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학생

#10 EAI 장학생, 그 후!

  • 2016-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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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이자 자유 칼럼니스트를 꿈꾸는 철학 전공자, EAI 장학생 2기 연세대학교 철학과 14학번 김여경 입니다.

실패와 불안으로 점철된 청소년기

뭐가 문제인지 정확히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저희 집은 항상 시끄러웠습니다. 아마도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함이 지나친 걱정을 낳고 그로 인한 우울증이 저희 부모님을 괴롭히지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 중학교 시절 저는 전교 60등 정도로 공부도 그렇게 잘 하지 못했고 저를 낳아준 부모님과 불화하는 제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이기 힘들어했습니다. 아버지가 저에 대한 욕심이 있으셔서 명문 고등학교에 진학시키려 했지만 그마저도 실패하고 일반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고향인 부산을 벗어나 서울로 대학을 가기로 결심했습니다.

더 이상 이렇게 살 수 없다는 절박함이 저에게 힘을 불어넣었고, 저는 부족한 중학교 공부부터 다시 시작해 한 학기 만에 중간고사에서 전교 1등의 성적을 받게 되었습니다. 참을성과 자제력이 거의 없는 성격이지만 그때는 책상과 혼연일체하여 공부에만 매달렸고, 이 습관이 제가 청소년기에 얻은 가장 값진 성과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렇게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긍정적인 관심을 받는 학생이 되었지만 집은 여전히 시끄러웠고, 머리가 조금 커지면서 가출도 가끔 감행했습니다. 좋은 성적에도 불구하고 저는 입시에 계속 실패하게 되는데, 불안정한 정서가 한 몫 했겠지만 집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몸부림만 있을 뿐, 대학에 들어가서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것이 없다는 동기의 부재가 원인이 아니었나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외로운 공부를 계속하면서 성찰하는 시간이 늘었습니다. 이 괴로운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나는 대체 어떤 존재인지, 더 나아가 나의 세계와는 별개로 돌아가는 듯한 세상은 어떤 건지 생각하고 틈틈이 다양한 분야의 서적을 읽게 되었습니다. 궁극적으로 여기에 대한 답을 줄 수 있는 것은 철학이라는 생각에 14학번으로 연세대학교 철학과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전공의 비실용성때문에 걱정하셨지만 위의 질문에 대한 답에 가까워진다면, 중심이 굳건한 사람으로써 힘든 세상살이를 헤쳐나갈 수 있으리라 믿고 있습니다. 대학에 입학한 뒤로 아버지가 일을 그만두시고, 부모님이 이혼하시는 등 힘든 시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힘든 청소년기를 극복하고, 제가 하고 싶은 공부와 일을 하고, 사회로부터 따뜻한 도움을 받는 지금은 누가 뭐라고 하든 행복하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스웨덴 교환학생, '스펙'에 대한 평가로부터 자유로운 삶

