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반일-반한 정서의 에스컬레이티드 현상

  • 2015-06-07
  • 정한울 (미디어오늘)
[바심마당] 아베-이명박 정부 시기 이후 일본 내 반한 정서 확산…

 

한일수교 50주년, 양국 국민감정 최악

 

지난 주 필자는 동아시아연구원과 일본 비영리단체 언론NPO가 공동으로 3년 째 조사한 한일 양국국민의 상호인식조사를 발표하는 내외신 기자회견 방문차 도쿄를 방문했다. 민간기관의 발표임에도 불구하고 한일수교 50주년이라는 상징성과 악화된 양국관계를 반영하듯 50여명이 넘는 내외신 취재진이 깊은 관심과 취재열기를 보여주었다.

 

조사결과는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최악이었다. 한국인 중 일본에 대해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는 응답은 15.7%,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다는 응답은 72.5%나 되었다. 일본인 중 한국에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다는 응답은 23.8%, 좋지 않은 이미지를 갖고 있다는 응답은 52.4%로 과반을 넘었고 어느 쪽도 아니라거나 모르겠다고 답한 응답이 23.8%였다. 2013년 첫 조사결과와 비교하면 한국의 경우 좋지 않은 이미지를 갖고 응답이 꾸준히 70%를 상회했다. 일본 국민의 경우 2013년 조사에서 좋지 않은 이미지를 갖고 있다는 응답이 37.3% 수준이었지만 이후 과반을 넘을 정도로 대한국 이미지가 급격히 악화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아래 그림 참조). 기자회견에 참여한 일부 언론을 제외하면 대다수 언론들이 이번 조사결과를 근거로 한일 국민감정의 비관적 전망을 내놓는 기사들을 쏟아냈다. 무엇이 비관적 전망을 낳게 했을까?

 

 

비관적 전망의 이유

 

이번 조사에서 서로에 대해 좋지 않은 인상을 가지고 있다는 응답자들에게 부정적인 이유를 두 가지씩 꼽으라 한 조사 결과를 보면, 일견 양국 상호인식의 비관적 전망을 뒷받침하는 듯하다. 한국인은 일본이 한국을 침탈한 역사를 제대로 반성하고 있지 않다는 점(74.0%)과 독도문제(69.3%)를 압도적으로 꼽았다. 반대로 일본인은 한국이 역사문제로 일본을 계속 비판하기 때문이라는 응답이 74.6%, 독도문제 때문이라는 응답이 36.5%, 한국의 정치지도자의 발언과 행동을 탓한 응답이 28.1%로 뒤를 이었다(아래 그림 참조).

 

 

한국 국민들이 일본의 역사적 반성 부족과 영토주권 문제를 압도적으로 강조하는 모습에 대해 일본 측에는 일본이 아무리 사과해도 한국인의 반일DNA는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를 키운다. 반대로 일본인의 다수가 문제의 원인을 한국의 과도한 반일정서에서 찾는 모습은 일본의 진정성에 대한 한국의 불신을 공고화하는 악순환을 야기하는 요인인 셈이다. 이러한 해석은 한일 양국 국민여론의 부정적인 측면만 조명된 결과이며, 아직 미약하기는 하지만 양국 국민인식의 전환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결과도 간과해서는 안된다.

 

한국 여론에 대한 오해: 한국 국민은 뼈속까지 반일의 DNA를 갖고 있는가?

