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Note

박형중 통일연구원 석좌연구위원은 트럼프 2.0 시대를 맞이한 북한의 전략적 인식과 김정은의 대미 대응 방향을 분석합니다. 그는 김정은이 트럼프와 미국에 대해 본질적인 불신을 품고 있기에, 회담 그 자체를 외교적 성과로 연출하고 임기 내 일회성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접근을 선호할 것이라고 분석합니다. 나아가 저자는 김정은이 협상에 유리한 환경을 구축하기 위해 ‘압도적인 힘의 과시’를 필요조건으로 간주할 수 있으며, 러시아와의 전략적 밀착, 중국의 묵인, 그리고 트럼프의 언행으로 흔들리는 서방 동맹 구조가 북한에 유리한 국제 정세를 형성하고 있다고 평가합니다.

이 글의 목적은 두 가지이다. 첫째, 트럼프 정부 대북 정책 방향에 대한 북한의 기본 인식이 무엇인가. 둘째, 그러한 인식에서 볼 때, 김정은이 트럼프를 어떤 식으로 상대할 것인지이다.

 

I. 북한의 트럼프식 대북정책 평가와 대응

 

2024.7.19. 트럼프의 대선 후보 수락 연설 직후, 7.23 북한은 반응을 내놓았다(조선중앙통신 2024). 그 요지는 다음과 같다. 첫째, 트럼프는 수뇌들 사이의 개인적 친분을 내세우고 있지만, 국가의 대외정책과 개인적 감정은 엄연히 구분해야 한다. 둘째, 미국의 대북 대화 제의는 북한 국가의 정신적·심리적 해이를 유도하여 압살시키려는 대결의 연장선상에 서 있는 불순한 의도의 대화이기에, 애초에 할 필요가 없다. 셋째, 미북대화의 전 과정을 보면, 미국은 할 듯 말 듯 애매하게 시간을 끌며 약속을 이행하지 않거나, 정권이 바뀔 때마다 약속을 서슴없이 뒤집는 신의 없는 나라이다. 넷째, 지난 80년 동안 대조선 적대시 정책을 취해 왔고, 북한 국가를 반대하는 전면적인 대결 구도 확충에 열을 올리고 있는 그러한 미국을 믿을 수 없다.

 

2024.11.6. 트럼프가 제47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된 이후, 12월 말 제8기 제11차 당 중앙위 전원회의에서 북한은 "전망적인 국익과 안전보장을 위하여 강력히 실시해 나갈 최강경 대미 대응 전략"을 천명하였다(노동신문 2024). 그러나 그 구체적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다.

 

2025.1.20.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북한 외무성은 세 차례에 걸쳐 '최강경 대미 대응 원칙'을 천명했다(1.15, 1.26, 3.9). 이 원칙이 정당한 이유로서, 3.9 외무성은 트럼프 정부가 군사적 힘의 시위에 상습적으로 매달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외무성 2025). 3월 말, 북한은 트럼프 정부가 이전 정부의 다른 정책은 손쉽게 뒤집으면서도 "오직 대조선 적대시 정책만은 집요하게 <계승>하고 더욱 나쁘게 변이시키고 있다"고 비난했다(조선중앙통신 2025).

 

2024년부터 2025년 3월까지 북한이 밝힌 안보 정세 인식 및 대응 방향에 관한 여러 입장을 보면, '최강경 대미 대응 원칙'의 구체 내용을 유추할 수 있다.[1]. 이 시기 북한의 안보 정세 인식은 네 가지를 핵심으로 한다. 첫째, 한미 핵동맹 결성, 한미일 안보 협력 강화, 한미의 모험주의적 군사 행동 등으로 인해 북한을 둘러싼 현재 및 미래 안보 정세가 악화되고 있다. 둘째, 이러한 악화된 안보 정세 속에서도 정세를 주도적으로 통제하고 평화를 유지하려면, 빠른 속도로 북한의 힘을 증가시켜 힘의 균형에서의 압도성을 지속적으로 유지해야 한다. 셋째, 이를 위해 핵무력을 포함한 군사력의 무한정 강화, 억제와 방어, 선제공격과 관련한 전쟁 준비 태세의 완비, 그리고 전쟁 불사의 결의가 필요하다. 넷째, 북한 핵위협에 대해 언급하는 것 자체가 북한을 적대시한다는 반증이다. 《조선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라는 것은 이론적으로나 실천적으로, 물리적으로 이미 사멸되었다.

