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창립 11주년 특별기획 대한민국 '싱크탱크'⑥] 이숙종 동아시아연구원장…"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드는 지식의 響宴"

  • 2012-03-25
  • 이인준기자 (뉴시스)

 

현대사회는 끊임없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요구하고 지식이 정보와 시간성을 갖춰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지식정보화사회다. 이에 따라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분야가 급변한다. 그리고 그 변화의 중심에는 '싱크탱크(Think Tank)'가 있다.

오늘날 싱크탱크의 영향력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막강하다. 정부의 정책이나 기업의 생존을 결정 짓는 경영전략의 근간이 되는 각종 연구결과를 쏟아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각 정부는 물론 기업들이 앞다퉈 싱크탱크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특히 올해는 국내·외적으로 다사다난한 해가 될 전망이다. 밖으로는 미국과 러시아의 대통령선거, 안으로는 4월 국회의원을 뽑는 총선과 12월 대통령선거라는 빅이벤트가 기다리고 있다. 이런 차원에서 뉴시스는 올해 대한민국의 싱크탱크를 재조명하고 있다. 여섯 번째로 '동아시아연구원'을 소개한다. 편집자 주

 

상근 직원 13명으로 세계 정상급 싱크탱크와 견줄만한 민간연구소가 있어 눈길을 주목을 받고 있다.

 

올해 창립 10주년을 맞은 동아시아연구원(EAI)이다. EAI는 최근 미국 펜실베이니아대의 '싱크탱크와 시민사회 프로그램'이 주관하는 '2011 세계 싱크탱크 순위'에서 ▲외교안보 ▲정책연구 분야 등에서 각각 24위, 26위에 올랐다. 한국의 민간연구소 중 유일하다. 국내 최대 싱크탱크이자 연구원을 포함한 전 직원이 350명이 넘는 최대 국책연구기관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아시아지역 11위에 오른 것에 비하면 놀랄만한 성과다.

 

이숙종 EAI 원장은 "연구프로그램 기획과 프로그램 연구활동을 분리해 연구의 효율성을 높힌 결과"라며 "우리 연구소는 아이디어, 효율성, 펀딩 등 3박자를 고루 갖춘 연구소"라고 소개했다.

 

연구소는 올해 4·11 19대 총선과 12·19 18대 대선을 앞둔 '선거의 해'를 맞아 패널조사로 분주하다. 패널 1500명의 선호 후보자를 1년 동안 추적하면서 유권자의 표심을 분석 중이다.

 

이 원장은 "전통적인 지역주의 방식의 표심이 변하고 있다"며 "갈수록 지역감정에 따른 투표 행위가 줄어들 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이명박 정권에 대해 "소통이 부족했다"며 "앞으로는 효율성이 약간 떨어지더라도 민주적인 절차, 의견 수렴, 갈등의 조정 등 길게 보는 프로세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음은 이 원장과 일문일답.

 

-EAI 설립 10년만에 올해 세계 싱크탱크 순위에서 30위권에 들었다. 우리나라 민간연구소로는 최초다. 어떤 점이 이 같은 좋은 평가를 받게 된 동인이 됐다고 생각하나.

 

"평가기관에서 주로 보는 게 영어로 된 보고서기 때문인 것 같다. 우리나라 연구소들도 경쟁력은 이미 글로벌 수준까지 올라섰다. KDI의 경우만 해도 지출 규모가 세계에서 가장 큰 연구소인 부르킹스 연구소 수준과 거의 비슷하다. 다만 정책의 수요자가 국내에 있기 때문에 영어보고서를 내려는 동기가 적다. 우리 동아시아연구원의 경우에는 해외에서 재정 조달을 하거나 해외 전문가들과의 네트워크를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세계 각 나라의 언어로 만든 보고서를 내고 있다."

 

-EAI는 어떤 연구소인가.

 

"한마디로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드는 지식네트워크’다. 작게는 대한민국, 나아가 동아시아와 세계까지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드는 지식을 생산하는 곳이다."

 

-지식을 네트워크로 연결한다는 개념이 생소하다.

 

"우리는 상근직원이 13명에 불과하다. 아이디어가 정책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컨텐츠 연구를 할 연구자가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 같은 민간 연구단체에서 현실적으로 전문가들을 고용할 수가 없다. 그래서 외부 전문 연구가들을 끌어 들여 네트워크로 연결한다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 같은데.

 

"연구원이 처음 시작했을 때는 열심히 하고 잘하는 교수님들을 패널로 만드는 데 주력했다. 그러다 보니 다른 전문가들이 모여 들었다. 그렇게 10년을 쌓아오면서 '인력 풀'이 생겼다. 이제 어렵지 않은 일이 됐다. 현재 100여명의 외부 교수들이 연구원의 전문 패널로 활동 중이다."

 

-전문가들이 EAI를 찾는 이유를 뭐라고 생각하나요.

