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Note

이정환 서울대 교수는 한국의 경제발전으로 인해 과거 비대칭적 의존 관계였던 한일 경제관계가 경합적 관계가 되어 양국 간 자본 및 기술 협력의 유인이 저하되었고, 특히 2019년 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는 한국 기업의 ‘탈일본’ 움직임을 가속화하였다고 지적합니다. 저자는 한일 경제관계를 양자 차원에서만 인식하는 시각에서 탈피하여, 자유무역질서 강화라는 공동이익의 실현을 위해 한일이 글로벌 무역 거버넌스 및 규범 창출을 위해 협력할 것을 제언합니다. 나아가 미국의 대중국 전략에 대한 동조가 한일 양국의 국익에 손상을 줄 경우, 대미 의존적 정책에서 탈피한 전략적 자율성을 추구하며 한일이 협력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Ⅰ. 서론

 

한국과 일본 양국 간의 경제협력은 오랫동안 양국 사이의 역사인식 및 영토를 둘러싼 갈등 사안에도 불구하고 양국 간의 협력이 지속될 수 있게 하던 원동력이었다. 정경분리 원칙은 경제협력에 대한 강력한 유인이 정치 사안의 갈등을 제어하게 만들던 양국 사이의 구조적 관계에 대한 한국 정부의 정책적 대응을 상징화한 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정경분리 원칙으로 대표되던 한일 경제협력의 지속성은 2010년대에 들어 통화스와프 중단의 사례에서 발견되듯 허약해져 갔다. 2019년 일본 정부의 대한국 수출규제 조치는 한일 경제협력이 자체적 의미를 지니지 못하고, 한일 양국 간의 경제 관계가 역사인식 현안의 부차적 영역이 되었다는 인상을 준다. 이러한 단편적 인상에서 한일 경제협력이 더는 필요 없다는 정책 판단 주장이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한일 경제협력의 비가시화가 한일 경제협력의 불필요성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한일 경제협력의 필요성에 대한 의문은 한일 양국 정부가 정책적으로 양국의 기업 비즈니스를 연결시키려는 노력이 더는 절실하게 필요하지 않은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하지만, 양국 기업 사이에 비즈니스 관계가 소원해진 것은 아니다. 양국 기업 사이의 비즈니스 관계가 축소되었다기보다는 양국 정부의 양자 경제외교의 영역을 넘어 글로벌 공급망 속에서 자체적 동력을 가지고 작동하면서 비가시화되었다고 보는 판단이 적절해 보인다.

 

이 글은 2019년 일본 정부의 대한국 수출규제 조치 이후에 한일 경제협력의 방향성이 보다 뚜렷해졌다고 주장한다. 그 방향성은 한일 협력이라는 양자관계의 틀을 넘는 것이다. 한일 사이에 정부 주도로 양자적 경제협력의 유인을 새롭게 발굴하는 노력은 현 시점에서 적절성이 떨어진다. 한일 경제협력은 글로벌 무역과 생산 질서의 자유주의적 성격 유지에 대해 이해관계를 함께하는 한일 양국이 글로벌 규범 구축에 협력하는 방법을 통해 재탄생해야 한다. 한일 경제협력은 양국 간의 ‘경제’ 협력에서 양국 경제에 도움이 되는 글로벌 ‘협력’으로 발전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탈세계화 시대에 자유주의적 글로벌 무역과 생산 질서의 규범 구축 노력은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특히 미중전략경쟁 속에서 한일 양국의 글로벌 규범을 위한 협력은 쉽지 않다. 탈세계화의 위험성을 방지하는 한일 협력의 방향성은 공정성과 규범성 강조와 더불어 글로벌 규칙의 배제적 성격도 저어하는 자세도 필요로 한다.

 

이 글은 한일 경제관계의 변화를 우선 기술하고 2019년 일본의 대한국 수출규제가 한일 경제협력에 대해 가지는 의미를 설명한 후, 새로운 한일 경제협력의 방향성에 대한 주장을 담아내고자 한다.

 

Ⅱ. 한일 경제관계의 변화[1]

 

1. 비대칭적 한일 경제협력의 역사

 

한국과 일본의 경제관계는 비대칭적 의존관계로 출발하였다. 경제 발전을 위한 자본과 기술이 부족했던 한국은 자본과 기술의 도입처로서 일본에 크게 의존하였던 것이 사실이다. 1965년 한일국교정상화 과정에서의 청구권 자금 이후에도 일본의 엔 차관이 한국의 산업발전에 유용하게 사용되었고, 포항제철 건설에서 대표적으로 드러나듯 일본의 기술공여가 한국의 산업화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자본협력의 발전에는 상업차관과 이후의 엔 차관의 역할이 컸다. 청구권 협정에 포함되어 있던 상업차관은 1967년 2억 달러 추가 공여가 결정되어서 1960년대 총 5억 달러 이상이 한국의 경제 발전에 사용되었다.

