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Note

온 세상이 또다시 경제대란에 허덕이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대세의 흐름과 우리의 처지를 짚어보고 앞으로 나아갈 길을 모색해봐야 한다. 세계경제의 향방에 우리 경제의 부침이 얼마나 매여 있는가는 날마다 출렁이는 주가와 환율이 말하고 있지 않은가.

온 세상이 또다시 경제대란에 허덕이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대세의 흐름과 우리의 처지를 짚어보고 앞으로 나아갈 길을 모색해봐야 한다. 세계경제의 향방에 우리 경제의 부침이 얼마나 매여 있는가는 날마다 출렁이는 주가와 환율이 말하고 있지 않은가.

 

긴 역사의 눈으로 본다면 지금의 대란은 산업혁명으로부터 시작된 자본주의의 성격이 불가피한 변혁의 진통을 겪고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의 활력이 300년을 지탱할 수 있었던 큰 요인의 하나는 제국주의시대와 이데올로기시대가 세계를 여러 쪽으로 갈라놓았다는 사실이다. 더구나 과학기술의 획기적 발전은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폭발적 성장동력을 부여했다. 그러나 제국주의시대와 이데올로기시대가 막을 내리고 정보혁명을 수반한 급격한 세계화가 진전되면서 서구 중심 자본주의의 심각한 허점이 노출되기 시작했다.

 

돌이켜보면 1973년 석유파동은 단순히 선진국과 산유국 간의 대결이라기보다 세계화시대가 초래한 정치적 세력판도의 변화가 선진자본주의경제에 더 이상 독점적 우위를 허용할 수 없다는 지각변동을 예고한 것이다. 그 후에 벌어지고 있는 중동사태의 추이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2008년 월가의 리먼(Lehman) 파산으로 촉발된 금융대란은 자본주의의 한계를 한층 더 역력히 노출하고 있다. 제조업을 비롯한 전통적 부(富)의 창출 방식과는 달리 자본시장에서의 투기가 경제성장을 좌우하는 상황에서 지속적인 무역적자와 재정적자가 누적되어 온 미국식 선진자본주의경제가 최대의 위기를 불러온 것이다.

 

이러한 자본주의 경제위기의 책임은 시장의 세계화와 세력 균형의 변화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한 채 재정적자 관리의 고삐를 놓쳐버린 민주정치체제의 한계에 있다는 주장은 상당한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 한편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이 적자와 불황의 늪에서 허덕이는 것에 반해 중국을 비롯한 신흥경제대국의 고도성장을 보면서 선진자본주의의 한계와 민주주의의 쇠퇴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들려온다. 그러나 중국·인도·브라질 등 모두가 예외 없이 개방과 시장경제를 선택하고 세계시장에 적극 참여함으로써 경제발전을 성취하고 있음은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이다. 결국 지난 반세기의 세계사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상대적 우수성을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문제의 핵심은 시장경제를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각 국가의 정치력, 특히 세계화된 시장의 건전한 발전을 관리할 수 있는 국제체제의 존재 유무라고 하겠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국제통화기금(IMF) 체제와 냉전 이후 추가된 세계무역기구(WTO) 체제가 작동하고 있지만 선진국이 다년간 선호한 세계경제의 운영 중심은 G7(주요 7개국)이란 협의체였다. 그러한 제한된 선진국클럽이 더 이상 세계경제의 향방을 좌지우지할 수 없다는 것은 21세기로 들어서면서 이론의 여지 없이 극명해졌다. 4년 전 금융위기의 불길이 번져가는 긴박한 분위기에서 G20(주요 20개국)이 출범한 것은 상황에 걸맞은 응급조치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지난해 서울에서 개최된 2010 G20에서 지구촌 전체의 발전을 도모하는 원칙과 실천계획에 합의를 도출한 것은 세계경제체제의 합리적 공동 관리로 향한 큰 진전이었다. 올해의 G20 의장국인 프랑스도 ‘서울합의’를 구체적 실천으로 연계시키는 데 앞장설 것을 다짐하고 있다. 다만 유럽을 비롯한 선진경제권이 계속 국가부도의 위기에 시달리고 있다 보니 지구촌의 공동과제 해결 방안을 둘러싼 주요 국가들 사이의 이견도 여전해 과연 어느 정도의 성과가 가능할지 걱정되는 실정이다. 예컨대 막대한 재원이 필요한 개발원조의 확대나 기후변화에 대한 효율적 공동대처를 위한 ‘탄소세’나 ‘국제금융거래세’ 같은 방법이 국제합의에 의해 수용될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있겠는가.

 

이러한 걱정을 함께 나누고자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9월 초 전직 정부수반 몇 사람과 간담의 자리를 만들었다. 그는 ‘한국이 너무 G2에만 신경을 쓰는 것 아니냐’는 가벼운 농담을 던졌다. 마침 ‘왜 중국은 G3세계를 원하는가’라고 유럽 학자들이 쓴 신문기고문(IHT, 9월 2일)에서 G2는 최악의 국제체제라는 주장을 읽고 난 직후였기에 많은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이 내세우는 G3의 세 번째 멤버는 물론 유럽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추구하는 하나의 지구촌, 즉 G1으로 가는 과도체제는 G3와 G20의 합성이어야 되지 않겠는가. 사르코지 대통령은 언제나 ‘프랑스와 독일 그리고 유럽’의 입장을 대변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중국이 G2나 G3를 생각할 때 과연 아시아의 이웃관계를 어떻게 정립하려는 구상을 갖고 있는지 궁금하다. 결국 경제대란에 대처하는 국가적 자세를 다듬으려면 요동치는 세계 속에서 우리의 나아갈 길에 대한 비전이 반드시 필요함을 절감하게 된다.

 

이홍구 전 총리·중앙일보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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