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Note

하승희 동국대 연구교수는 북한 주민들의 노래 개사 문화가 단순한 유희를 넘어, 체제 선전의 상징 언어를 해체하고 현실을 직시하려는 문화적 실천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진단합니다. 하 교수는 개사를 통해 표출되는 주민들의 감정과 창의성은 체제 통제력의 균열을 드러내는 "조용한 저항"의 양상으로 읽을 수 있음을 짚으며, 이러한 현상은 북한 사회 내부에서 상징 권력의 약화와 비공식 담론의 팽창을 시사하는 중요한 징후라고 분석합니다.

북한에서 노래는 지도자 찬양과 체제 선전의 도구로 활용된다. 모든 노래는 당국 주도로 기획되며, 엄격한 검열과 통제 과정을 거쳐 생산되고 유통된다. 가사가 없는 기악곡조차도 지도자나 체제와 연관된 배경과 주제를 바탕으로 한다. 표면상 사랑이나 일상을 다루는 노래들도 존재하지만, 이는 오히려 정치적 메시지를 감추기 위한 비정치성의 연출로 해석될 수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북한 주민들은 노래 가사를 개사하여 자신들의 현실과 감정을 표현한다. 전문 예술인 외에 개인의 창작 활동이 금지되고, 표현의 자유가 철저히 제한된 환경에서, 개사는 주민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자유로운 창작 행위이다. 이는 체제 선전에 대한 풍자, 혹은 일상적 감정의 분출이라는 이중적 의미를 갖는다.

 

북한 당국은 이러한 개사 행위를 '외곡'으로 규정한다. '외곡'은 조선말대사전에서 "비틀리여 구부러졌다는 뜻으로 ≪사실과 맞지 않게 그릇되게 꾸미는것 또는 그렇게하여 말하는것≫을 이르는 말"로 정의되며(『조선말대사전(2)』 1992, 1765), 이는 체제 이데올로기를 훼손하는 행위로 간주된다. 실제로 2021년 제정된 『청년교양보장법』 제41조 11항에서는 "우리 나라 노래를 외곡하여 부르거나 우리식이 아닌 춤을 추는 행위"를 명시하고 있어(서울: 국가정보원 2024). 노래를 외곡하여 부르거나 비북한식 춤을 추는 행위를 명시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이는 북한 내부에 노래 개사 현상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음을 시사한다. 이처럼 북한 주민들의 노래 개사 행위는 공식 담론과 이념의 통제력을 약화시키는 사적 담론의 출현으로 해석될 수 있다. 또한 체제 내부에서 일어나는 문화적 균열과 감정적 저항의 징후로 볼 수 있다.

 

I. 개사된 노래에 담긴 북한의 '진짜 현실'

 

북한에서 통용되는 개사노래들은 원곡과 내용적 연관성이 거의 없는 경우가 많다. 주민들은 전해 들은 가사를 그대로 부르거나, 기존 문장 구조 속에서 명사나 동사를 자유롭게 바꾸며 각자의 방식으로 개사에 참여한다. 이러한 개사 행위는 또래 집단 내에서 더 기발하고 더 대담한 표현을 경쟁적으로 만들어내는 과정 속에서 이루어진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들이 개사한 가사에 자신의 일상적 환경과 바람을 자연스럽게 투영한다는 점이다. 이는 표현의 자유와 창작 활동이 제한된 북한 사회에서도, 주민들은 자신들의 감정과 현실을 담아내기 위한 비공식적 언어를 끊임없이 재생산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1) 식량난 · 장마당

 

북한 주민들이 가장 많이 개사하는 노래의 소재는 식량난과 장마당이다. <어린 동무 노래부르자> 개사곡은 도입부 두 어절만 유지한 채 이후 가사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전개한다. 원곡에서 '자유의 강산'은 어린이들이 자라나는 이상적 공간으로 묘사되지만, 개사에서는 고난의 행군 시기 옥수수를 볶아 먹는 궁핍한 일상의 공간으로 전환된다. 이는 현실과 이상을 대비시키며 원곡의 상징성과 권위를 해체하고, 의외성과 유머를 통해 주민들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어린 동무 노래부르자> 원곡 및 개사곡 가사

<원곡>

자유의 강산에서 우리 자라고

평화의 락원에서 꽃피려하는

새 나라 어린 동무 노래 부르자

세상에 부러울것 그 무엇이냐

 

