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정정당담]'여의도 정치'의 종언(終焉)?

  • 2012-09-03
  • 김종욱동국대정치외교학과객원교수 (경남도민일보)
국민들 반서민적 '여의도정치'에 분노 표출…정당, 신뢰회복 위해 깊은 반성 필요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 대한민국은 유권자 스스로 대통령을 선택할 제도적 기회를 얻었다. 그러나 시민의 투쟁을 통해 얻은 직선제에도 민주화 진영의 분열로 군부출신인 노태우가 대통령이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됐다. 따라서 문민에 의한 통치는 김영삼 대통령이 최초였다. 이후 20년 동안 대한민국은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으로 이어지는 문민에 의한 통치의 역사를 경험했다. 문민에 의한 통치는 정당을 통해 대의된 후보가 선출되고, 그 대의된 후보의 경쟁을 통해 대통령을 선출하는 방식이 정착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18대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에는 두 가지 의미 있는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 그것은 정당정치에 대한 '불신의 늪'이 더욱 깊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2011년 10월을 기점으로 '제3정당'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불필요하다는 여론을 앞질렀다(동아시아연구원 패널조사 결과). 주로 야당 성향과 무당파 층에서 이러한 흐름이 높아지고 있으며, 이런 흐름은 안철수 원장에 대한 지지율 상승으로 연결되고 있다. 특정 정당 후보도 아니며, 대선 출마선언도 하지 않은 인물에 대한 유권자의 지지는 과거 '제3후보' 흐름과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이런 현상은 안철수 원장이 제1야당인 민주통합당 후보보다 더 높은 대여 경쟁력을 보이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정치 불신이 정당에 대한 불신으로 연결되고, 불신당하고 있는 정당의 후보에 대한 신뢰 상실로 나타나는 악순환 고리를 발견하게 된다.

 

또 하나의 흐름은 정당의 불신과 함께, 20여 년 동안 '군림'한 '여의도정치'에 대한 강력한 불신 여론 확산이다. 양극화 심화시대 대한민국은 일종의 '불안사회'라 지칭할 수 있다. 빈곤한 생계, 불안한 미래, 희망 없는 삶의 궤적은 3불(불안, 불만, 불신)을 조장하는 음습한 환경이 되고 있다. 경제에 대한 불만, 정부에 대한 불신, 미래에 대한 불안을 느끼는 유권자 층은 대체로 박근혜 후보보다 안철수 원장을 통해 3불을 해결하려는 여론을 드러내고 있다(동아시아연구원·한국리서치 2012.7월 정기여론조사).

 

이런 흐름은 현재 삶의 문제에 대해 기성정치를 상징하는 '여의도' 출신 정치인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는 강력한 불신을 의미한다. 지금의 정당시스템과 정치문화로 대한민국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며, 새로운 인물과 새로운 리더십을 통해서 변화를 만들어내야겠다는 유권자의 여론을 읽을 수 있다.

 

이것은 현재 정치세력이 국민에게 신뢰를 획득하지 못하고 있으며, 그 흐름이 더욱 심화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다. '여의도정치'는 특권과 반칙을 상징하며, 반서민적이며 반중산층적이라는 분노의 표출이기도 하다. 어쩌면 이제 국민들은 '여의도정치'의 종언을 선언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 불안한 사회에서 무엇에도 기댈 수 없다는 공허함은 '우울증 사회'로 인도한다.

 

국가에 의해 끊임없이 경쟁을 강요당하며, 개인 스스로를 소진해왔던 국민들에게 남은 것은 극단적인 양극화와 빈곤의 경험이다. 성장과 성공을 위한 경쟁은 양극화 심화의 자양분이 되었고, 소수를 위한 다수의 희생으로 귀결되었다. 그 경쟁 속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소진한 국민들에게는 허탈한 현실과 극복할 수 없는 미래만 기다리고 있다.

 

그런 풍토 속에서 분노와 불신은 팽배해지고 정치에 대한 혐오로 인도하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새로운 '메시아(Messiah)'를 부르는 여론이 형성된다. 그러나 현실에서 메시아는 없다. 메시아와 '정도령'을 호명하는 것은 고통과 도탄에 빠진 민심의 절박한 구조 신호이다. 이제 정당이 이 구조신호에 응답해야 한다. 특히 서민과 중산층, 99%를 위한 정치를 표방하는 진보개혁진영의 정당이라면 더더욱 그렇게 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절박한데 '여의도정치'는 그 신호를 듣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이제 정당이 추락한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과 진정성 있는 반성이 필요하다. "우울증은 당신이 길을 벗어났으니 방향을 바꿀 필요가 있음을 경고해주는 신호다. 삶의 방향을 재정립해 해결책을 찾게 해주는 일종의 선물인 것이다(심리학자 라라 호노스 웹)." 정당에 대한 불신을 자책하기에 앞서 새로운 방향을 만들어가라는 신호로 받아들여야 한다. 국민들이 정당에 제시한 일종의 선물로 생각해야 한다.

 

그런 민심에 호응하는 것이 새로운 정치의 출발점이 될 것이며, 정당정치가 제 궤도로 돌아올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이제 오히려 '여의도정치'의 종언을 선언하는 것이, '새 길'을 걷는 것이 불편하지 않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