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박근혜, 'MB심판' 프레임 벗어날 수 없는 이유

  • 2012-02-17
  • 정웅재기자 (민중의소리)
정책쇄신은 차별성없고, 인적쇄신은 어렵고...

 

박근혜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은 당명까지 바꾸는 등 쇄신작업을 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국민들은 새누리당이 한나라당에 비해 개선됐다고 느끼지 못하고 있다.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이 '한미FTA'를 소재로 전례없이 야권을 비판했고, 이어서 "선거는 미래를 위한 선택"이 돼야 한다며 '잘못된 과거와의 단절'을 선언했다. 모두 4.11 총선에서 불어닥칠 'MB정권 심판론'을 차단하기 위한 포석으로 보인다. 하지만 문제는 박 위원장이 '정권심판론' 프레임을 벗어나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박근혜 위원장 이대로 가면 총선도 대선도 어려워질 수 있다"

 

"이번 총선의 화두는 뭐니뭐니 해도 정권심판이 될텐데 박근혜 위원장도 뭔가 돌파구를 마련하지 않고 이대로 가면 (총선도 대선도) 어려워질 수 있다."

 

서울 지역구에 공천신청을 한 새누리당 한 의원이 사석에서 기자들에게 한 말이다. 박근혜 비대위의 쇄신의 효과가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으면서 4.11 총선에서 'MB정권 심판' 프레임을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라는 고민을 토로한 것이다. 그러면서 이 의원은 "서울 선거는 정말 어려운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이 의원의 진단이 특별히 새로운 것은 아니다. 이명박 정권의 각종 실정과 경제 양극화 등으로 4.11 총선이 여권에게 불리할 것이라는 목소리는 지난해부터 나왔었다. 여기에 친인척 및 측근 비리, 박희태 전 국회의장의 전당대회 돈봉투 살포 사건, 선관위 디도스 공격 등 악재가 계속 터지면서 수도권 의원들 중심으로 "한나라당 간판을 달고 총선을 치르기 어렵다. 재창당을 해야 한다"는 요구가 지속적으로 나왔었다.

 

이후 한나라당은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이 당의 전면에 등장해 당명까지 바꾸고 각종 정책쇄신 과제들을 내놓고 있지만 국민들은 새누리당이 이전 한나라당과 차별화됐다고 느끼지 못하고 있다. 동아시아연구원의 1월 정치지표조사에 따르면, '비상대책위 활동 이후 한나라당이 어떻게 달라지고 있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이전에 비해 개선되고 있다"는 평가는 37.9%에 불과했고, "이전에 비해 개선되지 않았다"는 부정적 응답이 51.4%로 과반수가 넘었다.

 

총선 성적표는 박근혜 위원장의 대선 행보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여야 성적표에 따라 문재인 민주통합당 상임고문 등 야권의 대항마들이 급부상할 수 있고, 상대적으로 박 위원장은 '영남 보수의 맹주'의 틀을 깨지 못하고 벽에 부닥칠 수 있다. 총선이 채 두 달도 남지 않은 지금, 박 위원장의 고민이 어느때보다 깊어질 수밖에 없다.

 

이런 가운데 박 위원장이 최근 이례적으로 한미FTA에 대한 야당의 입장을 강경한 어조로 비판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지난 13일 비대위와 전국위에서 연거푸 "정치권에서 하는 행동이나 말은 책임성·일관성이 있어야 한다"라며 "여당일 때는 국익을 위해 FTA를 추진한다고 하고 야당이 되자 정반대 주장을 하고 이제는 선거에서 이기면 FTA를 폐기하겠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나라를 맡길 수 없다"라고 말했다. 전례없는 고강도 발언이었다.

 

이는 박 위원장이 한미FTA 문제를 총선 이슈로 부각시키면서 '정권심판론' 구도를 희석시키려는 의도 아니냐는 해석을 낳았다. 실제 참여정부 때 한미FTA를 앞장서 추진하던 인사들이 현재 민주통합당의 지도부들이어서, 새누리당과 보수진영은 이들의 '말바꾸기'를 지적하면서 공세를 펼치고 있다. 한미FTA 문제는 야권에겐 '아킬레스건'일 수 있기 때문에 이를 공격의 포인트로 잡은 것이다.

 

하지만 한미FTA는 진보와 보수에 따라 찬반 입장이 갈리기 때문에 여야 어느쪽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이슈라고 볼 수 없다. 새누리당 여의도연구소가 13일 박 위원장의 발언이 나온 직후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야권이 주장하고 있는 "한미FTA 재협상을 하지 않으면 정권교체를 통해 폐기하겠다"는 주장에 대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47.9%,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이 44.5%로 엇비슷하게 조사됐다. 한미FTA 이슈가 야권을 공격할 수 있는 소재는 될 수 있지만 정권심판론을 대체할 만한 이슈는 아닌 것이다.

 

정책쇄신은 효과없고,인적쇄신은 어렵고...비주류 시절엔 친이계 당운영 적극 협조

 

박 위원장은 15일 정당대표 라디오 연설에서는 "선거란 근본적으로 미래에 대한 선택"이라며 "이번 총선 역시 과거에 묶이고 과거를 논박하다 한발 자국도 앞으로 못 나가는 선거가 아니라 미래를 위해 전진하는 총선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저와 새누리당은 잘못된 과거와는 깨끗이 단절하고 성큼성큼 미래로 나가겠다"라고 했다.

 

이 발언은 박 위원장이 향후 본격적인 MB와의 차별화를 시도하겠다는 신호탄이 아니냐는 해석을 낳았다. 정치권에서는 차기 대권을 노리는 박 위원장이 언제 이명박 대통령과 선긋기에 나설지 궁금해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시기적으로 보면, 측근비리 등 계속된 악재로 지지율이 20% 중반대까지 떨어지는 등 보수층 일부도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는 현재가 박 위원장이 MB와의 차별화를 본격화시키기에 나쁘지 않은 타이밍이라고 보고 있다.

 

박 위원장은 그동안 인위적인 인적쇄신을 통한 MB정부와의 차별화 보다는 정책쇄신을 통한 차별화를 강조해왔는데, 앞선 여론조사에서 밝혔듯 국민들은 새누리당의 쇄신작업에 대해 과거 한나라당과의 차별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또 '과거와의 단절' 발언이 본격적인 MB와의 차별화로 이어질지도 미지수다. MB와의 차별화로 가장 큰 상징성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총선 공천 국면에서 MB맨들을 배제하는 것인데, MB 핵심 인사 등 친이계의 대거 공천 탈락은 당의 분열로 이어질 수 있어 쉽지 않은 일이다.

 

또 박근혜 위원장이 세종시 문제를 제외하면 이명박 대통령의 주요 정책 및 친이계의 당 운영에 적극 협조해 왔다는 점도 MB와의 차별화 전략이 실질적인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정한울 동아시아연구원 여론분석센터 부소장은 "한미FTA나 과거와의 단절 발언이 MB와의 차별화라고 한다면 타이밍은 좋은 것 같은데 아무래도 이번 총선의 제일 큰 변수는 정권심판론이고 이를 완전히 뒤집기는 힘들 것이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