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이 또 다른 거짓을 낳고, 죄가 또 다른 죄를 불러들이는 형국이다. 대통령 윤석열의 탄핵재판이 진행되면서 우리 사회는 진영으로 나뉘어 서로가 서로를 적대시하는 등 국가 내분 상태를 연출하고 있다. 계엄도 문제지만 그 이후가 더 문제가 되고 있다. 나라를 어디로 끌고 가려고 이러는가.

탄핵을 찬성하거나 반대할 수는 있다. 그러나 국민을 분열시켜 내란상태를 만들어서는 안되지 않겠는가.

윤석열은 지난 1월 1일 대통령 관저 앞에 모여 자신의 탄핵과 체포에 반대하는 집회를 연 지지자들에게 편지를 전했다.

편지는 “추운 날씨에도 이 나라의 자유민주주의와 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해 이렇게 많이 나와 수고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라고 시작했다. 또 “나라 안팎의 주권 침탈 세력과 반국가 세력의 준동으로 지금 대한민국이 위험하다”고 전재한 뒤, “저는 여러분과 함께 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끝까지 싸울 것입니다. 우리 더 힘을 냅시다. 정말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라고 끝을 맺었다.

많이 나와 시위를 해주니 고맙다. 끝까지 싸울테니 더 힘을 내자는 요지다. 한때나마 국가 최고지도자의 위치에 있었던 사람의 말이다.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말문이 막힌다.

사랑제일교회 목사라는 전광훈은 “1000만명이 한자리에 모이는 것이 국민저항권의 완성”이라고 하며 “광화문에 1000만명이 모이면 서울구치소 소장이 윤석열 대통령에게 ‘나가시오’ 하며 떠밀어 내쫓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모이고 모이고 또 모이자는 ‘북소리’다.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 김용원도 가세했다. 김용원은 “만약 헌법재판소가 주권자인 국민의 뜻을 거슬러 대통령을 탄핵한다면 국민은 헌법재판소를 두들겨 부수어 흔적도 남김없이 없애버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내란선동 등 혐의로 고발당한 공무원 시험 강사 전한길을 언급하며 “절대 쫄거나 무서워하지 말라. 제가 인권위 상임위원으로서 공직자 신분이기는 하지만 기꺼이 무료 변론을 해 드리겠다”라고도 말했다.

차관급 고위직에 국가 인권위원이라는 사람이 기껏 한다는 말이 저 정도인가. ‘감탄’스럽다.

‘내란’을 부추기는 듯한 곡학도 있다. 어느 대학의 정치학과 교수라는 사람은 신문칼럼을 통해 “헌재가 문형배, 이미선 재판관이 퇴임하는 4월 18일 이전에 윤석열 선고를 마치려 하고 있다. 이것은 사법 리스크를 안고 있는 이재명 대표에게 가장 유리하다. 만약 윤 대통령의 탄핵만 인용되고, 이 대표의 판결이 나오지 않으면, 국민적 저항이 발생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만약 헌재의 판결이 권위를 잃으면 대한민국의 앞날은 어찌 되나? 논리적으로는 내전밖에 없다. 헌재는 법만 보고 가야 한다”라고도 했다. 어떡하라는 것인가. 윤석열 탄핵을 인용하지 않고 기각하는 것이 ‘법’이고 그렇지 않을 경우 국민들은 두쪽으로 나뉘어 내전이라도 벌여야 한다는 말인가?

한국사 ‘일타강사’라는 전한길의 유튜브 영상에 폭탄 테러를 암시하는 댓글이 달려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작성자는 전 씨의 윤석열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 연설 영상에 “전한길 선생님의 쓸어버리자는 말씀에 주저앉아 울었다. 20년,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인생 바치겠다”며 폭탄을 준비 중이라는 댓글을 남겼다.

더불어민주당은 “소셜미디어(SNS)에서 ‘이재명 암살단’이라는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이 운영 중이라는 제보를 받았다”며 이재명 대표에 대한 경호 강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게 무슨 징조들인가. ‘내전’(內戰)이라는 말은 실로 가공(可恐)할 말이다. 언제부터 이 나라에서 이 단어가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쓰이고 있는가. 내전, 내전 하는 데 대표적인 예로 시리아 내전을 들여다 보자.

시리아에서는 2011년 3월 정부에 대한 민중의 불만이 고조되면서 전국적인 대규모 시위와 민주화 운동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이 시위는 이른바 ‘아랍의 봄’ 물결과 합쳐지며 광범위하게 확산되었다. 시위는 민중봉기로 이어져 전국적인 저항군이 결성되었고, 반란 형태로 변화한 민중봉기는 결국 2012년부터 전면 내전으로 발전하였다.