 

II. 김정은의 대 트럼프 정책 전망

 

김정은-트럼프 관계는 단순한 양자 관계가 아니라, 두 나라의 주요 주변국에 대한 지정학적 관계 계산을 포함하여 형성될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 정부의 비전통적 대외정책으로 인해, 국가들 간의 미래 관계에는 높은 수준의 불확실성이 존재한다. 여기서는 미북 관계를 양자 관계로 단순화하여, 앞서 언급한 북한의 안보 정세 판단을 기준으로 최소한의 분석을 행한다.

 

첫째, 북한은 트럼프의 협상 개시 채근을 미국의 '힘의 열세와 결의 부족'의 표현으로 간주하며, 자신들의 '힘의 극대화를 통한 힘에 의한 평화' 정책이 유효했다는 증거로 받아들일 것이다. 이러한 인식은 북한을 고무시켜 요구 수준을 높이고, 자신의 입장을 경직되게 미국에 강요하도록 유인할 수 있다. 북한은 시간을 끌며, 트럼프가 대북 타협의 모양새 자체를 얼마나 중시하는지, 그리고 한미 군사훈련 중단과 같은 2018-19년 양보 조치에 더해 어떤 추가적 양보를 무상으로 선행할 수 있는지를 탐색할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북한은 특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종결과 관련 푸틴이 트럼프를 다루는 방식에 주목하고 있을 것이다.

 

둘째, 북한은 자신에게 구조적으로 유리한 틀에서 실효적 협상을 개시하려면, 대미 추가적 '압도적 힘의 과시' 그리고 그에 수반되는 또다른 위기가 불가피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북한의 경험에서 보면, 실효적 미북협상은 북핵문제 관련 긴장고조와 (핵)전쟁 발발 위기를 미국이 어쩔 수 없이 협상을 통해 관리해야만 하는 상황에서 시작되었다. 그러한 상황에서야 상대적 약소국인 북한은 초강대국 미국에 대해 최소 충분한 지렛대를 가질 수 있고 그 결과로 자신에 유리한 협상 결과를 적어도 잠정적으로 만들어 낼 수 있었다. 트럼프-김정은 사이에 재차 핵전쟁 발발 위기가 등장하지 않는 한, 입장차와 상호 불신이 매우 큰 미북이 어떤 형식이든 생산적 협상관계에 접어 들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다. 물론 새로운 위기의 유발은 북한에게도 위험스러운 조치이다. 그러나 과거 경험에서 볼 때 미북간 담력 경쟁에서 자신의 승리 확률이 훨씬 높았다고 김정은은 판단할 것이다. 반대로 만약 앞으로 트럼프의 대내외 정책 실패가 미국을 대내외 진흙탕 위기로 몰아 넣는다면, 트럼프는 관심전환전쟁을 고려할 수 있으며, 북핵문제도 트럼프의 관심전환전쟁 후보들 중의 하나가 될 수 있다.

 

셋째, 김정은은 미북 접촉 자체, 트럼프와 만남 자체를 실질 목적으로 삼고, 핵문제 관리는 표면상의 목적으로 대미외교를 펼칠 수 있다. 북한의 입장에서 보면, 트럼프가 김정은을 협상하자고 채근하는 것 자체, 미북 관계 진전에 관한 여러 풍문이 오가는 것 자체가 김정은과 북한의 국제적 대내적 지위고양에 도움이 되며, 특히 한미관계를 이간하는 효과가 크다. 이는 트럼프의 이해관계에도 반하지 않는다. 트럼프의 입장에서 보면, 김정은과의 '연애관계'를 떠벌리는 것은 미국이 당면한 대내외 난제들로부터 관심을 전환하는 효과, 동시에 중국·러시아·일본, 특히 한국을 긴장시키는 효과를 낼 수 있다.

 

넷째, 김정은에게 가장 큰 도전은 트럼프 정부가 '임시 국가방어전략 지침'을 통해 미국의 안보문제에서 북한문제의 중요성을 낮추어 잡았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북한이 미국에게 자신에게 구조적으로 유리한 실효적 협상을 강요하는 것이 더 어려워진다(Washington Post 2025). 북한이 설령 더 큰 위기 잡음(crisis noise)을 만들어 내도, 미국이 이 문제의 처리를 한국·일본·중국 등에 전가할 개연성이 높아진다. 이 상황에서 북한이 미국을 진지하게 협상 테이블로 끌어들이려면, 더욱 위험한 위기를 창출해야 할 것이다.

