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Note

고재혁 씨(가명ㆍ32)는 전형적인 `강남 좌파`다. 실제 사는 곳과 상관이 없다. 강남ㆍ서초ㆍ송파 강남 3구 출신은 아니지만 서울 이촌동 소재 198㎡(60평) 규모 아파트에 살며 서울 소재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에 다니고 있다. 대학시절 좌파 운동권 학생들과 어울렸고 로스쿨 진학 이후에도 인권학회 활동을 하고 있다. 지난해 6ㆍ2 지방선거 때도 야권에 표를 던졌다.

◆ 분노의 시대 ③ ◆

 

고재혁 씨(가명ㆍ32)는 전형적인 `강남 좌파`다. 실제 사는 곳과 상관이 없다. 강남ㆍ서초ㆍ송파 강남 3구 출신은 아니지만 서울 이촌동 소재 198㎡(60평) 규모 아파트에 살며 서울 소재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에 다니고 있다. 대학시절 좌파 운동권 학생들과 어울렸고 로스쿨 진학 이후에도 인권학회 활동을 하고 있다. 지난해 6ㆍ2 지방선거 때도 야권에 표를 던졌다.

 

이에 비해 대학생 이재선 씨(28ㆍ가명)는 가계 소득 하위 50% 미만의 저소득층 대학생이지만 최근 저축은행 후순위채 투자자 보상 방안을 포퓰리즘 정책이라고 생각한다. 이른바 `금천 우파`의 사고방식이다. 이 또한 실제 사는 곳과는 상관이 없다.

 

경기도 안양시에서 서울 소재 사립대를 통학하는 이씨는 아르바이트와 취업준비 말고는 생각할 틈도 없는 대학생활을 마치고 하루빨리 취업해야겠다는 마음뿐이다. 이씨는 "(후순위채 투자자는) 수익성이 높은 만큼 리스크가 큰데 국가에서 굳이 그렇게까지 구제해줄 필요는 없다"며 "열심히 노력했는데 생계를 보장받지 못한 이들로 복지가 제한돼야 한다"고 말했다. 내년 총선ㆍ대선 때도 검증되지 않은 야당 후보보다는 정ㆍ관계 경력이 있는 여당 후보에게 표를 던지겠다고 이씨는 생각한다.

 

지난달 24일 실시한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에서 20.2%로 가장 낮은 투표율을 기록한 곳은 서울 금천구. 그때부터 금천이 강남의 대척점으로 부상했다. 전문가들은 정치권, 학계를 중심으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비롯한 첨단 미디어를 활용해 `세상을 바꾸자`고 외치고 있는 `강남 좌파` 못지않게 팍팍한 생활로 목소리가 드러나지 않고 있는 `금천 우파`의 등장에 주목하고 있다.

 

정한울 동아시아연구원(EAI) 여론조사분석센터 부소장은 "한국에는 자신의 경제적 이해관계에 따라 보수적 성향을 드러내는 `경제적 보수`와 전쟁과 폐허 그 이후 급속한 경제성장을 겪으면서 보수성향이 체화된 `관습적 보수층`이 있다"며 "여기에 하나 더해진 것이 경제적으로 팍팍한 삶을 살고 있지만 `진보적인 생각`을 할 여유조차 없는 `신보수층`"이라고 분석했다. 박효종 전 서울대 윤리교육과 교수(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는 "이들 계층은 `상대적 박탈감`이 그 어느 계층보다 극심한데 사회지도층은 이들을 감싸안는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출신 지역과 무관하게 개인적인 정치ㆍ사회 성향을 갖고 있는 이들은 지역적인 잣대를 거부한다. 서울 강남구에 거주하는 대기업 여사원 윤 모씨(30)는 "월급을 차곡차곡 모아 명품백을 샀는데 `부모가 사줬느냐` `넌 월급으로 생활을 안 하니까`라는 회사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짜증이 난다"며 "여자가 명품백 하나 사는 건 강남이나 아니나 똑같다"고 말했다.

 

서울 금천구 독산동 46㎡(15평) 규모 전세 5000만원짜리 다가구주택에 사는 7급 공무원 워킹맘 윤지원 씨(가명ㆍ30)는 하루빨리 학군이 좋은 다른 지역으로 이사가겠다는 마음뿐이다. 월급쟁이 부부로서 강남주민 못지않게 세금을 납부하고 있지만 동네 실정은 열악하기만 하다. `비보호` 좌회전 표지가 넘쳐나는 출퇴근길에 매일 분통이 터진다.

 

지방 출신으로서 2000년대 초반 서울 소재 명문대를 다닌 윤씨는 대학시절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았지만 학생운동은커녕 등록금 인상 반대 집회에 참여하는 것조차 사치였다. 학창시절 과외 한 번 받아보지 못하고 어렵사리 결혼과 취업에 성공한 윤씨의 지금 목표는 자기 딸만큼은 영어유치원부터 과외 교습까지 힘닿는 데까지 시켜주는 것이다. 분노의 경계가 없어지고 있다.

 

[기획취재팀 = 이진우 차장 / 이지용 기자 / 강계만 기자 / 이상덕 기자 / 최승진 기자 / 고승연 기자 / 정석우 기자 / 정동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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