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조선데스크] '두 마음'의 유권자

  • 2011-05-20
  • 홍영림오피니언부차장 (조선일보)
작년 6·2 지방선거 직전에 동아시아연구원이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는 언뜻 이해가 가지 않았다. 경남도민 대상의 조사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50.3%로 고공(高空)비행 했지만, 선거와 관련해선 '대통령과 여당의 독주를 막기 위해 야당을 밀어줘야 한다'는 견제론(44%)에 대한 공감이 '안정적인 국정운영을 위해 여당을 밀어줘야 한다'는 안정론(33%)보다 우세했다. 이런 현상은 수도권과 강원·충청 등에서도 나타났고 결국 여당은 곳곳에서 패배했다.

 

최근 내년 대선과 관련한 여론조사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보인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독주하면서도 정권 교체에 대한 욕구가 높다는 점이다. 지난 12일 미디어리서치 조사에서 대선후보 지지율은 박 전 대표(34%)가 압도적 선두였지만, '만약 대선에서 한나라당 후보와 야권의 단일후보가 대결한다면 누구를 지지하겠는가'란 질문에는 야권(40%)이 한나라당(32%)보다 높았다. '모르겠다'(28%)까지 포함하면 대다수(68%)가 정권 재창출의 필요성을 못 느끼고 있었다.

 

일각에선 "여론조사가 틀렸다"는 반응이 나왔다. "대통령 지지율이 너무 높게 측정됐다. 50% 지지율의 대통령이 왜 심판을 받는가" "박 전 대표를 지지하면서 정권 재창출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것이다. 미디어리서치 조사에선 이렇게 '말이 안 되는' 유권자가 박 전 대표를 포함해서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문수 경기지사 등 한나라당 후보 지지층의 무려 절반가량(48%)이었다. 하지만 많은 학자는 여론조사가 틀린 게 아니라고 말한다. 일차원적 시각으로는 박 전 대표를 지지하면서도 정권 교체에 공감하는 사람들을 이해하기 어렵지만, '인물로는 박근혜, 정당으로는 야당'을 지지하는 다차원적 속성의 유권자들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런 상충적(相衝的) 태도를 가진 유권자, 즉 '두 마음'의 유권자는 지난 대선에선 2002년에 노무현 전 대통령을 찍었다가 실망한 진보층에서 많았고, 이번엔 2007년에 이명박 대통령을 찍었다가 실망한 보수층이 대부분이다. 이들은 사안과 상황에 따라 합리성과 설득력 등을 따져 자신의 선호를 결정한다. 풍부한 경험과 정보 속에서 지지할 곳을 신중하게 찾고 있는 유권자들이기 때문에 지지할 후보나 정당을 끝까지 정하지 못하고 두리번거리는 부동층(浮動層)과는 다르다.

 

30·40대 고학력층이 다수 포진한 상충적 유권자들은 작년 지방선거와 올해 4월 재·보선에서 야당의 승리에 기여했다. 지난 대선까지는 야당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던 이들이 이제 와서 야당을 선택한 것은 "경제 잘하라고 (한나라당을) 뽑아줬는데 왜 이렇게 살기 힘드냐"는 불만 때문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따라서 '여당의 패배'이지 '야당의 승리'가 아니라는 분석도 있다.

 

'두 마음'의 유권자들은 정치적 선택뿐 아니라 선호하는 정책도 상충적이다. 예를 들면 대북 안보와 관련해선 강경책을 원하는 보수 성향이지만, 경제적으로는 성장보다 복지와 분배에 더 관심이 있다. 정책의 내용뿐 아니라 소통 의지와 방식도 중요시한다. 그리고 이념적으로 오른쪽 또는 왼쪽 끝에 서 있는 '꼴통'을 매우 싫어하는 게 특징이다. 이들은 전체 유권자의 25% 안팎으로 조사된다. 전체 선거 판세를 움직이고도 남을 규모다. 이념적 유연성이 내년 선거의 중요 가치 중 하나일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것도 이들의 영향력을 주목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