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의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선고 이틀 전 이른바 사설정보지(지라시)에 필자 이름이 등장했다. 그 자체도 놀랐지만 내용은 더 황당했다. 필자가 지인들에게 몇 대 몇으로 탄핵이 인용된다는 문자를 보내며 “선동 중”이라는 것이었다. 전혀 하지도 않은 일을 두고 사실이 맞느냐는 주변의 연락을 받고 보니 허위정보의 피해자라는 사실이 실감됐다.

탄핵 정국에서 이런 음해성 허위정보의 가장 큰 피해자는 헌법재판관들일 것이다. 12·3 비상계엄 이후 4개월간 온·오프라인에서 퍼진 허위정보들엔 노골적 인신공격까지 함부로 담겼다. 그로 인해 재판관들은 테러 위협에 노출된 상태로 심리를 진행해야 했다. 일부 재판관들이 극심한 스트레스로 피부 발진도 겪었다는데 허위정보와 이를 근거로 한 겁박의 영향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민주주의 근간 흔드는 허위정보

허위정보로 인한 피해 범위는 개인을 넘어선다. 누가 누구 편이라느니, 각본대로 짜고 친다느니 하는 재판관들에 대한 허위정보는 탄핵 찬반 주장에 입맛대로 악용됐다. 탄핵 정국에서 우후죽순 사방으로 퍼져 나간 허위정보는 가뜩이나 심각한 혐오와 분열을 더욱 부추기는 트리거가 됐다. 온라인에서 퍼나르고 극단 성향 유튜브에서 증폭된 허위정보에, 누군가는 음모론의 확증편향에 사로잡혀 상대 진영을 저주했고 누군가는 이를 이용해 돈을 벌었다.

급기야 허위정보는 음지에서 돌려 보고 유튜버가 떠들어 대는 차원을 넘어섰다. 국정 책임자라는 대통령은 부정선거 의혹을 계엄 선포 이유로 내세웠다. 민의의 대변자라는 정당은 헌법재판관에 관련된 조작 사진이 사실인 양 논평을 냈다. 탄핵심판정에서 윤 전 대통령 변호인이 뱉어낸 ‘중국인들의 부정선거 자백’ 주장은 헛웃음을 짓게 했다. 이처럼 허위정보는 중상모략의 흑색선전을 넘어 우리 민주주의 근간을 오염시키는 바이러스로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 곳곳을 파고들었다.

실제 스웨덴의 한 연구소는 허위정보가 한국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는 진단을 최근 내놓았다. 예테보리대 민주주의다양성연구소는 한국을 자유민주주의보다 한 단계 아래 국가로 평가하며 독재가 진행 중인 국가로 분류했다. 그러면서 독재가 진행 중인 국가의 정부는 의도적으로 양극화를 조장하려 허위정보를 이용한다고 했다. 허위정보가 혐오를 부추기고, 혐오가 상대 진영을 악마화하는 정치 양극화를 부추기는 연쇄 작용을 우리는 목격했다.

양극단의 정치 깨야 근본 해결

문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허위정보로 몸집을 키운 정치 양극화는 이제 진실과 거짓의 경계를 흐릿하게 만들어 무엇이 진짜이고 허위인지 구별할 힘을 빼앗는 지경에 이르렀다. 팩트가 아니라 진영 논리에 기대 허위정보의 진실 여부를 판단한다는 것이다. 이를 증명한 연구가 있다. 지난해 동아시아연구원(EAI)이 진행한 여론조사를 윤성이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가 분석해 보니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적대감이 높을수록 진보 진영이 주장했을 법한 허위정보를 진실로 받아들였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에 대한 적대감이 강할수록 보수 진영이 주장했을 법한 허위정보를 진실로 수용했다. 콩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상대 진영의 주장은 다 “가짜뉴스”가 된다.

정치 양극화의 토양이 된 허위정보가 이제 정치 양극화의 결과가 되는 악순환이 벌어지는 것이다. “가짜뉴스 척결”을 주장하더니 정작 자신은 허위정보를 믿으며 반대 진영에 대한 적대를 부추긴 윤 전 대통령의 정치 실종이 남긴 불행한 유산이다. 허위정보를 처벌하고 규제하는 수준으론 근본 해결이 어렵다. 헌재가 윤 전 대통령의 퇴행을 사법 절차로 바로잡았다. 우리 사회를 갈라놓은 양극단 정치를 청산할 과제가 아직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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