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학규 전 대표가 지난 14일 민주당 내 잠룡 가운데 처음으로 대선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민생’과 ‘통합’을 강조한 손 전 대표는 2020년까지 70% 이상의 고용율을 달성하겠다는 공략을 내걸었다. 서울 광화문광장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 가진 출정식 자리에는 사회 각계각층의 인사 100여명 및 지지자 등 약 500여명의 시민들이 참석해 손 전 대표의 대선출마를 응원했다. 이들은 손 전 대표의 연설 중간중간 그의 이름을 연호했다.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 대선출마 공식 선언 ‘민생’ ‘통합’ 강조…지지율 만회 과제 야권 대권주자 줄줄이 출정식…민주당 대선 레이스 달아올라 과열 경쟁 조짐
손 전 대표는 광화문광장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 “국민이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애민 대통령’, 국민을 편안하게 하는 ‘민생 대통령’, 분열과 갈등을 해소하고 국민을 하나되게 하는 ‘통합대통령’을 해내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 국민은 탁월한 능력을 가진 민족이어서 국가에 신뢰만 생기면 무엇이든 잘 할 수 있다”며 “국민이 대통령을 보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믿고 의지하는 마음이 생기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강조했다. 손 전 대표의 출마 선언으로 민주당 내 다른 대선주자들의 보폭도 빨라질 전망이다.
지속가능한 복지 제시
손 전 대표는 당초 이달 말 출마선언을 하려던 계획을 앞당겼다. 이는 다른 대선 주자들보다 준비를 많이 해 온 만큼 이슈를 선점해 경선 국면을 주도하기 위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 측근은 “역대 우리나라에서 국민과 소통을 가장 잘했고 민심을 살폈던 세종대왕과 같은 대통령이 되겠다는 취지에서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 회견을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출정식에서 손 전 대표는 각종 공약을 내놨다. 그는 “2020년까지 70% 이상의 고용률을 달성해 20세부터 70세까지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일자리를 가질 수 있게 할 것”이라며 “사회적 대타협을 통해 노동시간을 단축해 노동자들에게 '저녁이 있는 삶'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했다. 또 “청춘연금제도를 도입해 청년들에게 다양한 삶의 기회를 추구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병원비로 고통 받는 국민이 없도록 환자의 본인부담 상한을 100만원으로 낮추겠다”고 밝혔다. 이어 “서울대와 거점 지방 국립대를 네트워크화해 공동학위제를 실시하며 정부책임형 사립대 제도를 통해 사립대학 정상화를 이루겠다”고 공약했다.
대선출마 선언을 마친 손 전 대표는 본격적인 대권행보로 경기도 화성시 송림동 가뭄현장으로 달려갔다. 현장에 도착한 손 전 대표는 밀짚모자를 쓰고 보라색 셔츠에 회색 운동화 차림으로 마을 주민과 함께 논바닥이 갈라진 논밭을 둘러봤다. 마을 주민과 막걸리 한잔을 하며 스킨십을 이어갔다.
첫 번째 민생 행보지로 이곳을 왜 택했냐는 질문에 “국민들이 가뭄때문에 고생하는 고 있어서 왔다”며 “백성들은 나라에서 걱정을 해주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된다는 것이 세종대왕 리더십의 기본”이라고 답했다. 경선앞두기 전에 제2의 민심대장정을 시작하는 것이냐는 질문에 “민생은 항상 대통령 선거의 한 가운데 있다”며 “별안간에 천재지변 일어났다며 경상도도나 전라도라도 내가 쫓아갈 것”라고 말했다.
정치권에서는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물론 문 상임고문에 크게 미치지 못하는 지지율을 조기에 만회할 수 있느냐가 손 전 대표의 최대 과제로 보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손 전 대표는 대통령 선거는 지지율 선거, 인기도 선거는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한 라디오 프로그램 인터뷰에서 손 전 대표는 “역대 대통령 선거를 보면 그 시대가 가장 절실히 요구하는 사람이 대통령이 된다. 대통령을 뽑는 것은 시대정신”이라며 “대선이 본격적으로 시작하면 국민들은 ‘누가 우리를 잘 살게 해줄 것인가’, ‘일자리를 누가 더 만들어줄 것인가’에 기초해 판단을 한다”고 자신감을 피력했다.
복지부장관ㆍ경기도지사 역임
손 전 대표는 재야 운동권 출신이다. 서울대 정치학과 재학 시절 법대 조영래 변호사, 상대 고 김근태 전 의원과 `3인방'으로 불리며 학생운동을 이끌었다. 유신체제 종식 후 영국 유학길에 올라 옥스퍼드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은 뒤 인하대와 서강대에서 교편을 잡았다.
그를 정계로 이끈 것은 김영삼 전 대통령이다. 1993년 경기도 광명시 보궐선거에서 민자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된 뒤 내리 3선을 했고, 대변인을 거쳐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냈다. 2002년 지방선거에서는 경기도지사로 당선되면서 대권주자의 반열에 올랐다. 경기도지사에서 물러난 뒤 대권 도전을 노렸지만 2007년 3월 대선후보 경선 방식을 놓고 한나라당의 한계를 지적하며 탈당을 결행, 정치인생의 최대 전환점을 맞았다.
