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정세를 움직이는 두 개의 중심축인 한·미동맹과 남북관계는 서로 반대 방향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았다.
한·미동맹이 강화되면 남북관계는 악화되고, 반대로 남북관계가 진전되면 한·미동맹이 껄끄러워지는 상황이 전개되곤 했다. 남북관계가 악화일로로 치달았던 이명박정부 기간 한·미 양국은 2009년 4월 이후 2011년 10월까지 총 8차례의 정상회담을 통해 북핵 문제를 비롯한 양국 현안에 대해 논의하며 굳건한 동맹 관계를 유지했다. 반면 남북관계가 급진전한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한·미가 북핵 문제 등 대북정책을 둘러싸고 불협화음을 빚는 경우가 잦았다. 2006년 10월 북한의 2차 핵실험 이후 미국이 개성공단 사업과 금강산 관광 사업 중단 압력을 가하자 노무현정부가 북핵 문제보다 남북관계 개선을 앞세우며 관련 사업을 지속했던 것이 대표적 사례다.
한·미 연합 군사훈련인 키리졸브 훈련이 진행된 지난 3월 서울 용산구 한미연합사에서 양국
군이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활용해 군사 작전에 대한 모의 훈련을 하고 있다. 북한은 연례
군사 훈련인 키리졸브 훈련이 ‘북침 연습’이라며 극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여왔다.
하지만 역대 어느 정부든 정도의 문제일 뿐 기본적으로 한·미동맹을 외교·국방 정책의 골간으로 삼았으며, 남북관계 진전은 한·미 양국의 합의를 전제로 이뤄져야 한다는 인식을 바탕에 깔고 있었다. 북한은 이러한 한·미동맹 강화 움직임에 늘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으며 한·미 공조 균열을 획책해왔다. 핵 문제나 평화체제 협상 등 한반도 운명을 결정하는 핵심 현안들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남한을 배제하고 미국과 담판을 짓겠다는 ‘통미봉남’ 전술이 그것이다. 북한의 한·미동맹에 대한 뿌리 깊은 적개심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발언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김 위원장은 2002년 4월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평양을 방문한 임동원 당시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별보좌역에게 “6·15 공동선언(제1차 남북정상회담 합의안)을 통해 조선(한반도) 문제는 우리 민족끼리 해결하자고 약속했지 않았나요? 그런데 작년 3월에 미국을 방문한 김대중 대통령은 ‘미국의 승인 없는 남북관계 추진을 허용할 수 없다’, ‘상호주의를 철저히 지키라’는 등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의 압력에 굴복하고 말았습니다”라고 힐난했다. 그런 뒤 “부시 행정부와의 ‘한·미 공조’라는 게 북에 대한 적대시정책에 동조하겠다는 반민족적인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요?”라며 따져 물었다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 ‘피스 메이커’). 김 위원장의 이러한 발언은 북한이 기본적으로 한·미동맹에 따른 한·미 공조를 대북 적대 정책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시기별 한·미동맹 인식을 조사한 자료를 보면 북한의 도발로 한반도 안보 상황이 불안정해질 때마다 한·미동맹 강화를 지지하는 여론이 늘어났다. 반대로 남북관계가 개선되고 안정화될 때에는 현상유지 같은 중도적 태도와 대미 의존에서 벗어나 자주적 입장을 보여야 한다는 여론이 상대적으로 증가하는 패턴을 보였다. 동아시아연구원(EAI)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2002년 촛불시위 당시 20.4%까지 추락했던 한·미동맹 강화 여론은 북한이 일방적으로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하면서 북핵위기를 고조시키자 상승세로 돌아섰다. 이후 북한이 2006년 7월 대포동 미사일을 시험발사하고 그해 10월 1차 핵실험까지 강행하자 한·미동맹 강화를 지지하는 여론은 48.8%까지 높아졌다. 한·미동맹 지지 비율은 2007년 제2차 남북정상회담을 전후로 다소 감소했다가 북한이 2009년 9월 2차 핵실험을 강행한 이후 다시 상승한 데 이어 2010년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도발 사건이 터지자 48.6%까지 상승했다. 올 초 북한이 3차 핵실험을 하고 전시상태를 선포하는 등 한반도 안보 위기를 한껏 높이자 한·미동맹 지지여론은 무려 65.6%까지 치솟았다.
개성공단 정상화 논의를 위해 만난 남측 김기웅 통일부 남북협력지구 지원단장(왼쪽)과
북측 박철수 중앙특구개발지도 부총국장이 지난 2일 개성공단 종합지원센터에서 악수를
나누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대북정책 공조를 둘러싼 한·미동맹 강화 움직임은 박근혜정부 들어서도 지속될 전망이다. 박근혜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지난 5월 정상회담을 갖고 북한의 도발을 억제하고 외교적 협력을 통해 문제를 해결한다는 인식을 공유한 바 있다. 미국은 당시 북한이 일으킨 도발과 관련, 미국의 동맹국을 겨냥한 북한의 위협에 대해 모든 수단을 동원해 동맹국을 보호한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통일연구원은 최근 펴낸 ‘한·미정상회담 결과 분석’ 자료에서 “이명박정부와 오바마 1기 행정부 사이의 대북정책 공조가 강경책으로 귀결되었다면 박근혜정부와 오바마 2기 행정부 사이의 정책공조는 유연하고 완화된 수순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오바마 정부가 한·미 양국의 동맹관계를 강조하는 만큼 박근혜정부와 엇박자를 내는 대북 강경정책을 제시하기보다는 정책공조를 통해 유연한 입장에서 대북문제 해결을 도모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