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Note

이동률 EAI 중국연구센터 소장(동덕여대 교수)은 중국이 글로벌 리더로서 자국의 위상과 역량을 전제하고, 이를 바탕으로 혼돈의 국제사회에서 새로운 역할을 모색하기 위한 전방위 외교 구상을 제시하는 중대한 패러다임 변화를 보이고 있다고 분석합니다. 다만 전방위 외교가 여전히 대미 견제에 집중하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트럼프 정부가 대만 문제, 인권과 민주주의 등 핵심 이익에 관하여 공세를 지속한다면 중국의 글로벌 역할 구상 실현도 제약을 받을 것이라고 전망합니다. 또한 중국의 새로운 외교 패러다임에서 한국은 협력 상대보다는 지정학적 차원의 관리 대상으로 전환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한국은 중국이 수용할 가능성이 낮은 대북 정책 목표를 추구하기보다는 우선 단계적, 실용적 접근을 통해 한중 상호 이해를 증진하며 접점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Ⅰ. 중국 5대 국제역량을 통한 ‘새로운 역할’의 모색과 제약

 

중국은 2025년 국제정세에 대해 우려와 경계를 표명하고 있다. 국제사회는 불확실성과 불안정성이 심화될 것이고 충돌, 분열, 대립의 위험성도 커져 복잡하고 혼란스러울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특히 중국은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출범을 앞두고 미국이 주도하는 디커플링, 일방주의, 그리고 이데올로기 공세를 경계하고 있다. 그럼에도 중국은 혼돈의 국제정세에서 오히려 새로운 역할을 모색할 것이며 그러한 역량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중국은 지구적 분쟁과 도전 문제에서 자국의 적극적 역할에 대한 국제사회의 기대도 커지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중국은 이른바 평화, 단결, 개방, 정의, 그리고 포용의 5대 역량을 새롭게 제시하면서 국제사회에서 새로운 역할을 할 것임을 주장하고 있다(中华人民共和国外交部 2024c). 중국이 5대 역량을 기반으로 외교 대상과 전략을 세분하고 혼돈의 국제사회에서 새로운 역할을 모색하겠다는 구상을 제시한 것은 기존 중국 외교 패러다임으로부터의 중대한 변화이다. 중국은 전통적으로 대국, 주변국, 개도국, 그리고 다자무대 등으로 외교 대상을 구분하고 시기와 이슈에 따라 대상의 우선 순위와 구체적인 세부 외교전략을 구상하고 전개하는 패러다임을 유지해 왔다. 그런데 중국이 자신의 역량을 기반으로 외교 대상과 전략을 설계하는 새로운 외교 패러다임을 제시했다는 것은 중요한 함의가 있다. 즉 중국이 스스로 글로벌 리더로서의 정체성, 위상과 역량을 갖고 있거나 가질 수 있다는 인식을 전제하고 있다는 메시지이다. 그리고 그 연장선상에서 중국은 외교 대상과 무대를 이전과 같이 굳이 구분하지 않고 전세계를 대상으로 전방위 외교를 설계하고 전개하겠다는 의사를 전하고 있다.

 

왕이(王毅) 외교부장이 13년째 참석하여 연설한 ‘2024년 국제형세와 중국 외교’ 토론회의 2024년 주제는 ‘세계 대변혁과 중국의 새로운 역할(世界大变局与中国新作为)’이었다(中华人民共和国外交部 2024d). 토론회 주제가 시사하듯이 중국은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등장이 초래할 불확실성과 도전을 경계하면서 다른 한편 글로벌 리더십의 공백을 기회로 포착하고 역할과 영향력을 확대하고자 하는 의지를 숨기지 않고 있다. 시진핑(習近平) 주석도 2025년 신년사에서 1997년에 처음 제시되었던 이른바 ‘책임대국론’을 새삼 언급하였다. 즉 혼란하고 복잡한 세계에서 중국이 책임을 지는 대국으로서 글로벌 거버넌스의 변혁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글로벌 사우스와의 단결과 협력을 심화하겠다고 밝혔다(人民日报 2025年01月01日).

