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대통령 첫 방문국 중국 택했어야… 北 3차 핵실험 후 中의 대북관 변화
중국 측에 우리 생각과 입장 전해야, 美·中 협력과 갈등 이중 구조 사이
전래적·습관적 旣成외교 벗어나 '세련된 중견국 외교' 펼쳐야
결론부터 말하자면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후 첫 방문국으로 미국보다 중국을 택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앞으로 5년 또는 그 이상, 한국의 안보와 경제에 가장 중요하고 민감한 영향을 미칠 나라는 미국에서 중국으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의 첫 정상 외교는 바로 한국 외교의 우선순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어야 했다.
미국의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떨어졌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미국은 현재도 그렇고 앞으로도 오랜 기간 우리 안보와 경제의 중심축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중국의 부상으로 아시아의 판도에 변환이 생겼다고 하더라도 미국은 여전히 한국과 동맹 관계에 있고, 우리가 안보 위협에 처하면 B-2 폭격기와 핵잠수함을 보내겠다고 담보하는 나라는 미국밖에 없다.
문제는 중국의 대북관(對北觀)이 변하고 있다는 사실에 있다. 6·25 때 북한을 구원했고 그래서 우리의 통일 기회를 무산시켰던 그 원한의 '중공(中共)', 언제나 북한 편이었고 또 전쟁 나면 북한에 출병하겠다는 중국, 북한의 동맹국이자 북한 경제의 지탱자였던 중국이 북한을 새삼 달리 보고 냉정히 다루기 시작했다는 징후가 여기저기서 나타나고 있다. 중국의 공산당 엘리트, 지식분자, 하급 관리, 학생 등 새로운 세대는 중국이 동북아 평화의 훼방꾼인 북한에 언제까지 발목 잡혀 있어야 하는가 하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특히 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 이런 현상은 두드러지고 있다. 중국 당국은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에 동참하고 있음을 실증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북한 김정은 집단의 비이성적이고 시대착오적인 전쟁 놀음이 가중되고 있는 상황이기에 중국의 변화는 의미가 있다. 김정은의 권력 기반이 취약한 데다 선군(先軍)과 선당(先黨) 또는 선경(先經)의 대립이 어디로 어떻게 튈지 알 수 없는 위험한 시기이기에 중국의 대북한 정책 변환은 우리에게는 초미의 안보 관심사다. 한국의 대통령이라면 이 시점에서 서로 대화해서 동북아의 미래를 탐색하고 토론하고 선의(善意)를 다짐해 보여야 하는 나라는 바로 다름 아닌 중국이다.
지금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양다리 외교'이고 '세련된 중견국 외교'다. 하영선(前 서울대 교수) 동아시아연구원 이사장은 지난해 연말 동아일보의 대담 프로에서 "한국은 미국과 중국 간의 협력과 갈등이라는 이중 구조 속에 놓여있다. 따라서 한국이 양다리를 걸쳐도 전혀 문제될 게 없다"고 했다. 그는 우리가 미·중을 상대로 세련된 중견국 외교를 펼쳐야 하는데 "우리는 그런 국가와 일대일쯤 되는 것으로 착각하는 것 같다. 균형자론을 얘기하는가 하면 왜 치사하게 양다리를 걸치느냐는 식의 이야기가 나온다. 리더도 착각하고 참모들도 착각하고 그런다"고 했다. 박 대통령에게 말하고 싶은 것은 우리가 처한 상황에서 맹목적인 미국 일변도 정책의 한계와 '양다리 외교'의 불가피성을 인식하고 전래적이고 습관적인 기성(旣成) 외교로부터 발상을 전환하라는 것이다.
중국과 무슨 얘기를 할 것인가? 말하자면 '우리는 북한이란 존재를 무리하게 흡수하지 않는다. 우리는 핵을 포기한 그 어떤 북한 정권과도 협력해서 경제를 살리고 인민의 삶을 보살필 생각이다. 한국이 한반도의 주도적 존재가 될 때라도 미국의 존재가 중국의 안보나 이익과 충돌하지 않도록 약속한다. 우리는 아시아의 신흥 대국인 중국과 공동 번영을 추구하며 동북아에서 편 가르기에 편승하지 않는다' 이런 등등의 생각과 실천 의지를 중국의 지도자들과 허심탄회하게 논의하고 다짐할 기회를 박 대통령이 가졌으면 하는 것이다.
2013년의 초반은 바야흐로 주변 관련국들의 방문 및 초청 외교가 러시를 이루는 시기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주석은 취임 후 1주일 만에 러시아를 찾아 푸틴 대통령을 만났고, 이후 브릭스 정상회담에 참석했다. 아베 일본 총리 역시 취임 직후 태국·베트남·인도네시아를, 다음 미국을, 그리고 셋째 번으로 몽골을 방문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재선 취임 후 첫 방문지로 중동을 택했다.
정상 외교는 구체적 실리(實利)보다는 상징성에 의미가 더 있다. 시진핑, 아베, 오바마의 방문 외교는 상대방 국가에 부여하고 있는 전략적 배려와 외교적 우선순위, 국민적 관심을 반영한다. 이런 시점에 박 대통령이 워싱턴을 제치고 베이징을 첫 방문지로 선택했다면 그 내용보다도 상징성에 무게가 실렸을 것이고 중국은 그것을 의미 있게, 그리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였을 것으로 본다. 오랜 우방인 미국은 그것을 납득하고 이해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박근혜 외교'의 시발은 아직 늦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