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Note

조동호 이화여대 교수·북한학 국제정치학계의 중진인 서울대 외교학과 하영선 교수와 학문적으로 만나기 시작한 것은 10년 전이었다. 명성이야 익히 알고 있었지만, 실제 인연을 맺게 된 것은 2003년 3월 평양에서 열린 남북 공동학술회의에서였다. 남과 북의 학자가 모여 조국의 앞날에 대해 토의하자는 자리였다.

국제정치학 중진 하영선 교수, '민족적 국제 공조' 개념 北 자극

친미·반미 넘은 '用美' 내놓고 새 동북아 질서 속 통일 전망

21세기 복합적 경쟁력 강조  정년 이후 화두 더 묵직해질 것

 

조동호 이화여대 교수·북한학 국제정치학계의 중진인 서울대 외교학과 하영선 교수와 학문적으로 만나기 시작한 것은 10년 전이었다. 명성이야 익히 알고 있었지만, 실제 인연을 맺게 된 것은 2003년 3월 평양에서 열린 남북 공동학술회의에서였다. 남과 북의 학자가 모여 조국의 앞날에 대해 토의하자는 자리였다.

 

하 교수는 발표자였지만, 정작 발표장인 인민문화궁전에 나타나지 않았다. 사전 검열을 통해 북한이 내용 수정을 요구하자 그는 아예 발표 자체를 거부했던 것이다. 북한 측으로서는 당황할 수밖에 없는 사태였지만, 나에게는 학자로서 그런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북한 측이 핵심적으로 문제를 삼은 것은 그가 사용한 '민족적 국제 공조'라는 단어였다.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로서 민족 공조 없는 국제 공조를 추구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북한의 주장대로 국제 공조 없는 민족 공조만으로는 문제를 결코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당연히 '우리 민족끼리'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북한으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주장이었다. 더욱이 방청객으로 동원된 젊은 북한 청년 수백 명이 혹시라도 그런 '불온한 정세 인식'에 동요될 것을 두려워한 탓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논지(論旨)가 그대로 사장된 것은 아니었다. 결코 병립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민족'과 '국제'라는 용어의 연결은 단선적 사고에 익숙한 북한 학자들에게는 충격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시 북한은 그의 발표문에 대한 내부적인 독회를 비밀리에 열었고, 핵심 내용을 주제로 대담 요청을 하기도 했다. 아예 "민족적 국제 공조에서 민족은 몇 할이고 국제는 몇 할입네까?"라고 직접 묻기도 했다. 물론 '민족적 국제 공조'라는 담론은 몇 대 몇 식의 일차원적 인식이 아니라 훨씬 더 복잡한 것이었다.

 

그는 그렇게 21세기적 화두(話頭)를 19세기에 머물러 있는 북한에 던졌고, 그 여운은 길고도 강하게 남았다. 2010년 북한 노동당의 새로운 구호로 제시된 "자기 땅에 발을 붙이고 눈은 세계를 보라"는 명제(命題)는 '모든 것을 우리 식으로'를 내세워온 북한으로서는 이례적인 것이었다. 따지자면 '민족적 국제 공조'의 북한식 경제 버전인 셈이고, 북한의 바깥세상 읽기에 나름대로 영향을 미쳤던 것이다.

 

북한에 대해서만이 아니다. 하 교수는 우리 학계에도 개안(開眼)의 질문을 끊임없이 던져왔다. 1980년대 친미(親美)와 반미(反美)의 부질없는 이분법적 논쟁 시기에 그는 이미 용미(用美)를 이야기했다. 몇 년 전 "반미면 어떠냐"는 논란에 이어 최근에는 종미(從美) 시비까지 일고 있음을 감안하면 우리 사회는 30년 전 그의 생각을 아직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1990년대 그는 남북 관계의 개선을 "단순한 통일 차원을 넘어서서 신동북아 국제 정치 질서의 공동 참여 차원에서 북한의 변화를 격려하는 방향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조선일보 1992년 8월 23일자). 이제 막 중국과 수교가 이루어졌을 뿐만 아니라 중국이 비로소 도약을 시작하는 시점에서 그는 이미 20년 후의 세상을 내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이는 그 이후 전개된 '햇볕'이나 '압박'의 대북 정책보다 한 차원 높은 구상이기도 하다.

 

2000년대 들어 하 교수는 복합(複合)을 강조한다. 지난 시절 국가 경쟁력의 근원이 안보와 번영에 있었다면, 이제는 부국강병(富國强兵)의 토대 위에 환경·정보지식·문화·정치 등 다양한 분야에서 종합적 능력을 갖추어야 하며 행위 주체도 정부에 더해 기업·시민단체·개인 등으로 얽힌 입체적 네트워크를 확보해야 한다는 뜻이다. 외교에서도 미국을 넘어 중국뿐만 아니라 지구촌 및 사이버 공간에 굵고 얇은 촘촘한 그물을 쳐야 한다는 의미이고, 그의 주장은 김성환 외교부 장관에 의해 '복합 외교'로 추진되고 있다.

 

그래서 하영선 교수를 보면 지력(知力)의 중요성을 새삼 생각하게 된다. 사실 제대로 된 세상이란 권력(權力), 금력(金力), 그리고 지력이 저마다 권위를 지니며 조화를 이루는 사회일 것이다. 권력이 금력까지 넘보지 않고, 금력이 지력을 동원하지 않으며, 지력이 권력을 추종하지 않는 사회이다. 그래서 그는 정부의 영입 제안을 사양했다.

 

그런 그가 이번 학기를 끝으로 정년퇴직을 한다. 이젠 온 시간을 연구에만 쏟을 터이니 그가 내놓을 화두는 더욱 묵직해질 것이다. 바야흐로 '하영선 2.0' 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그만큼 후학(後學)은 두렵고, 우리 사회의 담론은 한층 깊이를 더할 것이다.

 

조동호 이화여대 교수·북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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