 

[표 1] 대일 청구권 자금 사용 항목 (단위: 천 달러, %)

부문

무상자금

유상자금

합계

금액

구성비

금액

구성비

금액

구성비

농업

35,548

12.2

2,309

1.2

38,857

7.8

수산

27,176

9

 

 

27,176

5.4

광공업

(자본재)

(원자재)

164,263

31,438

132,825

54.8

10.4

44.3

113,725

56.9

277,988

55.6

과학 기술 개발

20,125

6.7

 

 

20,125

4

사회간접자본 및 기타서비스

6,029

2

83,966

41.9

89,995

18

기타(청산계정, 은행수수료)

45,859

15.3

 

 

45,859

9.2

합계

300,000

100

200,000

100

500,000

100

 

출처: 조성원 2015

 

주로 수출신용에 사용된 상업차관은 민간 기관 사이의 대출과는 달리 양 정부에 의해 사용처가 미리 결정된 형태로 제공되어 있었으며, 금리에 있어서 특혜적 수준으로 제공되었다. 청구권 자금은 한국의 산업 발전에 매우 중요한 것이었지만, 해외의 사업 기회를 확장하는 일본 기업들에게도 수혜적인 성격을 가졌다(아베 마코토 2015, 62-66). 또한, 일본 정부는 정부개발원조의 한 형태로 엔 차관을 한국에 제공하였다. 생산 인프라와 사회기반 인프라에 필요한 초기 자본이 부족한 한국 정부에게 일본으로부터의 엔 차관은 국제금융기관의 차입보다 훨씬 좋은 조건이 되었다.

 

따라서 1970년대 김대중 납치 사건, 박정희 대통령 저격 사건 등의 갈등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부는 1973년을 제외하고는 꾸준히 엔 차관 도입을 위한 한일 정기 각료회의에 적극적으로 임하였다. 한국 입장의 표현인 정경분리 원칙은 1970년대 초 한일 간 갈등 현안들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일본으로부터 자본 조달이 필요했던 한국의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또한 수출신용에 필요로 하던 상업차관의 크레디트 라인도 1970년대 지속적으로 인상되었다(이현진 2011; 최우영 2011).

 

일본의 자본 협력은 한국 정부의 산업 정책에 매우 긴요한 것이었기 때문에 한국 정부는 일본에서의 자금 조달을 늘리기 위해 안보를 연결시키기도 하였다. 냉전 상황에서 한국 측은 ‘부산적기론’이 상징하듯 일본이 자국의 안보를 담당하는 한국을 경제적으로 지원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안보적 차원에서 한국이 경제협력을 요구한 대표적 사례가 1980년대 전두환 정권기의 ‘안보경협’이다. 당시 나카소네 정권은 총액 40억 달러(엔 차관 18억 5천만 달러, 일본수출입은행 융자 2억 5천만 달러)의 자금 공여를 약속하였다(손기섭 2009).

 

한국 경제의 성장과 함께 일본은 한국에 대한 엔 차관을 종료하게 된다. 1980년대 후반 한국이 정부개발원조 수원국의 자격 조건에서 벗어나게 되면서, 1990년에 엔 차관이 종료된다. 하지만 1990년대 한국의 민간기업들이 해외로부터의 차입을 수행하는 데 일본 금융기관은 매우 중심적인 위상을 가지고 있었다. 1990년대 한국 민간 부분에 대한 해외 차입에서 일본 금융기관의 위상은 1997년 한국 외환위기의 전개 당시 일본 금융기관들의 대출 만기 연장이 매우 중요한 사안으로 여겨졌던 것에서 유추할 수 있다(이규성 2015, 8-10).

 

일본의 한국에 대한 기술 협력은 1950년대부터 정부개발원조의 일부로서 수행되었고, 국교정상화 이후에는 전문가나 조사단의 파견 등으로 기술 협력의 내용이 고도화되었다. 한일 정기 각료회의에서 한국 측은 일본 측에게 산업 부분뿐만 아니라 농업을 포함한 다양한 분야에서 한국의 기술발전을 위한 지원을 요청하였고, 이를 통한 기술 협력이 이루어졌다. 또한 민간 부분에서 한국 기업들은 일본 기업들을 세계적 기술력을 배울 수 있는 가장 좋은 대상으로 간주하였다. 하지만 한국 기업들의 기술력이 발전하여 세계 시장에서 일본 기업들과 경쟁적 관계로 발전함에 따라 일본 측의 기술 협력에 대한 자세는 소극적으로 되었다. 반면에, 무역 불균형에 대한 한국 측의 적극적 문제 제기로 일본 측의 기술 협력은 1990년대에도 한일산업기술협력재단과 일한산업기술협력재단을 통해서 지속되었다(후지타 토오루 2015, 544-546).

