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패터슨(사진) 주한 호주대사가 한국 등 중견국들의 외교전략과 관련, “새 제도를 창출하는 것보다는 현존 제도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협력을 추진해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동아시아연구원(EAI)이 최근 ‘호주의 중견국 외교전략과 한국’이란 주제로 연 주한 외국대사 초청 라운드테이블에서다.
패터슨 대사는 “유엔은 시리아 문제에서 보듯 효율적인 능력 과시에 한계를 보이고 있고 세계무역기구(WTO)나 주요 20개국 회의(G20) 등 다른 다자주의 제도들도 논란이 많다”며 “따라서 (한국을 비롯한) 중견국들의 연대는 새로운 제도 창설에 역량을 소진하기보다, 이미 운영되고 있는 지역·국제 제도를 강화하는 데 힘을 모을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패터슨 대사는 지난달 25일 한국이 호주와 인도네시아·멕시코·터키와 ‘비공식 중견국 협의체(MIKTA)’를 출범시킨 것과 관련해 “이 협의체는 현재 태동 단계로, 가시적 성과를 낼지 여부는 많은 시간을 두고 지켜볼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5개국 모두 미국과 우호적인 관계이고, 회의 장소도 뉴욕이라 미국 주도의 협력체가 아니냐는 의구심을 (국제사회가) 가질 수 있다”며 “그러나 이 협의체는 보편주의에 입각한 연대이며, 뉴욕이 아닌 유엔이 모임의 배경임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패터슨 대사는 “한국이 중견국 연대에 참여해도 배타적 블록을 만들면 국제사회에 건설적 협력체라는 메시지를 내기 어렵다”며 “따라서 MIKTA는 가급적 비공식적 형태 모임을 지향하면서 덜 분쟁적인 이슈부터 다뤄 나갈 필요가 있다” 고 말했다.
패터슨 대사는 “한국과 호주는 1997년 외환외기 때 금융권 개혁을 함께 겪은 사이라 2008년 금융위기 당시 목소리를 낼 준비가 돼있었다. 또 G20 창설 과정에서도 서로 역할이 컸기 때문에 향후 협력의 여지가 크다”며 “조속히 한·호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유럽에도 중견국 범주에 드는 국가가 상당수 있으나 이들은 유럽연합을 강조하는 경향이 강해 (한국이) 중견국 연대를 구축하는 데 실질적 역할을 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날 회의에는 이숙종 EAI 원장과 김우상 연세대 교수(전 호주대사)·박인휘 이화여대 교수 등이 참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