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내일시론] 절망하는 대한민국

  • 2011-12-28
  • 안찬수편집위원 (내일신문)

올 한해 우리 사회를 가장 압축적으로 표현한다면 '절망'과 '분노'라는 두 단어일 것이다. 통계청의 2011년 사회조사 결과는 절망하는 대한민국의 단면을 보여준다. 통계에 따르면 "나는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가구주는 52.4%다. 1988년 관련 통계를 만들기 시작한 후 가장 낮은 수치다. 중산층의 불안이 희망의 포기로 이어지고 있다. 사실상 대한민국의 허리가 무너져내리고 있다.

 

지금은 그렇다 치더라도 우리 자식 세대는 어떨까. '일생 동안 노력한다면 자녀 세대의 계층 상향 가능성 있느냐'라는 질문에 대해 41. 7%만이 '가능성이 크다'고 답했다. 국민들의 의식이 희망의 포기를 넘어 좌절로 이어지고 있다.

 

국민들을 절망하게 하는 것은 '20대 취업' '30대 보육' '40대 노후 준비'에 이르기까지 우리 삶의 주요한 고비들마다 희망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계층상승 꿈 멀어지고 경제발전 희망도 사라져

 

한국은 6·25전쟁의 잿더미 속에서 민주주의와 경제성장의 기적을 한 세대 안에 이룬,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놀라운 성취를 한 나라다.

 

부모세대가 끼니를 굶어가며 허리띠를 졸라매고 아들딸들을 교육시켰던 에너지가 바로 기적을 이룬 배경으로 꼽힌다. 한국전쟁 이후 부모세대들은 '나는 못 살더라도 자식에게만은 꿈을 이루게 해주고 싶다'는 계층상승의 기회를 교육을 통해 마련했다.

 

그리고 자식세대들은 1987년 6월 민주항쟁과 7·8월 노동자 대투쟁을 통해서 민주주의를 쟁취하고 경제발전과 시장경제의 토대를 착실히 쌓아나갔다. 이를 계기로 내수시장이 커지고 한국경제는 발전을 거듭했다.

 

민주화 정부 10년 동안 한국 경제는 국민소득 2만달러, 국내총생산(GDP) 세계 15위권의 선진국 문턱에 도달하는 성과를 이루어냈다. 그 과정에서 국민들은 '일생동안 열심히 노력한다면 나도 중산층이 될 수 있다'는 꿈을 가지고 살았다.

 

그러나 이제 이런 계층 상승의 꿈은 점점 멀어지고 있다. 계층 상승의 사다리 역할을 했던 교육은 사교육비의 증가로 이제는 오히려 계층의 이동을 가로막는 차단막이자 걸림돌이 되고 있다.

 

경제가 발전하고 도약하리라는 희망도 사라진 지 오래다. 오히려 일본의 '잃어버린 10년'과 같은 장기 저성장의 어두운 그림자가 짙게 드리우고 있다.

 

이제 국민들의 좌절과 절망은 서서히 분노로 바뀌고 있다. 2007년 대선에서 '경제 대통령'을 믿었던 다수의 국민들은 자신들의 생활고와 미래 불안이 커진 것은 집권여당과 MB정부에 상당 부분 책임이 있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미국발 금융위기를 일으킨 1%에 해당하는 탐욕스러운 금융자본에 대한 분노가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시위로 번진 것처럼 우리나라 국민들도 가슴속에 '분노의 촛불'을 다시 켜기 시작했다.

 

분노의 촛불의 중심에는 2040세대가 있고 그 중에서도 3040세대가 핵심으로 자리잡고 있다. 통계청의 사회조사 결과 본인과 자식세대의 계층상승 가능성을 가장 부정적으로 보는 세대들이다.

 

동아시아연구원(EAI)의 사회계층 인식조사에서도 30대의 79.7%, 40대의 64. 6%가 '계층상승의 기회가 닫혀 있어 미래가 불안하다'고 답해 부정적인 인식을 드러냈다.

 

'창조적 파괴'로 중산층 등의 분노에 답해야

 

큰 기대는 큰 분노를 낳는다고 했다. MB정부는 출범 당시 '국민 성공시대'라는 구호를 내걸었다. 그 구호는 '친서민 중도실용'(2009년)을 거쳐 '공정사회'(2010년), '공생발전'(2011년)으로 변화했지만 국민들의 체감 행복도는 오히려 떨어져갔다.

 

국민들의 분노는 선거를 통해 '응징'으로 표출된다. 가끔 이들의 분노는 집권 여당과 현 정부의 범위를 넘어서 답답한 구태 정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기성 정치권 전체를 향해 표출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나라 정치권은 여든 야든 슘페터가 말하는 '창조적 파괴'를 거쳐 다시 태어나지 않는 한 분노한 국민들의 심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창조적 파괴'의 첫 걸음은 중산층·중간세대·중도층의 분노에 답하는 사회개혁의 비전과 실천을 보여주는 길이다. 그래서 나라의 장래에서, 자식세대의 미래에서 다시 희망의 불꽃을 보게 만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