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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I 이슈브리핑] ‘이스라엘의 9·11’과 무너진 아이언 돔: 하마스의 가자지배 종식이 어려운 이유

  • 2023-10-20
  • 김강석

ISBN  919-11-6617-664-7-95340

I. 들어가며

 

2023년 10월 7일, 하마스의 대규모 공격으로 시작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은 중동의 정치적 불안정을 고조시키고 있다. 10월 12일, 베냐민 네타냐후(Benjamin Netanyahu) 이스라엘 총리는 의회 연설에서 “하마스는 ISIS와 같다. 9·11 이후, 분노한 세계는 ISIS와 알카에다를 막기 위해 국제 연합을 구성했다”라며 전 세계의 하마스 대응 참여를 호소했다(Netanyahu 2023). 하마스는 5,000발 이상의 로켓을 이스라엘에 발사했으며, 대원들을 침투시켜 최소 199명의 이스라엘 국민을 인질로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Sharp 2023). 양측의 사망자와 부상자 수는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는 점에서 국제사회의 큰 우려를 낳고 있다.

 

하마스의 이스라엘에 대한 기습 공격은 ‘이스라엘의 9·11’로 비유되고 있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며 알카에다를 섬멸하기 위해 나선 것처럼, 이스라엘 역시 하마스의 가자지구 지배를 끝내기 위한 정치적, 군사적 작전을 강화하는 모양새이다. 이에 대해 하마스의 정치적 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야(Ismail Haniyeh)는 군사작전 ‘알 아크사 홍수(Operation Al-Aqsa Flood)’ 시작 직후 발표된 성명에서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와 서안지역의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자행한 침략에 대항해 “명예와 저항, 그리고 존엄”을 위해 싸우려 한다며, “전 세계의 무슬림과 자유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이 전투에 동참”해 줄 것을 요청했다(Al Jazeera 2023a). 하마스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의 부당성을 부각하고, 군사 행동의 정당성을 주장함으로써 이스라엘에 대한 항전을 이어 나가고 있다.

 

본 연구는 오슬로 평화과정(Oslo Accords) 종료 후 9·11 테러를 거쳐 지난 20년간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분쟁 역사를 미국 행정부의 변동과 함께 조명한다. 특히, 이스라엘-하마스 분쟁사를 고찰하면서 다음과 같은 주요 질문에 답을 찾고자 한다. 하마스는 어떻게 가자지구에서 지배적인 위치를 확보하게 되었는가?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의 전쟁은 어떻게 확대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미국의 중재 노력은 왜 실패했는가? 하마스는 왜 예루살렘 문제와 이스라엘 공격을 연계하는 전략을 강화하고 있는가? 따라서, 본 연구는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해답을 통해 최근 이스라엘-하마스 분쟁의 역사적 추이와 배경을 파악하고, 이를 통해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내 하마스 지배 종식 시도의 한계를 함의로 제시하고자 한다.

 

II. 이스라엘과 하마스 분쟁: 지난 20년의 역사적 고찰

 

1. 9·11 이후 부시의 '중동 평화 로드맵(Roadmap for Peace in the Middle East)'과 팔레스타인 지배구조의 이원화

 

냉전이 종료된 후에 얼마 지나지 않아, 1994년 팔레스타인해방기구(Palestine Liberation Organization: PLO)의 야세르 아라파트 의장과 이스라엘의 이츠하크 라빈 총리, 그리고 시몬 페레스 외무장관은 중동 평화 과정에 대한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클린턴 대통령의 중재로 1993년 제1차, 1995년 제2차 오슬로 협정이 성공적으로 체결되었으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오랜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컸다.[1] 하지만 1995년 이츠하크 라빈 총리가 암살당하고, 1996년 리쿠드당의 베냐민 네타냐후가 총리직을 맡으면서 평화협상의 동력이 크게 약화되었다. 이어서 2000년 7월, 캠프데이비드에서 에후드 바락 총리와 야세르 아라파트 간의 정상회담이 실패로 끝나게 됨에 따라 오슬로 평화과정은 결국 중단되었다.

