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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obal NK 논평] 바이든 정부의 경제안보정책과 한미관계

  • 2022-11-14
  • 이왕휘

ISBN  979-11-6617-499-5

■ Global NK Zoom&Connect 원문으로 바로가기(For the English version, Click here)

 

2017년 미국우선주의를 주창한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경제적 효율성보다 지정학을 더 중시하는 기술민족주의(techno-nationalism)/디지털보호주의(digital protectionism)가 대두하였다. 2020년 이후 코로나 19 위기와 글로벌 공급망 교란에 대응하기 위해 바이든 행정부는 반도체, 통신장비, 희토류, 배터리, 의약품을 포함한 첨단 제품의 수입대체를 추구하고 있다.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에너지와 식량까지 안보화되면서, 미국과 중국 사이의 탈동조화(decoupling)는 이제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었다.

 

바이든 행정부의 경제안보 전략은 세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 첫째, 미국은 중국에 대해 확실한 우위를 가지고 있는 기술을 경제안보의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중국의 추격을 차단하기 위해 미국은 전략 경쟁의 구조를 바꿀 수 있는 첨단 과학기술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 국무부, 재무부, 상무부, 국방부, 에너지부 등은 반도체, 5세대 이동통신(5G), 인공지능(AI), 전기자동차(EV), 배터리 산업에 대해 수출통제, 수입제한, 투자금지, 인적교류 중지 등과 같은 다양한 제재를 도입하였다. 이와 동시에 미국은 ‘반도체 칩과 과학법’과 ‘인플레이션 감축법’을 통해 각각 자국 내 반도체와 EV 및 배터리의 생산을 증대하는 산업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

 

둘째, 단기간에 자국 내에 독자적인 공급망을 건설할 수 없기 때문에, 바이든 행정부는 자국 기업의 복귀를 장려하는 리쇼어링(reshoring)뿐만 아니라 동맹국, 동반국, 유사입장국과 협력을 강화하는 앨라이/프렌드쇼어링(ally/friend-shoring)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미국은 유럽과는 무역기술위원회(TTC), 아시아와는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 라틴아메리카와는 경제번영을 위한 미주 파트너십(APEP) 협상을 각각 진행하고 있다.

 

셋째, 미국은 경제안보에 해당되는 첨단 과학기술을 규범적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다. 디지털 경제와 사이버 공간에서 증대하는 비자유주의/권위주의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서 자유, 민주주의, 신뢰라는 가치를 과학기술에 투사하는 것이다. 과학기술의 규범화가 궁극적으로 발전하면, 디지털 경제와 사이버 공간이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민주주의 진영과 중국과 러시아를 축으로 하는 권위주의 진영으로 양분될 수도 있다.

 

바이든 행정부의 경제안보 전략은 한미 경제관계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무역전쟁 이후 한국의 경제외교는 최대 교역국인 중국보다 군사 동맹국인 미국에 경사되고 있다. 첫째, 한국은 미국과 수십 년의 군사동맹을 발전시켜 왔다. 둘째, 한국과 미국은 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의 핵심 가치와 규범을 공유해왔다. 마지막으로 2017년 사드(THAAD) 사태 이후 중국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급증하였다. 이런 이유 때문에 중국의 견제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IPEF와 칩4 동맹에 창립 멤버로 가입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의 미국에 대한 지지가 무조건적인 것은 아니다. 한국의 반도체, 배터리, EV 산업에게 미국의 ‘반도체 칩과 과학법’과 ‘인플레이션 감축법’은 기회인 동시에 위기이기 때문이다. 장기적으로는 중국 기업의 추격을 막을 수 있다는 점에서 한국 기업은 이 법안들의 수혜자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단기적으로 미국과 중국 모두에서 한국 기업의 점유율과 수익률이 하락할 가능성이 높다. 세계 최대의 소비시장으로 부상한 중국에서 사업을 축소하거나 철수해야 하게 되면, 중국을 대체할 수 있는 시장이 등장하지 않는 한 한국 기업의 매출은 감소할 것이다. 또한 대중 의존도를 미국 정부가 원하는 수준으로 바로 낮출 수 없기 때문에, 한국 기업은 당분간 미국 정부의 보조금을 지원받을 수 없다.

