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 양당 증오 정치로 갈등 유발…국민 분열 가속화
시민단체 "정치권 이미 기득권화…정치적 구조 문제"
"김문수 후보는 '윤석열 아바타'다. 김 후보가 당선되면 '상왕 윤석열'이, 즉 반란수괴가 귀환한다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다."(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 "전혀 근거 없는 말씀이다. 이재명 후보야말로, 부패, 부정, 비리 범죄의 우두머리라는 비판을 벗어날 수 없다."(김문수 국민의힘 후보)
지난 27일 밤 마지막 대선 TV 토론에서 나온 발언이다. 거대 양당의 두 후보는 국민이 생중계로 보는 토론의 장에서 원색적인 말을 주고받았다. 특히 '정치' 분야를 주제로 진행된 토론의 첫 주제는 사회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정치 양극화 해소 방안이었다. "소통과 대화로 협치를 복원하겠다"(이 후보), "통합의 정치를 하겠다"(김 후보)라고 공언한 것이 무색하게도 이들은 12·3 비상계엄과 사법리스크 등 상대의 약점을 파고드는 비방전에 열을 올렸다. 전형적인 네거티브 구태 정치를 답습하는 한국 정치의 단면을 드러낸 장면이었다.
한국 사회에서 정치 양극화는 이미 위험수위로 진단된다. 보수와 진보라는 정치이념에 따라 편을 가른 세력은 상대를 적대시하고, 경쟁 상대를 헐뜯고 음해는 선거 때마다 반복된다. 이번 대선도 마찬가지다.
특히 정치권이 경기 부진과 빈부 격차, 비정규직 노동자 증대, 교육 불균형, 저출생·고령화 등 사회 양극화와 경제 불평등을 바로잡아 국민통합에 일조하기는커녕 오히려 국민 분열을 가속화하고 있다. 통합을 강조하지만 당위론에 그치고 있다. 사사건건 대립하며 갈등을 빚고, 결국 국민통합을 저해하고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 당리당략을 우선시하며 상대만 깎아내리는 식의 '그들만의 경쟁'에선 어떤 통합의 의지도 찾아볼 수 없다.
국민도 지지하지 않는 정당에 대한 반감이 크다. 비영리 민간 싱크탱크인 동아시아연구원(EAI)이 지난 3월 발표한 '2025 양극화 인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양당에 대한 비호감도는 더불어민주당 54.1%, 국민의힘 68.7%로 조사됐다. 4년 전보다 각각 10.4%포인트, 20.9%포인트 증가한 수치다. 특히 국민의힘 지지자와 민주당 지지자의 상대 정당에 대한 비호감도는 각각 93.5%, 94.6%에 달했다.
아울러 전체 응답자의 57.8%가 1년 뒤 정치권 갈등이 더욱 심화될 것으로 전망했다. 응답자의 19.7%는 "완화될 것이다", 22.5%는 "변화 없을 것이다"라고 봤다. (한국리서치가 1월 22일부터 이틀간 웹조사 방식으로 전국 성인 남녀 1514명을 상대로 조사, 응답률 20%,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2.52%포인트).
정치 양극화는 우리 정치의 제도에서 비롯했다는 지적도 있다. 국회미래연구원이 지난해 9월 내놓은 '정치 양극화의 실태와 개선방안' 보고서는 "정치 양극화는 정치 엘리트와 정당 활동가 및 강성 지지자 등 정치 고관여층에 있다"고 짚었다. 연세대학교 산학협력단의 '국민통합을 위한 정치리더십과 헌정제도'(2020년) 보고서도 "한국의 헌정 구조와 정치제도의 조건에서는 문제해결 역량이 낮고 갈등 지수가 높은 것은 지극히 당연한 현상"이라고 꼬집었다.
