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세상읽기] 평창올림픽 분산개최 논란

  • 2014-12-15
  • 김미경 (국제신문)
정말 징글징글하다. 한일관계 말이다. 요즘은 '비 온 후 흐림'이 아니라 '가랑비 후 소낙비'라는 표현이 더 맞을까 싶을 정도로 두 나라의 사이가 좋지 않다. 양 국민들의 상호인식도 악화되고 있어 2014년 동아시아연구원의 여론조사에 의하면 일본에 비호감인 한국인은 약 70%, 그리고 한국에 비호감인 일본인은 약 54%에 이른다. 연간 550만 명이 상호방문을 하는 시대라지만 일본인들 중에 한국을 다녀간 인구는 전체의 약 20%에 불과하다. 한일이 서로에게 비호감이라는 사실은 딱히 새로울 것도 없고 가까이 붙어있는 나라들끼리 사이가 좋지 않은 예도 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땅이 붙어있는 인접국들은 서로가 아무리 싫고 쌓인 것이 많아도 이사를 가버릴 수도 없고 헤어져버릴 수도 없는 지정학적 운명공동체다. 요즘과 같이 장거리로 관계를 유지해나가는 일이 다반사인 시대에도 지리적 위치라는 요소가 땅에 발을 붙이고 사는 인간들의 운명을 좌지우지하고 있는 건 별로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가깝지만 먼 이웃인 일본과 우리의 관계는 어쩌면 숙명일 수도 있다.

 

애증으로 얽혀있는 관계 때문에 한국과 일본에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은 매일 살얼음 위를 걷는 듯한 기분으로 살고 있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학계도 이런 복잡한 관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무조건 두드리기파' '입 다물고 편하게 살기파' 등의 여러 부류의 학자가 있지만 상황이 나빠지면 '친한'-'친일'로 낙인찍히고 상황이 좋아지면 수요가 없어지는 '지일-지한파'의 노력이 없었다면 지금까지의 한일관계 개선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분위기가 험악해지면 말 한마디, 행동 하나까지도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것에 한일관계의 특수성이 있다. 사안과 관련된 국민정서를 잘 읽지 못하는 죄목으로 돌팔매질을 당한 경우는 수없이 많다. '친일'이라는 낙인은 한국인에겐 한 번 붙으면 평생 떼어내기 어려운 주홍글씨다. 이런 맥락 속에서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한일 분산개최 등과 같은 중요한 사안들이 차분히 검토도 되지 않은 채 사장되어 버린다.

 

잘 알고 있다. 한국 중앙정부나 지방정부에서 IOC(국제올림픽위원회)의 제안에 반대를 표명했고 국민감정에도 반하는 사안이라는 것을. 하지만 IOC의 제안이 한 번 따져보지도 않고 넘겨버릴 만큼 의미도 가치도 없는 내용인지에 관해선 잘 모르겠다. 이런 의문 자체를 친일의 증거라고 생각한다면 필자에게 돌을 던져라. 일본에서도 '죽여 버리겠다'와 '돌아가라'는 협박을 수없이 받았지만 난 아직도 살아있다.

 

IOC에서 분산 개최라는 권고안이 나온 배경에는 평창시가 경기장 건설을 올림픽 규격에 맞도록 제대로 진행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유치 당시 8조8000억 원이었던 예산이 13조 원으로 늘어난 냉정한 현실을 감당하기 버겁다면 같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웃나라와 힘을 합치라는 것이다. 분산 개최의 가장 강력한 후보지인 나가노시도 1998년 올림픽 유치 이후 시설유지비만으로 8000억 엔이라는 거액을 부담하고 있다.

 

원안대로의 독자 유치라는 강원도와 평창시의 강력한 반발은 이미 고교생 무상급식 실시 등의 내역을 포함한 도교육청의 128억 원에 달하는 교육비 예산삭감과 대학생등록금지원 사업예산의 30억 원 전액삭감이라는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또한 올림픽 빙상경기장 건설예산 352억 원을 도의회에서 전격 통과시킴으로써 총예산 300억 원 이상의 지자체 사업에는 국고에서 예산을 매칭해주는 제도를 적극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던져야 할 질문은 학생들의 교육적인 희생이 과연 분산 개최라는 전략적 타협을 거부할 만큼 가치가 있는가 하는 점이다. 즉 미래세대를 위한 투자를 대가로 지불할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다면 사업의 타당성을 꼼꼼하게 재검토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물론 여기엔 한국정부, 그리고 평창시와 사전조율을 하지 않고 원칙론으로서 분산 개최안을 회의에 상정한 IOC 측에도 일말의 책임이 있다.

 

내년이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 기념의 해라는 둥, 동북아의 안정과 평화를 위해 우리가 솔선수범하자는 둥의 고상한 얘기를 나까지 하고 싶지 않다. 올림픽 이후 만성적자에 시달려온 다른 개최국을 보면서 어떤 대응책을 세워야 할 것인지에 관해 고민해보자는 뜻이다. 88서울올림픽의 환희를 다시 느끼고 싶지만 이 때문에 살림이 거덜난다면 잔치는 순간으로 끝난다.

 

히로시마시립대학 평화연구소 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