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Note

신뢰구축→긴장완화→군비통제 단계적 수순 밟는 것이 타당

한반도 평화체제에 대한 노무현 정부의 접근은 미국이 보는 ‘평화’ 개념과 북한의 ‘평화’ 사이의 어정쩡한 타협으로부터 출발했다는 점에서 근본적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었다.

신뢰구축→긴장완화→군비통제 단계적 수순 밟는 것이 타당 

한반도 평화체제에 대한 노무현 정부의 접근은 미국이 보는 ‘평화’ 개념과 북한의 ‘평화’ 사이의 어정쩡한 타협으로부터 출발했다는 점에서 근본적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었다.

미국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저해하는 최대의 요인으로 북한의 위협 의지와 위협을 가할 수 있는 능력을 들고 있다. 즉, 북한 군사위협의 완화 혹은 소멸이야말로 한반도 평화를 위한 불가결의 요건이며, 북한의 비핵화와 핵 비확산이 이를 실현하기 위한 첫 단계 작업인 것이다.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를 한국 및 미국에 대한 위협을 제거할 실질적 의지가 있는가의 여부를 판단하는 리트머스 시험지로 보고 있다. 따라서 미국은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은 북한이 신뢰할 만한 핵 폐기 단계에 이르렀을 때에만 가능하다는 입장을 견지해 오고 있다.

반면, 북한이 주장하고 있는 ‘평화’에는 한반도에서의 평화를 훼손하는 최대 요인을 주한미군에 두고 있다. 따라서 주한미군이라는 위협이 사라지지 않는 한 핵을 포함한 어떤 무장도 북한으로서는 정당한 것이 된다. 다시 말해 북한은 미국의 북한 압살정책에 대응하기 위한 자위적 수단인 핵 억제력을 해제하지 않고서도 평화체제 수립이 가능하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참여정부는 실질적인 비핵화 이전에도 선언적 평화를 통해 평화체제를 앞당길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핵화가 아니라면 무엇으로 북한의 위협의지 철회를 입증할 것인가에 대한 명확한 답을 제시하지 못했다. 북한이 ‘선언된 평화’를 악용하여 정전체제와 한·미 동맹관계의 변화를 요구할 경우에 대비한 미래 동맹의 비전을 제시하는 노력 역시 미흡하였다. 섣부른 ‘종전선언’ 논의가 한·미 간의 미묘한 갈등과 국내적 논쟁을 유발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평화체제 문제에 있어 차기 정부는 가장 먼저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 남북한 간에는 ‘남북기본합의서’와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이라는 두 개의 전범(典範)이 이미 존재하고 있다. 두 합의문의 기본정신에 따라 한반도 평화체제는 [정치적 신뢰구축 → 군사적 긴장완화와 불가침 준수 → 군비통제]라는 단계적 수순을 밟는 것이 타당하다. 이는 과거 북한 역시 동의하였던 사항이다. 평화협정은 남북한 간의 신뢰구축 정도에 따라 군비통제 초기 단계에서 실현될 수도 있고, 상당수준의 군비통제가 진행된 단계에서 구축될 수도 있다. 신뢰를 좌우하는 핵심적 조치가 바로 비핵화인 것이다.

한반도 평화체제는 완전한 물리적 핵폐기(비핵화 3단계 완료)까지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최소한 신뢰할 수 있고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비핵화 3단계의 본격추진)에 돌입해 있을 때 구축됨이 타당하다. 물론, 북한의 3단계 비핵화 진입을 전제로 한 다자 간 논의는 가능할 것이다. 다자 논의의 경우 동북아 평화체제는 남북한과 모든 주변국을 포함하는 6자가, 한반도 평화체제는 가장 관련 이익이 큰 남북한 및 미·중의 4자가 참여하는 역할 분담이 최적일 것이다.

 

차두현 국방硏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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