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방

EAI 사랑방, 그 후! - 22기 조이언(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철학과 졸업)

  • 2024-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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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간의 사랑방 여정을 마무리한 지 두 달이 지난 지금, 저는 여전히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사랑이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하고 있습니다. 수업을 듣는 동안에는 겨우 진도를 따라가느라 그 시간과 노력이 사랑의 세계정치로 나아가기 위한 훈련임을 때로는 잊곤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제 와서 다시 사랑이라는 화두에 대해 생각하다보면 그것이 결국은 진하고 값진 경험이었음을 실감합니다.

그렇다면 제가 1년간 배운 사랑의 세계정치에서 사랑이란 무엇이었을까요? 선생님께 사랑은 윤리적인 가능성을 모색하는 문제인 동시에 대상에 대한 지적인 태도를 정립하는 문제였던 것 같습니다. ‘사랑의 역랑을 지니고 있는 인간들이 어째서 사랑의 체제를 만드는 데는 실패하는가?’ 선생님으로 하여금 평생 사랑을 고민하게 만든 질문은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인간에게는 사랑의 역량이 있다는 단단하고 따듯한 믿음에서 출발한 공부였기 때문에 사랑과 연민의 능력이 국제정치의 차원에서도 발휘되는 ‘사랑의 세계정치’의 가능성을 평생에 걸쳐 추구하여 오실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사랑의 체제’를 꿈꾸는 사람에게는 ‘사랑의 인식론’이 필요합니다. 선생님께서는 사랑만큼 열렬한 앎(지적 연애)을 강조하시는데, 자신을 내려놓고 상대의 마음을 정말로 들여다보려 하는 진심이 결여된 앎은 우리를 크게 배우게 하지 못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제가 좀 고전하는 날이면 한 주 동안 공부한 내용이 ‘재미는 있었는지’ 물어주시던 모습을 요즘도 종종 떠올리곤 하는데, 재미란 결국 공부에 필요한 최소한의 진심이었던 것 같습니다.) 재미를 느끼든 마음에 미어짐이 있든 상대에 대한 진심이 먼저 성립한 다음, 이내 ‘나’의 생각과 감정은 물러나고 타자가 스스로 자신의 이야기를 펼칠 수 있게끔 하는 해석학적 태도, 이것이 선생님의 ‘사랑의 인식론’의 요지였다고 생각됩니다.

자기와 타자의 모순이 가장 첨예하여지는 국제정치에 관해서 이러한 지적 태도를 견지하는 것은 결심과 훈련을 요구하는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노력이 가치 있는 까닭은 그런 수행 끝에 획득된 지식이 사랑의 체제라는 ‘신질서 건축’의 재료가 되어주기 때문일 것입니다. 두 학기의 사랑방 커리큘럼을 통해 동서고금의 국제질서건축에 관해 두루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미래복합’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사랑의 체제에 관한 꿈을 가꾸어 온 ‘만청의 사례’가 없었다면 제 자신의 꿈을 일으켜 세우는 방법에 대해서 익히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여러 우여곡절 끝에 답사까지 무사히 마치게 도와주신 선생님과 동기들, 선배들과 연구원님께 감사드립니다. 여러 분들의 진심과 배려로 편안하게, 많이 배울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