<개사>

자유의 강산에서 강냉이 닦는데[1]

할아버지 할머니 잡숴보세요

이빨아파 못먹겠다 너나 먹어라

이 놈의 두상태기[2] 배가 불렀네

 

개사 노래의 배경으로 '장마당'이 등장하기도 한다. 원곡은 1983년 창립한 왕재산경음악단 소속 가수 렴청이 부른 곡으로, 지도자를 태양, 인민을 위성으로 묘사하며 지도자를 찬양하는 노래다. 그러나 개사곡에서는 배경을 장마당으로 전환하고, 물건을 팔다 단속에 쫓기는 장사꾼들과 안전원의 모습을 희화한다. 장면은 도망치는 장사꾼들을 경쾌하게 묘사하며, 원곡의 후렴구 엇박자 리듬을 그대로 활용해 개사 가사의 운율도 자연스럽게 맞춘 것이 특징이다.

 

<태양의 위성 되자> 원곡 및 개사곡 가사

<원곡>

은혜로운 해빛 향도의 해빛

한몸에 받아 안고

태여나서 모두 삶의 위치를

그 곁에 정했어라

태양 태양 우리 태양 따르는 위성 되자

태양 태양 우리 태양 지키는 위성 되자

위대한 장군님 받드는 위성 위성 되자

 

<개사>

안전원이 온다 안전원이 온다

장사꾼이 들고 뛴다

담배팔던 영감 두부팔던 노친

모두 다 들고 뛴다

서라서라 서라서라 잡히면 잡아간다

뛰자뛰자 뛰자뛰자 잡히면 벌금이다

아직은 기운이 있으니 뛰자뛰자 뛰자

 

아동영화 ≪다람이와 고슴도치≫의 주제가인 <철벽의 동산 꾸려나가자>는 개사곡에서 장마당을 배경으로 굶주린 '꽃제비'가 두부를 훔쳐 도망가는 장면으로 바뀐다. 원곡의 집단적 협동과 방어의 메시지는 사라지고, 대신 장사꾼 할머니가 꽃제비를 쫓다 넘어진다는 희화적인 상황으로 전환된다. 이를 통해 현실의 궁핍함과 혼란스러운 장마당의 일상이 유머를 통해 표현된다.

 

아동영화 《다람이와 고슴도치》 주제가 <철벽의 동산 꾸려나가자> 원곡 및 개사곡 가사

<원곡>

용감하고 슬기로운 꽃동산의 동무야

모두모두 함께 뭉쳐 우리동산 지키자

사나운 원쑤가 덤벼들어도

우리 힘 지혜로 무찔러 나갈

철벽의 동산 꾸려 나가자

 

<개사>

슬기롭고 지혜로운 장마당의 꽃제비

이리저리 살피다가 두부 한모 훔쳤네

악에 바친 할망구 따라오다가

돌매한테 부딪혀 자빠졌다네

돌매한테 부딪혀 자빠졌다네

 

2) 연애·사랑·결혼

 

두 번째로 개사에 많이 활용된 소재는 '연애·사랑·결혼'이다. 예술영화 ≪봄날의 눈석이≫의 주제가 <사랑의 별>은 원곡에서 사랑의 감정을 중의적이고 서정적인 표현으로 묘사하지만, 개사곡에서는 도입부의 두 어절만을 인용하고 이후 전개를 원곡과는 다른 방향으로 바꾸며 직설적이고 현실적인 감정을 드러낸다. 개사는 시련을 겪은 여성이 남성에게 감정을 거칠게 표현하는 내용으로, 비속어가 포함되기도 하며, 원곡의 서정성을 조롱하듯 해체한다. 이처럼 개사 가사는 현실의 언어와 감정을 통해 원곡의 분위기를 반전시키며, 정제된 표현 아래 감춰졌던 감정을 개사를 통해 노골적으로 표출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예술영화 《봄날의 눈석이》중 <사랑의 별> 원곡 및 개사곡 가사

