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Note

광주(光州)에서 일본학자들과 한·일 신(新)시대 공동연구모임을 가졌다. 호남의 별미로 저녁을 먹으면서 자연스럽게 밴쿠버 동계올림픽이 화제에 올랐다. 김연아의 금메달과 아사다 마오의 은메달을 위한 건배도 있었다. 대화 속에는 경청(傾聽)할 만한 얘기들이 있었다.

김연아는 기술과 예술의 복합화로 세계 표준 이룩

우리 사활이 걸린 교육과 지식의 무대에도

국제화와 함께 한국화 동시에 이뤄야…

 

광주(光州)에서 일본학자들과 한·일 신(新)시대 공동연구모임을 가졌다. 호남의 별미로 저녁을 먹으면서 자연스럽게 밴쿠버 동계올림픽이 화제에 올랐다. 김연아의 금메달과 아사다 마오의 은메달을 위한 건배도 있었다. 대화 속에는 경청(傾聽)할 만한 얘기들이 있었다. 한일 간의 금메달 수가 6:0이었지만 국민총생산은 여전히 1:5라는 것이다. 더구나 이 격차는 당분간 줄어들기 어렵다. 더 중요한 것은 제2의 김연아와 아사다 마오의 예비후보 수다. 작년도 세계 여자 피겨 스케이팅 선수 100위까지를 보면 한국은 5명인 데 반해서 일본은 미국과 함께 15명으로 가장 많은 미래의 스타를 보유하고 있다.

 

모처럼의 광주행이라 오랜만에 강진(康津)의 다산 초당에 들렀다. 조선지성사의 거목(巨木) 중에 세계 지식 올림픽이 있었다면 금메달감인 정약용(1762~1838)이 강진 유배 18년 중 후반 10년을 지낸 곳이다. 초당으로 가는 가파른 산길을 오르면서 어제저녁 얘기가 다시 생각났다. 해결책이 없는 것은 아니다. 21세기 중심무대들의 주인공이 될 제2의 김연아, 제3의 김연아를 대량 생산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과정은 힘들다. 김연아의 환상적인 연기가 있은 후 미국 뉴욕타임스는 흥미로우면서도 격조(格調) 있는 평을 싣고 있다. 김연아의 금메달은 단순한 금메달이 아니라는 것이다. 평가의 객관성을 높이기 위한 기계적 채점방식의 도입은 예술의 피겨 스케이팅보다 기술의 피겨 스케이팅이 중시되는 시대를 불러왔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 김연아는 기술과 예술을 성공적으로 복합한 피겨 스케이팅의 새로운 세계표준을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미래 한국을 위해서 가장 시급하게 제2의 김연아가 필요한 곳은 교육·지식 무대다. 전통의 군사·경제 무대가 오늘의 국력 순위를 여전히 결정한다면 교육·지식의 신흥 무대는 내일의 국력순위를 결정한다. 세계 최강의 G4에 둘러싸인 중진국 한국에 전통무대의 세계최강은 태생적 한계가 있다. 따라서 신흥무대의 중요성은 G4에 비해서 훨씬 더 절박하다. 교육·지식무대에서 한국이 온 힘을 다해 밀고 있는 것은 국제화다. 19세기 일본의 영어 모국어화 논의처럼 21세기 한국은 조기(早期) 영어교육 논의에 몰두(沒頭)하고 있다. 전 세계가 경이의 눈으로 바라보는 기러기 가족의 세기(世紀)적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전국의 대학들이 획일적으로 영어 강의와 영어 논문 쓰기를 국제화의 척도로 목을 매고 있다.

 

그러나 이 노력만으로 제2의 김연아를 키울 수는 없다. 교육·지식 무대에서 한국 모델이 지구 표준이 되려면 지금 같은 국제화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올림픽에 참가할 수 있는 기술의 교육은 있어도 김연아 모델의 세계표준화를 가능하게 했던 예술의 교육이 빠져 있다. 발상(發想)의 전환이 필요하다. 세계가 부러워하는 교육·지식의 김연아 모델을 마련하려면 국제화를 넘어선 복합화(複合化)를 본격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우선 완벽한 모국어 교육 위에 필요와 능력에 따라 이중(二重) 또는 다중(多重) 외국어 교육이 자리 잡아야 한다. 세계 누구보다도 섬세하고 깊이 있는 생각을 할 수 있는 완벽한 모국어 능력 없이 세계를 이끄는 표준 모델의 개발은 불가능하다.

 

김연아식 우승의 중요함은 완벽한 기술로 전달한 남다른 예술의 내용이었다. 제임스 본드와 거슈윈 콘체르토 음악의 선율 속에서 한 동양 선수가 뛰어난 기술로 남들이 표현하지 못하는 아름다움을 마음껏 드러냄으로써 세계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다. 동서고금의 시공간을 자유자재로 넘나든 것이다.

 

이번 올림픽이 보여준 최대의 성과는 우리 기성세대가 보여준 중계방송과 격려의 촌스러움에 비해서 젊은 선수들이 보여준 한국인이자 지구인으로서의 의젓함이었다. 우리 교육·지식 모델의 세계 표준화 성패(成敗) 여부도 초보적인 국제화 노력을 넘어서서 보다 세련된 복합화에 달려 있다. 동서고금의 매력자원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서양중심 국제화 교육에 못지않게 고전 한문을 포함한 동양의 지적(知的) 보고(寶庫)에 대한 본격적 교육이 절실하다.

 

하영선 서울대 교수·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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