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1987년이냐, 2002년이냐, 2007년이냐 … 기로에 선 2012년 대선] ‘자력승리’ 가능한 후보가 없다

  • 2012-10-25
  • 허신열기자 (내일신문)
과거사에 발목 잡히고, 단일화 삐걱대고 … 상대실수 의존하는 대선판으로 변질

 

2012년 대선이 55일 앞으로 다가왔지만 선거판도는 안갯속이다. 대세론으로 앞서나갔던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는 정수장학회 논란에 발목이 잡혀 휘청거리고 있다. '보수U턴'은 외연확장과 부딪친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안철수 무소속 후보 주변에선 손잡자는 이야기 대신 으르렁거리는 소리만 가득하다. '단일화 무산' 이야기까지 나올 정도다.

 

현재 '빅3' 후보들이 맞고 있는 위기는 근원이 깊다. '자력승리'를 장담하기 어려울 정도다. 상대의 실수에 기대는 '어부지리 대통령'이 탄생할 수도 있다.

 

역대선거에 비춰보면 빅3 후보들의 선택은 분명해 보인다. 1987년 모델은 단일화가 무산되면서 정권교체에 실패한 사례, 2002년은 대세론에 안주하다 패배한 사례, 2007년은 강력한 정권심판론을 바탕으로 기존 지지층(보수)에 중도층까지 묶으며 대승을 끌어낸 사례다. 어떤 길을 갈 것인지는 각자의 선택에 달려 있다.

 

1987년 12월 대선은 정권교체 요구가 절정을 이뤘다. 그해 6월항쟁을 통해 군부독재 종식을 이끌어낸 국민들은 야권 후보에게 표를 던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집권 민정당 노태우 후보에게는 최악의 상황이었다. 결과는 노 후보의 승리. 하지만 득표율은 36.6%에 불과했다.

 

반면 당시 야당 유력후보였던 김영삼 후보는 28.0%, 김대중 후보는 27.1%를 얻었다. 후보단일화를 이뤘다면 대승을 거뒀을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2012년 대선도 '단일화'가 열쇠다. 대부분 여론조사에서 3자구도면 박근혜 후보의 승리, 양자대결이면 야권 후보 승리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온다. 박·문·안 후보가 모두 출마하면 1987년처럼 야권 필패구도가 만들어진다는 이야기다.

 

2002년 대선 당시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는 대세론의 상징이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측근비리와 민주당 노무현 후보에 대한 불안감에 보수진영은 강하게 결집했다. 하지만 최후에 웃은 이는 노 후보였다.

 

대세론에 안주한 이 후보는 스스로 낡은 보수·기득권의 이미지만 부각시켰다. 1997년 대선에서 이미 문제가 됐던 아들의 병역문제에 대해서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정권에 불만을 가진 중도층조차 등을 돌릴 정도로 외연확장에 실패했다.

 

2012년 대세론을 달리던 박근혜 후보는 정수장학회 논란에 휘청이고 있다. 5·16과 인혁당 논란에 이어 '이제 겨우' 과거사의 두 번째 관문을 지났을 뿐인데도 벌써 상처가 가득하다. 모두가 예상했던 검증과정이었다. 중앙선대위 관계자조차 "5년 동안 뭐했는지 의문"이라고 말할 정도다. 정수장학회 논란 이후의 행보도 의문이다. 2009년 스탠포드 연설 이후 '중도화'를 지향하던 그가 갑자기 보수로 'U턴'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서다. 뉴라이트계열 단체의 행사에 참석해 참여정부를 강하게 성토하는가 하면, 더 보수적인 선진통일당과 통합하기로 했다. 외연확대와 거리가 있는 행보다.

 

정한울 동아시아연구원 여론분석센터 부소장은 "새누리당이 지난 총선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배경은 끊임없이 변화했기 때문"이라며 "보수층만으로 대선에서 승리하기 힘든 만큼 '보수U턴'은 자력승리 포기나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 대통령을 승리로 이끈 일등공신은 강력한 '반노 정서'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강한 반감이 당시 야당이었던 한나라당 지지를 이끌었다. 17대 대통령은 그해 8월 한나라당 경선에서 결정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2년 대선에서 노 전 대통령에게 환호했던 중도층은 '환멸'했고, 보수층은 '증오'했다.

 

경제성장을 통해 파이를 키우며 양극화도 해소될 것이라는 기대가 중도층을 이 대통령 지지로 이끌었고, 여기에 보수가 결합하며 '대선 완승'의 토대가 만들어졌다. 이미 결정이 난 승부에 흥미를 잃은 유권자들은 기권을 선택했다.

 

'반MB·반새누리 정서'는 여전히 이번 대선의 승부를 가를 중요한 변수다. 박근혜 후보가 이 대통령과 거리를 두면서 일부 희석되긴 했지만 각종 여론조사를 통해 증명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여당 보다 야당의 승리가 가깝다는 것이다. 2007년 사례에 비춰보면 대승도 가능하다.

 

다만 조건은 '민주당의 혁신'과 '아름다운 단일화'다. 정권교체를 바라는 야당 지지층과 정치교체까지 요구하는 무당층이 화학적으로 결합하기 위해선 반드시 거쳐야할 단계라는 이야기다.

 

특히 안철수 후보가 단일화의 전제로 제시한 민주당 혁신은 야권의 자력승리를 위한 필수조건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정 부소장은 "국민들의 정치혐오에 최고한 절반의 책임을 져야 할 민주당이 정치혁신에 대한 기대감을 상징하는 안철수 후보를 무시하는 것은 오만하게 비칠 수 있다"며 "겸허하게 자신을 돌아보고 혁신하는 것이 승리의 조건"이라고 지적했다.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원은 "빅3 후보들이 각자 위기를 맞으면서 어떤 대선의 모델을 따를 것인가의 기로에 섰다"며 "누구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만큼 선택은 각자의 몫"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