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Note

정주(鄭州), 낙양(洛陽), 안양(安陽)의 세 박물관을 다녀왔다. 꽤 오랫동안 벼르던 답사여행이었다. 중국이 공을 들여 추진한 '하상주단대공정' (夏商周斷代工程·1996~2000)의 중심지역이라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중국은 '문명 공정' 통해 21C 大同아시아제국 꿈꿔
우린 세계 최고 도자기 만든 기획·실천력 발휘할 때

 

정주(鄭州), 낙양(洛陽), 안양(安陽)의 세 박물관을 다녀왔다. 꽤 오랫동안 벼르던 답사여행이었다. 중국이 공을 들여 추진한 '하상주단대공정' (夏商周斷代工程·1996~2000)의 중심지역이라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1899년 학질을 치료하기 위한 한약재에서 우연히 발견되어 상나라(BC1600~BC1046)를 신화에서 역사로 바꿔놓은 귀한 갑골문들이 안양의 은허박물관에는 지천으로 널려져 있었다. 1959년부터 발굴되기 시작하여 신화상의 하왕조(BC2070~BC1600)를 새로 중국역사에 편입시킨 이리두(二里頭)문화의 청동기와 도기들을 낙양박물관에서 만났다. 그리고 규모가 가장 큰 정주 허난(河南)박물원은 대단히 인상적인 상주시대의 청동기들을 대량으로 전시하고 있었다.

 

박물관은 단순히 과거를 보여주는 곳이 아니라 동시에 미래를 속삭이는 곳이다. 미래는 과거의 토양에서 피는 꽃이기 때문이다. 금년 개혁개방 30주년을 맞은 중국은 올림픽을 무사히 치르고 새로운 꿈의 날개를 펼치기 시작하고 있다. 예정대로 2020년까지 전 중국인민의 기본 생계를 해결할 수 있는 전면적 소강(小康)사회 건설에 성공한다면 다음 목표는 어디일까. 중국은 '하상주단대공정'에 이어 2003년부터 '중화문명탐원공정(中華文明探源工程)'을 추진하고 있다. 전설 속 삼황오제를 역사화하려는 노력을 시작한 것이다. 이런 시간사(時間史)공정과 함께 공간사(空間史)의 동북, 서북, 서남 공정을 합쳐 보면 자연스럽게 중국이 하고 싶은 자기 얘기의 내용을 그려 볼 수 있다. '중화문명미래공정'은 21세기형 대동(大同)아시아의 제국을 꿈꾸게 될 것이다. 그 속에서 바람직한 한중 관계를 어떻게 가꾸어 나갈 것인가 하는 숙제는 한반도가 당면한 21세기 최대의 숙제다.

중국 박물관들을 돌아보고 답답해진 마음을 풀어줄 만한 곳이 있다면 일본 오사카의 동양 도자미술관이다. 그곳에서 한국의 미래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아담한 박물관이기는 하지만 한국도자기 애호가들에게는 성지순례의 필수코스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아타카(安宅) 컬렉션 1000여 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한국도자기 800점, 그리고 이병창이 기증한 한국도자기 250점을 만날 수 있다. 우아한 고려청자, 서민적이면서도 포스트모던적인 분청사기, 한번 쓰다듬어보고 싶은 순백자, 간결하고 멋스러운 철화백자, 깨끗한 화려함을 자랑하는 청화백자가 중국이나 일본도자기와는 비교할 수 없는 빼어난 아름다움을 발산하고 있다. 작은 이 공간에서만은 한국이 중국과 일본이 따라올 수 없는 초강대국이다. 21세기 역사를 우리 선조들이 도자기 만들었던 것처럼만 빚을 수 있다면 우리의 21세기는 남들이 모두 경탄하는 매력덩어리가 될 텐데.

 

21세기 세계무대에서는 과거 어느 때보다도 미래사 프로젝트의 기획과 실천의 치열한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그 속에서 동아시아는 아직 군사력과 경제력이 주도하는 무대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군사와 경제력이 열세인 한국은 누구보다도 시대를 앞서가는 기획 실천력으로 모자라는 힘을 극복해 나가야 한다.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같은 흙과 불로 남과 다른 세계 최고의 도자기를 구운 역사를 우리는 갖고 있다. 우리는 1948년 정부수립 이래 60년 동안 남들이 500년 동안 건설한 근대화를 압축 성장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앞서 있던 주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뛸 만큼 따라잡았다. 지난 10년 동안 숨고르기의 시간도 가졌다.

 

이제 다시 한 번 새 목표를 향해서 뛰어야 할 때다. 그 첫발은 과거와 미래의 박물관을 21세기에 맞게 새롭게 꾸미는 것이다. 남들은 만년을 되돌아보고 만년구상을 꿈꾸는데 답답하게 '해방파'와 '건국파'로 갈라져서 목숨 걸고 싸운다면 새 무대에서 목숨을 부지하기 어렵다. 올림픽이 베이징에서 화려하게 열리는 동안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에는 15세기 초 명나라의 정화(鄭和)가 이끌었던 300척 해상군단의 7차에 걸친 세계 최초 남해원정 전시회가 당당하게 정박하고 있었다.


하영선 서울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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