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Note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국 대사가 남북협력이 2·13 합의 이행과 맞물려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해서 말한 지 사흘 만에 이재정 통일부 장관은 “한반도 문제는 남북 간의 문제이며 남북관계는 흐트러짐 없이 일관성 있게 진행돼야 할 것”이라고 말해 한미 간의 인식 차이를 보여주었다.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국 대사가 남북협력이 2·13 합의 이행과 맞물려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해서 말한 지 사흘 만에 이재정 통일부 장관은 “한반도 문제는 남북 간의 문제이며 남북관계는 흐트러짐 없이 일관성 있게 진행돼야 할 것”이라고 말해 한미 간의 인식 차이를 보여주었다.

 

당연히 미국의 입장에서는 남북관계 발전보다는 핵 폐기가 중요하다. 작년 11월부터 미국 정부의 북핵 협상 태도가 급변해 2·13 합의에 이르기까지 전격적으로 북핵 폐기 로드맵이 가시화됐다. 나아가 북핵 폐기 과정은 북미 관계정상화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까지도 담아낼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어쩌면 이러한 비전은 미국이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 이유는 북한이 미국을 상대로 한 게임의 틀을 설정해 놓았기 때문이다.

 

북한 입장에서 한국과 미국은 비교의 대상이 아니다. 한국은 미국의 ‘괴뢰’여야만 하는 존재다. 정말 그런가 아닌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그렇게 됐을 때 북한은 한국에 정통성을 주장할 수 있고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런 북한이 한국을 상대로 한반도 문제를 풀어야 할 논리적 근거를 가질 수 있겠는가.

 

물론 한국은 경협이 장차 남북관계를 발전시키고 북한의 변화를 촉진할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아니면 정말로 ‘돈 있는 자’로서 북한을 돕고 싶어서일 수도 있겠다. 또는 장차 평화로운 통일을 위해서 필요한 ‘코스트’쯤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다. 어떤 경우든 한국의 대북 지원은 여러 가지를 따져 보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중에서도 국제사회의 시각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이를 경시하고 ‘나 홀로’ 식의 대북 경협은 한국까지도 북한의 고립을 닮아가려는 것처럼 비치게 한다. 과거처럼 한미공조를 금과옥조로 삼아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국제사회에는 미국만 있는 게 아니다. 중국이나 일본도 한국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개혁을 성공적으로 추진하는 중국의 시각에서도 한국의 대북정책은 이해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한반도 문제의 한반도화는 한국이 추구해야 할 목표이자 이상임에는 틀림없지만 현실은 아니다. 한국이 주도하기 위해서는 그럴 수 있는 여건이 조성돼야 하는 것이지 웅변으로 달성되는 것은 아니다. 생각과 말은 자유지만, 생각하고 말을 한다고 해서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는 게 아니다. 이재정 장관은 이런 점에서 경솔했다. 한반도 문제의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서 가장 협조를 받아야 할 나라가 미국이라는 사실을 의도적으로 간과한 것이라면 그는 미숙했다. 북한이 한국의 대북 경협으로 한국과 정치적인 사안들도 협의할 수 있을 것으로 봤다면 그는 무지했다. 그가 ‘한반도 문제 한반도화’를 한국이 추구한다고 하는 점을 역설한 것이라면 용감하고 순진했다. 단지 그뿐이다.

 

이제 2·13 합의 이행과는 상관없이 경공업 원자재가 북쪽으로 가게 돼 있다. 그 정도 간다고 해서 북핵 폐기 과정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겠는가. 이런 점에서 버시바우 대사의 말도 다소 과장이다. 그러나 그것이 간다고 해서 한반도 문제가 달라지는 것도 아니며, 한국의 주도권이 생기는 것도 아니다. 장차 언젠가는 그럴 수 있을 거라고 믿는 것은 막연하다. 정부의 정책이 모호해서는 안 된다.

 

북한의 핵 폐기는 한국에도 매우 중요한 사안이다. 이를 위해 전력투구해야 한다. 미국과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반복하지만 북한이 미국말만 듣기 때문이다. “왜 같은 동포이자, 경제적으로 돕고 있는 내 말은 안 듣나”라고 항변해 봤자 북한으로부터 ‘돈 좀 있다고 으스대지 마라’는 답이 돌아올 게 분명하다. 주고 싶으면 줄 때가 반드시 온다. 그때를 기다리는 것도 대북정책 옵션에 포함돼야 한다. 지금은 아니다.


 

류길재 EAI 북한연구패널 위원장 · 경남대학교 북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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