그렇게 대학에 온 뒤에는 고등학생 때 미처 하지 못한 다양한 경험을 하고 싶었습니다. 보조교사, 학교직무보조, 백화점 고객응대업무 등을 통해 생활비도 벌고 다양한 경험을 했습니다. 항상 새로운 과제와 맞닥뜨리는 생활은 즐거운 긴장감을 주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너무 지친다는 느낌을 덜어버릴 수 없었습니다. 이러한 시기를 견딜 수 있게 해준 것은 교환학생에 대한 꿈이었습니다. 교환학생이 되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여유로운 생활을 즐기고, 외국에서 새로운 것을 배운다는 생각은 저를 전율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하여 2학년 1학기때 교환학생 프로그램에 지원하여 3학년 1학기에 스웨덴 남부에 위치한 크리환스타(Kristianstad) 대학으로 떠나게 되었습니다. 아르바이트로 모은 300 만원, EAI 장학금 200 만원, 도움 받지 않으려 했지만 그래도 떠난다니 부모친지들이 모아주신 300만원 가량 등을 들고 스웨덴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스웨덴은 익히 살기 좋은 나라로 알려져 있듯이 외국인들에게도 무척 살기 좋은 나라였습니다. 인종 차별은 상상도 할 수 없으며, 어디 가나 사람들의 따뜻한 도움이 있었습니다. 제가 1월 중순 스웨덴에 처음 도착해서 23kg짜리 무거운 이민 가방을 어떻게 다른 가방 2개와 함께 기차로 올릴까 고민하고 있는데 기차가 도착한 순간 익명의 손이 이민 가방을 들어올렸습니다. 뒤에 사람이 많아 누군지 알 수 없었고 그래서 감사의 인사를 드리지 못했지만 아직도 그 따뜻한 손길이 기억납니다. 스웨덴은 그렇게 여유롭고 타인에 대한 배려가 있는 나라라는 것이 생활을 하면서 느꼈습니다. 물론 그 여유로움이 기차가 4시간이나 연착해도 우두커니 기다릴 수 밖에 없게 하는 등 불편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그래도 이 한적한 동네의 여유로움과 자연을 무척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스웨덴의 대학 수업 방식은 우리와 무척 달랐습니다. 총 15학점을 채우기 위해 3가지 수업을 들었는데 개인의 자율적인 학습을 강조하는 만큼 수업이 드문드문 있는 편이었습니다. 대신 소네트와 소설쓰기, 채식주의자에 관한 공동 논문 쓰기, 내가 생각한 스웨덴 사회의 문제점에 관한 글쓰기 등 어렵지 않으면서 창의력과 자율성을 위한 공간을 남겨둔 과제들을 받았습니다. 남는 시간에는 교환학생 친구들과 다 같이 북극권의 키루나(Kiruna)로 여행을 가서 오로라를 보고 개썰매를 타기도 하고, 작은 도시인 크리환스타를 구석구석 둘러보기도 하고, 그동안 소홀히 했던 독서도 하면서 여유를 즐겼습니다. 또한 스페인, 프랑스, 이탈리아, 크로아티아, 체코 등으로 여행을 떠나 박물관과 유적지에서 옛날에 배웠던 내용을 추억하기도 하고, 사진으로만 보던 유명한 관광지들에서 사진을 찍고, 다양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끊임없는 도전과 열정...발전하는 철학인 될 것

물론 가서 좋은 일들만 있었던 것은 아니고 스페인에서 여권과 핸드폰을 소매치기 당해 국제 미아가 되어 3일간 떠돌던 생각을 하면 아직도 아찔합니다. 그래도 건축, 생활 양식, 역사적 기념물에 인생을 아름답게 살고자 하는 태도가 배어있는 유럽은 다시 한번 그곳을 방문하기 위해 더욱 열심히 살게 하는 원동력이 됩니다. 가서 높은 물가로 인해 생활비는 많이 썼지만 영어 말하기 실력이 많이 늘어서 왔다 보니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교환학생 생활을 통해 한국에서의 낡은 생활 방식을 청산하고 소중한 경험들과 함께 새 시작을 하는 기쁨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다시 학교로 복귀하면서 제 대학생활을 돌이켜 보니 2학년 1학기에 정말 낮은 학점을 받아서 EAI 선생님들께도 따끔하게 야단맞고 저 스스로도 많이 힘들어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렇게 낮은 성적을 받은 적도 있고 교환학생으로 가 있던 동안은 전공 수업을 듣지 않아서 낯설기도 하지만 결국 제가 충실해야 하는 것은 제 전공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외국으로 대학원을 진학하는 것도 고려하고 있으며, 모교인 연세대학교에서 철학 교수로 재직하는 것을 꿈꾸고 있습니다. 글쓰는 것을 좋아하여 사람들이 철학을 쉽게 접할 수 있도록 교수이자 자유 칼럼니스트가 되고 싶습니다. EAI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좋은 선생님들과 학생들을 많이 만나게 되면서 한편으로 자극도 받고, 따뜻한 위로도 받는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 꿈을 이루어 나가는데 오랜 시간이 걸릴지도 모르겠지만 교환학생 생활에서 얻은 힘을 바탕으로 좋은 모습 보여드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10 EAI 장학생, 그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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