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친서민 '좌(左)클릭'과 '표(票)퓰리즘'

  • 2011-07-13
  • 변상근논설고문 (조세일보)
새로 출범한 한나라당 지도부가 '중도(中道) 좌클릭'으로 방향을 확실히 잡았다.

 

지난 10일 홍준표 대표 주재로 열린 최고위원·정책위 연석 워크숍에서 대학 등록금 부담완화와 대·중소기업 상생방안을 계속 추진함은 물론, 'MB노믹스(이명박 대통령 경제 정책)'의 핵심이었던 법인세 추가감세(減稅)도 철회하기로 결정했다.

 

끝장토론이 될 것이란 당초 예상을 깨고 이날 회의는 의외로 순조로웠으며 사안에 따라 1~2명이 반대했을 뿐 거의 만장일치로 결정된 것으로 전해진다.

 

홍준표 대표는 "서민이 갈망하는 민생개혁을 속도감 있게 추진해야 한다"면서 "당이 민생현장 최전선에 서서 청와대와 정부를 선도하고 정책을 주도해 나가야 한다"고 역설했다. 당·정·청 간 긴밀한 정책협의를 전제하면서도 "필요에 따라서는 당에서 논의한 내용이 정부 정책에 우선하도록 강력히 요구하겠다"고 선을 그었다.

 

내년 총선을 책임질 지도부로서 청와대보다 민심에 더 귀를 기울이겠으며 이 과정에서 청와대 및 정부와의 마찰도 감수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표를 의식한 무책임한 '표(票)퓰리즘'이란 중진의원들의 견제와 친이(親李)계의 반발, 그리고 청와대의 유보 등 충돌요소는 만만치 않다. 그럼에도 중도를 향한 좌클릭은 비록 수위 및 속도조절은 있을지언정 이미 되돌릴 수 없는 흐름으로 굳혀지는 분위기다.

 

홍 대표 스스로 '진보적 보수주의자'로 자처하며 아예 '우파 포퓰리즘'을 내걸었다. 국가 재정을 어렵게 만드는 좌파 포퓰리즘과 달리 헌법에 근거를 둔 '좋은' 포퓰리즘이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반값 등록금, 전·월세 상한제, 비정규직 대책 등이 그 대표적 예다.

 

평소 '정의가 강물처럼 도도히 흐르는 사회'라는 표현을 즐겨 쓰는 그는 "나를 당 대표로 뽑은 것 자체가 한나라당의 변화"라고 스스로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당 서민정책특위 위원장을 맡아 친서민 정책 개발에 주력해온 만큼 정권 후반기 그가 이끌 여당은 재벌이나 고소득자와 같은 기득권층의 이익보다 서민과 사회적 약자의 아픔을 대변하는 데 집중할 것으로 예상된다. '좌클릭'의 깜박이는 이미 켜진 상태다.

 

게다가 전당대회에서 홍준표 대표에 이어 2위로 지도부에 입성한 친박(親朴)계 유승민 최고위원은 무상급식과 감세철회 등을 '좌파 포퓰리즘'으로 비판하는 당내 구주류와 일부 중진의원들을 향해 "모든 국민들이 한나라당에 등을 돌릴 때까지 '보수' 타령만 하면서 기다려야 하는지 분명한 답을 해야 한다"고 다그쳤다.

 

자신의 정책행보에 서슴없이 '좌클릭'이라는 단어를 쓰는 그는 박근혜 전 대표와 교감이 이뤄진 것이냐는 물음에는 "각론과 용어 모두 확인하지는 않았지만, 복지확대정책이란 큰 틀에서는 박 전 대표도 저와 뜻이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지난 5월 이후 한나라당 노선에 변화의 드라이브를 걸어 온 황우여 원내대표와 이주영 정책위원회의장은 그동안 한나라당과 이명박 정부가 펼쳐 온 친서민정책이 국민들의 피부에 와닿지 않아 더 다가가자는 차원에서 민생을 돌보는 정책을 적극 펼치자는 것이라며 이는 이념적으로 생각할 문제는 아니라고 반박한다.

 

'좌클릭'이 아니고 친서민정책에 충실할 뿐이라며 노선변화를 계속 밀어붙일 태세다. 이래저래 한나라당 발(發) 좌클릭 정책들이 쏟아져 나올 판이다.