 

다섯째, 김정은은 트럼프 정부 임기를 넘어서서 준수되어야 하는 협약에는 관심이 없고, 트럼프 임기 동안 일회성 전술적 이익을 어떻게 극대화할 것인지를 고민할 것이다. 김정은은 미국, 특히 트럼프를 기본적으로 신뢰하지 않을 것이며, 역으로 미국도 트럼프도 북한과 김정은을 신뢰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상호 신뢰가 없다고 하여 (가짜) 협상 조차 안되는 것은 아니다. 상호 신뢰가 없는 경우, 당사자들은 장기 협약보다는 일회성 전술적 이득 획득에 기회주의적으로 주력할 것이다.

 

여섯째, 트럼프-김정은이 푸틴의 중재로 블라디보스톡에 회담할 것이라는 희망 섞인 기대는 현실성이 없다. 이 시나리오가 성사되려면, 트럼프가 러시아--우크라이나 휴전을 중재해 러시아와 중국을 분리시키고, 러시아를 미국의 우방국으로 전환시키는 데 성공해야 한다. 즉, 이른바 미국의 '역 키신저 전략'이 성공해야 한다. 그렇게 될 경우, 트럼프--푸틴은 대중 포위 전략에 합의하고, 김정은도 여기에 참여시키려는 전략 구상을 추진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시나리오가 실현될 개연성은 매우 낮다.

 

III. 맺음말

 

북한이 공언하는 바에 따르면, 현재 북한의 정책 목표는 한반도 힘의 균형에서 압도성을 장악하고 유지하는 것이며, 이를 위해 (nuclear) power maximization 정책을 추구하고 있다. 북한은 한국의 대북 미사일 선제타격 체계(kill chain) 및 한국형 미사일 방어망을 회피하는 데서 일정한 능력을 이미 갖춘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집권 시기 동안 북한은 7차 핵실험을 실시할 수 있으며, 미국에 대한 핵 2차 타격 능력을 갖추기 위한 실험을 보다 본격적으로 감행할 수 있다. 이는 트럼프 집권 기간 내에 4차 북핵위기가 발생할 수도 있음을 예고한다.[2].

 

이러한 인식 아래, 트럼프 집권 이후에도 한국·미국·일본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재천명하고, 북핵 군사 대응을 강화하는 정책을 과거와 다름없이 추진하고 있다. 김정은에게 정상회담 재개를 외견상 적극 구애하는 트럼프의 언행은 이러한 전략 환경을 고려한 것일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언행은, 적어도 한국 조야 및 전문가 여론의 일부 중요한 층을 잘못된 낙관론(false optimism)에 빠뜨리고 있다. 북한의 전략적 추구는 러시아의 도움을 받고 있으며, 중국으로부터는 사실상 용인되고 있다. 여기에 더해, 트럼프 정부의 대외정책은 서방 동맹을 약화시키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이러한 국제 환경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이며, 이는 북한에게 전략적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참고문헌

 

노동신문. 2024. "조선로동당 제8기 11차 전원회의 확대회의에 관한 보도." 12월 29일.

조선중앙통신. 2024. "조미대결의 초침이 멎는가는 미국의 행동여하에 달려있다." 『조선중앙통신』, 7월 23일.

___. 2025. "국가의 안보령역에서는 미국의 '힘만능론'이 통하지 않는다." 『조선중앙통신』, 3월 25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외무성 보도국. 2025. "미국이 람발하고있는 완력행사는 가중된 안보위기로 회귀할 것이다." 『공보문』, 3월 9일.

 

Leng, Russell J. 1993. Interstate Crisis Behavior, 1816--1980: Realism versus Reciprocity.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Horton, Alex, and Hannah Natanson. 2025. "Secret Pentagon Memo on China, Homeland Has Heritage Fingerprints." Washington Post, March 29.

 

[1]동 기간 동안 김정은과 김여정의 공개 발언, 외교부 공개 입장, 조선중앙통신 논평 등 북한의 안보정세 인식을 보여주는 총 54개문건을 직접 검토했다.

[2] 1차 위기는 1993-94년 북한의 플루토늄 농축 문제, 2차 위기는 2002년 우라늄 농축 문제, 3차 위기는 2016-17년 북한의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 실험을 계기로 발생, 4차 위기는 북한의 7차 핵실험 및 다탄두각개목표재돌입 발사체 실험을 계기로?

 


 

박형중_통일연구원 선임연구원.

 


 

담당 및 편집:김채린, EAI 연구보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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