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학생

#12 EAI 장학생, 그 후!

  • 2016-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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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에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 따뜻하고, 똑똑하고, 단단하게 살아가고자 노력하는 서강대학교 사회학과 우주형입니다.

둔한 모범생. 부족함 모르는 장학생

고등학교에 들어가기까지 스스로 만족스러운 생활을 했습니다. 명절행사가 있어야 만났던 아버지와 저였지만 이에 대해 부족함을 느끼기엔 제 감수성과 욕심이 모자랐습니다. 반면, 공부를 잘한다는 많은 칭찬과 부러움은 저를 향했고 저를 향한 이러한 시선이 오히려 너무 많다고 느껴졌습니다. 자식이 잘되기를 바라는 어머니께서 학원 공부를 시켜주셨고, 이런 환경에서 벗어날 생각도 의욕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초등학교에서는 반장, 초등학교 어린이 회장, 영재교육원 학생 등등 고맙긴 하지만 간절하진 않았던 타이틀을 달았고, 중학교에서는 전교일등으로 불렸습니다. 딱히 의욕은 없었지만 결과적으로 저는 모범생이 되어있었고 모범생으로서 고등학교 이전의 생활을 정리했습니다.

소위 명문으로 불리는 고등학교에 진학했습니다. 공부 깨나 한다는 또래들이 모여서 경쟁을 하니 자연 성적경쟁에서는 금세 밀려났습니다. 수학 과목에서 내신 8등급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밴드부원으로서,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친구로서 자리를 잡아가자 학교생활은 낙원 같았습니다. 어지러운 집안을 보지 않아도 되는 새 시설의 기숙사, 공짜로 학교를 다니게 해주는 장학금, 명문고 학생으로서의 명예, 친구들과 부대끼는 재미… 하지만 달고 향기 나는 것들이 결국 제 눈과 귀를 가렸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딘가에서는

내가 즐거운 와중에도 세상문제는 끊임없이 돌아간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 두 사건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나의 가족 안에서, 하나는 나의 세계 밖에서.

제 동생과 어머니가 아팠습니다. 특히 동생은 심적으로 어려운 시간을 많이 보냈고, 그로 인해 어머니의 삶까지 피폐해질 수밖에 없던 상황이었습니다. 나의 즐거움에 취해 가족의 끔찍한 고통을 몰랐다는 데서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무슨 어려운 일이 닥치던지 돈 없고 힘 없는 이들은 위기에 제대로 대처할 수 없다는 것도 보았습니다. 돈 없는 집안에서 누구라도 아프면 기둥이 흔들린다는 것과 동정이나 조금의 도움으로는 근본적인 문제의 해결 또한 불가능 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어떤 자매와 어머니가 집세를 못 내서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아픈 딸과 실업자 어머니, 기초 수급자 신청도 혜택도 자격도 없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 사건은 제게 또 다른 충격을 주었습니다. 저는 누군가가 베풀어 준 돈으로 잘 먹고 잘 살고 잘 노는 동안, 누군가는 아프고 일하지 못해서 생활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제게도 그들에게도 ‘잘못’은 없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나’와 ‘세상’을 발견하고 싶어서

사회적인 문제와 삶의 밀접한 연관성을 보고 사회학과에 진학했습니다. 다양한 경험을 해 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대학생이라면 수업 밖에서도 공부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독서토론 동아리를 지금까지 해오고 있습니다. 정의감에 불타진 않았지만 한겨울 소녀상도 지켜보고 시위 구호도 외치며 직접적인 사회 참여도 조금 맛보았습니다. 다양한 의견을 가진 사람들을 만났고, 절박함과 확신에 찬 주장을 외치는 장면들도 목격했습니다. 공감이 부족한 사회, 주변화된 이들의 간절한 외침이 그제서야 조금 보이고 들리는 듯 했습니다.

가볍게는 고등학교 때의 재미를 못 잊어 밴드도 다시 참여 해보고, 나에게 자산이 될 수 있는 운동을 가지고 싶어서 운동도 시작했습니다. 학교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유럽 여행도 다녀왔습니다.경쟁의 열기와 도태의 공포로 살벌한 가운데 내 자신이 무너지지 않으려면 남들과 ‘다른’ 점들을 생각해야 됨을 요즘 들어 느끼고 있습니다.

장학금은 족쇄를 푼다

동아시아연구원의 장학생 면접을 보러 와서 저는 ‘시간을 사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산 것이 시간뿐이 아니라는 점을 느끼고 있습니다. 책을 사기 위해서, 노트북을 사기 위해서, 독서토론 동아리 활동을 하기 위해서, 심지어는 엠티를 가기 위해서도 비용은 발생하고, 비용을 마련하려면 일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모순적이게도 일을 위해 시간을 보내면 책 읽을 여유가 줄고 토론할 약속이 줄고 만나는 사람이 줄어듭니다. 마치 ‘돈’이 족쇄인 것 같습니다. 장학금을 받게 되었기 때문에 제가 자신을 발견하기 위한 다양한 도전을 할 수 있었던 것이라 생각합니다.

따뜻하고, 똑똑하고, 단단하게

저는 따뜻하게 살아야겠습니다. 차가운 가슴을 정당화하려고 이성에 불을 내는 사람이 되지는 않으려 합니다. 거슬리는 장면은 피하고 나만 잘 살고자 하는 사회에서 누군가의 삶이, 생명이 뿌리째 흔들리는 것을 이미 보았습니다.

저는 똑똑하게 살아야겠습니다. 뜨거운 가슴으로 머리를 못쓰게 만들지 않으려 합니다. 고민하고 탐구하는 것을 포기하는 순간 남이 말하는 대로 생각하게 되고 그대로 살아가게 됨을 어렴풋이 느낍니다.

저는 단단하게 살아야겠습니다. 고민으로 매일을 보내도 세상은 끊임없이 돌아가고 사람들은 부단히 실천합니다. 가슴으로 느끼고 머리로 생각한 것을 발로 옮길 수 있는 정체성을 가지고 싶습니다.

부끄럽게도 제 적성이 어떠한지 아직 뚜렷이 깨닫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기회가 된다면 변호사와 같이 가지지 못한 저와 비슷한 이들을 돕고 사회에 변화를 불러올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싶습니다.

따뜻하고, 똑똑하고, 단단하게 살아가겠다는 고민을 가능하게 해준 모든 도움에 감사합니다!

#12 EAI 장학생, 그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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