정부군과 반정부군과의 내전으로 인한 피해는 총사망자 60만명, 민간인 사망자 30만명,국내 실향민 670만명, 그리고 해외 난민 660만명을 낳았다. 끔찍한 일들이 벌어진 것이다. 사람이 사는 곳이 아니라 지옥에 다름 아닌 나라가 됐던 것이다.

독재자 알아사드는 그 많은 국민들의 피눈물을 뒤로한 채 지난해 말 가족과 함께 러시아로 망명해 현재 잘살고 있다. 시리아의 비극은 알아사드의 잘못 이전에 국민 분열이 그 씨앗이 됐다. ‘내전’이라는 말은 그리 쉽게 입에 올릴 수 있는 말이 아니다. 우리는 이미 동족상잔의 비극을 여러 형태로 충분히 경험했다. 세 치 혀를 함부로 놀리지들 말라. 시위자들은 이미 서울서부지방법원을 유린했고 헌법재판소와 국가인권위원회도 위협하고 있다.

윤석열을 옹호하고 지지하는 이들의 독려 덕인지는 모를 일이다. 보수 진영 결집의 속도와 강도가 예사롭지 않다. ‘박근혜 탄핵’ 때는 탄핵안 국회 통과부터 탄핵 인용 때까지 8대 2 정도의 비율로 탄핵 찬성이 반대를 압도하는 현상이 지속됐었다. 이번엔 계엄 직후 8대2 가량이었던 탄핵 찬반 여론이 한 달여 만에 6대4 이내로 격차가 줄었다. 보수진영이 기뻐할 ‘기이한’ 현상이다.

그러나 여기서 간과해서는 안 될 포인트가 있다. 지금은 반(反)이재명 깃발에 중도와 보수가 윤석열 탄핵 반대에 결집했지만 결국 윤석열을 놓고 분열할 가능성이 크다. 항상 정의로운 시민들은 있는 것이고 사태가 진정되면 모두는 아닐지언정 대부분 ‘이성’을 찾게 된다는 것이다. 윤석열이 저지른 죄과는 없어질 수도 없고 잊혀질 수도 없다. 좌나 우, 보수나 진보의 문제가 아니다. 가정집에 강도가 들었다가 가족들과 이웃의 저항으로 물러났다면, 피해가 없으니 그 강도범이 무죄란 말인가? 이게 아무 일도 없었던 일인가? 이 정도 억지면 소위 ‘역대급’, 애처로울 정도다.

윤석열이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국정은 뒤틀리기 시작했고 정치와 사회는 양쪽으로 갈라졌다. 이 일을 어찌하면 좋겠는가. 헌재와 법원은 하루라도 빨리 혼란을 종식시켜야 한다. 언론도 크게 각성해야 한다. 내란을 부추겨서 뭘 어쩌겠다는 건가.

진영으로 나뉘어 서로 원수가 돼가고 있는 국민들, 불의를 아무렇지도 않게 외치고 있는 일부 ‘국개의원’들. ‘뱀의 혀’를 자처하고 있는 ‘의원염원’ 일부 방송출연자들과 시사 평론가라는 사람들, 정말 혀를 차게 하고 있다. 역사 발전의 장애물들이다. 큰 역사의 죄를 짓고 있다. 이들의 주장이, 논리가 뭔가? ‘악’의 편에 서겠다는 것인가?

동아시아연구원이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1월 22, 23일 전국 성인 1514명에게 웹조사 방식으로 물은 결과(응답률 20.0%, 표본오차는 95%±2.52%포인트), 대통령 윤석열의 12·3 비상계엄은 “잘못한 일”이라는 응답이 72.9%로 나타났다. 또 윤석열의 탄핵에 찬성한다는 응답은 64.9%였다고 한다. 한 유력 일간지의 보도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알량한 법지식으로 사법절차를 조롱하고 있는 사람들이 나라를 어지럽히고 있다. 정의가 살아 숨쉬는 사회는 요원한 것인가. 우리 정치판에는 ‘궁지에 빠진 우리편’과 ‘사악한 저쪽편’만 있다. 세계적 현상이라는 정치의 극단적 ‘양극화’는 우리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정치는 분열을 완화하기 위한 것이지, 분열을 조장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에즈라 클라인의 분석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코리아’는 잘 나가던 지구촌의 롤모델이었다. 그런데 2024년 12월 3일 이후 너무 ‘모냥’이 빠지고 있다. 제발 ‘부채질’(煽動)들을 멈춰라. 우리 스스로 너무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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