 

 

"싱크탱크는 결국 정책의 영역이다. 교수들은 대학에서 제자를 가르치고 논문을 쓰고 하지만 결국 상아탑 안쪽이다. 자기 울타리 안에서는 못 보는 게 있다는 말이다. 학문의 프레임워크를 현실 정치에서 테스트 해보고 싶은 욕구가 있지 않을까. 또 하나는 전문가 집단이 커지면서 전문가들이 서로에게서 배울 수 있다는 게 큰 동기다. 공무원과 교수가 만나 지식을 상호교류하고, 이를 통해 시너지 효과를 낸다는 매력이 있다."

 

-EAI의 핵심 연구분야는.

 

"큰 기둥은 2가지다. 외교안보와 거버넌스(공공정책 등에 있어서 민관협치체제). 거버넌스는 여론 분석센터를 통한 국내 선거에 대한 연구가 잘 돼 있다. 해외기관과 같이 하는 연구들도 있지만 일단은 국내 여론조사를 많이 한다."

 

-연구원은 매 대선 전에 ‘대통령의 성공조건’이라는 정책연구서를 발간하고 있는데.

 

"우리나라 전·현직 대통령들은 하나같이 성공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어떻게 하면 우리나라의 대통령이 좀 더 성공한 대통령으로 기억될 수 있을까, 그런 지혜를 모으기 위해서 하는 프로그램이다."

 

-현 이명박 정부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는가?

 

"소통에 실패했다는 이미지가 있다. 처음 2년 동안 가진 자, 대기업을 위한 프렌들리 비즈니스 정책을 편다는 고착된 이미지가 정권 후반까지 풀리지 못했던 것 같다. 다만 G20(주요 20개국) 정상회담을 여는 등 한국을 글로벌 플레이어로 올려놓는 데 성공했다. 또 2008년 IMF 외환위기를 빨리 벗어나게 했다는 것은 업적으로 인정할만하다.

 

그런데 문제는 국내 사회·경제적인 이슈에서 성공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현재 거시경제 상황은 좋다. 전체적인 모양은 좋은 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려운 사람들이 많아졌다. 분배문제라고 해도 좋고, 시민사회의 요구라고 해도 좋다. 소통은 부족했다고 평가한다."

 

-실패한 대통령이 생기는 이유는.

 

"여러 가지 구조적인 이유가 있다. 대통령 개인 리더십이 부족해서 생길 수도 있고, 관료기구와의 관계 형성 때문에 실패했을 수도 있다. 또 정부시스템을 만드는 데 실패했을 수도 있다. 이 같은 세 가지 시각이 있다."

 

-지난해 ‘안철수 열풍’을 보면서 대통령에게 기대하는 리더십이 많이 변했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이제는 스마트한 대통령, 따뜻한 대통령을 요구하고 있다. 예전에는 정책과정을 생략해도 효과만 있으면 용인하는 경우가 많았다. 잘 살고 싶기 때문이죠. 하지만 유권자나 시민사회의 공공정책이나 국가정책에 대한 참여도가 매우 높아졌다. 또 글로벌화 되면서 세계화의 문제점인 양극화, 사회불안, 위험사회 진입 등으로 모든 사람들이 불안해 하고 있다.

 

이제는 투명한 정책입안 과정과, 국민과 소통, 민주적 리더십 등이 중요해지고 있다. 내가 뽑은 지도자가 나의 상황을 공감해주길 희망하고 있는 것이다. 효율성이 약간 떨어지더라도 민주적인 절차, 의견 수렴, 갈등의 조정 등 길게 보는 프로세스가 필요하다. 그런데 그게 소통에서만 그치면 안 된다. 좋은 정책이 따라야 한다. 지금은 그게 문제인 것 같다."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 위한 조건은.

 

"대통령은 선출직이다. 청와대에 입성을 하면 막강한 관료조직과 마주한다. 그동안 대통령과 함께 청와대에 들어갔던 측근들은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고 회상한다. 대통령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은 착각이다. 제왕적 대통령은 바람직하지 않다. 할 수 있는 정책에 우선성을 두고 현실에 맞는 정책을 펴 나가야 한다."

 

-하지만 여전히 제왕적 대통령에 대한 환상이 있는 것 같다.

 

"성공한 대통령이 없다는 것은 우리 일반사회의 책임이 크다. 한국의 유권자들은 뭔가 잘 못되면 모든 원인을 대통령에게 돌린다. 기대가 많으니까 실망도 많이 하는 편이다. 대통령에 대해서 폄하하거나 냉소적인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내 표를 대통령에게 줬으면 직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리더에 대한 팔로우의 의무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국민은 그런 덕목이 부족하다."

 

 

-19대 총선이 며칠 남지 않았다. 이번 선거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예전에는 우리나라가 지역에 따라 선거 결과가 많이 엇갈렸다. 그것도 여전히 유효하지만, 새롭게 들어온 이슈는 세대, 계층 이슈다. 예를 들어 세대와 계층 이슈가 맞물린 것은 비정규직 문제. 갈수록 투표에서 지역감정이 미치는 영역이 줄어들게 될 것이다. 현 젊은 층들은 정치적으로는 자유주의지만, 사회경제적 이슈에서는 다각적인 복지를 원하고 있다. 작은 정부를 원하면서도 복지, 분배문제에서는 좀 더 규제해서 나눠주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표심을 옛날 방식으로 생각할 수가 없다."

