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의소리>는 대선이 끝난 직후인 1월초부터 2월초까지 <18대 대선과 진보개혁진영의 혁신>이라는 주제아래 여론조사전문가, 학자, 정치인들에 대한 연속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야권은 집단 '멘붕' 사태를 겪을 만큼 대선패배의 상처가 크지만, 그에 걸맞는 평가와 성찰, 그리고 이에 기반한 혁신작업은 아직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대선이 끝나자마자 지난해 말 곧바로 내놓은 <민중의소리>의 대선평가 연속기사(홈페이지 오른쪽 하단에서 다운로드받을 수 있습니다)와 이번 연속인터뷰는 독자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민중의소리>는 앞으로도 깊이 있는 취재에 바탕을 둔 기획시리즈를 지속적으로 선보이도록 하겠습니다.
18대 대선의 결과는 '박근혜 당선과 보수체제의 연장, 문재인 낙선과 진보개혁진영의 패배'다. 대선과정에서의 핵심 키워드가 '안철수'였다면, 대선 후의 핵심 키워드는 '50대'가 됐다. '진보개혁진영은 왜 패배했나'를 중심으로 진행한 <민중의소리> 연속인터뷰에서, '컨트롤 타워 부재'와 같이 의견이 수렴되는 부분이 있는 반면 '세대대결'과 같이 상이한 분석을 내놓는 부분도 있었다.
먼저 '정권교체론'을 앞세운 문재인 캠프의 전략은 '오류'라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윤희웅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조사분석실장은 "심판론이 필요하고 불가피한 측면은 있었다"면서도 "민주당은 이명박 정권 심판을 제1프레임(구도)로 가져갔지만 많은 대중들에게 이미 이명박 정권과 박근혜 후보는 서로 다른 세력이라는 인식이 형성된 상황이었기 때문에 심판론 자체가 작동되기 어려웠다'고 평가했다.
민주통합당 문재인 대선후보가 27일 오후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린 유세에서 연설을
마친 뒤 부인 김정숙 여사와 함께 지지자들 속에서 손을 흔들고 있다.
정한울 동아시아연구원 여론분석센터 부소장도 "정권심판론 말고 내놓은 게 없는 상황에서 투표 촉진 가지고 이길 수 있다는 발상이나 마찬가지였다"고 신랄하게 꼬집었다. 정 부소장은 "야권은 국민 65%가 정권심판론에 공감한다고 하면 다 잠재적인 우리 편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중 절반은 야당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는 점을 간과했다"고 지적했다. 이철희 두문정치연구소 소장은 "'내 삶이 이렇게 달라지겠구나'를 이해시킬 수 있는 아주 쉽고 간명한 이슈 전선이 있어야 하지만, 민주당은 총선 패배 이후에도 그것을 만들어내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그렇다면 큰 틀에서 무엇을 제시하고 어떤 구도로 이끌어야 했을까? 애초에 민주통합당은 지난 대선의 핵심적인 가치로 '복지국가'와 '경제민주화'를 내세우려고 했다. 하지만 박근혜 당선인에게 선점당하면서 차별성을 획득하지 못했다. 이철희 소장은 "박근혜도 '우리도 할께'라고 나오면서 찬반 구도가 형성이 안됐다"며 "그러면 누가 복지를 더 잘 할 것이냐의 문제가 되는데, 민주당은 새누리당 보다 더 잘 할 것이라는 내용이 없었다"고 평가했다. 윤 실장도 "새누리당의 쟁점 무력화 전략이 성공했다"며 "민주당은 그것을 그냥 받아들이고 더 이상 대응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안철수 후보의 등판과 맞물려 야권의 핵심적인 화두는 '새정치'가 됐다. 이에 대한 문 후보 측의 대응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의견이 많았다.
허성우 성공회대 교수는 "정치개혁이 주요 이슈가 되고 '민주 대 반민주' 구도로 가다보니 민생문제나 경제적 이해를 추구하고 싶은 대중의 욕망을 하나도 잡지 못한 셈이 돼버렸다"며 "이는 단일화와 관련된 지점이 있다. 안철수 캠프에서 '새정치'를 내걸고 민주당이 휘둘리면서 자기 목소리를 일정하게 유지, 강화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고 평가했다. 이춘열 전 고양시민회 대표도 "문재인 후보는 안철수 후보의 도움을 받기 위해 안 후보가 강조한 새정치만 언급하는 엄청난 실수를 범했다"며 "어떻게 보면 '안철수의 덫'에 걸린 것이다. 50% 하층 서민에게 새정치가 무슨 소용이냐"고 일갈했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왼쪽)와 안철수 무소속 대선후보가 22일 새벽 서울 용산구 효창동
백범김구기념관에서 '2012 후보 단일화 토론회'를 마친뒤 악수하고 있다.
