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1주기 기획-우리에게 남겨진 것은>청년층 안보의식 변화
북에 대한 두려움 커져 ´핵무장론´ 부활…´카더라´ 의혹제기 여전
“한국 정부가 사고해역에서 인양된 어뢰부품과 침몰한 선체로부터 흡착된 흰색 물질을 채취, 알루미늄 산화물이라고 밝혔지만, 몇몇 재미과학자들로부터 반론이 있었습니다. 실제 한 공영방송사에서는 자연상태의 바닷물에서 생성된 물질일 가능성이 높다는 실험결과를 방영했습니다. 그럼에도 흡착된 알루미늄 산화물이 어뢰 폭발의 증거라는 결론을 지지합니까?”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가 천안함 1주기를 맞아 주한 미국 대사에게 보내는 질의서 중
2010년 3월26일. 예상치 못했던 비보에 전 국민은 충격을 받았다. 해군초계함 ‘천안함’이 갑작스럽게 침몰했기 때문이다. 한국전쟁 발발 60주년이 됐지만, 최근 들어 이토록 북한의 위협을 피부로 실감하기는 처음이었다.
천안함 폭침은 우리사회에 만연한 안보불감증을 재점검하고 안보의식을 강화시키는 계기가 됐다. 특히 11월에 연평도 포격 도발이 이어지면서 안보의 중요성에 공감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한국자유총연맹 연구원이 지난 9일 발표한 ‘국민 안보의식’ 조사결과에 따르면 73.5%의 응답자가 북한의 안보 위협을 느끼는 것으로 조사됐다. 2008년 전쟁기념사업회 조사에서 ‘두렵다’는 응답이 69.6%였던 것과 비교하면, 소폭 상승한 것이다. ‘북한 = 주적’ 개념 부활에도 응답자의 59.0%가 찬성했다.
행정안전부가 지난해 6월 6.25 60주년을 맞아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응답자의 61%가 북한을 ‘경계 또는 적대 대상’으로 보는 것으로 나타났다. 북한에 대해 안보위협을 느끼는 응답자가 전년 대비 22%p나 오른 셈이다.
동아시아연구원(EAI)의 여론조사 역시 달라진 안보의식을 반증한다. 2009년 ‘안보불안을 느낀다’고 답한 국민들은 24.5%에 불과했지만, 천안함 폭침 직후인 지난해 4월에는 66.8%로 껑충 뛰었고, 올해 2월에도 68.2%를 기록했다. 북한에 대한 제한적 군사조치에 찬성하는 응답자 역시 28.2%에서 68.6%로 늘어났다.
안보에 대한 불안감은 한미동맹의 중요성, 안보교육의 필요성 등으로 이어졌고, 일각에서는 ‘핵개발론’이 제기됐다.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와 김동길 연세대 명예교수를 비롯한 보수우파 성향의 몇몇 인사들은 ‘한반도 핵무장론’을 주장했다. 과거라면 전쟁위협에 대한 공포로 비난을 받았을 주장이지만, 수긍하는 분위기마저 감지된다. 지난 3일 애국단체총협의회 주최 안보심포지엄에서는 학자들에게서 “북핵으로 인한 군사력의 비대칭성을 극복하기 위해선 한국도 핵개발 등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화해·협력의 대상으로서 북한을 우호적으로 보던 시각이 지배적이었던 3년 전에는 외면당했던 북한 인권에 대한 관심도 덩달아 높아졌다. 북한 인권단체들이 청계광장 등 서울 도심에서 거리사진전을 개최하는 등 관심을 환기시키려 했지만 기대 이상의 효과는 거두지 못했었다. 그러나 지난달 한동대 북한인권동아리 ‘세이지’가 서울 관훈동 가나아트스페이스에서 연 북한정치범수용소 전시회에는 1만5000여명의 관객이 몰렸고, 거듭된 연장 요청에 다시 2주 가량 전시회를 진행했다. 관람객의 80%이상이 젊은층. 연인끼리 손을 맞고 전시회를 관람하는 진풍경도 펼쳐졌다.
그러나 천안함 폭침 이후 1년, 천안함 자체만 놓고 본다면 국가안보 대신 진실공방에 가려졌었다. 연평도 포격 도발이 없었다면 천안함은 끊임없는 의혹제기와 조작론으로 좌초될 지경에 놓였던 탓이다.
