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한명숙 한 달, 인사·정책 싸고 혼선 거듭

  • 2012-02-13
  • 구혜영기자 (경향신문)
통합 리더십 성패는 19대 총선서 판가름… 야권 연대도 과제로

 

민주통합당 한명숙 대표는 13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현 정권 들어 청와대 수석이 여러 가지 비리로 3명이나 사퇴했다”면서 “이명박 대통령은 자신의 입장을 밝히고 국민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청와대가 진실을 밝히고 국민에게 책임지는 모습을 보일 때 MB(이명박 대통령) 정부는 그나마 남은 임기를 유지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작심한 듯 전에 없이 강한 어조였다.

 

한 대표의 결기를 지켜본 핵심 당직자는 “이제부터 정치 현안에 분명한 목소리를 내면서 새누리당 심판의 선장이 되겠다는 시그널”이라고 말했다. 반응은 엇갈린다. ‘이제부터’라는 말에는 ‘한명숙 체제’ 한 달의 그림자가 고스란히 묻어 있다.

 

한명숙호의 민주당은 황금기를 맞은 듯했다. 당 지지율은 40%대를 넘나들며 1위로 올랐다. 서울 영등포 당사는 총선 공천을 희망하는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수십년간 ‘외사랑’에 가슴 졸였던 영남의 빗장도 어느 정도는 걷어냈다.

 

 민주통합당 한명숙 대표가 13일 국회에서 열린 당무위원회 회의장으로 걸어가면서 생각에 잠겨 있다. | 강윤중 기자

그러나 속살 곳곳엔 생채기가 나 있다. 인사, 정책, 대여 투쟁 어느 하나 순탄치 않았다. 자칫 지난 한 달의 훈풍을 두고 ‘샴페인’ ‘김칫국’부터 떠올린다는 한숨소리도 커지고 있다.

 

한 대표는 시민통합당과 한국노총까지 끌어안은 ‘연합군 정당’의 정비에 주력해왔다. 한 당직자는 “회의도 많아지고 통상 업무도 3배 정도 늘어난 것 같다”고 전했다.

 

‘통합의 리더십’을 강조했지만, 한 대표 평가는 후하지 않다. 특히 인사 문제는 한 달 내내 민주당의 발목을 잡았다. ‘한명숙 인사 독재’라는 말이 공공연히 흘러나왔다. 옛 시민통합당과의 갈등은 진행형이다. 옛 시민통합당 관계자는 “우리를 외부 인사로 보는 것 같았다”며 불만을 터뜨렸다.

 

문성근 최고위원(59)은 민주당 중심의 19대 공천심사위원 인사 명단을 보고 당무 보이콧까지 선언했다. 문 최고위원은 이날까지도 “공심위는 반드시 쇄신돼야 한다”는 의지를 꺾지 않을 정도다. 이 일을 계기로 한 대표는 총선기획단에 시민통합당 인사 2명(오종식 전 대변인, 안병진 경희사이버대 교수)을 추가하며 달래기에 나섰다. 계속된 인사 불협화음은 ‘이대 마피아’ ‘486 섭정’이라는 말로까지 표현됐다. 그러나 한 대표 측 관계자는 “한 대표는 중·장기형 오너다. 큰 원칙을 비껴가지 않는 지도자다. 그리고 서로 다른 재질의 철이 용광로에 녹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며 감싸안았다.

 

그럼에도 손학규 전 대표(65) 체제에 견주면 ‘관리형 지도부’다. 향후 대선주자들의 지분 경쟁이 시작되면 인사 문제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활화산이라는 데 당내 이견이 없어 보인다.

 

‘인사 내홍’이 패이다 보니 제1야당 대표의 총체적인 리더십 혼란이 뒤따랐다. 무엇보다 총선을 앞둔 전시체제에서 이슈 주도력이 없다는 비판은 뼈아픈 대목이다. 시사평론가 김종배씨는 “한 달이 지나도록 대국민 메시지가 없다. 총선에서 심판론을 내세우려면 민주당의 정책적 비전을 국민 심판 의지로 이어지게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실제 당 대표 메시지로 ‘생활 정치’를 강조한 마당에 정작 국민과 소통하려는 노력이 부재했다는 비판까지 더해지고 있다.

 

현안에 대한 입장마저 갈지자 행보였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석패율제, 조용환 헌법재판관 임명동의안 등 굵직한 사안에서 한 대표는 휘청거렸다. 이인영 최고위원(48)은 이날 최고위에서 “이제 허니문 기간은 끝났다. 민주당 혁신이 제대로 안됐다는 비판을 새겨들어야 한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한 재선의원은 “한·미 FTA는 최근에서야 정권 잡으면 폐기하겠다고 했고 조용환 후보자 문제는 원내 관리를 제대로 못했다는 방증”이라고 바라봤다. 물론 한·미 FTA는 한 대표가 총리 시절 주도했던 사안이라 존재의 규정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한계도 있다. 하지만 달라진 환경과 새 목소리에 힘을 실을수록 과거 행보에 대한 한 대표의 진솔한 반성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석패율제에 대한 입장도 마찬가지다. 한 대표는 틈만 나면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트위터나 페이스북에 올라오는 누리꾼들의 의견을 살펴봤다고 한다. 한 당직자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서 석패율제를 반대하는 의견이 쏟아지자 한 대표가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다”고 말했다. 보다 못한 고위 당직자들이 한 대표의 스마트폰을 뺏어야 한다는 결심까지 했다고 한다. 당은 들떠가는데, 인사도 리더십도 정작 당 지도부가 매듭지어야 하는 일은 겉돌고 있는 것이다.

 

‘한명숙 리더십’의 성패는 19대 총선에서 판가름난다. 총선 승리는 통합과 혁신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비상등이 켜져 있다. 쇄신풍이 정치권을 강타하는데도 전·현직 의원들이 대거 후보로 등록했다. 야권연대는 첩첩산중이다. 이대로라면 후보 단일화도 어려울 지경이다. 전날 심야 최고위에선 야권 연대를 맡겠다고 나선 지도부가 없었다고 한다. 정한울 동아시아연구원 여론분석센터 부소장은 “민주당의 현 지지율은 결코 안정적이지 않다”면서 “2009년 이후 지지율 역전 현상은 이번이 4번째지만 쇄신에 실패하고 현실에 안주하면서 두세 달 만에 다시 나락으로 떨어졌다”고 충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