 

한국은 국교정상화 이후 일본과의 무역수지 적자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한국의 대일 무역 적자는 한국 경제 성장의 수출 중심 성격에서 기인한다. 1960년대 수출 지향으로 경제 정책 지향을 바꾼 이후 한국은 경공업 중심의 최종재를 해외에 수출하는 전략을 택했다. 하지만, 최종재 생산에 필요한 자본재와 중간재(소재, 부품)의 생산 체제는 구축하지 못했다. 따라서 최종재를 수출하기 위한 생산설비 투자와 최종재 생산에 필요한 중간재의 해외에서의 조달 필요성은 외국으로부터의 수입을 유발하는 효과를 지닌다. 이 상황에서 자본재와 중간재의 주된 수입처로 일본의 위상은 독보적이었다. 지리적으로 근접하고 자본재, 중간재, 최종재 생산의 풀세트를 구축한 일본은 한국에게 자본재와 중간재를 제공할 수 있는 최적의 상대였다(오쿠타 사토루 2015, 146-148). 이러한 상황은 한국이 1970년대 중화학 공업화의 전략적 선택을 통해 산업 구조를 변화하는 와중에도 지속되었다. 대규모 설비 투자를 의미하는 중화학 공업화는 한국의 대일 자본재 및 중간재 수입을 더욱 증가시켰다.

 

[표 2] 한일 양국의 상호 교역량 및 한국의 대일본 무역수지(단위: 100만 달러)

연도

일본→한국

한국→일본

왕복 무역량

한국의 대일본 무역수지

1965

180

41

222

-138

1970

818

229

1,047

-589

1975

2,248

1,310

3,558

-938

1980

5,364

2,995

8,359

-2,369

1985

7,122

4,092

11,214

-3,030

1990

17,421

11,632

29,053

-5,789

1995

31,215

17,157

48,372

-14,059

2000

30,684

20,434

51,118

-10,250

2005

46,539

24,402

70,995

-22,190

2010

62,119

28,543

90,662

-33,576

2015

45,853

25,576

71,429

-20,277

2020

46,023

25,097

71,120

-20,925

출처: 오쿠타 사토루 2015; 한국무역협회 K-stat 무역통계 (https://stat.kita.net/)

 

1997년 한국의 외환위기는 한국 경제의 구조와 성격에 큰 변화를 주었다. 동일한 시기에 일본은 거품경제 붕괴 이후의 부실 채권 문제로 인한 금융권 부실과 내수 부진이 복합화된 장기 침체로 빠져들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과 일본 사이에는 통화 측면에서의 협력이 새롭게 진전되었다.

 

IMF 구제금융의 다자적 프레임 속에서 일본 정부는 100억 달러의 제2선 지원으로 한국의 외환위기에 도움을 주었다. 물론 일본 정부의 100억 달러 규모의 제2선 지원은 실질적이라기보다는 심정적 성격이 크다(國際通貨硏究所 2002). 하지만, 이 지원은 한일 경제협력에서 오랫동안 존재하지 않았던 통화 협력의 출발점이 된다. 일본 정부는 1998년 신 미야자와 구상으로 외환위기에 처했던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지원책을 내놓았으며, 1999년 1월에 최대 50억 달러의 유동성을 한국 원화와 스와프하여 제공하는 협정을 통해 한국의 외환 문제에 방비책을 제공하였다(박성빈 2015, 299-301).

 

외환위기 이후 경상수지가 흑자로 전환된 한국은 대외 채무 증가와 외환보유고 고갈의 위험성에서 확실하게 벗어났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한일 양국 간의 통화 협력은 2000년대 들어서 치앙마이 이니셔티브 속에서 발전하였다. 1997년 아시아통화기금(Asian Monetary Fund: AMF) 창설이 미국의 반대 속에 좌절되었지만, 1997년 동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아시아 지역 내의 통화 협력의 필요성에 대한 공동 인식이 증가하였다. 그 결과가 양자적 통화스와프의 네트워크를 통한 실질적 아시아 통화 협력 체제인 치앙마이 이니셔티브의 창설이었다. 물론 치앙마이 이니셔티브 체제하의 양자 간 통화스와프는 IMF 지원에 대한 연계 자금이기 때문에 일정한 한계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치앙마이 이니셔티브는 한일 통화 협력과 아시아 지역 통화 협력 제도화의 출발점으로 의의가 있다. 2001년 치앙마이 이니셔티브 체제하에서 20억 달러 규모의 달러-원화 간 일방향(일본에서 한국) 스와프 협정이 추가되었고, 그후 2006년 2월에 원화와 엔화를 달러로 스와프하는 쌍방향 스와프로 전환되며 스와프 총액이 150억 달러로 증가하였다(박성빈 2015, 302-305).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한국에서 원화 가치 급락과 해외 자금의 대규모 이탈 문제로 전파되었을 때, 한국이 위기로 빠지지 않는 핵심적 역할을 수행했던 것은 2008년 8월의 미국과 300억 달러의 통화스와프였다. 글로벌 금융위기에 대한 각국 정부의 대응은 양자적 통화스와프를 증가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추세 속에서 한일 양국 사이의 통화스와프도 증가해 갔다(이용욱 2013).