 

중국이 상정하고 있는 새로운 역할의 현안도 구체적으로 제시되었다. 예컨대 왕이 외교부장은 중국이 평화 역량을 통해 건설적 역할을 발휘할 중대한 4대 핫 스팟으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과 한반도, 미얀마 문제를 제시했다. 그런데 4대 핫 스팟에서 중국은 지금까지 '건설적 역할'과 동시에 '정치적 해결'을 역설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중국이 주장하는 '정치적 해결'의 이면에는 사실상 미국책임론을 부각시키려는 의도가 있으며 따라서 중국이 실질적인 역할을 수행하려는 새로운 의지의 표현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왕이는 비록 4대 핫 스팟을 통한 ‘건설적 역할’을 언급하기는 했으나 이미 두 개의 전쟁을 비롯한 주요 현안의 해결에서 중국의 역할은 현실적으로 제한적이었다. 요컨대 중국이 주도적이고 선제적인 새로운 역할을 구상하고 있다기보다는 결국 트럼프 2기 행정부 등장 이후 두개의 전쟁과 북핵 문제 등에서 새로운 시도와 변화가 진행될 가능성을 상정하고 이 과정에서 중국이 영향력을 유지하여 미국에 대응하여 국익을 지키려는 사실상 대미전략 차원에서의 대비라 할 수 있다.

 

중국은 혼돈의 국제정세에서 역할과 영향력 확대가 필요하다는 의지를 피력하고 있기는 하다.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중국이 직면한 국내의 복합 난제로 인해 글로벌 역할 확대의 의지는 2025년에도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특히 중국은 트럼프 정부의 귀환이라는 불가측의 새로운 도전에 대응하면서 경제 회생과 체제 안전에 우선순위를 둘 수밖에 없는 현실에 직면해 있다. 시진핑 주석도 신년사를 통해 중국 경제가 새로운 상황과 외부 환경의 불확실성이라는 도전에 직면해 있으며 2025년에 14차 5개년 규획을 완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진핑 집권 2기 이후 중국 외교전략은 사실상 국내 발전전략과 이를 기반으로 하는 공산당 체제의 유지와 강화에 방점을 두어 왔다. 중국은 두번째 백년이 되는 2049년 ‘중국식 사회주의 현대 강국’ 건설이라는 장기 발전 계획을 설계하여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중간 단계인 2035년, 그리고 2024년 7월에 개최된 20기 3중전회에서 새롭게 발전 단계로 제시된 건국 80주년이 되는 2029년을 설정하여 단계적으로 발전 성과를 달성하려는 발전 구상을 제시하고 있다. 따라서 외교 전략 역시 이러한 단계적 발전 계획에 조응할 수 있는 대외 환경과 조건을 마련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중국이 장기 발전 플랜을 성취하는 과정에서 직면한 가장 중대한 현실적 과제는 미국의 디커플링과 디리스킹 공세를 우회하면서 발전권을 확보하는 것이다. 중국이 구상하고 있는 국제사회에서의 새로운 역할과 글로벌 리더십도 결국은 발전권 확보를 위한 외교전략의 일환이어야 하는 것이 중국이 직면한 현실이다.

 

Ⅱ.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중국의 명암과 전략

 

1. 대미 관계 4대 레드라인의 딜레마

 

중국의 대미 외교도 국가 장기 발전 계획과 조응하면서 기본적으로 장기 전략 위주로 설계하고 변화보다는 연속성을 지향하고 있다. 중국은 대미 외교 전략이 안정성과 연속성을 지니고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렇지만 트럼프 행정부의 귀환은 중국의 장기 대미 외교전략의 새로운 변수이자 중대한 도전이 되고 있다. 중국은 2025년에 경제 상황 관리에 집중하면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귀환이라는 불확실성에도 대비해야 하는 외교 난제에 직면하고 있다. 중국은 기본적으로 미국과의 전략 경쟁을 불가피한 장기 레이스로 상정하고 최대한 지연시키면서 미중관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하고자 한다. 중국은 2023년 바이든 행정부 시기 샌프란시스코 정상회담을 통해 전략적 소통과 협력의 기초를 마련했음을 상기시키면서 양국 간 대화, 갈등 관리, 신뢰 증진, 협력 확대를 강조하고 있다. 중국은 트럼프 2기 행정부와도 안정적인 관계 유지를 희망하고 있다.