 

2000년에 발생한 제2차 인티파다(Second Intifada)는 오슬로 평화과정 실패 이후 갈등적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인티파다’는 팔레스타인의 이스라엘에 대한 민중봉기를 의미하며, 1987년 제1차 인티파다와 2000년 제2차 인티파다로 구분된다. 제1차 인티파다는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 민간인이 이스라엘 군의 차량에 치여 숨지는 사건이 발단으로 작용했다. 제2차 인티파다는 당시 야당인 리쿠드당 지도자였던 아리엘 샤론(Ariel Sharon)이 동예루살렘의 알 아크사 사원을 방문한 것이 촉발원인이 되었다.

 

제2차 인티파다가 격화되는 동안 하마스는 자살폭탄 테러를 감행하였고, 이에 따른 이스라엘의 보복 조치도 서안지구와 가자 지구에서 이어졌다. 이런 배경 속에서 부시 행정부는 9·11 테러 이후 이라크 전쟁에 집중하면서, 클린턴 행정부 때보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 해결에 상대적으로 덜 관여하였다. 하지만 9·11의 여파 속에서 중동의 민주화와 테러 억제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를 테러리즘에 대한 대응 차원에서 해결하려는 노력이 모색되었다. 이에 따라, 부시는 중동 평화를 위한 새로운 방안을 마련하였고, 2002년 6월 24일 로즈 가든 연설을 통해 다음과 같은 내용을 포함한 ‘중동 평화 로드맵(Roadmap for Peace in the Middle East)’을 발표하였다.

 

나의 비전은 평화와 안전 속에서 나란히 살아가는 두 개의 국가입니다. 모든 당사자들이 테러와의 전쟁에 참여하지 않는 한 그러한 평화를 이룰 단순한 방법은 없습니다. ... 나는 팔레스타인인들에게 테러에 타협하지 않는 새로운 지도자를 선출할 것을 요청합니다, 그들에게 관용과 자유를 기반으로 한 민주주의를 실행하도록 요구합니다. 팔레스타인인들이 이러한 목표를 적극적으로 추구한다면, 미국과 전 세계는 그들의 노력을 적극적으로 지원할 것입니다(Bush 2002).

 

이런 관점에서, 부시 행정부는 야세르 아라파트의 후임으로 새로운 팔레스타인 리더십의 등장을 희망했다. 미국은 아라파트를 테러와 관련된 인물로 보는 이스라엘의 입장과 동일한 인식을 공유하였다. 그 결과,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을 중심으로 미국 내 고위 정책결정자들은 아라파트의 교체와 민주적 리더의 선출을 위한 방안을 모색하였다.

 

그런데, 2004년 11월, 야세르 아라파트가 의문의 사망을 맞이하면서 마흐무드 압바스 대통령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지도부가 탄생하였다. 이에 따라 부시 행정부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협상의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로 보게 되었고, 중동 평화 로드맵의 추진을 본격화하였다. 워싱턴은 팔레스타인 내 민주주의 선거를 촉진하는 동시에, 이스라엘 정부에도 평화협상의 여건 조성을 강조하였다.

 

2005년 이스라엘의 아리엘 샤론 총리는 가자지구 내의 21개 유대인 정착촌과 이 지역의 이스라엘 병력을 철수하는 파격적인 결정을 내렸다. 샤론 총리는 부시 대통령에게 보낸 서한에서 이 철수 계획이 이스라엘의 안보를 강화하고, 정치와 경제 상황을 안정화하기 위한 것이라며, 중동 평화 로드맵과는 독립적으로 추진되나 그 지향점은 같다고 강조하였다(MFA Israel 2004).