2007년 말 민심의 우위에 기댄 대세론으로 바람몰이에 나섰으나 정동영 상임고문에게 패해 대선 후보 자리를 내줘야 했다. 2008년 초 대선 참패의 상처로 허덕이던 당에 구원투수로 투입돼 총선을 진두지휘하며 정치 1번지인 서울 종로에 출마했으나 한나라당 박진 후보에게 패했다. 그러나 2010년 10ㆍ3 전당대회에서 예상을 깨고 당대표에 당선되면서 화려하게 부활했다.
전국 단위 선거에서 선출돼 ‘한나라당 출신’이라는 꼬리표도 완전히 뗐고, 이후 거대 여당과 맞붙어 투쟁하면서 명실상부한 야권 지도자로 입지를 굳혔다. 지난해 4ㆍ27 재보선에서는 ‘사지;인 경기 분당을에 출마해 강재섭 전 대표를 꺾고 당선돼 또 다시 전성기를 맞았다. 지지율은 15%대로 치솟았고, 야권 내에서 가장 유력한 대권주자로 급부상했다.
그러나 ‘손풍’은 오래가지 못했다. 한ㆍ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처리 과정에서 혼선이 빚어졌고, “원칙있는 포용정책” 발언으로 정체성 논란에 휩싸였다. 급기야 10ㆍ26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에는 “후보조차 배출하지 못했다”는 엄혹한 비판에 대표직 사퇴 의사를 밝혔다 하루만에 번복하는 소동을 빚기도 했다.
손 상임고문은 이때부터 야권통합에 올인했다. 그는 당 안팎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뚝심 있게 야권통합을 밀어붙였고, 결국 대의원들의 압도적인 지지 속에 통합 결의를 이끌어내는 성과를 거뒀다. 19대 총선에서는 “총선 승리를 돕겠다”며 불출마를 선언했다.
민주당 본격적인 대선 체제
손 전 대표를 시작으로 민주당 잠룡들의 대선출마 선언은 이어지고 있다. 친노 대표주자인 문재인 상임고문은 손 전 대표의 출마 선언 사흘 후인 17일 가족들과 함께 출마를 공식 발표했다. 그는 네티즌들의 의견을 담아 작성 중인 ‘함께 쓰는 출마선언문’도 공개했다. 문 고문은 안 원장과의 경쟁력에 대해 “민주적 정당, 전통적 지지기반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비교우위에 있다”며 “민주당의 힘이 뭉쳐진다면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다”고 강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문 고문의 경우 친노세력의 강한 결속력을 바탕으로 비노측을 얼마나 포용하느냐가 과제로 지적된다.
김두관 경남지사는 지난 12일 사실상의 대선 출정식으로 볼 수 있는 에세이 ‘아래에서부터’의 출판기념회를 갖고 본격적인 대권 행보에 나설 전망이다. 공식 경선 출마 선언은 지사직 사퇴와 함께 이뤄질 예정인데, 7월 초에는 공식 선언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김 지사는 서울 여의도에 이미 사무실을 얻은 상태다.
지난 총선에서 종로에서 당선되며 전북에서 수도권으로 반경을 높인 정세균 고문은 오는 24일 대권 출마를 공식 선언하며 경선 레이스에 가세한다. 한 측근은 “김진표, 이미경, 박병석, 김성곤, 전병헌, 강기정, 안규백, 이원욱 등 20여명의 의원이 함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현역 의원의 지지세는 문 고문에 필적하지만 역시 낮은 지지율 제고가 관건으로 보인다.
정동영 상임고문은 외부 강연 등을 통해 자신의 정책 구상을 다듬는 중이다. 6월 중순께로 예정된 민주당 정치개혁모임 강연에 나선 뒤 6월 말~7월초쯤에는 출마 선언이 나오지 않겠냐는 관측이다. 박영선 전 최고위원도 당대권 분리 당헌ㆍ당규 개정시 출마를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새 지도부 선출을 마치고 민주당은 본격적으로 대선 체제에 돌입했다. 당이 대선 경선 체제로 돌입한 데는 민주당이 처한 정치적 상황 때문이다. 19대 총선 패배 이후 두 달여 동안 리더십 공백이 계속됐고, 통합진보당 사태까지 불거졌다. 주자들로서는 행보를 더 늦췄다가는 ‘함께 뒤처질 수도 있다’는 판단에 이른 것이다. 정한울 동아시아연구원 여론분석센터 부소장은 “총선 이후 구심력이 없는 상태가 지속되면서 지지층과 괴리감이 커졌다”며 “안철수 현상의 피로감도 쌓인 터라 대선 국면으로 전환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바라봤다. ‘색깔론’ 역풍과 전두환 전 대통령 사열 논란 등 여권발 악재도 민주당 대선주자에겐 기회 요인이다. 비중 있는 정치 사안에 이들이 나선다면 선 굵게 대응할 수 있다.
민주당 주자들의 행보가 빨라지면, 안철수 원장에게도 영향이 미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외곽 주자로서 그의 움직임에도 속도가 붙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문국현 전 창조한국당 대표는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나와 “안 원장은 늦어도 8월 중에 대선 출마 관련 내용을 국민에게 보여줄 의무가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안철수 원장 측은 “야당 주자들이야 정치하시는 분들이니까 그런 것도 고려하겠지만, 안 원장은 자신이 정치에 적합한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는 중”이라며 “외부 요인까지 끼어들면 결정하기 힘들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