 

-최근 여야의 선거공약 중 복지정책 분야가 난립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복지정책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한국만 그런 게 아니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이 보다는 대응이 중요하다. 세금이 줄줄 세면서 성장으로 연결되지 않는 상황이 가장 우려되는 부분이다. 어떻게 하면 성장 기반을 만들면서도 효과있는 복지정책을 추구할 수 있을지 고민이 필요하다. 고령화가 빨리 진행 중이니까 장기적인 마스터플랜 마련이 시급하다."

 

-바람직한 복지 모델에 대한 구상이나 계획이 있다면 소개해 주시죠.

 

"결국 제조업 중심에서 서비스산업 중심으로 갈 수밖에 없다. 서비스산업이 고용창출 효과가 제조업보다 더 크다. 서비스 산업으로 내수 지향적인 정책을 많이 펴고 무역 의존도를 낮출 필요가 있다. 공공복지 서비스 전달체계도 다시 수정할 필요가 있다. 시민사회의 역할이 좀 더 커져야 한다. 복지문제에 관해서는 모든 걸 정부에게 맡기려고 하면서 세금은 안 내려고 한다. 지역, 시민사회에서 생기는 문제는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사회가 변해야 한다. 스스로 재정이나 노동력에 기여하는 형태로 변해야 선진사회로 갈 수 있다고 본다."

 

-현재 한국사회를 위협하고 있는 가장 큰 문제를 뭐라고 보는가.

 

"전체적으로 봤을 때는 좋은 사회인데 두 가지 정도는 문제인 것 같다. 하나는, 불필요한 이념적 대립이 있다. 보수와 진보 진영을 보면 싸울 일이 별로 없는 데도 권력을 얻기 위해 과잉적인 이념대립이 벌어지고 있다. 민주주의는 모더레이션, 중용(미노크러시·meanocracy)이다. 타협도 필요하다.

 

또 하나는 청소년들이 너무 과잉 경쟁상황에 몰려 모든 게 악순환이 되고 있다. 학교폭력 문제도 학교나 가정에서 별로 중요한 문제로 생각하지 않고 있다. 학업을 최우선시 하기 때문이다. 청소년들이 행복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사회가 바뀌어야 한다. 이건 입시제도가 바뀌어서 해결될 게 아니라 사회와 가정에서 좀 더 기본가치에 충실하게 아이들을 교육해야할 문제다."

 

-향후 연구원이 중요하게 다룰 연구 과제가 있다면 설명해 달라.

 

"앞으로 외교안보 분야에서 한국이 미국, 중국과 어떤 관계를 가질 것인가에 대한 문제다. 미국은 일본이 대지진 등으로 국력이 약해지면서 우리에게 기대하는 바가 많아졌다. 이건 호기라고 판단한다. 국격과 국익이 신장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반면 중국과의 관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중국과의 관계 개선 없이는 북한과의 관계정립은 물론 통일도 어렵다. 매우 다이내믹한 관계다. 이런 관계 속에서 한국이 잘 발전하도록 하는 외교안보 정책에 대한 연구가 진행 중이다."

 

동아시아연구원(EAI) = 지난 2002년 5월 설립된 EAI는 순수 민간연구소다. 다른 대형 싱크탱크들이나 국책연구기관, 대기업 연구소와 달리 정기적으로 돈을 지원하는 곳이 없다. 따라서 EAI은 직접 연구비 모금까지 나선다.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직접 사람들을 만나면서 연구비를 모금해 연구에 필요한 자금으로 사용한다.

 

EAI의 이런 상황은 오히려 해외로 눈을 돌리는 계기가 된다. EAI는 해외로부터 들여오는 연구지원금이 많다. EAI는 2008년 세계 최대 규모인 맥아더 재단으로부터 '아시아 안보 이니셔티브' 핵심기관으로 지정받아 해마다 60만달러씩 지원을 받고 있다.

 

해외 연구자들과 네트워크를 형성하기 위해 EAI 펠로우십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또 연구보고서를 영어, 중국어 등 다양한 언어로 번역 발간해 해외 여러 싱크탱크들과 교류를 시도하고 있다.

 

연구분야는 외교안보와 거버넌스 두 가지 분야다. 특히 외교안보 분야의 국가안보 패널과 거버넌스 분야의 여론분석센터는 EAI를 대표하는 연구성과라고 할 수 있다. 12월 대선을 앞두고 발간한 '대통령의 성공조건'도 이제는 자리를 잡았다. 올해 3번째 시리즈가 발간될 예정이다.

 

올해는 EAI가 창립 10주년을 맞았다. EAI는 올해 대중과 소통하기 위해 매달 강연회를 열 계획이다. 내달 5일 서울 광화문 서울역사박물관 강당에서 시인이자 생명운동가인 김지하 원광대 석좌교수와 함께하는 강연을 시작으로, 5월에는 김우창 이화여대 석좌교수, 6월에는 박지향 서울대 교수를 차례로 초빙, 우리 시대의 현인(賢人) 초청 강연회 시리즈를 이어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