 

그렇지만 중국은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대중국 공세가 어떤 영역에서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 그리고 궁극적으로 어떤 목적을 지향하고 있는지 예측하기 쉽지 않기 때문에 섣부른 판단을 유보하면서 다양한 가능성을 상정하고 대비하고자 한다. 중국은 일단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 초기부터 집요하고 강력하게 중국에 대한 공세를 펼칠 것이라는 전제하에 가능한 한 충돌과 대립을 우회하면서 상황 관리 중심의 대응을 모색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면서 중국은 기회가 포착된다면 5대 역량을 발휘해서 글로벌 리더로서의 역할 확장을 도모하고자 할 것이다.

 

그런데 중국은 체제의 특성상 유연성을 갖고 안정적으로 대응하기 어려운 영역에서의 미국의 공세가 지속될 경우 대응에 대한 고민이 있다. 즉 중국이 2024년 페루 리마 미중정상회담과 왕이 연설에서 연이어 미국을 향해 주장한 이른바 대만문제, 체제와 제도, 민주인권, 그리고 발전권이라는 4개의 레드라인이 대미 외교의 고민을 대변해 주고 있다. 중국은 미국과 안정적이고 건강하며 지속가능한 관계 발전을 추구하지만 4개의 레드라인을 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선제적으로 경고하고 있다. 4개 레드라인은 기존의 안보, 주권, 발전의 3대 핵심이익보다 구체적이면서 체제 안전에 대한 중국의 우려를 더욱 강력하게 반영하고 있다. 요컨대 중국은 트럼프 2기 행정부을 향해 체제에 대한 공세를 가장 경계하면서 이 문제에 관한 한 중국도 타협의 여지가 없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그럼에도 트럼프 정부가 레드라인을 넘어서 공세를 지속할 경우 시진핑 정부는 유연성을 발휘할 여지도 크지 않을 뿐만 아니라 충돌과 대립이라는 최악의 상황으로 몰고 가기는 더욱 어려운 딜레마에 직면할 수 있다. 요컨대 중국이 추구하는 새로운 글로벌 역할 구상의 실현은 트럼프 변수라는 중대한 걸림돌을 어떻게 관리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 5대 역량 기반 전방위 외교의 명암과 과제

 

중국은 트럼프의 귀환이 초래할 수 있는 국제정세의 새로운 긴장과 불확실성을 우려, 경계하면서도 글로벌 리더십 공백에 따른 새로운 기회에 대한 기대도 갖고 있다. 중국은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과 동맹국 간 새로운 긴장이 조성될 가능성을 상정하고 그 틈새를 적극적으로 공략할 수 있는 전략적 방안을 타진하며서 전방위 외교를 추진하고자 한다.

 

왕이는 전방위 외교를 제시하는 가운데 특히 러시아, 유럽, 글로벌 사우스, 그리고 상하이협력기구(Shanghai Cooperation Organization: SCO), 브릭스(BRICS), G20 등 다자협력을 강조하면서 구체적인 협력 방향과 전략을 제시하고 있다. 중국은 이를 통해 5대 역량을 발휘하고 국제사회에서 역할을 확장하고자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중국이 전방위 외교를 전개하는 배경과 목적에는 대미 전략이 중심에 있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적지 않은 도전과 과제를 초래하고 있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공세에 대응하기 위해 중국은 주변지역의 안정화를 모색하는 한편 가능한 한 우군을 확장하려는 시도를 병행하고자 한다. 특히 주변의 지역 강국이라고 할수 있는 일본, 인도, 베트남과의 관계 발전에 집중하려는 전략이 포착되고 있다. 이들 3국은 바이든 정부에서는 미국의 대 중국 견제 네트워크 구성에 호응하면서 미국과의 관계를 강화해 왔던 대표적인 국가들이다. 그런데 트럼프 2기에서 동맹국들에게 관세 압박과 방위비 지출 증대를 요구하는 등 미국 국익을 우선시하는 정책을 전개할 경우, 중국은 주변을 중심으로 형성된 미국 주도의 중국 견제 네트워크의 전열이 이완될 가능성이 있다고 기대하고 있다.

 

중국은 이러한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선제적으로 주변 지역 강국들을 대상으로 적극적인 관계 발전을 시도하면서 우호세력을 확보하고자 한다. 중국은 일본과 정상회담, 외교장관 회담을 잇달아 개최하면서 일본 수산물 전면 수입 금지 조처 해제 방안도 검토하는 등 전향적으로 관계개선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중국이 2024년 12월에 인도와 양국 갈등의 근원인 국경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5년 만에 특별대표회의를 개최하여 국경에서의 교류와 협력을 강화하는 내용의 6개항 합의에 도달한 것은 상징적인 행보이다.

