌면 문재인 후보 자신 역시 2012년 12월 18일 쯤엔 바로 10년 전 2002년 12월 19일을 꿈꿨는지 모르겠다. 그 만큼 2012년 대선대결구도는 2002년 선거에서 나타난 사회적 균열구도에서 유사성이 컸다. 무엇보다 영남 한나라당 후보, 호남 민주당 후보 대결구도가 아닌 영남출신 민주당 후보가 나섰다.
문재인의 꿈 '어게인 2002'
호남은 물론 전국 선거인단의 47%~49%를 차지하는 수도권에 민주당 후보가 우세하고, PK지역을 중심으로 3김 시대에 비해 영남 민주당 후보의 선전이 두드러졌다. 세대균열, 이념대결 구도가 형성된 것도 비슷하다. 선거전략 차원에서 보면 안철수, 이정희 후보가 사퇴하면서 여와 야의 1: 1 대결구도로 치러진 선거였다는 점에서도 노무현, 정몽준 후보의 후보단일화로 상징되는 2002년 대선과 너무 닮았다.
2007년 17대선에서는 2030 젊은 세대나 진보층에서 조차 이명박 후보가 1위 혹은 그에 육박하는 높은 지지를 확보하면서 세대, 이념대결 구도가 약화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전망을 낳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내일신문 조사결과에서 나타난 정치사회적 균열구도로 보면 '2030세대=진보성향=문재인', '5060세대=보수성향=박근혜 ' 지지 패턴의 복원 현상은 뚜렷하게 나타났다.
특히 주택소유여부나 자산기준으로 보면 계급요인까지 새로운 균열요인으로 떠올랐다.
안철수 후보 사퇴를 전후로 탈진영론에 기반한 중간지대 유권자층이 선거 수면 아래로 급격하게 가라앉으면서 2002년과 마찬가지로 사회적 균열기반에 기초한 양진영간 정면대결 양상을 보여준 것이 사실이다.
정치적 대결 : 2012-2002 차이점
이러한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대결구도로 보면 야당입장에서 2012년 대선은 2002년 선거와 동일시 될 수 없는 선거였다. 2002년 선거에서 노무현 후보는 여당후보였고, 2012년 문재인 후보는 야당후보다. 공수가 바뀐 상황이다. 2002년 여름에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여당인 민주당은 대참패를 했고, 후보교체 얘기까지 나올 정도로 곤궁한 처지까지 몰린 바 있다. 문재인 후보는 전체 유권자의 65~68%가 집권여당을 심판해야 한다는 강한 정권심판론에서 선거를 치렀다.
공수의 관점에서 보면 문재인 후보와 민주당은 수성의 입장이었던 노무현 후보가 아니라 공격에 성공한 2007년 이명박 후보를 벤치마킹 대상으로 삼았어야 했다.
이명박 후보가 압승한 2007년 대선에서도 분명 이번 선거처럼 강도 높은 "참여정부 심판론"이 작동했다. 소위 전임정부의 실정에 책임을 묻는 회고투표가 강하게 작용했던 선거였다.
그러나 참여정부 심판론이 이명박 후보와 한나라당 지지로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은 "경제는 이명박"이라는 전망적 비전 제시를 놓치지 않았던 데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것이야말로 이명박 후보 전략에 대한 최대 벤치마킹의 지점이었던 셈이다.
학술영역에서는 회고투표와 전망투표가 우열, 비교의 대상이지만 득표전략의 현실에서는 회고적 심판의지는 전망투표의 대안으로 연결될 때 투표결정요인으로 힘을 발휘한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다. 실제로 따지고 보면 집권당 실패에 대한 반사이익 만으로 집권한 사례는 단 한 차례도 없었다. 굳이 2002년 모델
을 선거전략의 기준으로 삼고자 했다면 노무현 후보의 성공지점과 이회창 후보의 실패지점을 동시에 살펴야 했다. 2002년 집권당의 노무현 후보는 탈지역주의, 정치개혁을 내세워 3김정치 이후 새로운 정치개혁 어젠다를 선점했다. 정권심판구도에서 탈피하여 개혁 대 수구의 대결구도로 전환시키는데 성공했던 셈이다. 야당의 이회창 후보는 김대중 정부에 대한 실패는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지만, 새로운 국가비전을 제시하지 못함으로써 되려 구태정치 이미지로 노무현 후보의 개혁이미지와 대비되었다.
문재인은 누구를 벤치마킹했나
18대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는 경제대통령 비전을 제시한 이명박 모델 대신 집권세력 심판론에 안주했던 2002년 이회창 모델 쪽에 가까웠다. 박근혜 후보는 복지노선과 경제민주화 이슈를 선점하고 안철수 현상으로 표출되었던 국민통합 요구를 내세워 정권심판론의 예봉을 피하는 데 성공했다.
정작 '어게인 2002'에 성공한 것은 박근혜 당선인어었다고 할 수 있겠다. 수성의 입장이건 공격의 입장이건 대안과 비전 제시 없이 집권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18대 대선의 가장 큰 교훈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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