'새정치', '새시대'와 관련해서는 다른 차원에서 접근하는 이들도 상당했다. 안병진 경희사이버대 교수는 "이번 선거는 과거 대 미래의 대결이 됐어야 했는데, 문재인 후보는 노무현2.0이 아닌 그냥 노무현이었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안 교수는 "선거 기간에 새로운 정치의 상징적 모습을 보여주는 형태가 나왔어야 했다"며 "선거캠페인 과정에서 21세기 캠페인을 상징하는 예가 없었다"고 노사모가 중심이 됐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선거운동과 비교했다.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냈던 김병준 국민대 교수는 "우리 정치가 가장 근본적으로 던져야 할 질문은, 행정부와 의회를 포함한 공적기구가 우리 사회가 필요한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구조 속에 있다는 것이다. 이 구조를 바꾸지 않는 한 누가 들어가도 한계에 부닥칠 수밖에 없다"며 "이번 대선에서 안철수 현상이 나타난 이유는 바로 이런 데 있다. 기존 정치로는 안된다는 것이다"고 지적했다.
대선후보는 하루 아침에 만들어 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새정치'가 화두로 떠오르게 만든 안철수 후보에 대한 평가는 어떨까? '안철수 현상'에 대해서는 공히 시대적 흐름으로 인정하면서도 안 후보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의견이 더 많았다. 김병준 교수는 "안철수는 이런 부분(앞서 말한 구조적인 문제)을 국민에게 뭐가 문제인지 설명해줘야 했다. 그런데 못하더라"며 "물론 내공이 없고 경험이 없으면 쉽게 설명이 안된다. 왜 이런 질문은 안 던지고 단일화 얘기를 하나"라고 비판적인 의견을 내놨다.
안병진 교수도 "자신이 하는 건 뭐가 다른지 보여주기보다는 말도 안되는 국회의원 정수 축소, 청와대 이전을 얘기했다"며 "그건 전혀 새로운 정치의 핵심이 아니었다"고 비판했다. 유창오 새시대연구소 소장은 "이번에 안철수 후보는 정치 전반을 부정하는 반정치적인 행태를 보였는데, 반정치주의로 정치의 최고봉인 대통령을 하려는 것은 모순이다"며 "앞으로 정치를 하려면 이 모순을 극복하고 제대로 된 리더십을 보여줘야 한다"고 주문했다.
하지만 윤희웅 실장은 "(안 후보 사퇴 후 다자간 지지도 여론조사를 해보면) 안철수 후보가 사퇴한 후에도 30%대의 지지율이 계속 이어지는 것은 예상 못했다"며 이례적인 현상이라고 다른 시각을 내비쳤다. 하지만 그도 "지금 안철수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와 자산들이 지금 시대정신과 부합된 측면이 있다"면서도 "다음에도 그때 시대정신과 부합할 것이라고는 단언할 수 없다"고 말했다.
문재인 후보에 대한 평가는 "대선후보 또는 '정치인 문재인'에 대한 상이 그려지지 못했다"는 윤 실장의 평가와 대동소이했다.
'친노' 인사로 분류되고 캠프에 직접 참여하기도 한 김진애 전 의원은 "문재인 후보가 훌륭한 대통령이 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기를 보여주는 것, 정치력을 보여주는 데 있어서는 상당히 아쉬움이 있었던 것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이철희 소장도 "착한 후보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강한 리더십, 선명한 리더십, 변화의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했다"며 "결국 정치경험이 부족한 것이다. 위기시 결단해야 할 대목에서 결단하는 모습으로 나타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문 후보에 대한 평가는 박 당선인에 대한 평가와 비교해서도 얘기됐다. 유창오 소장은 "만약에 박근혜 당선인이 아니었고 다른 후보였다면 결과는 다를 수 있었다"며 "박 당선인이 15년 동안 국민들과, 특히 보수층과 호흡하면서 관계를 맺은 것이 컸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배울 것은 진보진영의 대통령 후보가 될 사람은 하루 아침에 하늘에서 떨어질 수 없다는 사실"이라며 "지금부터라도 대통령이 될 만한 국가적 지도자는 국민들과 함께 하면서 실패할 것을 각오하면서 권력의지를 갖고 노력하고 자기단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컨트롤 타워가 없는 선거, 이기기 어려웠다
'친노 책임론'은 가장 논쟁적이었던 주제였다. 시사평론가 유창선 박사는 "친노세력이 자신들의 권력을 내려놓는 모습, 국민들에게 이제 친노라는 계파가 없다는 의지를 분명히 보이는 것이 필요했다"며 "문재인은 괜찮은데 친노는 싫다는 층의 마음을 잡지 못해서 진 것"이라고 평했다.
