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전 충청권은 3개 정파가 각축을 벌여 예측 불가능한 상황이다. 지난해 12월 26일의 대전역 광장 전경.
‘1+1이냐?’ ‘1이냐?’
오는 4월 11일 19대 총선을 앞둔 대전의 민심은 이렇게 집약된다. 이 숫자는 대전·충남권에서 한나라당이 총선에서 얻을 것으로 기대하는 의석 수다. 2석이냐, 아니면 1석이냐? 이런 전망은 한나라당 일각에서 조심스럽게 나온다. 그만큼 대전지역과 충남지역의 반MB·반한나라당 정서가 심각하다는 뜻이다.
현재 대전에서 12월 대선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보다는 3개월여 앞으로 다가온 총선에 대한 이야기가 골목을 돌아다닌다. 서울과 달리 대선에 대한 관심이 적은 것은 야권의 후보군이 안갯속에 있다는 이유가 가장 크다. 한나라당의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만 보이고 야권 후보가 오리무중이니 당연한 결과로 보여진다.
대전일보 정치부 정재필 기자는 경력 17년의 베테랑이다. 정재필 기자는 대전의 대선민심과 관련, 이렇게 해석한다. “대선 주자 중에서는 박근혜 위원장에 대한 신뢰가 여전히 높다. 이유는 세종시 원안 고수 과정에서 보여준 언행에 지역민들이 신뢰를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안철수 교수에 대해서는 서울과 수도권에서 한바탕 요동을 쳤지만 지역민들은 관망하는 입장이다.”
“먹고살기 바쁜데 대선은 무슨!”
지난 10월 6일 공개된 아시아투데이 여론조사에서 대전·충청지역의 대선 후보 지자는 박근혜 51.4%, 안철수 25.8%였다. 동아시아연구원이 11월 26일 발표한 여론조사에서는 박근혜 49.2%, 안철수 41.3%였다.
대전 토박이로 50년째 살고 있는 50대 택시기사는 “MB(이명박 대통령) 못한다는 얘기만 하지 대선주자에 대한 얘기는 별로 하는 사람이 없는디유”라고 말했다. 대전역 지하상가에서 30년째 여성의류를 팔고 있는 김세숙씨는 “경기가 워낙 불황이라 먹고살기 바빠서 대선에 누가 나오는지 관심이 없다”고 답했다.
대전·충남북의 국회의원 의석 수는 24석(대전 6, 충북 8, 충남 10)이다. 2011년 12월 20일 현재, 정당별 의석 수를 보자. 대전은 자유선진당 5, 민주당 1이다. 충북은 민주당 5, 한나라 2, 무소속 1이다. 충남은 자유선진당 7, 한나라당 1, 민주당 1, 무소속 1이다. 충청지역당인 자유선진당이 돌풍을 일으켰던 18대 총선에서 대전·충청 유권자들은 자유선진당에 13석을 몰아줬다.
대전·충남지역의 제1당은 자유선진당이다. 열화와 같은 지지를 받은 자유선진당은 지난 4년간 지지자에 부응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많다. 기자는 대전시청 앞에서 로데오거리로 불리는 탄박동으로 택시를 타고 갔다. 이때 만난 60대 택시기사는 “자유선진당유? 뽑아줬지만 그동안 헌 게 없잖유”라고 말했다. 투박한 어법이지만 이 짧은 문장 속에 자유선진당을 보는 대전·충남 유권자들의 마음이 응축되어 있다. 이 택시기사는 “여기서는 반반이유”라고 덧붙였다. 한나라당과 민주당 지지율이 반반이라는 뜻이다.
2010년 정치권의 최대 이슈는 행정복합도시 세종시 문제였다. MB는 충남 공주 출신의 정운찬 서울대 교수를 총리로 내세워 세종시로 9개 부처를 이전하지 않도록 하는 세종시 수정안을 밀어붙였다. 그러나 세종시 수정안은 당시 충청권의 격렬한 반대와 박근혜 전 대표의 세종시 원안 고수 방침에 밀려 좌초되었다. 지역 사람들은 세종시 원안 관철에 지역 1당인 자유선진당이 별로 한 게 없다고 믿는다.
박근혜 지지는 여전
2011년 충청지역의 최대 이슈는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유치였다. 경북을 비롯한 다른 지역이 유치신청을 해 열띤 경쟁을 벌였다. 결과적으로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는 대전이 거점지구로 지정되었다. 지역 사람들은 세종시 문제와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지정을 보면서 잔뜩 뿔이 난 상태다. 세종시와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는 패키지로 묶여 있던 것인데, MB정부에서 쓸데없는 짓을 해 충청도 사람들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혔다는 것이다.
