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정치시평] 경선 파행과 민주당의 위기

  • 2012-08-27
  • 정한울 (내일신문)
정한울/EAI 여론분석센터 부소장/정치학 박사

 

모바일 투표 공정성 논란과 손학규, 김두관, 정세균 후보 등 소위 비(非)문재인 3인방의 경선일정 보이콧으로 민주당의 경선투표는 초반부터 파행으로 치닫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본격적으로 속도를 내고 있는 안철수 원장이나 소위 광폭행보의 폭을 넓히는 박근혜 후보에 대비되어 경선흥행을 걱정하던 터다. 이들 3인방은 결선투표 이전에 승부를 결정지으려는 당 지도부와 문재인 후보 진영에 강한 불신을 숨기지 않고, 문 후보 진영에서는 경선일정 보이콧이 합의된 룰에 대한 자기부정이자 자멸의 길이라고 비판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 후보 캠프 간 갈등을 넘어 지지층 간 감정대결로까지 번지고 있는 양상이다.

 

당 지도부는 제주ㆍ울산 모바일투표를 재검표해 문제가 되는 경우 서울 경선 때 투표 기회를 주고, 향후 실시되는 모바일투표는 미투표 처리에 관한 고지를 강화하는 방안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위기의 본질은 민주당 수권능력에 대한 의문

 

그러나 양 진영 간 불신이 적지 않고, 재검표를 통해 다시 투표 기회를 주는 과정 자체가 비밀투표의 원칙을 침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적절한 타협안이 될지 의문이다. 더구나 후보들에게는 사활적인 쟁점이지만 유권자들에게 구체적인 내막과 세세한 대책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유권자들은 한국 정치의 한축을 담당하며 두번이나 집권경험이 있는 제1야당의 대선후보를 결정하는 경선이 이렇게 허술하게 관리될 수 있는지 의아할 뿐이다. 경선파행이 길어질수록 집권은커녕 정당으로서의 존립기반 자체가 위태로워질 것이라는 예상은 어렵지 않다.

 

쉽지는 않겠지만 자포자기하거나 바보가 아닌 이상 대선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 어떤 방식으로든 타협은 될 것이다. 그러나 경선파행은 위기의 본질이 아니다. 경선파동 이전인 지난 주 실시한 동아시아연구원의 패널조사결과에 따르면 4·11 총선 직후 민주당 지지자의 절반 가까이 이탈했다. 경선 시비가 없었더라도 이미 민주당은 위기였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민주당의 근본적 위기는 안철수 원장이 민주당 지지기반을 흡수해서도 아니고, 소위 조중동 프레임의 영향력 때문도 아니다. 2012년 대선에서 어떻게 제1야당답게 대선을 치를 수 있을까, 민주당이 집권세력으로서 자격을 갖추고 있는가에 대한 유권자의 의문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위기의 본질이다. 정치적 입장을 떠나 민주당의 위기에 주목하는 이유는 박근혜, 안철수, 혹은 민주당 후보 중 누가 대통령이 되건 아무런 준비와 계획되지 않은 상황에서 우발적으로 정당정치의 한 축이 무너지는 상황은 창조적 파괴보다는 정치적 재앙이 될 가능성이 커 보이기 때문이다.

 

위기 극복을 위한 비대위가 필요하다

 

경선파문의 해결과정은 반드시 유권자들이 민주당에 갖고 있는 불신에 대한 솔루션과 동시에 제시되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비상한 대책이 필요하다. 4·11 총선을 앞둔 시점에 새누리당의 위기의식은 비대위체제로 표출된 반면, 왜 민주당에서는 비상대책이 논의되지 않았는가?

 

당장 위기의식의 공유부터 시작해야 한다. 민주당은 기존 정치에 대한 불신을 상징하는 안철수 현상, 지난 4·11 총선 패배에도 불구하고 위기의식과 자성의 의지를 보여주지 않았다. 민주당의 대선경선과정은 따지고 보면 박근혜 후보의 성토장이자 대 박근혜 경쟁력 키재기 이상이 아니었지 않은가?

 

만약 안철수 원장의 존재가 아니었다면 이번 선거는 박근혜 찬반구도로 치러졌을 것이며, 민주당이 그 일등공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을 것이다. 민주당의 활로는 '누구는 안돼'만을 남발하는 비대위가 아니다. 안철수 원장과 공동정부를 꾸릴지 말지를 다투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민주당이 지금껏 왜 제1야당 답지 못했는지에 대한 통렬한 반성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