 

중국은 유럽과의 관계에서도 그간 지속적으로 강조해 왔던 외교적 자율성 확대라는 중국의 요청이 수용될 가능성에 대해 기대를 하고 있다. 그동안 유럽연합(EU)을 비롯한 유럽 국가들은 중국과의 무역 분쟁에서 인권, 환경 그리고 러시아와의 관계 등을 문제 삼아 미국에 동조하여 중국을 압박해 왔다. 그런데 중국은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유럽에도 관세 압박을 시도하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도 조기에 종식될 경우 중국 압박 연대의 중요한 연결 고리가 약화될 수 있다는 기대를 갖고 유럽 국가들을 향해서도 활발한 외교 공세를 펼치고 있다.

 

그리고 중국이 최근 스스로 글로벌 사우스의 일원임을 새삼 주장하면서 글로벌 사우스를 향한 외교에 적극적인 배경에도 대미 전략이 자리하고 있다. 중국은 ‘세계 대다수의 단결’을 역설하면서 사실상 미국의 디리스킹 공세에 대응하기 위해 신흥국과 개도국 등 ‘글로벌 사우스’를 향한 적극 외교 추진을 시사했다. 중국이 ‘글로벌 사우스’에 주목하는 이유는 2023년 7월 제13차 브릭스 안보문제 고위대표 회의에서의 왕이 외교부장 연설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왕이는 독립과 자강을 추구하는 것은 글로벌 사우스의 정치적 배경이며, 발전과 부흥은 역사적 사명이며, 공평과 정의가 공통의 명제라고 주장했다(中华人民共和国外交部 2023). 요컨대 중국이 글로벌 사우스와의 협력을 통해서 추구하고자 하는 키워드는 독립, 발전, 공평으로 집약된다. 즉 중국은 미국이 주도하는 중국에 대한 ‘간섭, 기술 통제, 일방주의’에 대응하면서 다극화를 지향하는 협력 대상으로서 글로벌 사우스를 상정하고 있다.

 

그런데 실제 중국이 주장하는 단결의 역량을 발휘해서 글로벌 사우스를 결집하고 리드할 수 있는 자원, 능력, 그리고 명분을 지니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된다(이동률 2024a). 우선 글로벌 사우스는 냉전 시기 제3세계와는 달리 그들 내부의 일체감이나 연대의식이 강하지 않다. 그리고 중국은 자신이 '태생(天然)적' 글로벌 사우스의 일원임을 주장하고 있지만 실제 이에 의문을 제기하는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이 적지 않으며 중국에 대해 일관된 지지 입장을 보내지도 않고 있다. 중국 역시 글로벌 사우스를 향한 적극 외교의 배경에는 글로벌 리더 역할을 수행하겠다는 의지보다는 미국 요인이 자리하고 있다.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글로벌 사우스에 대한 관심과 지지가 약화된다면 중국 내에서도 글로벌 사우스 외교의 비용 대비 성과와 효용성에 대한 논란이 제기될 수 있다.

 

요컨대 시진핑 정부는 새로운 글로벌 역량을 기반으로 하는 전방위 외교를 통해 글로벌 리더로서의 위상을 강화해 가려는 구상을 제시하고 있다. 그렇지만 전방위 외교는 현실적으로 여전히 미국의 대 중국 압박과 공세를 약화하거나 견제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그리고 중국이 미국의 공세를 저지하려는 가장 중요한 목적 역시 발전권 확보와 체제 유지 및 강화를 위한 환경 조성에 있다. 중국이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 공백을 활용하여 국제사회의 지지와 동의를 이끌어 낼 수 있는 보편적 가치, 표준, 그리고 공공재를 제시하는 데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중국 역시 새로운 기회와 외교 공간을 확장할수 있는 충분한 수단, 자원, 그리고 내부 여력을 가지고 있지는 못하다. 중국이 새롭게 제시한 5대 역량이 외교 수사에 머물거나 중국 국익 우선으로 받아들여질 경우에는 오히려 반 중국 정서를 더욱 자극하는 역풍도 초래할 수 있다.