 

2. 경합적 한일 경제관계로의 변화

 

한국의 산업 발전 속에서 한국의 일본에 대한 무역 의존도는 지속적으로 낮아졌다. 한국의 입장에서 경제활동 전체 중 일본의 수입이 차지하는 비중은 1980년대 이후 지속적으로 축소되었다. 수요 측면에서 봤을 때 민간소비, 투자, 수출의 각 부분이 수입을 유발하는 효과의 추세를 비교해보면, 민간소비의 수입유발 효과는 20% 내외에서 크게 증가하지 않았다. 반면에 투자는 1970년대에 수입유발 효과가 50% 내외였다. 이는 1970년대의 중화학 공업화가 상당한 규모의 수입유발 효과를 양산했음을 의미한다. 수출의 경우는 수입유발 효과가 30% 정도를 유지하다가 2010년대에 40% 이상으로 증가하였다. 최종적으로 한국의 경제 활동의 수입유발 효과는 역사적으로 1970년대 말이 매우 높았으며 차츰 줄어들다가 2010년대에 대시 증가하였다. 하지만, 대일 수입유발 효과는 197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지속적으로 하락하여 1975년과 2010년을 비교하면 대일 수입유발 효과는 대략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표 3] 한국의 대일 수입유발 효과

연도

최종수요항목별 총수입유발계수(%)

대일 수입
점유율(%)

천 달러당 대일 수입유발액(달러)

민간소비
지출

총고정
자본형성

수출

최종수요
합계

민간소비
지출

총고정
자본형성

수출

최종수요
합계

1966

11.3

35.4

26.5

16.4

37.0

42

131

98

61

1970

13.8

42.0

26.4

20.2

40.8

56

171

108

82

1975

20.0

50.6

35.8

28.8

33.4

67

169

120

96

1980

23.5

43.3

36.9

30.4

26.2

62

114

97

80

1985

20.2

37.6

35.3

26.9

24.2

49

91

85

65

1990

20.3

31.1

30.4

24.5

26.7

54

83

81

65

1995

21.0

33.1

30.2

25.4

24.6

52

81

74

62

2000

22.9

36.9

36.7

28.6

20.1

46

74

74

57

2005

24.3

31.2

38.3

28.1

18.6

45

58

71

52

2010

28.3

37.6

42.4

33.2

13.0

37

49

55

43

출처: 오쿠타 사토루 2015

 

세계 시장에서 일본 기업과의 경쟁자로서 한국 기업이 부각되기 전까지, 한국의 산업 발전에 대한 일본의 경계감은 크지 않았다. 1960년대 한국의 주된 수출품인 경공업 제품은 일본이 세계 시장에서 비교우위를 상실해 가고 있던 업종으로서, 일본의 입장에서 큰 경계감이 존재하지 않았다.

 

한국과 일본 사이에서 수출경합도는 1970년대 이래로 갈수록 증가하여 갔다. 한국이 노동집약적 산업구조에서 벗어나 일본과 동일한 형태의 산업 구조로 전환하는 데 성공하면서, 세계 시장에서의 경합도가 증가한 것이다. 이러한 추세는 한국의 경제 발전의 전략적 선택이 효과적으로 성공한 결과이다.

 

[표 4] 한일 상호 교역의 무역보완계수 및 수출경합계수

연도

무역보완계수

수출경합계수

일본→한국

한국→일본

1965

0.97

1.24

2.14

1975

0.97

1.00

1.23

1985

0.99

0.54

1.46

1995

1.02

0.75

1.39

2000

0.96

0.78

1.34

2005

0.96

0.68

1.46

2010

0.92

0.65

1.61

2011

0.86

0.62

1.63

2012

0.83

0.62

1.62

2013

0.85

0.63

1.60

출처: 오쿠타 사토루 2015

 

하지만, 1990년대 이후 (특히 2000년대에 더욱 강화된) 중국의 경제 성장과 연결된 생산의 세계화는 무역과 생산에서 한국과 일본의 관계를 양국 간 차원만으로는 이해할 수 없게 하는 글로벌 가치사슬화의 전개를 가져왔다. 글로벌 가치사슬에서 한국과 일본의 무역과 생산 측면에서의 관계는 단순히 양국 간 무역수지나 경합적 산업구조로 이해할 수 없는 성격을 지닌다(WTO 2011). 한국의 산업고도화로 인한 세계시장에서의 한일 양국 기업들의 경쟁구도는 양국 간 무역과 생산체제의 경합적 관계를 부각시켰다. 하지만, 양국의 무역·생산 관계는 생산의 세계화 속에서 경합적 관계로 단순화할 수 없다. 글로벌 가치사슬의 발전 속에서 한일 양국의 무역·생산 관계는 양국 사이를 넘어서서 전세계적 차원에서 보다 상호의존이 진전되고 있다.

