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로 한중 수교 32주년을 맞는다. 한·중 관계는 좋고 나쁠 때가 있는데 지금은 불편한 시간이 꽤 오래 가고 있다. 2016년 사드(THAAD) 사태로부터 아직도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지난 2월 한국리서치의 ‘2024 대중인식조사’에 따르면 “한·중 관계가 나쁘다”는 인식이 65%에 달했다. 성(性)과 이념, 연령에 관계없이 한·중 관계를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

한데 최근 이런 한·중 관계에 변화의 바람이 분다. 계기는 7월 10일 싱하이밍 전 주한 중국대사의 이임이다. 싱 대사는 지난해 6월 “중국의 패배에 베팅하면 후회할 것”이란 ‘베팅’ 발언 이후 사실상 활동이 끝났다. 윤석열 대통령이 조선의 국정을 농단한 위안스카이가 떠오른다며 불쾌감을 표시한 이후 대사로서 더는 할 일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이런 싱 대사를 바로 교체하는 게 순리였겠지만, 중국은 1년 여를 버티다 바꿨다. 한국과의 관계를 계속 이렇게 둘 수 없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북·러 밀착이다. 지난 6월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방북을 계기로 북·러는 군사적 자동개입이 가능한 것으로 해석되는 조약을 맺었다. 북한을 중국의 세력권으로 생각하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심기가 편할 리 없다.

또 북한이 신냉전에 반대하는 중국의 입장엔 아랑곳없이 중국과 러시아를 끌어들여 한·미·일에 대항하는 북·중·러 진영을 구축하려는 태도에 중국은 화가 난다. 계속해서 강화되는 한·미·일 안보협력도 중국이 한국과의 관계 개선에 나서게 하는 한 원인이다. 내년 경주에서 열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시 주석이 참석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선 방한 분위기를 조성할 필요도 있다.

중국 안보경제적으로 중요한 이웃

한국도 중국과의 관계 회복이 요구된다. 윤석열 정부의 외교는 한·미 동맹의 공고화→한·일 관계 개선→한·미·일 지역 안보협력체제 강화 순으로 단계적으로 진행돼 왔고, 이제는 한·중 관계 협력 확대를 모색하는 시기로 접어들었다. 국내 여론도 이를 뒷받침한다. 동아시아연구원(EAI)이 지난해 8~9월 실시한 ‘중국과 한·중관계’ 인식 조사에 따르면 한·중 관계가 한국에 중요하다는 응답이 무려 81.8%에 달했다.

한국리서치의 올 2월 조사도 비슷한 경향을 보인다. ‘한·미·일 협력 강화’와 ‘한·중 관계 개선’ 중 뭐가 더 중요한지 묻는 질문에 한·미·일 협력을 꼽은 이는 27%에 그쳤다. 가장 많은 52%가 둘 다 비슷하게 중요하다고 답했고, 한·중 관계 개선이 더 중요하다는 응답도 8%였다. 우리 국민의 60%가 한·중 관계를 한·미·일 관계 못지않게 중시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1992년 우리가 중국과 수교한 데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안보적으론 북한의 후원 세력과 손을 잡아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이루고, 경제적으론 10억이 넘는 새로운 시장과의 만남이었다. 지금은 북한에 대한 중국의 역할에 회의가 들고 지난해 처음으로 대중 무역적자를 기록하기도 했지만, 중국이 안보경제적으로 중요한 이웃이란 사실엔 변함이 없다.

자, 그럼 이제 관건은 앞으로 어떻게 한·중 관계를 개선시킬 것인가다. 이와 관련 중국이 싱 대사 후임으로 과연 누구를 보내느냐가 하나의 시금석이 될 전망이다. 처음엔 천하이(陳海) 에티오피아주재 대사, 천사오춘(陳少春) 외교부 아주사 부국장 등 한국통 이름들이 나오다가 최근엔 천저우(陳洲) 대외연락부 부부장과 류진쑹(劉勁松) 외교부 아주사 국장도 거론된다.

차기 대사와 관련 한국은 바람이 있다. 대사의 격(格) 문제다. 중국이 북한엔 차관급 인사를 파견하면서 한국에는 부국장이나 국장급을 보내는 게 맞느냐는 지적이다. 중국이 한국을 깔보기에 그렇다는 불만이 나온다. 따라서 중국이 한국과의 관계 개선에 성의를 보이려면 적어도 차관보급 이상을 대사로 임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소식통에 따르면 차기 대사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대사 임면은 두 달마다 열리는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회의를 거쳐 공개되는데 지난 6월 말 싱 대사 면직이 결정되었다. 후임 인선은 8월 말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이후 아그레망 절차 등을 감안하면 이르면 9월, 늦으면 10월에야 새 대사가 부임하게 된다. 중량급 인물이 온다면 한·중 관계가 탄력을 받기 쉽다. 이어 새 채널을 토대로 한·중 정상회담을 추진해야 한다.