 

이 결정은 이스라엘 내에서 큰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우파와 정착민 사이에서 샤론의 일방적 철수 결정에 대한 반발이 컸다. 당시 재무장관이던 베냐민 네타냐후는 반대하는 의사를 명확히 표현하며 사임하였다. 샤론 총리의 보수적 성향을 고려할 때, 이러한 결정의 배경에는 서안지구에 더 집중하려는 전략적 고려나 유대 국가의 정체성을 지키려는 현실적인 판단이 있었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될 수 있다.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철수 이후, 2006년 1월 부시 행정부의 지원으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의회 선거가 진행되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서안지구 중심의 파타를 제치고 하마스가 승리했다. 이로 인해 가자지구에서는 하마스 소속의 이스마일 하니야가 총리직을 맡게 되었고, 반면 서안지구에서는 파타 소속의 마흐무드 압바스가 대통령직을 유지하는 독특한 연합 구조가 형성되었다. 이어 2007년 6월 하마스는 가자지구에서 파타를 무력으로 추방하였고, 이후 가자지구는 하마스 중심, 서안지구는 파타 중심으로 분리된 지배 구조가 창출되었다. 따라서 부시의 중동 평화 로드맵은 팔레스타인의 지배 구조를 이원화하고 가자지구에서 하마스의 권력을 강화하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평가된다. 또한, 이런 상황은 중동 평화 로드맵의 성공을 더 어렵게 만들었다. 2007년 11월 27일~28일 부시 행정부의 주도로 진행된 아나폴리스 회담이 큰 성과를 내지 못했고, 2008년 이스라엘의 에후드 올메르트 총리와 마흐무드 압바스 간 협상 역시 합의에 이르지 못하였다.

 

2. 충돌의 격화와 오바마의 중재 실패

 

하마스가 가자지구를 통제하자 이스라엘의 유대인 정착촌 철수 결정의 한계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스라엘은 철수 이후 안보 우려 때문에 가자지구에 대한 봉쇄 정책을 강화했다. 이로 인해 가자지구는 연료, 수도, 전기와 같은 생존을 위한 요소들을 이스라엘에 전적으로 의존해야만 했다. 무엇보다, 하마스의 가자지구 통제 이후 이스라엘과의 갈등은 더욱 심화되었다. 이 때문에 샤론 총리가 주도한 철수 계획은 가자지구 문제 해결을 위한 전환점으로 작용하지 못했으며, 갈등을 진정시키는 효과를 내지도 못했다. 오히려 이스라엘-하마스 간 분쟁은 더욱 확대되었다. 특히 2008년 12월 27일 이스라엘은 가자지구를 향해 대규모 군사작전을 감행했다. 이 22일간의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의 전쟁으로, 다수의 민간인이 포함된 약 1,400명의 팔레스타인인들이 사망했다.

 

2014년 발생한 50일 동안의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의 가자 전쟁은 양측의 격화된 충돌 양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당시 전쟁은 3명의 이스라엘 10대 청소년들이 납치되어 살해된 것을 계기로 이스라엘이 보복 공격에 나서면서 시작되었고, 가자지구는 큰 피해를 입게 되었다. 전쟁 도중 이스라엘의 국방부는 하마스의 군사 조직인 ‘알 카삼 여단(Izz ad-Din al-Qassam Brigades)’의 지도자 무함마드 다이프(Mohammed Deif)를 제거하려 했으나 실패했고, 대신에 그의 아내와 두 자녀가 희생되었다.

 

한편, 오바마 대통령은 부시 행정부가 추진했던 아나폴리스 정상회담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평화 정착을 위한 새로운 시도를 모색했다. 오바마 행정부의 핵심 전략은 이스라엘이 동예루살렘을 포함한 점령 지역에서의 정착촌 활동을 중단하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2016년 12월, 오바마 대통령의 임기 말에 유엔 안보리 결의안 2334호가 채택되었다. 이 결의안은 이스라엘의 정착촌 확대를 비난하고 정착촌 건설 중단을 요구하는 내용이었으며, 미국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고 기권한 결과로 채택되었다. 그러나 오바마의 평화 구상은 이스라엘 내에서 우파 정권의 등장으로 진전되기 어려웠다. 2009년 2월 이스라엘 의회 선거에서 우파 세력이 승리하고, 2009년 3월 베냐민 네타냐후가 또다시 총리 자리에 올랐다.

