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이건, 대통령의 일이다

  • 2014-05-04
  • 박송이 기자 (경향신문)

·헌법 제66조 4항은 한국 사회 시스템을 총괄하는 사람은 대통령이라고 밝히고 있다. 국민들이 박 대통령에게 세월호 참사의 책임을 묻는 이유다. 여론이 악화되자 사고 13일 만에 한 ‘건조한 사과’는 오히려 국민감정을 악화시켰다. ‘특수신뢰’에 기댄 박근혜 정부에 정치적 책임감을 기대하는 것은 정말 불가능한 일인가.

 

지난 4월 30일 임미리 전 (사)현대사기록연구원 상임이사는‘박근혜 네가 책임져라’라고 쓴 손팻말을 들고 청와대 앞 분수광장에 섰다. 세월호 참사 이후, 슬픔과 분노 속에서 밤잠을 설쳤다. 시청 광장이든, 광화문 광장이든, 청와대 앞이든 장소를 막론하고 1인 시위라도 해야 마음이 좀 편해졌다. 임 상임이사가 처음부터 ‘박근혜 네가 책임져라’를 내걸었던 것은 아니었다. 4월 20일만 해도 ‘세월호 학부모들을 지켜주세요’ ‘세월호의 진실을 요구합니다’라고 호소했다가, 4월 23일에는 ‘박근혜는 아이들을 살려내라’로 문구를 바꾸었다. 그러다 4월 27일 정홍원 국무총리 사퇴를 바라보면서 ‘박근혜 네가 책임져라’로 바꾸었다. 세월호 침몰사고가 참사로 이어지는 상황을 지켜보면서 임 상임이사가 내린 결론은 이랬다.

 

“세월호 참사는 악마도 차마 하기 힘든 총체적 무능이었다.”

 


정치공학적 셈법으로 대통령 사과 저울질해

 

임 상임이사의 말대로 세월호 참사에 가장 책임을 통감해야 할 사람은 박근혜 대통령이다. 세월호 참사는 천재지변이 아니었다. 한국 사회 시스템 전반이 무너져 내렸음을 보여주는 인재였다. 헌법 제66조 4항은 한국 사회 시스템을 총괄하는 사람은 대통령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 조항은 ‘행정권은 대통령을 수반으로 하는 정부에 속한다’며 행정부의 수반으로서 대통령의 지위를 명시하고 있다. 이 조항에 따라 대통령은 집행에 관한 최고 책임자로서 그 권한과 책임 하에 집행에 관한 최종적인 결정을 하고, 집행부의 전 구성원에 대하여 지휘·감독권을 행사한다. 한마디로 막강한 권한, 막중한 책임이다. 박 대통령이 헌법을 초월한 존재가 아닌 이상, 이 권한과 책임의 구조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세월호 참사 이후 국민들이 박 대통령에게 책임을 묻는 이유다.

 

하지만 정작 정치적 책임을 무겁게 받아 안아야 할 청와대는 정치적 책임에서 자유로워 보인다. 대통령의 사과를 기다렸지만, 사고 발생 10일이 지나도록 사과는 나오지 않았다. 물론 대통령은 사과에 인색할 수밖에 없다. 한 번 사과를 하게 되면 이후에는 더 강도 높은 사과를 요구받게 되는 정치공학적 셈법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정치적 유불리를 따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전직 청와대 관계자는 “이번 사고는 반드시 사과해야 할 사안”이라며 “대통령이 큰 재난에 대해 사과를 할 경우 천재인지 인재인지를 분리해서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천재도 대통령의 책임이라면 그것은 대통령에게 ‘왕’의 책임을 묻는 것임으로 고려해봐야 한다. 하지만 이번과 같은 경우에는 어떻게 봐도 인재다. 당연히 사과를 하는 것이 옳다. 만약 지금 정치공학적으로 ‘사과를 하게 되면 대통령이 계속 물러설 수밖에 없다’는 계산을 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정말 일차원적이고 저급한 생각이다.”