중국에는 국가 간의 사귐은 국민 간의 친함에 있다(國之交在于民相親)는 말이 있다. 사실 국민 간 친함을 이루기 위해선 지도자 교류가 선행돼야 한다. 시 주석의 파워가 절대적인 중국 상황을 고려하면 특히 그렇다. 한·일 관계 개선 또한 윤석열-기시다 회동으로 빠르게 진척되지 않았던가. 중국 대사 부임 후 한·중 정상회담의 첫 무대로는 11월 페루 리마에서 열리는 APEC이 이상적으로 보인다.

“싸우지 않고선 서로 알지 못한다”

지난해 샌프란시스코 APEC 때는 불편한 한·중 관계를 반영하듯 윤 대통령과 시 주석이 스치듯 만난 게 전부였다. 이번 페루 APEC에서는 제대로 회담을 해야 한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 중국 내 탈북자, 공급망 안정 등 한·중이 협력해야 할 문제가 하나둘이 아니다. 정상 간 상호 방문 문제도 논의해야 한다. 한·중 관계를 눈에 띄게 개선시키는데 양국 정상의 교차 방문만큼 중요한 게 없기 때문이다.

순서로 따지면 시 주석이 올 차례이지만 국내 싸늘한 분위기 탓에 중국이 선뜻 나서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EAI의 2023년 ‘중국 국가주석에 대한 인상’ 조사에서 55%가 부정적 입장을 표했다. 좋다는 답은 4%에 불과했고 이도 저도 아니다가 31%에 달했다. 시 주석의 이미지 개선에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그렇다면 윤 대통령의 선제 방중도 검토할 만하다. 여기엔 전제가 따른다.

윤 대통령 방중에 걸맞은 선물을 중국이 안겨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 국민은 대중 외교에서 뭘 원할까? EAI의 2023년 조사에 따르면 중국의 경제 제재에 대한 대응(28%)이 첫 번째로 꼽혔다. 이어 중국과의 경제 및 첨단기술 협력(23.1%)→북핵 비핵화 공조(19.8%)→국민 상호인식 개선(18.8%)→기후변화와 환경, 감염병 협력(10.2%) 순으로 나타났다.

중국의 사드 보복 중 마지막으로 남은 한류의 중국 진출을 막는 한한령(限韓令)을 해제하고 중국이 희토류 등을 무기화 하지 않기를 바라는 한국인의 마음이 읽힌다. 이런 성과를 담보로 윤 대통령이 페루 APEC 이후인 내년 봄 중국을 국빈 방문하고 이어 내년 경주 APEC을 계기로 시 주석이 방한한다면 한·중 관계는 기나긴 터널에서 벗어나 정상을 회복하지 않을까 싶다.

싸우지 않고선 서로 알지 못한다(不打不相識)는 말이 중국에 있다. 사드 사태 이후 8년이나 다퉜으니 서로 알게 된 것도 적지 않을 터다. 이젠 협력을 모색할 때다.

차기 대사 후보로 천저우·류진쑹·천하이·천사오춘 등 물망

싱하이밍 후임의 제9대 주한 중국대사는 누가 될까? 처음엔 많은 한국통 외교관이 거론됐다. 천하이 에티오피아 대사와 천사오춘 아주사 부국장, 진옌광(金延光) 전 주한 중국대사관 공사 등이다. 또 일본통인 슝보(熊波) 베트남 대사 이야기도 나왔다.

최근엔 차관급 이상을 바라는 한국의 희망 탓인지 다른 두 사람이 주목을 받는다. 천저우 대외연락부 부부장과 류진쑹 외교부 아주사 국장이 그들이다. 올해 58세의 천저우 부부장은 한국통이다. 대외무역경제대학에서 한국어를 전공했고 김일성대학에도 유학했다.

수교 전부터 한국 근무를 시작했고 남북한 모두에서 일한 경험이 있다. 2000년대 후반 한국에서 경제 공사로 활약해 한국 친구가 많다. 중국 상무부와 기율검사위원회 등을 거쳐 2021년 대외연락부 부부장이 된 중량급 인사다.

류진쑹 국장은 올해 52세로 중국 인민대를 나와 미 터프츠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엘리트 외교관이다. 일본과 영국, 인도 등 주요국 근무를 거쳐 아프가니스탄 대사를 지냈다. 외교부 정책기획국 국장도 역임해 차관보급이란 말이 나온다. 천저우와 류진쑹 모두 경제통이란 공통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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