<원곡>

마음의 창가에 고요히 내리여 나를 불러 준 별이여

꿈 많은 가슴에 행복을 안겨 준 그대를 나는 사랑해

아 정다운 나의 사랑의 별이여

잠자는 창문을 조용히 두드려 나를 깨워 준 별이여

그늘진 가슴에 밝은 빛 뿌려 준 그대를 나는 못 잊어

아 정다운 나의 사랑의 별이여

사랑의 대문을 다정히 열고서 나를 품어준 별이여

희망찬 가슴에 조국을 안겨 준 그대를 나는 따르리

아 영원한 나의 사랑의 별이여

 

<개사>

(개사1)

잠자는 창문을 와당창 두드려 나를 깨워준 그대여

(개사2)

사랑의 대문을 앞발로 내차고 뒤발로 닫는 새끼야

니 새끼 없다고 시집을 못가랴

내사준 오토바이 내놔라

아 정말로 철없는 새끼네

(개사3)

사랑을 하는데 사랑을 하면 되지 내 손은 왜 잡느냐(내 가슴은 왜 만지나)

 

2001년 12월 조선예술영화촬영소에서 제작된 텔레비죤예술영화 《희한한 동굴》의 주제가 <젊음을 주는 곳으로> 역시 개사곡으로 활용되었다(『조선문학예술년감』 2002, 180). 원곡의 내용과는 무관하게, 개사된 가사에서는 1절에 남성, 2절에 여성의 입장을 각각 반영하여 연애와 결혼 생활의 현실적인 어려움을 토로한다.

 

예술영화《희한한 동굴》 주제가 <젊음을 주는 곳으로> 원곡 및 개사곡 가사

<원곡>

젊어지고 싶은사람

백년천년 살고싶은 사람

장수하길 바라거든 오시라 룡문대굴로

금수강산 내나라는 지하에도 천하절경 펼쳐

한번보면 십년은 두번보면 백년은

젊어지는 웃음대굴로

이 세상에 둘도 없는 장수보약 조선에만 있어

아니보면 후회되고 장수보약 얻지 못하리

밝은 태양 땅속에도 사랑웃음 쳘치여주니

은정속에 솟아난 룡문대굴황홀경

못보면 한생 한되리

 

<개사>

남자들이 입는 옷은

외출복 한벌이면 되고

여자들이 있는 옷은 스무벌도 넘어 된다네

그런데다 화장 값은 돈이나 적게나 드나

요롷게는 못살아 조롷게는 못살아

한생을 같이 못살아

여자들이 먹는 밥은 공기에다 한공기면 되고

남자들이 먹는 밥은 한쟁가비 넘어된다네

그런데다 술담배는 돈이나 적게나 드나

요롯게는 못살아, 조롧게는 못살아

한생을 같이 못살아

 

3) 군대

 

'군대'를 주제로 한 개사 내용은 군복무 기피, 복무 태만, 군사력 비하, 군인들의 이중성 폭로 등으로 다양하게 나타난다. <전호 속의 나의 노래>의 개사곡은 전반부에서는 원곡 가사를 그대로 따르다가 후반부에서 개사되는 구조를 취하고 있다. 원곡이 전쟁터에서 충성과 희생을 미화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면, 개사곡은 오히려 살아남는 것을 중시하며 원곡의 메시지를 전복한다. 특히 원곡의 설정을 그대로 인용하면서도 그 의미를 반대로 전환하는 방식은, 공식 서사의 권위를 해체하는 전략적 장치로 기능한다.

 

<전호 속의 나의 노래> 원곡 및 개사곡 가사

<원곡>

전호속의 나의 노래 고향으로 울려가라

조국땅을 보위하려 총을 멘지 삼년석달

적탄알이 비발치는 격렬한 싸움에도

공세우라 하신 말씀 명심하여 싸웠네

공세우라 하신 말씀 명심하여 싸웠노라

 

<개사>

전호 속의 나의 노래 고향으로 울려가라

조국 땅을 보위하여 총을 멘지 삼년석달

적탄알이 빗발칠 땐 옆으로 슬쩍 피했다가(비켰다가)

뒤에 오는 나의 전우 적탄맞고 숨졌네

(따라오는 전우가 총탄에 맞았네)

뒤에 오는 나의 전우 적탄맞고 숨졌노라

(따라오는 전우가 총탄에 맞았노라)

 

<꼬마땅끄 나간다>의 개사곡 가사에서는 군대의 무력함이 직설적으로 드러난다. 원곡은 실제 북한의 탱크를 소재로 했지만, 개사된 가사에서는 부실한 무기와 열악한 탱크 운용 실태에 대한 주민들의 인식이 반영되어 있다. 이는 북한 군사력에 대한 체제 내부의 냉소적 시선을 암시한다.