 

아시아 지역에서 글로벌 가치사슬의 발전은 중국의 경제 발전과 중첩되어 있다. 개혁개방 후 중국은 연안 지역에서의 해외직접투자 유치를 성장을 주요 동력으로 삼았고, 해외 기업들은 중국의 저렴한 노동력을 통한 조립 공정의 입지로 중국을 바라보았다. ‘세계의 공장’은 최종재 조립이 운집한 중국의 위상을 보여 주는 표현이었다. 하지만, 한국이 산업화 시기에 최종재 생산을 위해 일본의 자본재와 중간재 수입을 증대하였던 것처럼, 중국의 최종재 조립 가공 공정의 중심적 입지는 해외로부터의 수입유발 효과를 낳았다. 이 과정에서 한국과 일본은 중국에 대한 자본재와 중간재 수출을 증가시켰다(WTO 2011, 76-77).

 

글로벌 가치사슬은 국가 간의 경제 관계가 무역 규모와 비교 우위로 해석하는 것을 더 이상 가능하지 않게 한다. 중국 경제의 성장은 산업 내 무역 차원에서 한국과 일본 기업들의 중국에 대한 수출을 증가시켰다. 부가가치의 분배에서 최종조립과정보다 기술집약적 소재와 부품의 생산에 더 많은 부가가치 배분이 돌아가기 때문에, 중국의 경제성장은 한국과 일본 양국에게 큰 경제적 이득을 주었다고 볼 수 있다.

 

한일 양국 간 무역의 비중은 줄어들었지만, 생산 과정에서 양국 기업들의 연관도는 글로벌 가치사슬 속에서 보다 높아졌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변화는 세계화의 결과이다. 따라서 양국 간 경제협력을 고민할 때, 양국 간의 무역 관계의 비중만을 주목하는 관점은 더 이상 적절하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한국의 산업 구조 전환의 성공과 이를 바탕으로 하는 한국 대기업의 세계시장에서의 존재감 확보는 고전적 한일 경제협력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 자본협력과 기술협력을 중심으로 하는 수직적 성격의 한일 경제협력은 낙후된 한국 산업의 상황을 전제로 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의 변화는 양국 사이에 자본협력과 기술협력의 동력이 떨어지게 되는 상황이 되었음을 의미한다.

 

한일 경제협력의 유인 저하는 2000년대 발전한 양국 통화스와프가 2010년대에 들어 정치적 갈등 속에서 종료되는 상황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거의 자동적으로 연장되어 오던 통화스와프 협정을 종료하는 것 자체가 정치적 선택이었다. 또한 2015년 12월의 위안부 합의 후 2016년 8월에 한일 간에 통화스와프 협정을 재개하는 논의에 착수하기로 합의한 것에서 유추해 볼 때, 통화스와프 협정에 대한 정치외교적 갈등의 영향을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표 5] 한일 통화스와프 일지

일자

내용

잔액

1999.06

50억 달러 통화스와프 체결

50억 달러

2001.05

20억 달러 통화스와프 체결

70억 달러

2006.02

80억 달러 통화스와프 체결

150억 달러

2008.11

150억 달러 통화스와프 체결

300억 달러

2010.04

170억 달러 통화스와프 종료

130억 달러

2011.10

570억 달러 통화스와프 체결

700억 달러

2012.10

300억 달러 통화스와프 종료

400억 달러

2012.11

270억 달러 통화스와프 종료

130억 달러

2013.07

30억 달러 통화스와프 종료

100억 달러

2015.02

100억 달러 통화스와프 종료

0

2016.08

한일 통화스와프 재개 논의 합의

 

출처: 저자 작성

 

Ⅲ. 2019년 일본의 대한국 수출규제의 의미

 