 

여론이 악화되자 박 대통령은 사고 발생 13일 만인 지난 4월 29일 사과를 했다. 하지만 그 사과의 형식이 여전히 국민의 시선과는 맞지 않았다. 새누리당 내에서조차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드러내놓고 이야기하지는 못해도 국가적 재난상황 앞에서 당연히 해야 할 대국민 사과를 대통령이 하지 않는 것이 자못 민망하다는 투다. 새누리당의 한 관계자는 “국가적으로 큰 상처가 된 사건인데 국가 최고책임자인 대통령이 국민을 향해 직접 사과를 하는 게 맞다. 국무회의 자리는 국민 눈높이에 맞춘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책임감 결핍 ‘박근혜 정부의 특성’정치적 책임에서 자유로운 것은 비단 박근혜 대통령만이 아니다. 정치적 책임감의 결핍은박근혜 대통령뿐만이 아니라 이 정부를 규정하는 특성이다. 남재준 국정원장은 유우성씨 간첩 조작 사건,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공개, 국정원 대선개입 등으로 물의를 빚었음에도 여전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현 정부에서 남재준 국정원장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물의를 빚었지만, 자신의 자리에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해서 스스로 물러난 사람이 진영 전 복지부 장관밖에 더 있나”라면서 “아마 현 정부 사람들 중에 정치적 책임을 지고 물러난다는 것의 의미를 이해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는 왜 정치적 책임감을 결핍하게 됐을까. 정태인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원장은 지난 대선을 앞두고 박근혜 대통령의 특성을 ‘특수 신뢰’에 견주어 설명한 바 있다. 특수 신뢰는 내부의 암호와 외부와의 갈등에 의해 견고해지고, 반대로 일반 신뢰는 대화와 소통에 의해 형성되고 쌓인다. ‘배반하지 않는 것’으로 신뢰를 가늠한다는 박근혜 정부는 특수 신뢰적 성격을 보여주는데, 그럴수록 폐쇄적인 성향을 띨 수밖에 없다. 정치적인 책임감을 매개로 국민과 소통하기보다는 내부를 장악하고 관리하는 데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남산의 부장들>의 저자 김충식 가천대 교수는 비슷한 의미에서 박근혜 정부의 성격을 ‘충성경쟁’이 과도하게 이루어졌던 박정희 정권 말기에 비유한 바 있다.

 

세월호 참사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관료들이 보여줬던 여러 폐해는 정치적 책임감을 결여한 현 정부의 이러한 속살을 여과없이 보여줬다. 대형 참사 앞에서 관료들은 국민들의 눈치를 보기보다는 대통령의 눈치를 보기에 급급했다. 세월호 침몰사고가 발생했을 당시 한 부처에서 운영하는 민간위탁업체가 크루즈를 타고 외유를 떠난 것이 문제가 됐다. 당시 해당 부처에 문제를 제기하자 돌아오는 대답은 ‘지금 같은 상황에서 윗선에서 괜한 오해가 없게 해주었으면 한다’는 부탁이었다는 것이다. 국가적 재난사태 앞에서 부적절한 행동에 물의를 빚은 것에 대해 국민들에게 죄스러운 마음을 갖기보다는 ‘제발 청와대만 모르게 해달라’는 주문이었다. 당시 사안을 맡았던 한 관계자는 “청와대를 중심으로 한 ‘특수 신뢰’의 카르텔 속에서 국민들이 요구하는 정치적 책임은 공무원 조직의 말단까지 실종된 것 같았다”고 말했다.

 

마비된 사회시스템, 무책임 정부 잉태

 

박근혜 정부가 정치적 책임을 결핍했음에도 어떻게 집권할 수 있었을까. 서복경 서강대학교 현대정치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냉정하게 말해서 정치적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운 정치집단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게 대한민국 시스템의 현주소”라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가 4대강 사업을 비롯해 여러 가지 정책적 실패를 거듭했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집권 연장에 성공했다. 집권 이후 경제민주화 및 복지 공약을 지키지 않아도 국정 지지율에서 별 문제가 없어 보였다.