 

오바마와 네타냐후 사이에는 명백한 정책적 이견이 있었다. 네타냐후는 과거 샤론 총리의 가자지구 철수 정책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던 입장을 견지하면서 팔레스타인이 이스라엘을 유대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반면 오바마는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봉쇄에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서안지구의 정착촌 건설 중단을 촉구했다. 이러한 인식의 차이 속에서 오바마 행정부는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공동의 해결 방안을 찾아내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당시 존 케리 국무장관의 주도로 중재 협상은 진행되었다. 케리는 2013년 7월부터 2014년 4월까지 평화협상을 중재했으나 합의에 실패했다. 2016년 재차 중재를 시도했지만, 양측 간의 불신을 해소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3. 트럼프의 ‘세기의 거래(Deal of the Century)’와 하마스의 ‘예루살렘’ 연계 전략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의 충돌이 계속되면서 하마스의 대이스라엘 강경 태도는 더욱 선명해졌다. 하마스는 이스라엘에 대한 저항의 정당성을 강조하기 위해 다양한 전략을 모색했으며, 그중에서도 '예루살렘' 문제를 중심으로 한 접근을 강화했다. 특히, 이 전략은 트럼프 행정부가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하면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2017년 12월, 트럼프 대통령은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정식으로 인정하며 미국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이전하는 결정을 발표했다.

 

트럼프 행정부 내에는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하면 아랍과 이슬람 세계에서의 반미 감정이 증폭되어 폭력적인 반응이 일어날 것을 우려하는 의견이 제기되었다. 하지만 실제 미국이 걱정했던 큰 반발은 나타나지 않았다. ‘아랍의 봄(Arab Spring)’ 이후 아랍 세계에서의 정치적 불안 속에서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관심은 크게 줄어들었다. 이런 배경이 트럼프의 예루살렘 수도 인정 결정에 대한 아랍 국가들의 미온적 대응에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2020년 1월, 트럼프는 '세기의 거래(Deal of the Century)'로 불리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 해결을 위한 평화안을 발표하였다. 팔레스타인이 이 평화안에 대한 반대한 주요 이유는 예루살렘의 영유권 문제 때문이었다. '세기의 거래'에 따르면, 이스라엘의 수도는 통합된 예루살렘에 위치하게 되며, 팔레스타인의 수도는 예루살렘 동부의 아부 디스 지역으로 정해졌다. 또한, 미국 대사관은 새로운 팔레스타인 수도에 위치하게 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팔레스타인 측은 이슬람의 성지가 존재하는 올드 시티를 이스라엘이 관할하는 형태로 예루살렘의 영유권을 이스라엘에게 온전히 넘길 수 없다며 반발하였다.

 

더욱이, 2020년 9월 이스라엘과 아랍에미리트가 ‘아브라함 협정(Abraham Accords)’을 체결하며 관계정상화에 합의했다. 그해 말까지 바레인, 수단, 모로코도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회복하며,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 간의 화해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팔레스타인, 특히 하마스는 아랍 정치 지도자들의 이러한 결정에 불만을 표출하였다. 아랍 국가들의 정부와 정치인들이 팔레스타인 문제에 크게 관심을 갖지 않는 상황에서, 하마스는 아랍 및 무슬림 대중에게 명확한 정치적 메시지를 전하려 했고, ‘예루살렘’ 문제가 그 메시지의 중심이 되었다.