2019년 7월 1일 일본 경제산업성은 “대한민국을 향한 수출관리 운영 재검토(大韓民国向け輸出管理の運用の見直しについて)”를 발표하였다.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레지스트(감광재), 에칭가스(고순도 불화수소) 등 3가지 품목의 대한국 수출 시, 기존의 포괄수출허가(3년간 유효)를 개별수출허가로 전환한다는 것을 내용으로 한다. 7월 4일부터 한국에 상기 3개 품목을 수출하는 일본 기업은 수출 1건당 심사 및 허가를 받아야 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리스트 규제를 발표하면서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음을 예고하고,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하는 것과 관련하여 ‘수출무역관리령’ 일부를 개정하는 시행령(政令)안에 대한 의견을 공모하였다(7. 1. ∼ 7. 24.). 그 후 일본 정부는 8월 2일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하는 각의결정을 내리고 8월 28일 시행에 들어갔다. 한국을 화이트리스트 국가에서 배제하기 위해서 일본은 자국의 수출무역관리령 자체를 바꾸어 대상 지역 구분을 2가지 종류에서 4가지 종류로 바꾸었다. 각의 결정 후 현실적으로 한국과 같은 카테고리에 속한 국가는 거의 없는 상황으로 볼 수 있다. 한국을 타겟팅한 제도 개편이다. 캐치올(Catch-all) 규제를 예외 조치하는 화이트리스트에서 빠지게 되면서 한국 소재 기업은 일본 소재 기업으로부터의 수입에서 일본 정부로부터의 포괄적이고 자의적일 수도 있는 규제 적용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상황에 직면했다.

 

7월 12일 한국 산업자원통상부 관계자가 일본을 방문하여 경제산업성 관계자와 면담을 실시하였다. 이 면담에서 일본 측은 한국의 캐치올 규제가 미흡하고, 이와 관련하여 부적절한 사례가 있어서, 이에 일본 측이 양자 협의를 하자고 하였는데 한국 측이 응하지 않아 3년 간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주장을 내놓았다. 한국의 전략물자 관리에 대한 문제 제기는 한국의 대북 제재 이행 부실과 연결되면서 한국을 일본의 ‘안보화’의 원인으로 간주하는 입장을 유지하는 한편, 한국의 행정체계가 부실하다는 주장으로 발전하였다.

 

일본의 대한국 수출규제 조치는 한국 정부의 강한 반발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 여론의 부정적 일본 인식을 확대하여 일제 불매운동으로 연계되어 소비재 관련 한일 무역 관계에도 큰 손상을 주었다. 하지만, 큰 틀에서 볼 때 한국의 대일 수입에서 그 비중이 절대적인 중간재와 자본재의 수입에 일본 정부가 규제 조치를 하였다는 점에서 조치 실시 초기인 2019년 여름에 이에 대한 충격과 우려가 매우 컸다. 한국 기업의 세계 시장을 대상으로 하는 수출의 근간에 손상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본 정부의 수출규제 조치가 한국 기업의 세계 시장에서의 공급을 가로막는 상황으로 연결되지 않았다. 일본 정부가 수출규제 조치를 제재 수준으로 엄격하게 실시하지 않았기도 했지만, 한국과 일본의 기업들이 함께 ‘탈일본’하는 노력 속에 대응했기 때문이다. ‘탈 일본 기업’화가 있었음도 분명하다. 하지만, 기존에 거래하던 일본 기업과 더불어 생산 거점을 한국이나 일본 이외의 해외로 옮기는 ‘탈일본’화 노력을 적극 보여 주었다(김양희 2021).

 

2023년 3월, 일본이 수출규제 조치를 해제하고 한국이 이 조치에 대한 세계무역기구(World Trade Organization: WTO) 제소를 취하하면서 한일 경제협력은 정상화 단계에 다가섰다. 이 단계에 이르기까지 3년여 동안 한일 양국 기업들이 보여준 모습은 한일 경제협력의 현재적 의미에 대해 재고하게 만든다. 핵심은 한일 기업들이 경제적 관점에서 비즈니스 관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한일 양국 정부가 여건을 조성해 주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점이다. 그 여건 조성을 위해 정부가 무엇을 해야 한다기보다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를 고민할 필요가 크다. 양국 정부가 하지 말아야 할 것은 양국 기업의 비즈니스 계산에 외교 관계 여건의 영향이 들어가지 않도록 하는 자제의 노력이다. 달리 말하면 진정한 정경분리가 필요하다.

 

Ⅳ. 양자를 넘어 글로벌 규범 구축을 위한 한일 협력

 

1. 자유무역질서 유지 필요성에 대한 한일의 인식 공유

 

