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영선 칼럼] 악순환의 청룡열차에서 탈출하는 법](../images/bg_tmp.jpg)
[하영선 칼럼] 악순환의 청룡열차에서 탈출하는 법
kor_eaiinmedia | 2009-08-13
하영선
1985년 5월 1일, 나는 우즈베키스탄의 수도 타슈켄트에서 노동절을 축하하기 위해 마련된 붉은 깃발의 긴 행렬을 높은 단상에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유엔대학 주최로 열린 아시아 지역평화를 위한 국제회의에 참석했던 세계 10여 개국의 평화연구자들과 함께였다. 그중에는 북한의 한반도 문제 전문가들도 있었다. 이 회의는 남북한이 공식적으로 얼굴을 맞대고 한반도 평화문제를 토론했던 첫 번째 국제 학술모임이었다.
중국은 '5자 모임'을 받아들이지 않고,
한미동맹해체·핵군축 등이 제기되는 악몽의 열차…
1985년 5월 1일, 나는 우즈베키스탄의 수도 타슈켄트에서 노동절을 축하하기 위해 마련된 붉은 깃발의 긴 행렬을 높은 단상에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유엔대학 주최로 열린 아시아 지역평화를 위한 국제회의에 참석했던 세계 10여 개국의 평화연구자들과 함께였다. 그중에는 북한의 한반도 문제 전문가들도 있었다. 이 회의는 남북한이 공식적으로 얼굴을 맞대고 한반도 평화문제를 토론했던 첫 번째 국제 학술모임이었다.
회의를 끝내고 어렵게 소련 당국의 허가를 받아 유엔대학 및 북한대표와 함께 타슈켄트에서 멀지 않은 고려인 집단농장을 방문했다. 노동영웅 칭호를 받아 널리 알려진 대표 황만금은 우리를 맞으면서 이런 얘기를 했다. 고려인 농장에 남북한 사람이 함께 찾아온 것은 반세기 만에 처음이며 남한, 북한, 그리고 우즈베크 한인이 이렇게 함께 만날 수 있도록 한반도에 평화가 하루빨리 찾아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한국이 중동까지 가서 석유를 사는 대신 우즈베키스탄의 석유와 가스를 사가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황만금의 얘기를 들으면서 나는 답답했다. 1979년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과 함께 당시 세계질서는 긴장완화의 10년을 뒤로 하고 다시 신냉전의 어려움을 겪고 있던 때였다. 1985년 소련의 새로운 지도자로 등장한 고르바초프가 개혁을 외치기 시작했으나 나를 포함해서 아무도 냉전이 그렇게 빨리 막을 내리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한마디로 국제정치적 상상력의 빈곤이었다.
그러나 사반세기가 지난 오늘 한국과 우즈베키스탄은 황만금의 꿈을 그대로 현실화하고 있다. 미수교국 소련의 비자를 유엔대학의 끈질긴 노력으로 간신히 받아 회의에 참석해야 했던 당시를 회상하면 상전벽해(桑田碧海)의 변화가 찾아왔다. 한국은 구소련의 해체에 따라 1992년 독립한 우즈베키스탄과 수교한 후 협력관계를 지속적으로 확대시켜왔다. 우즈베키스탄의 수입국 중에 러시아 다음으로 한국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석유공사는 우즈베크 석유개발 사업에 진출하고 있다.
타슈켄트의 꿈은 아직 한반도에서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1990년대에 남북고위급회담이 열려 남북기본합의서를 마련하고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을 했다. 2000년대에는 두 차례의 남북정상회담이 열렸다. 한반도에도 천지개벽(天地開闢) 같은 기적이 찾아올 때도 됐다. 그러나 현실은 차갑고 복잡하다. 금년에도 예외 없이 북한 선군정치의 로켓 발사와 2차 핵실험은 세계와 한국을 깊이 절망시켰다. 그리고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평양 방문에 따른 미국 여기자들의 석방과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방북과 함께 이루어진 억류직원의 136일 만의 귀환은 한반도의 꿈을 다시 한번 조심스럽게 키우고 있다.
클린턴의 평양 방문이 한반도의 평화로 이어지려면 위협과 제재의 대결, 동상이몽의 협상, 아전인수의 미봉책 마련을 계속해서 반복해 온 악순환의 청룡열차에서 탈출할 수 있는 출구를 찾아야 한다. 북한의 핵선군정치는 미국의 대북적대시정책과 핵위협의 선제 포기 없이 북한의 비핵화는 꿈도 꾸지 말라고 외치고 있다. 한편 미국의 오바마 행정부는 북한의 비핵화 없이 대북정책의 새로운 시작은 불가능하다는 결연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
더구나 미국은 북한의 2차 핵실험에 따른 유엔 제재는 과거와는 달리 효과적으로 북한에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며, 중국이 현재 표면적으로 5자회담에 동의하지 않고 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대북정책을 현실화할 것이므로 결국 북한은 비핵화를 전제로 한 미국의 포괄 협상 제안을 받게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은 미국이 예상하는 것보다 가능한 한 제재를 오래 견뎌서 상대적으로 유리한 협상 위치를 마련하고, 김정일 위원장 이후의 불안정성을 걱정하는 중국이 사실상 현재 수령체제에 보내는 최후통첩인 5자모임을 쉽사리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므로, 북한은 주한미군 철수, 한미군사동맹 해체, 핵군축회담에 따른 비핵화라는 협상 보따리를 내놓을 준비를 하고 있다.
판이 예상한 수순에 따라 진행되면 출구 찾기의 기대는 버려야 한다. 난국을 돌파할 묘수는 과연 없을까. 지난 판과 달리 김정일 위원장은 이번 판의 최대 당면 과제로서 가능한 한 이른 시일 내에 안정된 후계체제를 마련해야 한다. 문제의 핵심은 선군정치에서 선경제정치로 옮아가는 후계체제의 구축이다. 묘수는 김 위원장이 더 늦기 전에 새로운 후계체제 구축의 자구 노력을 과감하게 추진하고 관련 당사국인 5자가 21세기 북한의 핵 없는 생존 번영을 돕는 노력을 적극적으로 보태는 길밖에 없다. 유일한 살 길을 버리고 핵에 의존한 고난의 행군을 계속하면 북한은 결국 식물국가의 불행을 자초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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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 2009-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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