 

2021년 5월, 동예루살렘의 셰이크 자라 마을에서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이스라엘 대법원의 결정에 따라 강제로 퇴거당하자, 하마스는 이스라엘에 대해 군사적으로 대응하였다. 이 때문에 5월 10일부터 5월 21일 휴전이 성사될 때까지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군사적 충돌이 계속되었다. 무함마드 다이프는 이스라엘이 셰이크 자라 마을 주민을 공격한다면 대가를 치를 것이라며 경고했는데, 이는 하마스가 가자지구와 서안지구의 문제를 예루살렘과 연계하는 전략을 표출한 것으로 평가된다(Rabinovich 2023, 236).

 

그리고 이후 가자지구를 둘러싼 양측간의 군사적 긴장은 지속되었다. 이러한 배경하에서 2022년 5월 11일 알자지라의 팔레스타인계 미국인 기자 시린 아부 아쿨레가 예닌에서 이스라엘 군의 총격을 받아 사망하였다. 또한, 2022년 8월 5일 예닌에서 이슬람 지하드(IJ: Islamic Jihad)의 지도자인 바삼 알 사디(Bassam al-Saadi)가 체포된 후에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군사적 충돌이 발발하였다.

 

결과적으로 트럼프의 ‘세기의 거래’ 이후 하마스는 예루살렘 문제와 이스라엘에 대한 항전의 연계성을 강화하여, 아랍 및 전 세계 무슬림들의 정치적 지지를 확보하려 했다고 볼 수 있다. 현재 하마스가 ‘알 아크사 홍수’라는 명칭으로 작전을 선포한 것도 이런 의도가 반영된 것으로 분석된다. 최근 이스라엘의 종교 민족주의자들이 성지인 알 아크사 사원을 자주 방문하면서 유대인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갈등이 발생했지만, 주요 아랍 정치 지도자들은 이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하마스는 ‘알 아크사’ 문제를 강조함으로써 군사 행동에 대한 정당성을 부각시키고, 아랍과 이슬람 세계로부터의 지지를 얻고자 했다. 이런 맥락에서 무함마드 다이프는 ‘알 아크사의 홍수’ 작전을 선포하는 동영상에서 서안지구, 예루살렘, 그리고 이스라엘 내 팔레스타인 청년들에게 ‘알 아크사 승리를 위한 인티파다’에 참여해 줄 것을 호소했다(Al Jazeera 2023b).

 

III. 결론 및 함의

 

지난 20년 동안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의 분쟁 역사를 바탕으로 다음과 같은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 첫째, 하마스가 현재 가자지구에서 지배적인 권력을 확립한 배경에는 9·11 테러 이후 부시 행정부가 추진한 ‘중동 평화 로드맵’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미국은 팔레스타인 내 새로운 리더십의 탄생을 촉진하고 민주주의 선거를 모색하였다. 이로 인해 하마스가 가자지구에서 정치적 기반을 더욱 확고히 구축하게 되었으며, 팔레스타인 내부의 지배 체계가 이원화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둘째, 하마스가 가자지구를 통제한 이후,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의 갈등은 더욱 확대되었다. 특히, 오바마 행정부 시기에는 미국과 이스라엘 사이의 정착촌과 가자지구 봉쇄에 대한 인식 차이로 중재가 효과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하마스의 가자지구 장악 이후 전쟁의 강도가 커지면서 2008년에는 22일 동안, 2014년에는 50일 동안 치열한 전쟁이 발발하며 큰 피해가 발생했다. 이러한 관점에서 샤론 총리가 주도한 가자지구 철수는 이스라엘에게 가자지구 문제에서 벗어나는 분기점이 될 수 없었고,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갈등 해소에 도움이 되지 못했다. 이러한 배경하에서 오바마와 네타냐후 간 정책을 둘러싼 인식의 차이가 존재했고, 미국은 효과적인 중재에 실패했다.

