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경제포커스] 不況 타개? 'CEO 不信'의 벽부터 넘어라

  • 2015-09-17
  • 이광회조선경제i대표 (조선일보)

이광회 조선경제i 대표

최근 한 상장사 임원이 자사의 비정상적인 경영 행태를 제보해 왔다. "최고경영자(CEO)가 '올 임원 인사를 10월까지의 실적으로 조기 평가하겠다'고 선포하자 임원들마다 부실을 감추고 이익을 부풀리는 데 혈안이 돼 있다"는 고발이었다. 당장 써야 할 자재는 고가(高價)라고 창고에 넣어놓고, 값싼 자재를 추가 발주해 쓰고 있다고 했다. "CEO는 내용을 알면서도 단기 실적에만 신경 쓰다 보니 회사가 곪아 터지고 있습니다." 이 회사 주가는 최근 2~3년 동안 반 토막이 나 있다.

 

글로벌 불황기가 지속되고 있다. 수요가 줄고 중국 등 경쟁국의 압박은 되레 거세진다. 신용 등급이 떨어진 국내 기업 숫자가 재작년 사상 최대치를 기록한 이후 줄지 않고, 상장 기업 중 30%가량이 영업이익으로 이자 비용조차 감당하지 못한다.

 

불황기일수록 CEO가 지켜야 할 금과옥조(金科玉條)의 경영 원칙은 신뢰와 투명성이다. "정부가 민간 기업을 믿을 수 있어야 과감한 지원이 뒤따른다. 기업과 금융기관끼리도 마찬가지다. 불황기 기업 생태계의 기본은 고(高)신뢰 사회의 구축이다"(영국 맨체스터대 경영대학원 시아오케 장 교수)라는 충고는 곱씹을 만하다.

 

그런데 우리나라 CEO들의 제 몫 챙기기는 자주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대우조선해양은 전임 CEO의 취임 첫해(2012년) 4863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고, 2013년과 2014년에도 4000억원대의 연속 흑자를 자랑했다. 그러나 후임 CEO가 들어선 올 상반기 3조원대 적자(반기)로 급반전됐다. 대표이사 교체 외에 달라진 게 없는데 천문학적 액수의 적자 반전을 놓고도 당사자는 '회계상 문제일 뿐 내 책임이 아니다'며 빠져나간다.

 

비슷한 사례는 현대중공업(2014년 3조2000원대 적자), 현대삼호중공업(2014년 1조3000억원대 적자), 삼성중공업(2015년 1조5000억원대 적자), 삼성엔지니어링(2013년 1조원대 적자)에 다수 건설사 등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재계에서는 올 연말 실적 부진에 따른 대규모 인적 쇄신이 이어질 것으로 본다. 후임 CEO들이 전임자의 과실을 들춰내는 '빅배스'(Big Bath·거액 부실 털기), '스몰 배스'(소액 부실 털기) 사태가 이어질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350여개 법정관리 기업, 1000여개 은행 구조조정 기업(은행관리), 정부 자금을 받아서 버티는 상당수 벤처기업 중 꽤 많은 기업에서 CEO의 모럴 해저드 사례가 나타난다는 지적도 있다.

 

CEO는 큰 책임만큼이나 큰 권한도 부여받는다. 상법은 대표이사를 회사를 대표하고 대내적 업무 집행을 담당하는 독립 기관으로 규정한다. 또 주총과 이사회 권한을 제외한 업무 집행에 대한 모든 의사 결정권, 포괄적 대표권, 회사 영업에 관해 모든 행위를 할 수 있는 권한, 업무 집행권 등을 부여한다.

 

미국·중국 등 14개 국가를 대상으로 한 대기업 신뢰도 조사(글로벌스캔과 동아시아연구원, 2013년)에서 한국은 꼴찌(36%)다. 포스코 권오준 회장의 "경영상의 손실이 오더라도 윤리를 회사 경영의 1순위로 정착시켜야 한다"는 윤리 경영도 길게 보면 올바른 방향이다. 불황기일수록 투명하고 시장에 신뢰를 던져주는 건강한 CEO 리더십 구축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