김병준 교수는 "노무현을 얘기하는 사람이 왜 맨날 구도를 얘기하나"면서 "구도가 아니라 본질을 파고들어야 한다. 본질을 파고들 실력이 없으면 친노라고 앞세우지 말아야 한다"고 보다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상이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는 "친노 정치세력을 보호하려는 분들이 (대선패배) 책임론에 대해 공동책임론으로 물타기하고 있는데 굉장히 정치적인 주장"이라며 "실패했으면 실패한 것에 대해 책임을 지는 건 너무 당연한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과도한 책임론은 문제지만 책임을 피하기는 힘들다는 주장도 많았다. 이철희 소장은 "친노 프레임을 작동시킨 것에 대한 책임, 그 정도에서 책임지면 된다"면서도 "친노 이전에 한명숙, 이해찬 전 대표 책임을 강하게 주장하고 싶다"고 말했다. 정한울 부소장은 "사실 친노였기 때문에 이 정도라도 선거를 치른 측면도 있다"면서도 "친노가 정확하게 국민들을 이해하면서 자기 반성을 하고 당내에서는 반대파들을 통합하면서 가야하는데 친노도 그럴 생각은 없는 것 같고, 비노는 모든 책임을 친노한테 넘기고 싶어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반면, '친노' 진영으로 분류되는 김진애 전 의원은 '친노 책임론"에 대해 "웃긴다"면서 "문제가 있을 때 입을 꼭 다물고 있던 비주류들이, 선거운동도 제대로 안 한 사람들이 나와서 친노 비판하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게 뭣 때문인지 뻔히 알지 않나. 당권 때문 아니냐"고 일갈했다. 그는 "솔직히 안철수 후보가 친노 사퇴하라고 하고, 특히 이해찬 겨냥한 건 적절하지 않았다"며 안철수 후보를 향해서도 " 대선 때 문재인 후보와 같이 다녀줘야 하는 거 아닌가? 너무 당연한 걸 안 하는 건데, 안철수에 대해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라고 말했다.
'친노 책임론'과는 별개로 문재인 캠프의 '컨트롤 타워'가 없었고 지역에서 선거운동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데는 이견이 거의 없었다. 이춘열 전 대표는 "민주당에서 캠프 자체도 정상적인 모습이 아니었다고 고백"했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3% 가량 진 것은 선전한 것이다. 결국 선거운동 자체만 잘 조직했어도 뒤집을 수 있는 게임이었다"고 평가했다. 이철희 소장은 "정당 조직도 지구당이 없어져 조직 역량 기반 자체가 허물어졌다"며 "제도 개편으로 조직적 기반은 허물어지고 모바일 도입하면서 지역 당원을 소외시킨 셈이다. 조직에서 열세는 불가피한 현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었다"고 지적했다.
김무성 중앙선대위총괄선대본부장이 19일 오후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 중앙당사에서 출구조사 결과를
기다리다 자리를 뜨고 있다.
김진애 전 의원은 "새누리당에는 김무성이 있었는데, 우리는 아무도 없었다. 악역이든 조종력이든 그런 역할을 하는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사람이 없었다"며 "나중에 보니 선장이 없었다는 것 아니냐. 누구한테 무슨 얘기를 물어봐야 할지 모른다는 것 아니냐. 그게 캠프의 실책이었다"고 털어놨다 이어 "기획을 할 때는 수평으로 움직여야 한다. 그 대신 집행을 할 때는 수직으로 움직여야 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수평만 있었지 수직이 없었다. 그러니 집행력이 떨어졌다"고 밝혔다.
투표장으로 몰려나온 50대...그들은 왜?
가장 다양한 해석이 나왔던 주제는 바로 '50대의 기록적인 투표율과 박근혜 지지'였다.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는 지식인 중심의 선험적 시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50대의 80%는 고졸이하다. 학력 비하를 하려는 게 아니라, 담론을 주도한 사람들이 오히려 소수였다는 것을 지적하려는 것이다. 자기 세계만 본 것이다"라고 분석했다. 이어 "이들(80%)은 유신체제에 대한 경험이 (대학을 나온 20%와)다르다. 당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제대로 들은 적이 없다"며 "이들에 대한 정교한 선거 전략이 없었던 게 민주당의 과오"라고 지적했다.