3대세습 등을 위한 북한의 도발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남북관계 경색에 대한 걱정보다 눈앞에 다가온 위협에 두려움을 느끼는 국민들이 늘어났다. 한국자유총연맹 연구원의 설문조사 결과, ‘북한 때문에 다른 나라로 도피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진 응답자가 35.6%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해병대 연평률 경쟁률이 올 1월 4.5대1로 상승한 것은 이같은 ‘두려움’을 역으로 반증하는 셈이기도 하다.
이처럼 두려움의 크기가 커질수록 천안함을 둘러싼 논의는 점차 본질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사전에 공격을 감지하지 못했느냐는 비판은 ‘선거용 북풍’ ‘우리 해군의 기뢰에 의한 좌초’ 등 의혹제기로 변질됐다. 인터넷에서는 여과되지 않은 정보들이 쏟아졌다. 소위 ‘카더라’ 의혹제기로 인해 급기야 ‘조작론’까지 나오기에 이른다.
북한과 관련된 문제에서 그러했듯 햇볕정책의 당위성이 다시 거론됐고, 북한이 했다는 증거가 어디 있느냐는 반박이 나왔다. 민군합동조사단의 조사결과는 ‘신뢰할 수 없다’고 외면했고, ‘천안함의 진실’이라는 제목의 동영상이 인터넷에 떠돌았다. 의혹을 제기하고 민군합동조사단의 보고서를 반박하는 토론회가 이어졌다.
진보좌파 성향의 시민사회단체들, 특히 종북적 성향을 보였던 단체들은 ‘보다 확실한 증거’를 요구하며 노골적인 의혹제기에 목소리를 높였다.
참여연대와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평통사)은 ‘NGO로서의 의무’와 ‘통상적인 업무의 연장’을 주장하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이사국에 ‘천안함 재조사’를 요구하는 서한을 발송했다.
참여연대는 ‘국제사회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며 장문의 ‘천안함 이슈리포트’를 내기도 했다. ‘누구나 제기할 수 있는 상식적인 의문점’을 물리·화학·공학 등에서 전문성을 지닌 인사들이 참여해 정리했다는 이 리포트는 알루미늄 산화물, 물기둥 등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고, 민군합동조사단의 전문가들에 대해서도 불신을 드러냈다.
진보좌파의 천안함 뒤흔들기의 여파는 크고 깊었다. 보수-진보의 갈등이 심화돼 남남갈등의 골을 깊어졌다. 참여연대 앞은 한 동안 보수우파 단체들의 항의시위로 몸살을 앓았다.
인터넷에서는 북한을 객관적으로 바라보자는 의견이 ‘빨갱이’로 치부되기도 했다. ‘북한의 사이버전일 가능성이 있으니 이상한 댓글은 캡처 후 국정권에 신고하자’는 농담같은 말들과 ‘실제로 신고했더니 기념품이 왔다’는 후기가 부쩍 늘었다.
1주기를 앞두고 천안함 의혹을 제기하는 토론회와 강연회도 추모행사만큼 다양하게 진행되고 있다. 미국 배후설, 정부의 자작극 등 ‘음모론’도 다시 불붙었다. 미 버지니아 공대 이승헌 교수, 신상철 서프라이즈 대표 등 진보좌파측 ‘전문가’들은 “과학자의 양심” “진실을 밝히기 위한 노력”이라며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국제사회에 재조사를 요구하는 서한을 발송해 ‘국격 훼손’ 논란을 불러왔던 참여연대도 22일 다시 서한을 발송했다. 이번에는 ‘한국사회에 공신력을 주는’ 미국과 진보좌파 매체들이 ‘이견이 있는 듯 하다’고 했던 스웨덴이 대상이다. 민군합동조사단의 공정성에 대한 의구심이 ‘조사결과에 대한 확신을 보여줄 것’으로 달라졌을 뿐, 불신이 곳곳에 드러났다.
참여연대는 이 서한에서 △미국과 스웨덴이 조사단에서 한 역할과 임무를 밝히고 △각 국이 맡은 조사부분은 ‘실제 자국 정부가 지원한 조사결과에 입각한 것인지’ △천안함 조사과정에 투명하게 이뤄졌는지 △참여연대의 질의에 답하기 위해 정보 공개를 한국 정부에 요청할 수 있는지 △당시의 조사결과를 지지하는지 등을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