 

한나라당이 국민들 환심 사기에 급급해 본분을 망각하고 '민주당화'하면 그 결과는 '민주당 2중대'로 자멸밖에 없다는 보수단체들의 비판도 거세지고 있다. 하지만 한나라당의 노선변화는 선택이 아닌 당의 생존이 걸린 문제라는 점에 사안의 심각성이 있다.

 

4·27재보선을 앞두고 당의 싱크탱크 여의도연구소가 30대 여성을 상대로 한 포커스그룹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70~80%가 한나라당에 등을 돌린 것으로 나타나 충격을 던진 바 있다.

 

수도권 젊은 주부들의 불만은 분당재보선에서 그대로 재현돼 30대의 72%가 민주당 손학규 후보에게 표를 몰아주었다. 30대 유권자들의 경우 62.7%가 상대적 박탈감을 심하게 느끼고 있고, 계층상승기회가 열려있다고 생각하느냐는 물음에는 79.7%가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는 조사도 뒤따랐다.

 

양극화가 갈수록 심화되는 현실에서 현재 한나라당의 정책노선으로는 이들을 달랠 길이 없게 된 것이다.

 

더구나 전체 유권자 가운데 스스로 정치적 성향을 '보수'라고 생각하는 보수층은 30%에 불과하다는 조사결과(동아시아연구원과 한국리서치)도 나왔다. 한나라당 신주류의 좌클릭은 정체성의 문제가 아닌 생존전략 차원의 문제라는 얘기다.

 

기존의 보수색채만으로는 내년 총선과 대선을 치르기는 쉽지 않고 중도로 가야 집권할 수 있다는 쪽으로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지만 문제는 그 방법이다.

 

당의 새로운 비전으로 '따뜻한 시장경제', '조화와 통합의 공동체주의', '서민이 행복한 나라' 등이 거론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부자정당의 이미지를 떨쳐내고 '중산층 서민의 정당'을 표방하는 민주당 못지않게 친서민 이미지를 갖추겠다는 뜻이다.

 

'큰 시장, 작은 정부'라는 정강정책 기조도 사회양극화 해소, 공정성·투명성 확보 등 시장경제 역기능 해소를 위해 정부 역할을 강화하는 쪽으로 손질한다는 얘기들도 나돈다.

 

현재 한나라당의 위기는 진정한 보수이념의 부재가 근본 원인이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시대가 변하면 보수의 기준도 달라져야한다. 보수의 가치를 지키고 키워나가려면 시대에 맞게 스스로를 부단히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변화를 거부하는 보수는 곧 수구(守舊)로 전락한다.

 

한나라당은 지금까지 자유주의와 시장경제 가치를 적극 설파하는 노력을 게을리 했고, 보수가치를 더럽히는 탐욕과 부도덕성을 도려내는 일에는 더더구나 인색했다. 보수는 '수구꼴통'으로, 진보는 '좌익빨갱이'로 극단적 대립만 조장했을 뿐 진정한 중도우파와 중도좌파가 들어 설 자리는 없었다.   

 

우리는 경제상황에 따라 어떤 때는 모두가 보수주의자가 됐다가, 또 어떤 때는 모두가 진보주의자가 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좌우이분법을 넘어 자유와 평등, 이 두 요소를 현실정책에 적절히 배합하며 공동선(共同善)을 실현하는 쪽으로 자본주의는 진화하고 있다.

 

민생을 돌보는 데 좌와 우, 보수와 진보가 따로 없다. 시대적·국민적 요청에 따라 공화당과 민주당, 보수당과 사회당이 번갈아 집권을 하는 미국이나 유럽의 민주주의가 그 산 증거다.

 

한나라당이 살 길은 '수구꼴통'의 이미지를 청산하고 개혁적 중도 진영을 포용하며 외연(外延)을 넓혀 우파정당으로서의 일관된 정체성을 새롭게 정립할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

 

당이 제대로 변하려면 당내 계파는 물론이고 정·청도 함께 움직여야 한다. 그래야만 변화를 위한 여권전체의 진정성이 담보될 수 있다.

 

홍준표 대표를 비롯한 새 지도부가 이를 이끌어낼 수 있는 지가 초미의 관심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