 

Ⅲ. 중국의 한반도 인식 변화와 한중관계

 

중국 외교 패러다임의 변화는 한반도와 한중관계에 대한 인식과 전략 구상에도 투영되어 점진적이지만 중요한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 중국의 새로운 외교 패러다임에서 한국은 중요한 협력 상대보다는 지정학적 차원에서 관리해야 하는 안보 대상으로 전환되고 있다. 중국의 한반도 인식에서의 중대한 변화는 최근 몇 년에 걸쳐 점진적으로 진행되어 왔으며 2024년 왕이 연설에서 좀더 명확하게 드러났다. 왕이는 한반도를 두 개의 전쟁과 병렬하여 중대한 핫 스팟으로 상정하고 중국의 평화 역량을 발휘해 관리해야 할 이슈로 제시하고 있다. 중국이 한반도 문제를 중대한 글로벌 과제이자 중국의 안보 도전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시사해 주는 것이다. 중국은 한반도 문제를 결국 북핵 문제로 귀착하고, 한중 양자 차원이 아닌 글로벌 전략과 대미 전략 차원에서 인식하고 대응을 모색하고 있다.

 

중국은 2024년 주변 외교의 성과를 언급하면서 아세안 6개국, 중앙아시아 5개국, 그리고 지역 강국인 인도, 일본을 일일이 열거하면서 구체적인 협력 내용, 관계 발전의 성과와 의지를 피력했다. 반면 유독 한국과 북한에 대해서는 양자 차원의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2024년 5월 한중일 정상회담 이후 한중관계가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하고 대화와 교류가 활성화되고 있음에도 유독 한중관계에 대한 언급이 빠져 있는 것은 중국의 한국에 대한 전략적 인식이 우리의 기대와는 차이가 있을 수 있음을 시사해 주고 있다. 한국 내 혐중 정서가 고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 내에서는 한국에 대한 전략적 기대와 관심이 줄어들고 있다.

 

실제로 최근 몇 년 중국 정부의 공식 발표문에 이례적으로 한반도 관련 언급이 줄어드는 추세였다. 2022년 발리와 2023년 샌프란시스코 미중 정상회담 이후 미국과 달리 중국의 공식 발표문에서는 연이어 이례적으로 한반도는 언급되지 않았다. 2023년 왕이 외교부장의 양회(兩會)기자회견에서도 한반도가 거론되지 않았다. 5년 만에 개최된 2023년 12월 중앙외사공작회의에서도 한반도 문제는 언급되지 않았다. 미중 전략 경쟁이 고조되면서 중국에서 대미 전략과 미중관계의 중요성이 확장되고 상대적으로 주변외교가 대미 전략의 하위 변수가 되고 있다. 특히 한국이 한미동맹과 한미일 안보협력을 강화하면서 중국은 한반도와 한중관계를 더욱 대미 전략의 차원에서 인식하고 접근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2024년 양회 기자회견에서 왕이 외교부장이 한국 기자의 질문에 응답하는 형식으로 오랜만에 한반도를 언급했다. 왕이는 “세계는 이미 충분히 혼란스러운데 한반도에 다시는 전쟁과 혼란이 일어나선 안 된다”(中华人民共和国外交部 2024a)고 이례적으로 한반도에서의 전쟁을 직접 거론했다. 그리고 2024년 5월 중러 정상회담 공동성명에서 한반도 문제가 논의되었다. “북한과의 대결을 고조시켜 한반도 무력 분쟁과 긴장 고조를 낳을 수 있는 미국과 그 동맹국들에 의한 군사적 위협 행동에 반대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었다(中华人民共和国外交部 2024b). 중러 양국이 북한 문제에서 기존의 미국 책임론 주장을 넘어서 미국의 동맹인 한국의 책임까지 언급한 것이다. 중국이 한반도 문제를 중국의 중대한 안보 불안 이슈로 상정하고 있음을 재차 확인시켜 주고 있다. 즉 시진핑 정부는 북한의 연이은 도발로 한반도 정세가 불안정해지고 있고 이로 인해 완충지대인 북한의 체제 불안정도 고조되고 미국의 영향력이 확대될 가능성을 경계하고 있다.

