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한•일 양국은 국교 정상화 50주년을 맞지만, 최근 몇 년 새 양국 관계는 결코 ‘정상적이지’ 않았다.
성 노예 여성 이슈와 다른 분쟁 때문에 갈등에 휘말리면서 미국의 동북아 우방국인 양국의 관계는 완전히 얼어붙었다. 그로 인해 이 지역에서 안보와 경제적 유대를 강화하고, 커져가는 중국의 야욕을 억제하고자 하는 미국의 노력이 타격을 입고 있다.
그러나 이제는 ‘제한적인’ 해빙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 주말 예정됐던 한국 외교부 장관의 일본 방문도 그 중 하나다. 한국의 외교부 장관이 일본을 찾는 것은 4년여만의 일이다. 워싱턴은 이같은 해빙 무드를 십분 활용해 두 우방국들이 관계 개선에 한 발 더 가까이 다가가게 할 필요가 있다.
수년간 심각한 불화를 겪어 온 양국의 최고위 외교관들이 회동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전시 성 노예로 강제 동원됐던 여성들의 명예를 옹호할 것을 공약하고, 일본 측의 분명한 사죄를 요구해 왔다. 이 사안과 관련해 아베 총리는 과거 일본 정부의 성명을 재천명하겠다고 강조해 왔다. 또 개인적으로 일본 관료들은 어떠한 새로운 성명도 회오(悔悟,뉘우침)를 원하는 한국을 완전히 만족시킬 수 없을 것이라고 시사했다.
양국의 다른 역사관이 기존 영토 분쟁을 더욱 꼬이게 만들고 있다. 양국은 독도(일본명: 다케시마)를 놓고 갈등을 벌이고 있다. 수많은 세계 지도자들을 상대로 적극적인 국제 외교 활동을 펼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박 대통령과 아베 총리는 양자간 정상회담을 개최한 적이 없다.
그 결과, 상대국에 대한 양국 국민들의 호감도가 급락했다. 또한 전략적인 전망이 변화하고 있다. 특히 한국에서 그런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최근 한국의 동아시아연구원과 일본의 겐론NPO가 공동으로 실시한 국민인식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중국보다 일본을 군사적 위협으로 예상하는 한국인이 더 많았다. 또 한국인 가운데 3분의 1 은 미래의 어느 시점에 자국이 일본과 군사적 충돌을 겪을 것으로 봤다.
이같은 상황 때문에 미국은 난국에 처해 있다. 아시아의 두 우방국 간의 소원한 관계는 역내 안보 및 경제 협력을 이루기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 또 보다 굵직한 역내 난제에 집중하지 못하게 만드는 큰 방해물이기도 하다.
일례로 최근 북한은 잠수함 탑재 탄도 미사일 발사 시험에 성공했다고 주장했다. 한편, 미 관료들은 북한의 핵탄두 소형화 기술이 진전을 이루고 있다고 확인해 주었다. 변덕스러운 북한의 젊은 지도자 김정은은 국내에서는 주기적으로 사형을 실시하고, 국제 사회를 무력으로 위협하고 있다. 그로 인해 한국의 안보 초점을 동아시아가 아닌 북한에 맞추게 하고 있다.
동시에 커져가는 중국의 야욕은 태평양 지역의 우방국들이 공동 전선을 펴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보여주는 실례다. 중국이 동중국해에 방공식별구역(ADIZ)를 설치한 것을 그같은 야욕의 예로 들 수 있다. 한국으로서는 보다 공세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는 중국의 반감을 사지 않고, 베이징과의 관계 개선을 통해 평양에 압박이 가해지기를 바랄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 그러나 중국은 미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 사드) 체계의 한국 배치 가능성을 놓고 한국을 압박하고 있으며, 중국이 설정한 ADIZ는 한국 영공까지 잠식했다. 이는 한국마저도 중국의 강압적인 손길에서 안전하지 않다는 점을 드러낸다.
아마도 이러한 이유로 한•일 양국 간의 해빙 조짐이 ‘제한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양국 관계의 해빙 징후는 지난해 12월 양국이 미국과 북한에 관한 군사정보공유 약정을 체결하면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지난달 양국은 2012년 이후 처음으로 재무장관 회의를 개최했다. 같은달 양국 국방 당국도 5년여 만에 처음으로 고위급 안보 정책협의회를 가졌다. 주한일본대사는 양국 정상회담이 11월에 개최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언급했다.
한국 관료들은 자신들의 행보가 투트랙(Two Track, 정경분리 기조) 접근방식이라는 시그널을 보내기 시작했다. 투트랙 접근방식이란 일본과의 역사•영토 분쟁을 안보•경제 협력과 분리시키는 기조를 의미한다. 그러나 여전히 갈 길이 멀다. 동아시아연구원과 겐론NPO의 공동 설문조사에서 한국인 응답자의 70% 이상이 일본에 대해 부정적인 인상을 갖고 있다고 답했다. 일본인 가운데 절반 이상은 한국에 대해 호감을 갖고 있지 않다고 응답해 호감을 갖고 있다고 답한 이들에 비해 두 배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일 관계가 지속적으로 얼어붙을 경우, 위험이 수반된다. 한•일 관계가 소원해지기는 했지만 중국이 한국을 좌지우지하게 되지는 못했다. 그러나 중국은 이를 양국 관계를 이간질시키기 위한 기회로 삼아 왔다. 동시에 일본은 인도양 전역의 국가들과 안보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이같은 국방 관계 패턴이 확대되면서 새로운 역내 안보 구도에서 한국은 고립무원의 처지에 놓일 수도 있다.
한반도에서 군사적 충돌이 빚어진다면 일본의 관심사가 될 것이며 일본이 맡을 역할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 최근까지 긴밀한 접촉을 피해 온 양국 정부간에 이루어지는 모든 안보 논의에서 그 시나리오가 다루어져야 한다.
양국 관계 개선에 있어 워싱턴은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지난해 오바마 대통령은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한•미•일 정상회담을 주최했다. 이제 워싱턴은 동북아 지역에서 전략적 그림을 보다 포괄적으로 구상하는데 있어 도움이 될 수 있다.
각각의 동맹은 강력하지만, 한•일 양국이 보다 긴밀한 협력을 이루는데 전념한다면 동맹이 더 강력해질 것으로 보인다. 미사일 방어에서 해상 안보, 사이버공간 및 우주 공간에 대한 접근성과 관련한 전반적인 협력에 이르기까지 양국은 독자적으로보다는 함께 더 많은 것을 이룰 수 있다.
북한의 위협과 중국의 도전에 대한 최고의 균형추는 강력하고 통합되고 협력하는 민주주의 국가들의 연합체로 이루어진 동북아시아다. 그러기 위해서는 역사를 저버리는 것이 아니라 역사의 덫에 갇히지 않을 필요가 있다.
최근 박 대통령은 협력이 필요한 사안들을 중심으로 일본과 미래지향적인 양국 관계를 발전시키는데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오늘날 아시아 지역에서는 그처럼 협력이 필요한 사안이 얼마든지 있다.
필자 리처드 폰테인은 워싱턴DC 소재 미국신안보연구센터 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