대전에서 MB와 한나라당 지지율은 거의 바닥권이다. 이미 2010년 지방선거 때 이러한 민심의 현주소가 확인되었다. 2006년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은 대전시장과 5개 구청장을 모두 이겼다. 시종 열세였던 한나라당 박성효 대전시장 후보는, 피습을 당한 박근혜 대표가 수술 후 깨어나 “대전은요?”라고 한마디 한 것이 판세를 바꿔놓았다. 그러나 2010년 지방선거에서 대전시장과 3개 구청장(동구·서구·중구) 자리는 자유선진당으로 넘어갔고, 유성구는 민주당에 내주고 말았다. 한나라당은 대덕구 하나만 지켰을 뿐이다. 앞서 말한 대로 2011년 들어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지정 과정에서 충청인들은 또 MB정부에 대해 실망했다.
대전지역의 민심은 표면적으로는 반(反)한나라당과 자유선진당에 대한 실망이다. 현재 이러한 지역민심에 잔뜩 기대가 부풀어 있는 정당이 민주통합당이다. 민주통합당에서는 현재의 지역 분위기가 2004년 탄핵 때와 흡사하다는 얘기도 나온다. 한나라당에선 1996년의 15대 총선의 재판이 되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나온다. 당시 김종필 전 총리(JP)는 자민련을 창당, 총선에서 충청권을 석권했다. 한나라당은 청양·홍성에서 한 석(이완구)만을 건졌을 뿐이다.
3개 정파, 경합 예상도
임도혁 조선일보 중부취재본부장은 23년째 대전지역의 민심흐름을 지켜봤다. 임도혁 본부장은 “2012년 총선은 큰 흐름이 없다는 게 특징”이라고 분석했다. 임 본부장은 “(여론은) 지역마다 다르게 나온다”고 했다. 이 분석은 대전·충청의 민심 향배가 전국에서 가장 복잡하다는 뜻이다. 한나라당(영남)과 민주통합당(호남)의 양자대결 속에 충청권 지역당인 자유선진당이 존재한다. “단체장 분포와 국회의원 분포를 보면 3개 정파가 나름의 영향력을 갖고 있으므로 출마자들은 어느 배를 탈 것이냐로 고민을 할 것이다.”(임도혁)
지난 12월 26일 이완구 전 충남지사는 긴급기자간담회를 열었다. 금요일까지만 해도 이완구 전 지사는 월요일인 12월 26일 대전 일정이 없었다. 하지만 일요일인 12월 25일 자서전 ‘원칙을 지키는 사람 이완구’ 출간과 관련된 기자간담회를 갖기로 결정했다. 일요일에 대전의 정치부 기자 24명에게 긴급 문자가 발송됐다. 그리고 이날 커피숍 기자간담회에 22명이 참석했다. 한나라당은 인기가 없지만 ‘충남지사 이완구’는 관심이 있다는 뜻이다. 이 전 지사는 대전 서을, 천안, 홍성·부여에서 한나라당 총선 후보로 출마 러브콜을 받고 있다. 대전 정가에서는 광역단체장을 지낸 이완구·박성효 2인이 패키지로 출마해 선거판을 끌고 나가면 분위기가 바뀔 수 있다는 이야기가 파다하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는 사태가 지난 12월 말 일어났다. 지난해 12월 29일 이상민 의원 (대전 유성구), 12월 31일 김창수 의원(대전 대덕구)이 각각 자유선진당을 탈당했고 민주당 입당을 선언했다. 김창수 의원은 “정치적 고향인 민주당에 복귀한다”고 밝혔다. 이는 자유선진당에 대한 지지도 변화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동시에 두 사람의 당적 변경은 ‘철새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민주통합당 입장에서 보면 분위기는 과거 어느 때보다 유리하지만 인물난에 직면해 있다. 한나라당 역시 인물난에 직면해 있기는 마찬가지다. 한나라당 관계자들이 이완구·박성효의 패키지 대전 출마를 간곡히 희망하는 까닭이다. 여기에 박근혜 위원장에 대한 지역민의 높은 신뢰가 한나라당 출마자들이 기대는 버팀목이다. 3파전 전망은 박근혜 위원장의 존재 때문에 가능하다. 대전지역 출마를 준비하는 한나라당 관계자는 “이번만큼은 지역바람이 불지 않고 인물론으로 흐를 것으로 전망한다”고 말했다.
대전·충남의 다수당인 자유선진당은 과연 수성을 넘어 교섭단체 구성에 성공할 수 있을까. 소속의원들의 탈당이 이어지면서 한편에선 ‘안됐다’는 동정론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