 

<꼬마땅크 나간다> 원곡 및 개사곡 가사

<원곡>

꼬마땅크[3] 나간다 우리 땅크 나간다
미국놈 쳐부시며 꼬마땅크 나간다

 

<개사>

꼬마 땅크 나간다 우리 땅크 나간다

서라는데 서지 않고 계속 나간다

쏘라는데 쏘지 못하고 그냥 나간다

 

4) 부정부패

 

‘부정부패’를 주제로 개사한 곡에서는 현실에 대한 직접적인 풍자가 두드러진다. 영화 《림꺽정》의 주제가 <사무친 원한 풀리라>를 개사한 곡에서는 원곡의 고전적 언어에 현대 북한의 속어인 ‘골반뽑다’[4] 같은 표현을 결합하여 시대적 불일치에서 오는 웃음을 유발한다. 영화 《심장에 남는 사람》의 주제가 <심장에 남는 사람>의 개사곡 또한 ‘돼지’, ‘앞전’[5] 같은 속어를 사용해 원작의 권위를 의도적으로 해체하고, 풍자적 효과를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영화 《림꺽정》 주제가 <사무친 원한 풀리라> 원곡 및 개사곡 가사

<원곡>

마음 어진 백성들이 어이 칼을 들었나
량반놈과 한 하늘이고 정녕 살수 없었네
피 맺힌 사연 없다면 이 길을 누가 나서랴
피 맺힌 사연 없다면 모진 맘 누가 먹으랴

 

<개사>

마음어진 백성들이 어이 골반뽑았나
양반 부자 못살게 놀아 할 수 없이 골반뽑았네
골반한번 돌리면 양반놈 갈비 부러지고
골반한번 돌리면 부자놈 코뼈 부러진다

 

영화 《심장에 남는 사람》 주제가 <심장에 남는 사람> 원곡 및 개사곡 가사

<원곡>

인생의 길에 상봉과 리별 그 얼마나 많으랴
헤여진대도 헤여진대도 심장속에 남는 이 있네
아 그런 사람 나는 못잊어

<개사>

인생 살면서 별꼴 다 봤어 돼지가 앞전하다니
잠깐 봤어도 잠깐 봤어도 충격이 가시질 않네
아 이런 돼지 나는 첨 봤어

 

5) 언어유희

 

북한의 개사곡 대부분은 기존 가사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이지만, 일부는 원곡의 가사를 거꾸로 뒤집어 부르는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가요 <휘파람>, 아동가요 <산토끼>, 아동영화 주제가 <산삼꽃을 찾아서> 등의 경우, 내용의 개사 없이 가사를 역순으로 부르며 기존 개사곡과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이처럼 의미 없는 발음의 나열이 오히려 낯설고 신선하게 다가오며, 일종의 언어 유희로 작동해 놀이의 형태로 소비되었음을 알 수 있다.

 

<휘파람> 원곡 및 개사곡 가사

<원곡>

어젯밤에도 불었네 휘파람 휘파람

벌써몇달째 불었네 휘파람 휘파람

<개사>

도에밤젯어 네었불 람파휘 람파휘

째달몇써벌 네었불 람파휘 람파휘

 

아동영화 《산삼꽃》 주제가 <산삼꽃을 찾아서> 원곡 및 개사곡 가사

<원곡>

장수도 못가는 험한 이 길을

산삼꽃 찾아서 나는야 가네

랄랄랄랄랄랄랄 어서가자

두려울것 없다네 어서가자

산삼꽃을 찾아서

<개사>

도수장 는가못 한험 이 을길

꽃삼산 서아찾 야는나 네가

랄랄랄랄랄랄랄 자가서어

것울려두 네다없 자가서어

을꽃삼산 서아찾

 

II. 유희인가, 저항인가?

 

북한 주민들에게 개사 행위는 ‘우스개’, ‘말장난’, ‘코미디’, ‘웃음거리’, ‘재미’로 인식된다. 개사 노래는 일상의 유머와 유희로 기능하며, 이는 북한 당국이 제시하는 엄숙하고 진지한 규범의 틀이 현실의 언어에 의해 깨지는 순간에 웃음을 유발한다. 당국이 부여한 의미가 현실로 들어오는 순간, 형식과 메시지의 권위는 전복되고, 원곡의 진지함은 오히려 의외성과 아이러니로 인해 유희적 대상이 된다. 특히 고고하고 이상화된 원곡 속 인물이나 상황이 자기비하적인 표현으로 전환되면서, 현실의 괴리감이 더욱 부각된다.