 

중국은 한편으로는 북한의 도발을 견제하기 위해 북한과의 관계를 관리하면서 동시에 한반도 정세 안정을 위하여 한국과 소통할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다. 중국은 한국과의 대화와 관계 회복을 통해 한반도 정세의 안정에 대한 공감대를 조성하고, 아울러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선제적인 대응 차원에서 한국을 향해 관계 개선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시진핑 정부가 북한의 무력 도발과 핵 문제 해결에서 한국이 기대하는 역할을 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특히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리더십 공백에 직면한 한국을 건너뛰고 오히려 북한과 직접 대화에 나설 경우 중국에서의 한국의 전략적 위상과 가치도 더욱 하락할 가능성이 있다. 미국과 중국 양국이 모두 한국을 사실상 패싱하고 한반도 문제에서 한국의 발언권이 약화되는 예상 밖의 국면이 전개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설상가상으로 국내 리더십 공백이 장기화될 경우 더더욱 이러한 파행적 국면에 선제적으로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골든 타임을 놓칠 우려도 없지 않다.

 

중국은 기본적으로 한반도 안정화를 겨냥한 관리 위주의 정책을 유지하면서도 중국의 국익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두 가지 중대한 국면의 변화가 예상되었을 때는 정책 전환과 적극적인 행보를 시도했다. 즉 미국의 중국에 대한 공세가 강화되는 국면에서 완충지대인 북한의 체제 위기가 임박했다고 판단하는 경우, 그리고 한반도에서의 중국의 입지와 위상이 현저히 약화될 우려가 예상될 경우 중국은 적극적인 개입을 통해 상황을 관리하고 안정시키고자 했다(이동률 2024b).

 

한국은 중국이 구조적인 요인으로 인해 수용할 가능성이 없는 목표를 추구하기보다는 우선 상호 이해 증진을 모색하면서 접점을 찾아가는 단계적이고 실용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특히 이제 막 한중 양국이 사드 갈등 이후 8년여 간의 경색 국면을 해소하면서 새로운 대화를 시작하려는 상황에서, 비록 시점상 북중관계가 현상적으로 다소 소원해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한국이 원하는 방향으로 중국의 대북정책 기조를 변화시키고자 접근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

 

불안정하고 불가측한 국제정세 상황에서 최근 양국 간 모색되고 있는 관계 개선의 불씨를 어떻게 살려서 활용할 것인지를 한반도 정세의 큰 그림에 대한 설계를 기반으로 신중하게 단계적인 실행 전략을 강구해 갈 필요가 있다. 현실적으로 미국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미중 전략 경쟁이 더욱 고조되고 북한의 7차 핵 실험도 우려되는 상황에서 우선적으로 북한발 한반도 불안정에 대비하고 관리하는 차원에서부터 중국과 일정한 공감대를 조성하면서 전략적 소통을 위한 제도적 준비를 진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참고 문헌

 

이동률. 2024a.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에 대한 중국의 논의, 전략과 과제.” 『중국사회과학논총』 6, 2: 64-96.

 

______. 2024b. “북중관계의 ‘이상기류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GLOBAL NK. 9월 6일. https://www.globalnk.org/publication/view.php?cd=COM000156&ctype=1&s_search_keyword=china&start=10 (검색일: 2024. 12. 28.)

 

中华人民共和国外交部. 2023. “王毅就加强“全球南方”国家合作提出四点主张.” 7월 26일. https://www.mfa.gov.cn/wjbzhd/202307/t20230726_11117824.shtml (검색일: 2024. 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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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____. 2024c. ”王毅:中国将坚定做和平、团结、开放、正义、包容的力量.” 12월 17일. https://www.mfa.gov.cn/wjbzhd/202412/t20241218_11496965.shtml (검색일: 2024. 12. 28.)

 

______. 2024d. “勇立时代潮头,展现责任担当——在2024年国际形势与中国外交研讨会上的演讲.” 12월 17일. https://www.mfa.gov.cn/wjbzhd/202412/t20241218_11496987.shtml (검색일 : 2024. 12. 28.)

 

人民日报. 2025. “国家主席习近平发表二〇二五年新年贺词.” 1월 1일. http://politics.people.com.cn/n1/2025/0101/c1024-40393454.html (검색일 : 2025. 1. 1.)

 


 

이동률_동아시아연구원 중국연구센터 소장, 동덕여자대학교 중어중국학과 교수.

 


 

담당 및 편집: 박한수_EAI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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