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Note

북한의 핵실험 이후 한반도가 또 다시 요동치고 있다. 하지만 불안과 염려 속에서도 우리 국민은 차분하게 일상을 이어가고 있다. 일각에서는 우리 국민이 정신 나간 것 아니냐고 닦아세우면서 ‘안보불감증’ 운운하고 있으나 이는 무고(誣告)이다. 오히려 국민의 평정심은 민주화 이후 냉전논리를 대신해 자리잡은 ‘성숙한 시민의식’이라고 해야 옳다. 정작 문제는 일반 국민이 아니라 북핵문제를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정치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국내 각 정파의 ‘미성숙한’ 모습이다.

북한의 핵실험 이후 한반도가 또 다시 요동치고 있다. 하지만 불안과 염려 속에서도 우리 국민은 차분하게 일상을 이어가고 있다. 일각에서는 우리 국민이 정신 나간 것 아니냐고 닦아세우면서 ‘안보불감증’ 운운하고 있으나 이는 무고(誣告)이다. 오히려 국민의 평정심은 민주화 이후 냉전논리를 대신해 자리잡은 ‘성숙한 시민의식’이라고 해야 옳다. 정작 문제는 일반 국민이 아니라 북핵문제를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정치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국내 각 정파의 ‘미성숙한’ 모습이다.
 
각 정파의 복잡한 주장들 속에 주목해야 할 것은 일각에서 ‘통일’에 대한 기대와 흥분이 고조되고 있다는 점이다. ‘어둡고 긴 터널의 끝’에 다가올 눈부신 ‘통일’에 대한 벅찬 ‘감격’이 드러나고 있다. 물론 ‘통일’의 전제는 김정일체제의 붕괴이고, 그 수단은 무력사용을 배제하지 않는 ‘강력한 제재’와 ‘전쟁불사의 의지’이다.
 
‘통일.’ 꽤 오랫만에 들어보는 단어이다. 사회주의체제의 몰락 이후 1997년 경제위기 전까지 한국 사회를 풍미했던 ‘북한붕괴론’과 ‘흡수통일론’이 약 10년 만에 다시 무대에 올랐다. 이번 드라마의 주제는 ‘핵실험’이라는 자충수를 둔 ‘독 안에 든 쥐’ 김정일 정권의 몰락이고, 그 끝에는 ‘통일’이라는 해피엔딩이 기다리고 있다며 관객몰이를 시도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또 다시 묻지 않으면 안 된다. 과연 제재로 인해 북한은 붕괴하고 ‘통일’은 다가오는가.
 
미·일의 경제적 압박에 중국이나 러시아가 적극적으로 참여할지 현재로서는 분명치 않지만 만약 그렇게 된다면 북한 주민은 극심한 고통을 감내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북한 입장에서 봉쇄는 별로 새로운 것이 아니다. 북한의 대외경제의존도는 매우 낮고 이미 반세기 넘도록 미국의 봉쇄 압박 속에서 살아왔다. 제재가 체제의 붕괴로 이어지려면 고통을 견디지 못한 주민들이 민중봉기를 일으켜야 하는데 저항적 시민사회가 존재하지 않는 북한에서 그러한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저항적 시민사회가 없는 북한에서 김정일체제 붕괴 요인으로 그나마 가능성이 있는 것은 반김정일 쿠데타뿐이다. 그러나 그동안 지속된 ‘선군정치’의 몇 안 되는 수혜자 중 하나인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킬 가능성도 크지 않거니와, 설사 성공한다고 해도 쿠데타 주도세력이 친미, 친일 혹은 친한(親韓) 군부이기를 기대하는 것은 망상에 가깝다. 기껏해야 친중 군부정권이 새로 들어설 수 있을 뿐이다.
 
상상조차 하기 힘든 무력 공격의 경우, 요행히 한반도 전체의 초토화 없이 김정일 정권이 쉽게 붕괴해준다고 하더라도 사후 관리를 위해 진격해 들어갈 미군 혹은 기타 외국군에 대한 북한 주민들의 반응이 ‘통일’을 기다리는 이들의 낙관적인 예측처럼 ‘해방군 만세’가 되기는 힘들다. 오히려 그것은 ‘결사항전’일 가능성이 크고 이는 길고 긴 내전의 시작이 될 공산이 적지 않다.
 
우리에게 우호적인 정권이 북한에 들어서고 우리가 바라는 통일을 평화적으로 앞당기기 위해서는 북한에 시민사회가 발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북한뿐 아니라 역사상 모든 권위주의체제의 존속과 강화에 효과적으로 이용되었던 구실, 즉 ‘임박한 외적의 침략 위협’을 경감 내지 제거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 점에서 불행히도 ‘햇볕정책’은 북핵을 제거하거나 방지하기에는 애초부터 역부족이다.

왜냐하면 대한민국은 북한이 요구하는 수준의 ‘안전보장’을 제공할 능력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햇볕정책’은 결코 ‘햇볕’을 충분히 내리쬘 ‘해’가 될 수 없던 서글픈 운명을 가진 대한민국 정부가 통일을 평화적으로 앞당기기 위해 행할 수 있었던 최선의, 그리고 유일한 선택이었다.
 
한반도의 평화를 해치지 않으면서, 그리고 우리가 피땀 흘려 이룩한 경제발전과 민주주의를 희생시키지 않으면서 손쉽게 금세 다가올 ‘통일’이란 없다. 그러기에 상식을 가진 이 땅의 국민은 북핵을 계기로 김정일 정권이 붕괴되고 곧 ‘통일’이 다가올 것이라고 흥분하지 않는다. 통일은 서서히 올 것이며, 서서히 와야만 한다. 적어도 우리가 바라는 평화적 통일은 말이다.

김선혁 EAI 분권화센터 소장 · 고려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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