'대중독재론'으로 '동의한 기반한 독재'에 대해 연구했던 임지현 한양대 교수는 "그들(50대)에게 박정희 시대가 기억되는 건 급속한 경제성장과 그것이 가져다줬던 풍요로움이다. 또 여성들은 시골에서 나오게 되면서 느꼈던 가부장제로부터의 해방감도 좀 있었을 것이다"며 "이런 모든 요임들이 50대 60대가 박근혜한테 표를 몰아준 것이다"라고 분석했다. 그는 "실제 여공들의 수기 같은 것을 보면 한편에서는 착취를 당하지만, 한편에서는 백원 만들기도 어려운 시골에 살다가 형편없는 저임금이지만 그래도 월급 몇 만원 받아서 시골에 만원 보내고 동생 공부시키는 게 가능했다. 그것이 단순히 억압적인 사회로만 느껴졌을까"라고 반문했다.
허성우 교수도 "박근혜 후보가 유신 시절 여성노동자나 민중의 인권을 이야기하진 않았지만, 가난한 농촌 저학력 여성들에게는 아버지처럼 온정적 시혜를 베풀었던 사람으로 인식돼있다"고 말했다.
야권의 선거전략이 낳은 현상이라는 분석도 많았다. 윤희웅 실장은 "50대 이상의 심리가 젊은 층만을 중시하는 세력이 정권을 잡으면 50대가 소외되거나 혜택에서 배제되거나 우선 고려대상에서 제외될 수도 있다는 거부감으로 나타나 것도 일정 부분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정한울 부소장도 "야권과 진보진영의 담론이 20~30대에 편중돼 있는 상황에서 50`60대가 야당에 적대감을 느낄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유창선 박사는 "50대에게 피부에 와 닿은 것은 총론적이고 이념적인 접근이 아니라 개별적인 문제, 즉 하우스푸어, 가계부채 등에 관해서 구체적 어려움을 풀 수 있는 생활적 대안을 우선했던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같은 분석에 대해서는 반론도 만만치 않았다. 이춘열 전 대표는 자신의 지역구 상황을 얘기하며 "전통적인 중산층 밀집 아파트 지역으로 지난 여러 차례 선거에서 대체로 보수정당이 우세한 경향을 보여온 동네에서는 대부분 문재인 후보가 이겼다"며 "아파트값 올리려고 중산층이 보수후보를 찍었다는 가설은 틀렸다"고 지적했다,
보수는 민심을 이해하는 데서 무서움이 있다
박근혜 당선인의 선거전략에 대한 평가도 여러 차원에서 다양하게 제시됐다. '인지심리학' 연구자인 이정모 성균관대 심리학과 명예교수는 "진보진영은 '박근혜 보수진영'에 진 것이 아니라 '더욱 신뢰를 준다고 여기지는 집단'에 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향수가 주원인이라고 보는 것은 편향된 생각"이라며 "과거에 대한 향수와 박근혜 지지의 더욱 본원적인 심리적 공통점을 분석해 본다면, '안전' 동기와 그에 바탕을 둔 '신뢰감에 한 표'다"라고 말했다.
본선레이스에 접어든 18대 대통령선거 4일째인 30일 박근혜 후보가 부산을 찾아 지지호소에 나선
가운데, 박 후보가 이날 오후 1시 10분부터 거제시장을 찾아 유세를 갖고 있다. 박 후보가 거제시장을
찾아 유세를 갖자 50-60대 지지자들이 아낌없는 환호를 보내고 있다.
허성우 교수는 "새누리당이 개혁적, 진보적 과제를 전유하는 가운데 '준비된 여성대통령'이라는 슬로건의 등장은 일종의 '티핑포인트'였다고 생각한다"며 "경제민주화와 복지, 민주 대 반민주, 단일화 등의 이슈를 두고 양쪽이 경합하던 와중에 새누리당이 여성대통령을 내놓으면서 여론의 주목을 받았고, 이는 새누리당에 유리한 방향으로 진행됐다"고 평가했다. 그는 "경제민주화와 복지 이슈에 첨가해서 '여성'이라는 의제를 다 선점해갔다"며 "이런 전략이 '티핑 포인트'를 이루고 여기에 보수여성의 표가 광범위하게 가면서 박근혜가 당선됐다"고 분석했다.