 

한국 기업이 미국에서 당면한 문제는 산업별로 차이가 있다. 반도체 공급망을 재편하는 칩4 동맹에 대한 한국과 미국의 입장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미국은 국내 반도체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외국 기업을 국내로 유치해야 한다. 앨라이/프렌드쇼어링의 일환으로 삼성은 텍사스주에 최첨단 반도체를 양산할 수 있는 파운드리 공장을 건설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최대 수출시장인 중국에서 반도체 생산을 외면하기 어렵다. 그런데 미국의 대중 제재로 한국 기업은 중국의 생산시설을 확장하는 것은 고사하고 기존 장비의 교체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 이번에 미국이 일 년간 제재를 유예해주었지만, 이런 제재가 장기화할 경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중국에서 철수해야 할 수도 있다. 최근 주력 제품인 메모리 반도체의 수요와 가격이 동시에 폭락했기 때문에, 이 두 회사가 중국 시장 포기로 인한 수익성 악화를 감내할 수 있는 여지가 크지 않다.

 

EV 배터리 산업에서도 한미 간 이견은 매우 크다. 한국의 배터리 기업인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은 미국의 3대 자동차 기업인 GM, 포드, 스탤란티스와 협력하여 미국의 여러 주에 배터리 공장을 건설하고 있다.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도 조지아주에서 EV 생산공장을 착공하였다. 이런 대규모 투자에도 불구하고, 이 두 자동차 회사는 IRA의 세금 감면 혜택을 받지 못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EV 배터리 보조금은 일정 비율 이상의 소재가 미국이나 USMCA 회원국에서 채굴 또는 가공되거나 북미에서 재활용될 경우에만 지급되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 전기차 배터리 공급업체의 중국산 양극재, 분리막, 전구물질 의존도는 각각 72.5%, 54.8%, 90% 이상에 달한다. 이 문제가 빨리 해결되지 않으면 미국에 진출한 한국 배터리 및 EV 기업의 매출이 줄고 점유율이 낮아질 것이다.

 

미국의 대중 제재가 한국 기업과 미국 기업에 차별적으로 적용될 가능성에도 주의해야 한다. 미국을 대표하는 기업인 애플과 테슬라는 중국 사업을 확대·유지하는 반면, 한국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중국에서 퇴출을 강요받고 있다. 이런 상황이 빨리 해소되지 않을 경우, IPEF와 칩4 동맹에 대한 지지는 악화될 것이다. 한미 동맹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미국은 한국 기업에게 대미 투자에 대한 적절하고 충분한 보상을 시급히 제공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한미 간의 경제적 마찰이 한미 군사동맹에 파급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최근 북한이 미사일 발사 실험을 계속하고 있어, 확장 억제를 위한 양국의 군사안보 협력이 어느 때보다도 중요하다. 따라서 경제안보 차원의 이견이 양국 관계 전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우리 정부는 미국 정부에 양보를 압박하기보다는 양국 사이의 공통분모를 확대하기 위한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이렇게 할 때만이 북한은 물론 중국이 한미 간 갈등을 악용할 수 있는 여지를 사전에 차단할 수 있을 것이다. ■

 

※ 본 논평은 “The Biden Administration`s Economic Security Policies and ROK-U.S. Relations” 의 국문 번역본입니다.

 


 

이왕휘_아주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영국 런던정치경제대학교에서 국제정치학 박사를 취득하였다. 외교부, 산업통상자원부, 과기정통부에 경제안보 문제에 대해 자문하고 있다. 연구 주제는 동아시아 정치경제와 미중 전략경쟁이다. 주요 연구업적으로는 『바이든 시기 중국의 다자외교 전망』, 『 세계 선도국가와 정의로운 전환: 포스트 코로나 시대 한국의 국정 방향 』(공저), 『강대국 경쟁과 관련국의 대응: 역사적 사례와 시사점』(공저), 『미중 갈등 시대에 대외 여건의 구조 변화와 대응 방안 』(공저), 『미중 전략경쟁 시대 지정학적 리스크와 경제안보 』 (공저)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