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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춘추] 중국 혐오에만 머무르기엔
kor_eaiinmedia | 2025-02-28
국민일보
‘ㄹ 발음을 잘 들어 보세요.’
지인이 귀띔해서 찾아본 쇼츠 영상 제목이다. 헌법재판소 공보관이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 관련 브리핑을 하는 내용이다. 평범한 브리핑인데 악마는 디테일, 즉 발음에 있다고 유도한다. ㄹ 발음에 중국인 억양이 묻어 난다는 것. 제목의 마법이랄까. 그냥 들을 때는 모르겠으나 자꾸 ㄹ 발음에 집중하다 보니 어딘가 어색한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동조 댓글이 1000개에 육박한다. 제작자의 의도는 성공했다. ‘중국인(화교)이 헌재까지 침투해 대통령 탄핵을 유도하고 있다.’
해당 공보관의 발음을 다룬 영상만 버전이 여러 개다. 하지만 공보관은 서울 출생이다. 만연된 ‘중국 혐오’에 국가공무원법 상 외국인이 판사 등 특정직 공무원이 될 수 없다는 점은 쉽게 무시된다. 중국에 대한 반감이 새로운 뉴스는 아니다. 2010년대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태로 시작해 동북공정, 미세먼지, 코로나19를 거치며 광범위해졌다. 중국의 억지, 오만, 배타성이 자초했다. 최근 동아시아연구원이 발표한 주변국 인식 조사에서 중국에 ‘부정적’이라는 답변은 71.5%로 북한(79.0%)과 엇비슷했다. 일본(58.0%)보다도 훨씬 높다. 추세가 놀랍다. 2015년 조사 때 16.1%에서 2020년 40.1%로 치솟았고 5년 뒤 31.4% 포인트가 더 급등했다. 중국은 갈수록 밉상이었다.
그럼에도 대통령 탄핵 사태에 도드라진 혐중은 과거와 결이 다르다. 중국이 빌미를 주지 않았음에도 공격적이고 급속도로 퍼졌다. 탄핵 찬성집회에 중국인들이 대거 참석했다는 불확실한 뉴스가 유튜버와 몇몇 국민의힘 의원들 사이에 떠돈 게 시작이었다. 윤 대통령은 계엄 후 대국민 담화에서 중국인의 간첩 활동을 끄집어냈다. 온라인 매체에서 ‘선거연수원서 중국인 간첩 99명 체포’ 보도가 나오자 대통령 변호인단이 헌재에서 이를 거론했다. 계엄이 ‘중국의 선거 개입’ 방지용으로 둔갑됐다. 언론과 당국이 팩트 체크와 공표를 통해 가짜뉴스라 해도 요지부동이다. 정치와 진영이 하나가 돼 혐중을 키웠다.
혐중은 탄핵 정국의 대상이 아닌 일상으로도 파고들었다. ‘화교 전형으로 쉽게 의대·로스쿨 간다’ ‘화교는 어린이집 1순위’ 소문에 수험생들, 맘카페가 동요한다. 부동산, 연금의 중국인 특혜설에 중장년들이 흥분한다. 가랑비에 옷 젖듯 나라가 서서히 혐중에 빠져들고 있다.
대통령 탄핵심판 공개 변론 절차가 마무리됐다. 3월 중순쯤 헌재 결정이 나올 것이다. 탄핵이 인용되든 기각되든 대한민국호는 재정비를 서둘러야 한다. 계엄발 분열과 갈등을 두고 나라의 발전과 도약을 기대하기 힘들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 등장 이후 격화된 글로벌 무역 분쟁, 기술 경쟁의 외풍을 대비하는 것도 발등의 불이다. 통합과 국익 우선의 리더십이 시급하다. 불신과 갈라치기의 도구로 쓰인 혐중 정서를 두고볼 수 없는 이유다.
게다가 지금 중국을 화풀이나 감정 배설 대상 정도로 여길 때가 아니다. 미국의 온갖 제재에도 ‘저비용 고효율’ 성능으로 세계를 놀라게 한 인공지능(AI) 스타트업 딥시크, 세계 최대 전기차 업체 비야디(BYD)의 저력은 우리나라에도 비상이다. 중국 제조업 굴기의 실체가 확인됐다. 글로벌 TV시장에서 중국 업체 점유율(출하량 기준)은 지난해 처음 한국을 추월했다. 우리가 우위라 자부했던 반도체 핵심 기술 역량도 중국에 대부분 역전됐다.
한반도 안보 위기를 풀어가려면 중국과의 협력 없이는 어려운 게 현실이다. 동맹도 가차없이 내치는 트럼프 정부 성향상 중국과의 경제·외교 관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할 필요성은 다분하다. 윤 대통령 본인이 계엄 사태 보름 전 시진핑 국가주석과의 회담에서 “중국은 안보, 경제, 문화 등 제반 분야에서 긴밀히 협력하고 있는 중요 국가”라고 했다.
혐중을 넘어 극중(克中), 용중(用中)의 지혜가 필요할 때다. 실체없는 주장에 혹하기보다 중국의 질주에 맞설 반도체 등 첨단 업종 지원, 주52시간 예외 방안 마련 등을 청원하는 게 국익에 도움이 된다. 온·오프상의 조직적 대응을 정당들이 기업의 규제 완화, 투자 역량 강화 대책 마련에 힘쓰도록 하는 데 쏟으면 어떨까. 생각 없이 내뱉는 혐오 넋두리보다 내실을 갖추며 시시비비의 창을 겨누는 게 중국을 더욱 각성시킬 수 있다. 중국 혐오에 머무르기엔 할 일은 많고 가야 할 길은 험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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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셋 코리아] 미·중 디커플링 충격 대비에 사활 걸어야
중앙일보 | 2025-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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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 2025-0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