 

셋째, 현재 군사작전의 명칭을 ‘알 아크사 홍수’로 명명한 사실을 통해 알 수 있듯이 하마스는 예루살렘 문제와 이스라엘 항전을 연계하는 전략을 표방하고 있다. 특히 하마스는 아랍과 이슬람 세계를 향해 정치적 메시지를 발산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특별히 트럼프 정부가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공식 인정한 이후, 이러한 하마스의 전략적 방향은 더욱 견고해졌다. 아랍의 봄과 아브라함 협정과 같은 일련의 정치적 사건들이 일어나는 동안 아랍 국가들이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관여를 회피하는 가운데, 이스라엘과 예루살렘 문제를 연계하여 이슬람 세계에 정치적 호소를 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2007년 하마스가 가자지구를 장악하고 팔레스타인 내에서 서안지구와 가자지구를 중심으로 이원적인 통치 구조가 형성되었다. 이후 하마스는 이스라엘과 지속적인 대결과 충돌을 겪었다. 특히 지난 20년 동안 이스라엘에 대한 항전을 통해 하마스의 정치적 기반을 공고화하는 모습을 보였으며, 트럼프 행정부를 거치며 예루살렘 문제와 연계해 하마스의 정당성을 확립하는 전략을 강화해 왔다. 이렇게 하마스가 역사적으로 구축해온 기반과 전 이슬람 세계로부터의 지지를 얻기 위한 정치적 메시지를 발산하고 있는 점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이스라엘이 이번 전쟁을 통해 하마스의 근거를 완전히 파괴하고 가자지구의 지배를 종식시키는 것은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참고문헌

 

Al Jazeera. 2023a. “Haniyeh: Resistance forces are engaging in a heroic epic called ‘Al-Aqsa’ (هنية: المقاومة تخوض ملحمة بطولية عنوانها الأقصى).” October 7. https://bitly.ws/XSvA

 

Al Jazeera. 2023b. “An audio message from the Al-Qassam Commander to launch Operation Al-Aqsa Flood (رسالة صوتية لقائد القسام لإطلاق عملية "طوفان الأقصى").” October 7. https://bitly.ws/XSxK

 

Bush, George W. 2002. “President Bush Calls for New Palestinian Leadership.” The White House. June 24. https://georgewbush-whitehouse.archives.gov/news/releases/2002/06/20020624-3.html

 

Ministry of Foreign Affairs (MFA Israel). 2004. “Exchange of letters between PM Sharon and President Bush.” April 14. https://www.gov.il/en/Departments/General/exchange-of-letters-sharon-bush-14-apr-2004

 

Netanyahu, Benjamin. 2023. “Excerpt from PM Netanyahu’s Knesset Speech on the Occasion of the Swearing-in of the National Emergency Government.” Prime Minister’s Office. October 12. https://www.gov.il/en/departments/news/event-speech121023

 

Rabinovich, Itamar. 2023. Middle Eastern Maze: Israel, the Arabs, and the Region, 1948-2022. Washington D.C.: Brookings Institution Press.

 

Sharp, Alexandra. 2023. “Israel Estimates 199 Hostages Held by Hamas.” Foreign Policy. October 16. https://foreignpolicy.com/2023/10/16/israel-hostages-hamas-gaza-ground-assault-us-hezbollah-lebanon/

 


 

[1] 1993년의 오슬로 1차 협정에서는 이스라엘이 PLO를 공식적으로 인정하며, 서안지구 중 예리코(Jerico) 시의 행정권을 팔레스타인에게 이양하기로 결정했다. 이 결정에 따라 예리코는 팔레스타인의 첫 자치도시로 성립되었으며, 서안지구에서의 이스라엘 병력은 점진적으로 감축될 것으로 합의되었다. 또한, 예리코를 중심으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설립되었다. 1995년의 오슬로 2차 협정에서는 서안지구의 7개 도시(헤브론, 나블루스, 라말라, 예닌, 툴카렘, 카킬랴, 베들레헴)에서 팔레스타인에게 자치권이 이양될 것이며, 이스라엘 군은 6개월 내에 해당 지역에서 완전히 철수하기로 약속되었다(인남식.  2007.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한국의 정책방향』. KIEP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지역연구시리즈 07, 06: 24-25).

 


 

김강석_한국외국어대학교 아랍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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