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표지이야기]“세상을 바꿔!” 30대 여성이 나섰다

  • 2012-01-18
  • 박송이기자 (주간경향)
2012년 4월 11일 오전 9시. 일찌감치 투표를 마친 나참여씨(여·37)는 6살 딸아이와 함께 투표소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투표 인증샷이다. “우리 아이의 미래를 생각하면서 한 표 찍었습니다. 꼭 투표하세요.” 나씨는 투표 독려글과 함께 투표 인증샷을 자신의 트위터와 페이스북에 올렸다.

 

* 이 기사는 30대 여성의 정치적 성향에 대한 통계와 관련자료 및 인터뷰를 바탕으로 가상의 인물을 설정해 쓴 기사입니다.

 

2011년 10월 26일 서울시장 재·보궐선거가 시행된 서울의 한 투표소에서 한 시민이 자녀와 함께 투표를 하고 있다.(이 사진은 특정 인물과는 관계 없습니다.) | 연합뉴스

나씨는 사회 현안에 관심이 많다. 언론 보도도 그대로 믿기보다 선별해서 받아들인다. 현재 활동하고 있는 온라인 커뮤니티와 트위터가 주요 준거집단이다. 지난해에는 반값등록금과 한·미 FTA 문제에 특히 관심이 많았다. 퇴근길에 반값등록금 집회를 찾았고,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추진한 한·미 FTA 반대 광고 모금에도 참여했다.

 

누가 봐도 적극적인 정치 참여다. 그러나 4년 전만 해도 달랐다. 나씨는 2008년 18대 총선 당시 투표소에 가지 않았다. 지지하는 정당도 없었고, 후보들에게 관심도 없었다. 자신의 삶과 정치가 무관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나씨가 불과 2년 만인 2010년 6·2지방선거부터 소극적 투표자에서 적극적 투표자로 돌아섰다. 나씨의 친구들 중에서도 나씨와 같은 적극적 투표자가 늘었다. 2008년 18대 총선 당시 30대 투표율은 35.5%에 불과했지만 2010년 지방선거에서는 46.2%로 상승했다.

 

나씨가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2008년 촛불집회다. 촛불집회를 통해 나씨는 자신의 삶과 정치가 무관한 것이 아니라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아이를 키우는 나씨에게 식품안전은 중요하고 민감한 문제였다. 학교 급식에도 들어가는 미국산 소고기가 제대로 된 합의와 검증 없이 들어온다고 생각하니 걱정이 됐다. 하지만 정부와 일부 언론은 이러한 엄마들의 우려를 선동과 괴담의 문제로만 바라봤다. 나씨는 분노했다.

 

촛불집회 거치며 정치관심 높아져

 

나씨에 비해 남편의 반응은 회의적이었다. 이미 정부에서 결정한 만큼 돌이키기는 어렵다는 것이었다. 괜히 유난 떨지 말라는 남편의 말이 나씨에게는 패배주의처럼 느껴졌다. 나씨는 뜻이 맞는 친구들과 함께 난생 처음 집회에 참여했다. 집회 참여 이후 ‘정치 효능감(political efficacy)’이 생겼다. 자신의 정치행위가 정치과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확신이 생긴 것이다. 유모차 부대에 함께하기도 했다. 정부가 여성과 아이들을 향해 물리적 폭력을 행사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유모차 부대를 향한 “밀어버려라”는 경찰의 방송은 나씨가 미처 체감하지 못했던 권위주의의 목소리였다.

 

나씨는 소위 X세대라고 불리는 세대였다. 정치·경제적 질곡에서 해방된 첫 세대인 셈이다. 나씨는 수업이 끝나면 주로 압구정동 로데오거리와 홍대 록카페에서 시간을 보냈다. 이념 성격이 강한 학회에 몇 차례 참석했지만 이내 발길을 끊었다. 집단적이고 권위적인 운동권 문화와 개인적이고 자율적인 자신의 성향이 안 맞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386세대가 학생회라는 조직 중심의 운동에 익숙했다면, X세대인 나씨와 친구들은 자신의 취향과 필요에 따라 모이고 흩어졌다. 개인주의적이고 자율적인 문화에 익숙한 나씨에게 촛불집회에서 보여진 정부의 권위주의적 태도는 정부에 대한 불만을 고조시켰다.

 

사실 불만은 이전부터 누적돼 있었다.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사회생활은 버거웠다. 나씨가 대학을 졸업한 해는 1998년으로 IMF 외환위기 직후였다. 취업한파에 구직시장이 얼어붙었다. 2~3년 위의 선배만 해도 졸업과 동시에 취업은 당연한 일이었다. 취업난은 나씨에게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친구들 중 몇몇은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다. 1998년 9급 공무원 시험 경쟁률은 80대 1까지 치솟았다. 가까스로 취업에 성공한 친구들도 몇 달 만에 정리해고를 당해 학교로 돌아왔다. 정규직 일자리는 씨가 말라 있었다. 비정규직이 된 나씨는 1~2년을 주기로 직장을 옮겨야 했다.

 

경제적 빈곤에 대한 두려움 커져

 

나씨는 미래가 불투명한 만큼 쓰지 않고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 그러나 펀드에 투자한 돈은 2008년 금융위기에 반토막이 났다. 치솟는 전셋값을 감당하지 못해 지난 5년간 두 차례 이사를 했다. 좀 더 작은 집으로, 좀 더 변두리로 옮겨갔다. 나씨는 자신을 서민층이라고 생각한다. 중산층으로 도약할 수 있다는 희망은 보이지 않고 빈곤층으로 추락할 수 있다는 불안감만 쌓이고 있다. 2011년 동아시아 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30대 중 자신을 하위계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10명 중 6명 꼴이었다. 한국 사회에서 계층 상승의 기회가 열려 있다는 주장에 10명 중 8명이 공감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나씨는 이번 선거에서 누구를 선택했을까. 나씨와 나씨의 친구들 중 현 정권에 지지나 공감을 표하는 사람은 없다.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가 2011년 2월 30대 여성 100여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30대 여성의 80%가 한나라당에 부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그렇다고 나씨가 민주통합당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한나라당이 싫지만 민주통합당도 마음에 들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2010년 9월 EAI·한국리서치의 조사에 따르면 30대는 최우선 국정과제로 ‘경제적 양극화 완화’(32%)를 꼽았다. 2012년 4월 11일 나씨의 선택 기준도 바로 이것이었다.

 


 

참고자료 : 동아시아연구원, <안티 한나라당 세대, 30대의 정치행태 분석: 3불(불만, 불안, 불신) 세대의 부상과 정치적 함의>, 정한울 / 조선일보(2011.05.28), <30대 여성 80% “한나라 싫다”…수도권 주부 경제실망감 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