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Note

소련이 붕괴되던 1991년, 그때 태어난 새내기들이 대학에 입학한다. 그들에게 냉전을 강의하고, 냉전의 마지막 고도라 일컫는 한반도를 설명하고, 냉전의 연장선상에 서있는 북한의 핵개발을 이해시키리란 쉬운 일이 아니다.

 

소련이 붕괴되던 1991년, 그때 태어난 새내기들이 대학에 입학한다. 그들에게 냉전을 강의하고, 냉전의 마지막 고도라 일컫는 한반도를 설명하고, 냉전의 연장선상에 서있는 북한의 핵개발을 이해시키리란 쉬운 일이 아니다.

 

탈(脫)냉전기에 모든 인생을 살아온 그들에게 냉전은 임진왜란이나 매한가지일수 있으니까. 고희를 맞는 냉전사의 대가 존 루이스 개디스도 같은 딜레마에 부딪혔던 것 같다.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었을 때 불과 다섯 살이었던 미국 대학생들에게 냉전사를 일목요연하게 전달하는 것은 큰 도전이었을 것이다.

 

2005년 출간된 ‘냉전의 역사’(The Cold War:A New History)는 냉전을 살아보지 못한 이들에게 냉전을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1945년부터 1991년까지 47년 간 미소의 대결사, 초강대국 틈새에 끼어지내던 3세계 국가들의 고난의 역사가 숨가쁘게 전개된다. 개디스는 냉전기 인류가 겪었던 정치, 군사, 외교 뿐 아니라, 사상, 문화, 사회의 단면을 촘촘하게 절개하여 하나의 책에서 다시 조합하는 놀라운 솜씨를 보여준다.

 

냉전의 기원과 전개과정에 대한 해석은 주지하는 바와 같이 정통주의, 수정주의, 탈수정주의로 나뉜다. 개디스는 탈수정주의의 문을 연 역사가다. 소련, 특히 스탈린의 팽창욕에 냉전의 책임을 돌린 것이 정통주의였다면, 수정주의는 미국의 자본주의와 제국성에 주목한다. 개디스는 이전 저작 ‘미국과 냉전의 기원, 1941-1947’(1972), <새로 쓴 냉전의 역사>(1997) 등을 통해, 탈수정주의를 발전시켰고, ‘냉전의 역사’도 같은 맥락에 위치한다.

 

개디스는 미소 양국 모두 “제국”이었다는 수정주의의 판결을 받아들이면서도, 양자의 차이점에 주목한다. 소련이 “강압에 의한 제국”이었다면, 미국은 “초대받은 제국”이며, 스탈린의 적나라한 팽창욕에 비해 미국의 제국성은 민주주의 정치절차, 행정부와 의회의 관계, 당파정치 등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지배하지 않고, 동의를 구했던 미제국이 냉전에서 승리한 것은 개디스에게 다행스러우면서도 당연하게 비추어지고 있다.

 

냉전은 긴 싸움이었다. 냉전의 기원에 대한 개디스의 해석은 2차 대전 이전으로 거슬러 간다. 스탈린과 트루먼이 2차 대전의 전후처리를 놓고 첨예하게 대립하기 훨씬 이전, 레닌과 윌슨은 전간기(戰間期) 세계의 흐름을 둘러싼 비전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이때 고립주의를 사수하며 국제무대에서 한발짝 물러서있던 미국은 2차 대전을 거치면서 초강대국으로 떠오른다.

 

개디스는 미국 냉전전략의 초석을 놓은 조지 캐넌의 말을 인용하여 냉전에 임한 미국을 대변한다. “미국은 오직 최선의 전통에 부합하면서 위대한 국가로서 보전될 가치가 있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기 위해 패권을 맡았다는 것.

 

1945년 당시 애송이 패권이었던 미국은 냉전에서 승리할 것이라고 확신할 수 없었고, 공산주의가 공격하는 계급 간 불평등이라는 자본주의국가로 결함을 가지고 있었다. 미국은 “자본주의의 자멸적 성향에서 벗어나려고” 애썼고, “자본주의가 배태하는 불평등과 자유로부터 도피하려는 유혹”을 극복하려는 노력을 통해 소련보다 우월한 제국의 자리에 섰으며, 결국 냉전에서 승리하였다. 개디스가 탈수정주의에서 점차 정통주의로 편향되어 간다는 학계 일각의 비판이 ‘냉전의 역사’에서도 적용될지 독자들의 판단이 궁금하다.

 

‘냉전의 역사’에서 한반도가 어떤 모습으로 그려지는지에 관심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개디스는 한국 전쟁의 발발의 책임을 김일성, 모택동, 스탈린에 적절히 배분하고 있다. 핵무기를 통해 한국전쟁을 끝내지 못한 트루먼의 고민, 즉, 핵전쟁 확산에 대한 두려움, 정확한 타격목표를 정하지 못하는 전술적 어려움 등이 생생하다. 한미동맹이 체결되는 과정에서 이승만-아이젠하워 간의 팽팽한 긴장도 흥미를 끈다. 개디스의 표현대로 한국은 “의존적인 동맹상대”였지만, “순종하는 동맹상대”는 아니었기 때문에, 냉전이 초강대국 마음대로였다는 것은 착각이었다고 지적한다.

 

3세계를 바라보는 개디스의 균형잡힌 시선도 평가할 만하다. 개디스는 미국과 동맹국들이, 독일, 한국, 베트남 같은 온전한 국가를 인위적으로 분단시키고, 분단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수많은 인명과 수십억 달러를 들였다는 것은 어떠한 전통적인 도덕원칙으로도 정당화하기 어렵다고 논한다. 냉전이 계속됨에 따라 타협이 정당화되고, 바람직한 것으로 인식되었던 일종의 도덕불감증, 공평함보다는 핵전쟁을 막고 안정된 미소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초강대국의 입장 등에 대한 개디스의 자국비판에서 학자의 양심이 느껴진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채, 한 순간에 냉전은 종식되었다. 개디스는 책 중간 중간 소위 사회과학적 엄밀성을 내세우면서도 냉전의 종식도 예측하지 못한 국제정치이론가들을 조소하며 역사가의 방법론을 변호한다. 개디스의 설명은 이전 저작 ‘역사의 풍경’(2002)에서 암시되었듯 복잡계적이다.

 

작은 사건들이 뭉쳐 창발하며, 임계점을 넘을 때, 냉전의 거대구조가 한 순간에 허물어졌다는 것이다. 북경 나비의 작은 날개짓으로 뉴욕의 태풍이 온다면, 냉전을 끝낸 나비의 날개짓은 1975년 헬싱키 협정, 1979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폴란드 방문 등 부분적 사건들이었다.

 

개디스는 자유와 민주주의를 향한 공산권 치하 인민들의 작은 노력들, 그리고 냉전의 마지막 10년을 수놓은 지도자들의 용기, 웅변술, 상상력, 결단력, 신념, 무형의 지배력에 찬사를 보냄으로써 구조적 해석에 매달려있는 사회과학자들을 비판한다. 냉전을 끝내지 못한 한반도인들이 곱씹어가며 노력할 방향의 일단을 개디스가 제시해준다고 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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