최근 몇 년간 한일 갈등이 격화되면서 일본의 정부 문서에서 한국과의 협력을 논하는 기술은 크게 줄어들었다. 한일 협력이 일본의 국익에 부합하는 점이 있더라도, 역사 문제에 대한 한국의 조치가 그 협력의 선제 조건이 된다는 태도가 일본 정부 내에 만연해 있다. 이런 풍토는 보수 정치권에서 더욱 강하며, 경제안보정책의 본격화 속에서 더욱 강화되고 있다. 일본의 경제안보 정책의 논리구조에서 볼 때 한국이 일본의 경제 산업에 진정으로 외생 리스크를 만드는지는 의문이다. 2019년 수출규제 조치와 같이 한국을 경제안보의 협력 대상에서 배제하고 안보상 조치의 대상으로 간주한 것은 역사인식 현안에서 기인하는 감정적 대응의 성격이 강하다. 미중전략경쟁이 격화되고 한일 갈등이 봉합되는 작금의 상황에서 한국이 일본의 경제안보의 우려 대상으로 다시 간주되는 것은 생각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역사 문제와 별개로 한일 양국 산업 간의 상호 보완성은 갈수록 저하되는 가운데 경합성은 증가해 가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한국이 일본의 자본과 기술의 영향 속에 산업화를 추구하였지만 산업화 경로에서 일본의 생산 네트워크의 하위로 들어가는 선택을 하지 않고, 일본과 유사한 일괄 생산 시스템을 한국 국내적으로 구축하려 했던 역사적 산물이다. 상호 보완성 저하와 경합성 증가는 한일 경제협력의 중요성에 대해서 한일 양국 내 인식이 갈수록 저조해지는 현상의 원인이기도 하다. 즉, 역사 문제가 잘 관리되더라도 한일 정부 간 양자적 차원의 긴밀한 경제협력은 양국 경제외교에서 그 비중이 점차 축소되고, 양자 경제 협력의 필요성에 대한 국내 차원의 설명은 갈수록 장황해지고 있다.

 

하지만, 양국이 국제정치경제 구조에서 동일한 위치에 존재하고 있다는 점은 미래 한일 경제협력 재설계의 핵심적 출발점이다. 한일 양국의 세계 시장에서의 높은 경합성은, 양국이 국제생산구조에서 동일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의미하기도 한다. 또한 미중 갈등 속에서 양국이 처한 중국과의 경제 관계가 가지는 딜레마도 유사하다. 일본의 전략적 자율성과 전략적 불가결성 추구의 경제안보 정책을 한국도 고려하고 있는 가운데, 양국 모두 자유시장 질서의 유지가 국익에 부합한다는 점에서 일치하고 있다.

 

한국과 일본은 미중 간 기술패권 경쟁이 가속화되는 속에서 경제의 안보화 추세에 적응하는 한편, 자유무역 질서의 유지도 필요로 하고 있다. 미중 간의 기술패권 경쟁이 격화하면서 특정 지역이나 기업과의 거래가 제한되는 상황이 확대되고 있다. 미국의 수출관리 강화 조치로 인해 중국 기업과 거래하는 한일 기업들은 공급망 전체의 리스크 관리는 물론, 중국의 대응 조치로 인해 대중 무역 ‧ 투자 환경도 급변하는 만큼 비즈니스 환경 악화에 대응할 필요가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미중 갈등이 격화되는 속에서도 한일 양국은 거대한 중국의 내수시장을 포기할 수 없는 상황이며, 또한 글로벌 공급망에서 중국과의 관계를 단절하기 어려운 여건이다. 한일 양국은 자유무역체제 확대라는 공통된 목표하에 협력이 가능한 공간이 존재한다. 미중 경쟁이 경제의 안보화 추세 속에서 자유주의 질서에서 벗어나는 흐름으로 전개되고 있는 가운데, 한국과 일본은 자유주의 국제경제질서의 창발을 위해 지역적 차원과 글로벌 차원에서 다자주의 협력 제도와 규범 창출에 목소리를 함께 낼 필요성이 있다. 2020년대 동아시아 또는 인도-태평양 지역 차원의 무역투자 분야의 거버넌스와 무역규범 논의는 글로벌 차원의 거버넌스와 규범을 선도하는 위상을 지니고 있다. 이는 한국과 일본이 글로벌 거버넌스와 규범 창출에 선도적으로 관여할 수 있는 여지가 과거 어느 때보다 커진 여건임을 의미한다.

 

2. IPEF의 포괄성 증진을 위한 한일 협력은 가능한가?

 

현재 국제경제질서의 글로벌 규범 구축을 위한 한일 협력은 2023년 시점에서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대한 협조에 포섭되고 있다. 한국과 일본은 모두 미국과 동맹 관계에 있으며, 2022년 한국의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미중 경쟁에 대한 양국 정책 선호가 매우 유사해졌다. 이는 양국의 글로벌 규범 구축에 대한 협력이 미국과의 협력으로 분명해졌음을 의미한다. 미국의 새로운 지역 질서 구축은 경제 영역에서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ndo-Pacific Economic Framework for Prosperity: IPEF)로 드러나고 있다. 구체적 내용은 여전히 불투명하지만, 자유와 공정의 규범성을 강조하고 있는 지점에서 ‘자유롭고 열린’이라는 규범성을 강조해온 일본의 기조와 부합한다. 한국의 윤석열 정부도 가치기반 외교를 강조하고 있는 가운데, 이 방향성에 일치되는 정책 기조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자유와 공정 또는 ‘자유롭고 열린’의 규범성이 한일 양국의 경제적 이해관계에 부합하는지 그리고 한일 양국이 원하는 진정한 자유주의적 질서인지에 대해서 숙고할 필요성이 있다. ‘자유롭고 열린’의 수사가 중국에 대한 배제로 귀결되지 않고, 글로벌 공급망의 불확실성을 줄일 수 있는 포괄적 경제 평화의 길을 찾을 수 있는지 고민이 필요하다.