 

우선, 일본인들이 우려하고, 우리 국민들조차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이 한국인은 어떤 상황에서도 변하지 않는 뿌리깊은 반일의 DNA를 갖고 있다는 인식이다. 그러나 한국인의 반일정서는 상수가 아닌 양국 정부와 시민사회의 노력에 따라 가변적인 변수이다. BBC방송과 동아시아연구원이 2004년부터 매년 조사해온 국제조사 결과를 보자. 신사참배, 수정 교과서의 문부성 검정 통과 문제 등 고이즈미-아베총리가 집권한 2006년까지 시기에는 일본의 국제적 역할에 대한 한국인의 긍정적인 평가가 지속적으로 하락했다. 반면, 한일간 신시대선언에 합의한 2007년 야스오 총리 시기, 2009년 무라야먀 담화를 계승할 의지를 밝힌 유키오, 나오토 민주당 총리 시기를 거친 후 2011년 조사에서는 한국 국민들의 68%가 일본의 국제적 역할에 긍정적이라고 답할 정도로 우호적인 태도가 급증하였다. 그러나 아베총리의 재집권 이후 역사수정주의노선 및 일본의 군사적 역할 확대 움직임이 가시화되면서 급격하게 부정적 평가가 강화되고 있다. 한국 국민들의 일본에 대한 태도는 정부간 상호 노력에 따라 얼마든지 변동 가능한 변수임을 뚜렷하게 보여준다(아래 그림 참조).

 

 

일본 국민여론에 대한 오해: 일본 국민은 자성의 DNA를 갖고 있지 않은가?

 

반대로 일본 국민들은 아베정부의 역사수정주의 및 우경화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는 잊은 채 “사과 피로감”을 토로하며 한국 국민의 반일정서만 탓하고 있는가? 일본내각부가 매년 발표하는 대외인식조사에서 한국에 대해 친근감을 느낀다는 일본 국민의 응답비율을 보면, 2004년부터 2011년까지 과반 이상이 한국에 대해 친근감을 표시할 정도로 한국에 우호적이었다. 그러나 2012년 초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방문을 계기로 일본에서 대한국 이미지가 급격히 악화되기 시작했다(아래 그림 참조).

 

 

또한 한국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강화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 국민들 사이에서 자성의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는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아베총리의 야스쿠니 신사참배에 대해 2013년 조사만 하더라도 “참배해도 문제될 것이 없다”는 주장이 47.8%였지만, 올해 조사에서는 41.3%로 줄었고, “어떤 경우든 참배해서는 안된다”는 주장은 8.3%에서 16.7%로 두 배 이상 늘어났다. “개인자격으로 참배하는 것은 무방하다”는 제한적인 의견이 29.1% 수준이다. 아베총리의 참배정치에 대한 반대 또한 유보적인 태도가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아래 그림 참조). 특히 2014년 일본 지식인 조사에서는 “어떤 경우든 참배해서는 안된다”는 의견이 52.6%로 신사참배에 대한 부정적인 목소리가 높았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균형 잡힌 시각잡기가 문제해결의 출발점

 

▲ 정한울 동아시아연구원 수석연구원

최근 한일관계가 악화되면서 양국 국민들의 충돌과 상대를 자극할만한 부정적인 소식만이 정치권과 언론을 통해 부각되어 왔다. 실제로 지난 몇 년간 드러난 국민감정의 악화는 최근 10년간 최악의 상황이다. 양국 정부 공히 국내정치적 요인을 고려하여 문제해결을 위한 노력에 소극적이었던 측면도 부정하기 힘들다. 그러나 양국 국민들 스스로 한일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문제해결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균형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번 조사에서 한일관계 중요하다는 인식이 한국에서는 87.4%, 일본에서 65.3%로 절대 다수가 한일관계의 중요성에 동의했다. 양국 모두 열 명 중 일곱 명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걱정하고 있다”거나 “현 상황은 문제이며, 개선해야 한다”며 문제해결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무엇보다 정부간 우호적 관계 모색이 우선이다. 최근 한일 양국이 경제부총리 회담이나 국방장관 회담 등 냉각되었던 한일관계를 딛고 정부 간 대화 노력을 시도한 것은 긍정적이다. 더 늦기 전에 깊어진 한일 간 국민감정의 골을 메우기 위한 절제 있는 노력을 바로 시작해야 한다. 한일수교 50주년을 앞둔 양국 정부와 시민사회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최우선 과제의 시작이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