 

북한 청소년들이 즐기는 개사 문화는 표면적으로는 놀이와 웃음을 중심으로 한 또래문화로 나타나지만, 그 속에는 체제에 대한 냉소와 비판, 절망이 내포되어 있다. 개사 노래는 표현의 자유가 억제된 사회에서 개인의 감정과 욕망, 현실을 표출하는 유일한 해방구이자 문화적 통로로 작동한다. 특히 북한 당국이 창작한 공식 노래를 모방하고 변형하는 행위는 정치적 메시지를 훼손하거나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이어지며, 원곡과의 대비를 통해 북한 사회의 모순된 현실을 드러낸다. 원곡이 묘사하는 이상향은 주민들의 현실과 동떨어져 있으며, 개사 노래는 이를 냉소적으로 해체하면서 현실을 직시하는 언어가 된다.

 

개사 행위는 십대들이 자연스럽게 체득하는 놀이문화의 일부로 여겨지며, 성인이 되면 암묵적인 사회적 책임감 속에 점차 사라진다. 그러나 단순한 장난처럼 보이는 이 행위는 북한 당국 입장에서는 체제에 대한 위협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내포되어 있다. 실제로 2021년 제정된 『청년교양보장법』에서는 노래 개사를 명시적으로 금지하는 조항이 포함되었고, 이는 당국이 노래 개사 행위가 체제 통제의 틀을 흔들 수 있다는 인식을 공식적으로 드러낸 사례로 볼 수 있다.

 

북한 주민들의 개사 노래에는 단순한 유희를 넘어 새로운 세계에 대한 동경과 호기심이 담겨 있기도 하다. 이는 통제된 문화환경 속에서 표출되는 일종의 소극적 일탈 행위로 해석할 수 있다. 1989년 세계청년학생축전을 기점으로 북한은 외부 정보를 일부 수용할 수밖에 없는 문화적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특히 1991년, 보천보전자악단의 일본 순회공연을 계기로 일본어 노래가 북한 매체를 통해 공개되면서, 주민들은 처음으로 일본어 가사의 음악을 접하게 되었고, 이는 내부에 큰 문화적 파장을 일으켰다. 또한 북·일 합작영화를 통해 자본주의적 요소와 외부 세계의 이미지가 확산되면서, 주민들은 기존 북한 문화에서 경험할 수 없었던 새로운 양식과 스타일을 인식하게 되는 계기를 맞는다.

 

이처럼 개사 행위는 단순한 언어유희를 넘어, 외부 문화를 모방하고 변형하는 대안적 문화 소비이자 생산 행위로 진화한다. 외부 문화 유입은 북한 주민들에게 새로운 감각적 기준과 문화적 취향을 인식하게 했고, 이는 당국이 제작한 콘텐츠 이외의 방식으로 자신의 감정과 경험을 표현하고자 하는 창작 동기로 이어졌다. 개사는 더 이상 수동적 수용이 아닌, 주체적인 감정 발산과 문화적 실천의 수단이 된 것이다. 노래 가사를 반복적으로 변형해가는 과정은 창작의 무한한 가능성을 발견하게 했고, 이는 일상 속에서 창의적 변용과 대안 문화의 확산으로 이어졌다. 북한 주민들은 원곡의 규범적 의미를 뒤틀거나 전복함으로써, 자신들만의 문화 양식을 형성하고 공유했다.이러한 일상의 소극적 저항은 통제된 문화 내부에서 발생하는 작은 균열의 가능성을 드러내는 하나의 징후로 볼 수 있다.