 

서 연구위원은 “정치적 책임을 지지 않아도 집권을 하거나 공직을 맡는 데 전혀 문제가 없다는 것이 지난 몇 년간 확산이 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 정치가 이렇게 된 데에는 진도VTS처럼 한국 시스템 또한 일상적 경고등 체계가 마비돼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언론, 정당, 노조 등 유권자들에게 적절한 신호를 보내줘야 할 시스템들이 망가지다 보니 책임지지 않는 정부가 탄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는 “박근혜 대통령 지지자들도 박근혜 대통령이 설마 저 정도일 줄 알고 투표했겠나. 저 정도인 후보를 저 정도인지 모르면서 투표하게 하는 것이 한국 시스템”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 사회의 시스템이 마비되고 붕괴되어 있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세월호 사건이라는 신호를 제대로 읽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일상적이고 정치적인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시스템이 마비되어 나타난 결과인 만큼 일상적 장치를 회복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아마도 박근혜 대통령은 청해진해운이나 관료들을 희생양 삼아서 넘어가려고 하겠지만, 만약 거기서 끝난다면 또 다른 사고가 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는 세월호 참사로 더 이상 정부가 국민을 책임지지 않는다는 것을 절감한 국민들이 보내는 절박한 신호를 여전히 읽지 못하고 있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박근혜 대통령이 지금껏 그래 왔듯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지도자는 결단을 내리고 책임을 지는 역할이 중요하다. 모두 우왕좌왕할 때 설령 잘못된 결정이라도 책임을 지고 가려고 해야 하는데, 국정원에 미뤄버렸듯 다른 국가기관에 미뤄버리고 책임을 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는 결국 박근혜 대통령에게는 정치적 타격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높다. 정한울 동아시아연구원 사무국장은 “이번 사건에서 사실 어떻게 보면 사람들이 죽어가는 장면이 방송을 통해 계속 노출된 것이다. 직접 찍지는 않았지만, 사람들이 분명히 있는데 배가 가라앉는 장면을 생중계하다시피 한 것이고, 거기 노출된 사람들의 충격은 상당하다”고 말했다. 그는 “수습과정이 원만하지 못하고 계속 잡음이 생기고 지금처럼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아직까지 덜 격앙돼 있는 국민들이 더 화를 낼 수 있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의 지지도 하락은 ‘특수 신뢰’ 관계에 기반한 박근혜 리더십에 대한 급격한 타격으로 이어질 수 있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이번 지방선거에서 친박 세력이 낙마하고 있는데 지방선거가 끝나면 조기 레임덕이 올 가능성이 높다. 여권에서는 박근혜와의 선긋기가 빠르게 진행될 수 있다”고 말했다.

 

대통령의 정치적 책임을 묻는 목소리에 대통령이 응답하지 않자 일각에서는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는 목소리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박성미 다큐멘터리 감독은 청와대 게시판에 올린 ‘당신이 대통령이어서는 안 되는 이유’라는 글에서 박 대통령이 “이번 참사에서 자기가 해야 할 일이 뭔지도 모를” 만큼 무능했다고 말하며, 박근혜 정부는 “사람을 살리는 데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정부”였고 “결정적으로 책임을 지지 않는 정부는 필요없다”고 말했다. 이 글은 조회수가 22만회, 공감 건수는 2만4000여개에 달했다. 이 목소리는 단지 진영논리에 따른 반대 진영의 목소리일까.

 

지지자도 분노… 조기 레임덕 올 수도

 

대통령의 책임을 묻는 목소리는 온도차는 있지만, 박근혜 대통령 지지자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들도 세월호 사건에 대처하는 대통령의 무능한 모습에 실망의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청와대 게시판에는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했다는 정모씨의 글이 올라와 있다. 그는 “300명의 희생자 중 단 한 명의 아이도 살려내지 못했다는 것이 지금 국민들의 공분의 원인입니다”라며, 대통령을 향해 “국민들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스스로 미워하고 부정하지 않게 해주십시오. 우리는 그 역할을 해달라고 박근혜 대통령님을 뽑았습니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지지자인 김모씨는 박 대통령을 향해 “내 손으로 뽑은 당신과 저 자신이 밉다” “당신의 소극적인 태도가 더 큰 문제를 만들었다”며,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단원고 학생들에게 “어른으로 너희들의 미래를 이렇게 무능한 정부에게 맡겨서 정말정말 미안하다”는 말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