 

중국의 일방적, 자의적 조치를 견제하는 글로벌 규범 창출 노력과 더불어 중국과의 경제 관계도 병행 발전시키는 것에 대해서도 양국 모두 이해를 가지고 있다. 이 부분에서 한일 양국이 협력할 수 있는지는 미지수이다. 하지만, 2017-2019년 사이에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헤징 차원에서 중국과 일대일로 협력을 추구했던 일본 아베 정권의 선택이 시사해 주는 점이 있다. 이는 미국에서의 불확실성에 대해 일본의 보수 정권이 보여준 유연성은 미중 사이에 일본의 전략적 자율성에 기반한 전략 추구가 가변적일 수 있음을 의미한다(박영준 2018). 당시 한국 정부의 대중 정책 지향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미중 경쟁 상황에서 한일 양국은 각각 헤징(hedging)을 추구했지, 상호 협력하여 헤징을 시도하지 않았다. 2017-2019년에 일본 정부의 대중 접근과 대한국 수출규제 조치는 동시에 이루어졌다. 2017-2019년 시점에서 일본에게 한국은 중국보다 더한 갈등관계에 있는 국가였다. 미중 경쟁 속에서 한일 양국이 협력해서 헤징 전략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글로벌 지경학에서 유사한 문제를 공유하고 있다는 전략 사고가 역사 현안을 둘러싼 감정을 넘어서야 한다. 과거에는 이러한 과제가 과도한 반일 감정을 자제하라는 한국에게만 주어지는 것이었다. 하지만, 현재 한일 양국관계에서 상대방에 대해서 감정을 넘어 전략 사고를 하라는 과제는 일본에게도 강하게 요구되는 것이다. 다만 일본 내에서 이를 자신들의 과제로도 진지하게 인식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Ⅴ. 결론

 

미중 경쟁 시대 한일 경제협력은 자유주의 질서의 글로벌 규범 창발을 위한 한일 양국의 지역적 그리고 다자적 차원의 외교 노력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이를 통해 한일 양국이 경제적으로 이해관계를 공유하고 있는 세계화된 자유주의적 무역과 생산 질서가 지속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 속에서 한일 양국의 기업들은 글로벌 공급망 속에서 자유롭게 상호간의 비즈니스 관계를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는 한일 경제관계를 양자관계에서만 고려하여서는 한일 경제협력의 합목적성을 찾기 어려운 여건과 연동된 변화이다.

 

한편, 미중 경쟁 시대 글로벌 규범 창발을 위한 한일 협력이 미중을 포섭하는 질서 창출을 견인할 수 있는지도 중요하다. 2023년 시점에서 한일 양국의 협력은 미국이 주도하는 규범성에 맞추는 형태로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미중 사이에 기계적 균형을 고려할 필요는 없다. 미국이 주장하는 자유와 공정의 규범성은 자유주의 질서의 기초이기도 하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의 사례와 같이 중국을 배제하는 성격이 한일 양국의 이해와 가치관에도 손상을 준다면 이에 대한 전략적 자율성 정책 추구의 여지와 이를 위한 한일 협력의 가능성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이러한 자세는 전후 일본의 보수 세력의 외교전략에서 심심치 않게 발견된다. 일본 보수가 보여주었던 대미 중심 외교 노선과 전략적 자율성 외교 노선 사이의 유연성은 현재 사라진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소위 ‘미래 지향적’ 한일 협력을 모색할 때, 협력 대상이 될 일본이 어떠한 양태를 보일지를 단언할 수는 없다. 한일 협력의 진화를 위해서는 일본의 단기적 그리고 장기적 세계전략 변화에 대한 섬세하고 치밀한 관찰이 요구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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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2장은 이정환(2017)의 일부 내용을 수정 편집하여 작성되었다.

 


 

저자: 이정환_서울대학교 외교학과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치고,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학교 버클리(University of California at Berkeley)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국민대학교 일본학연구소 전임연구원과 동 대학 국제학부 교수를 역임하였다. 주요 연구 분야는 일본 정치경제와 일본 외교이다. 주요 논서로는 <현대 일본의 분권개혁과 민관협동> (2016), <일본 지방창생 정책의 탈지방적 성격> (2017), <아베 정권 역사정책의 변용: 아베 담화와 국제주의> (2019) 등이 있다.

 


 

담당 및 편집: 박한수_EAI 연구원
문의: 02-2277-1683 (ext. 204) hspark@eai.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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