 

이처럼 북한 주민들의 노래 개사 현상은 북한 사회에 몇 가지 중요한 변화를 암시한다. 첫째, 체제의 상징 언어가 무력화될 가능성이 점차 드러난다. 북한의 선전노래는 ‘조국’, ‘수령’, ‘인민’, ‘당’ 등 체제의 핵심 상징을 반복함으로써 정서적 통합을 유도해왔지만, 주민들이 이를 희화화하고 비트는 행위는 이 상징들이 더 이상 신성하지 않으며, 일상 속에서 소비되고 해체되는 과정임을 보여준다. 고정된 이데올로기의 언어가 웃음의 대상이 되는 순간, 선전의 설득력은 자연스럽게 약화될 수밖에 없다.

 

둘째, 비공식 문화의 내적 팽창이 이뤄지고 있다. 체제가 공적 문화의 통제를 강화할수록, 주민들은 그 내부에서 은밀하게 유동적인 하위문화를 확장시킨다. 이러한 문화는 단순한 오락이 아닌, 공식 담론을 대체하는 감정과 기억의 비공식적 축적으로 기능하게 된다.

 

셋째, 공적 담론의 위기와 체제 동원력의 약화다. 북한에서 노래는 단순한 예술이 아니라 체제 동원의 도구로 기능하지만, 새롭게 등장한 세대에게는 더 이상 공감되지 않는 형식과 내용은 집단적 정당성과 정체성의 기반을 흔들 수 있는 구조적 위험으로 이어진다. 노래가 감동을 강요할수록, 주민들은 오히려 웃음으로 응답하는 방식으로 당국과 개인 간의 정서적 간극이 구조화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2025년 북한 신년경축공연에서 발표된 신곡 <길이 사랑하리>, <우리는 조선사람>, <강대한 어머니 내 조국>, <조국과 나의 운명>은 주목할 만하다. 국무위원회연주단 소속 김옥주가 부른 이 곡들은 기존의 지도자 찬양 중심 서사에서 벗어나, ‘조국’을 운명 공동체로 재구성하고 감성적 내면화를 시도한다. 음악 형식에서도 집단적 합창이 아닌 개별적 감상 중심의 구조로 전환되었고, 현실의 어려움을 일부 인정하는 정서가 반영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형식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조국을 노래하라’는 강요된 기획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 북한 주민들의 노래 개사 행위는 북한 사회 내부에서 문화적 균열과 상징 권력의 약화가 점진적으로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개사는 표면적으로 유희적이거나 일상적 장난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체제에 대한 상징 체계의 재해석과 이탈이 내포되어 있다. 북한 당국이 지속적으로 주입하는 선전노래의 내용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지만, 그 의미는 주민들의 해석과 개사 속에서 전복(변질)되어가고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그것이 북한 사회가 품고 있는 가장 조용한 저항의 방식이라 할 수 있다.  

 

* 이 글은 『현대북한연구』 27권 3호에 수록된 논문 <북한 주민들의 노래 개사를 통한 현실 풍자와 규범의 전복: 폐쇄된 사회의 창조적 저항>을 재구성한 글임을 밝힙니다.

 

 

참고문헌

 

사회과학출판사. 1992. 『조선말대사전(2)』. 평양: 사회과학출판사.

 

문학예술출판사. 2002. 『조선문학예술년감(2002)』. 평양: 문학예술출판사.

 

국가정보원. 2024. 『북한법령집 하』. 서울: 국가정보원.

 


 

[1] 닦다: ‘덖다’의 북한어

[2] 두상태기: ‘노인’의 북한어

[3] 땅크: ‘탱크’의 북한어

[4] ‘골반뽑다’라는 표현은 북한에서 몸풀기를 위해 다리를 찢는다는 말을 비유적으로 나타낸 말로, 싸움할 준비나 폭력을 쓸 수 밖에 없는 상황을 의미한다고 진술했다.

[5] ‘앞전’이란 북한에서 ‘앞장’과 같은 의미로, ① 여럿이 나가는데서나 향한쪽의 맨 앞자리, ② 먼저 맡거나 차지할수 있는 위치, ③ 앞쪽의 끝 이라는 뜻으로 쓰인다. 하지만 해당 가사에서 ‘앞전’은 ‘앞구르기’,‘텀블링(공중제비)’이라는 뜻으로, 평소에 보기 드문 기이한 상황을 목격했을 때를 의미한다. 

 


 

하승희_동국대학교 북한학연구소 연구초빙교수

 


 

담당 및 편집:김채린, EAI 연구보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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