안병진 교수는 "우리나라 지배블록들은 민심에 반응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진리를 뼈속 깊이 아는 사람들이다"며 "통치기술에 굉장한 기예들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민심을 이해하는 데서 무서움이 있다. 그런 반응성이 김종인, 이준석 같은 인물을 발탁하게 한 것이 아니냐"고 말했다.
보수 대 진보의 일대일로 총력전을 펼친 결과 박근혜의 당선으로 끝난 이번 대선의 시대적 의미에 대해서는, 안병진은 "민주화 운동의 한 시대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했던 정치세력들, 즉 486정치엘리트, 민주당 원로그룹의 시대가 끝났다"고 평가했다.
김동춘 교수는 "지역주의는 여전히 중요한 변수이며 냉전보수가 주요 세력으로 남아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사회 변화로 봤을 때는 '87년 체제'가 종식됐다"며 "민주당만의 문제가 아니라 운동진영도 '87년 체제'로 인해 만들어진 노동, 사회운동도 완전히 환골탈태하지 않으면 안 될 시점"이라고 제시했다.
민주당의 자체혁신 가능할까?
민주당의 당면한 과제인 지도부 개편에 대해서는 대부분 비슷한 의견이었다. 안병진 교수는 "계파담합 구조가 아니라 일상적으로 시민들한테 반응할 수 있는 내부 시스템을 어떻허게 만들 것인가가 핵심"이라며 "집단지도체제가 아닌 단일지도체제로 선거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책임을 묻고, 대신 선거 전까지는 자기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철희 소장도 "집단지도체제로 가면 안된다. 그것은 오히려 정파나 계파들이 현상 유지하는 것"이라며 "최소한 리더에게 충분한 권한을 주고 대신 책임을 엄정하게 물을 수 있는 시스템이 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중장기적인 전망에 대해서는 세부적으로는 엇갈리면서도 대체로 부정적 의견이 다수를 차지했다. 유창선 박사는 "당내 계파간 갈등이 이어지면서 답이 안 나오는 상황이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며 "결국 외부충격이나 동력에 의해서 야권 전반의 질서재편이 가능한 상황이라고 본다"고 전망했다.
안병진 교수는 "민주당은 자체적으로 혁신을 못한다. 그렇다면 박에서 붕괴를 시켜야 하는데 안철수 그룹도 그걸 할만한 리더십은 없다"고 평가했고, 윤희웅 실장은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하는 게 불가피하다. 거기에는 불가피하게 민주당에 소속돼 있긴 하지만 민주당과 거리감이 있는 박원순 서울시장과 안철수 후보 등 새로운 인물들과 연대의 모습을 구축하는 게 해결책이 될 수밖에 없어 보인다"고 내다봤다.
대선 평가의 핵심적인 주제는 아니지만, 논란이 됐던 '이정희 효과'에 대해서도 큰 이견은 없었다. 윤희웅 실장은 "안철수가 직접 선택지에서 사라지고 난 후 패배감이 야권에 굉장히 확산되면서 진보성향 20~30대 투표참여 의지가 떨어졌을 때 TV토론에서 이정희 후보가 굉장히 박근혜를 공격하면서 다시 젊은 층의 선거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투표 의지를 강화시킨 효과는 있었다고 본다"고 말했다.
유창선 박사는 "젊은 층의 선거 관심을 일깨운 효과가 있었고 무미건조하고 지리한 선거에 자극제가 됐다"면서도 "반면 50대 이상 층의 결집을 강화시키는 등 양 측면이 있었다"고 평가했고, 조희연 교수도 "젊은 층의 대선에 대한 관심을 촉발시키는 계기가 됐지만, 부정적 효과가 컸다는 것을 솔직히 인정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번 대선에서 큰 존재의미를 찾지 못했던 진보정당에 대해서는 대대적인 혁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유창선 박사는 "진보정당이 민생문제를 도와줄 수 있는 정책을 선도하는 정당이라는 메시지를 줘야 하는데 이것은 실패했다"며 "진보정당도 여전히 이념세력으로 비춰졌는데, 앞으로 전통적 진보노선을 고수할 게 아니라 과감한 변화가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김동춘 교수는 "'안철수 현상'은 상당 부분 진보정치가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하면서 저쪽으로 가게 된 측면이 있다"고 분석했다.
조희연 교수는 "개혁적 국민정치와 진보좌파정치의 분리"라고 지적하고, "통합진보당 사태 이전과 이후의 진보좌파 정치세력의 위상이 현저히 달라져 있음을 현실로써 인정해야 한다"며 "뼈를 깎는 자기변화의 모습을 통해 잃어버린 급진적이면서도 선도적인 국민정치개혁세력으로서의 이미지를 회복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