이광재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사무총장은 29일 <더팩트>와 통화에서 "정치권은 늘 갈등 공장이 되고 있다. 정치는 갈등을 조정하는 기능이 돼야 하는데 지금은 갈등을 증폭시키는 갈등 공장이 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정치 양극화 현상의 주요 원인에 대해 "(정치권이) 기본을 무시하는 것을 꼽을 수 있겠다. 민주주의, 특히 대의민주주의의 기본은 선거에서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고 토론되고 합의되고 하는 과정이 가장 중요하다"며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고 토론되고 합의가 된다고 하는 건 결국은 정책을 중심으로 하는 선거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 대선을 한번 보시라. 정책 공약집이 사전 투표 선거 전날 나왔다. (각 정당이) 유권자들이 합의하고 토론할 수 있는 시간을 무시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사무총장은 "우리나라는 어떤 공동체가 훼손되더라도 '나는 표만 얻으면 된다'라고 지금 양극단으로 몰려가고 있다"라며 "유럽의 선거는 누가 뭐래도 히틀러나 무솔리니를 찬양하는 건 용인이 안 된다. 불법이다. 영국은 차별적 발언을 하면 무조건 불법이다. 이게 선거에서 합의된 내용이기 때문에 법으로 진행되는 것이다. 그래서 선거는 우리 공동체를 어떻게 지킬 것인가, 또 어떻게 미래로 나아갈 것인가를 논의하고 합의해 가는 과정이 돼야 하는데 모든 후보가 여기에 별 관심이 없다"고 주장했다.
협치가 실종된 상황 속에서 대화와 타협보다 증오와 혐오 정서를 부추기는 대결의 정치가 국민통합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에 힘이 실린다. 멀리 갈 것도 없이, 국민을 충격에 빠뜨렸던 12·3 비상계엄은 극단적 대결 정치의 폐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계엄 전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줄탄핵을, 민주당은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을 문제 삼으며 극한 대치를 이어갔던 대목이 이를 뒷받침한다.
서휘원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정치입법팀장은 "정치 양극화의 한 원인은 각 정당이 자기 진영만 바라보고 대결의 정치를 해온 점"이라며 "이미 기득권화가 돼 있기에 정당 간 정략적으로 공격해도 별로 아쉬울 게 없는 정치 구조적 문제가 있다"라고 짚었다. 이어 "국회 등 정치권이 극단적 대결 정치를 해도 선거 때마다 유권자들이 그냥 뽑아주는 구조가 유지되니까 각 정당이 굳이 통합과 화합의 정치를 지향할 이유가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 양극화는 왕왕 심각한 범죄로 발현되기도 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지난해 1월 지지자로 위장해 접근한 한 남성으로부터 흉기 피습을 당했다. 최근에는 온라인상에 이 후보에 대한 청부살인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이 후보는 방탄복을 착용하고 선거 유세를 벌이고 있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의 지역구 사무실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 폭발물이 설치됐다는 신고가 접수되기도 했다. 이뿐 아니라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는 2022년 3월 서울 신촌 선거운동 과정에서 70대 유튜버로부터 둔기로 머리를 가격당했고, 2006년 5월에는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 대표가 지방선거 지원 유세 도중 괴한에게 피습당했다.
정치 혐오 범죄는 사회적 갈등을 고조시키고, 종래엔 민주주의에 대한 신뢰 하락으로 연결되는 중대 범죄다. 극단적 분열의 정치가 정치 혐오를 부추긴 결과다. 분명 거대 양당을 중심으로 소모적인 정쟁을 지양하고 타협의 정치로 민생을 챙기자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정작 정치적 이익만을 추구하는 게 현실이다. 참여정부 시절부터 선거제 개편을 포함한 정치개혁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끝내 여야 간 합의가 불발됐던 것을 한 예로 들 수 있다. 현행 소선거구제는 정당득표율과 의석 비율의 불일치로 유권자들의 의사를 왜곡시키고 양당 체제를 고착화한다는 지적이 끊이질 않는다. 그렇기에 각 정당이 철저하게 기득권을 지키려는 경향이 짙다는 각계의 평가가 압도적일 수밖에 없다.
물론 정당 간 치열한 논쟁은 필요하다. 그러나 불필요한 이념 논쟁과 당파적 정쟁은 국민통합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자극적인 언행으로 민심을 자극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적대적 갈등의 정치의 청산에 대한 기대감은 낮다. 이언근 전 부경대 정치외교학과 초빙교수는 "한국 정치가 국익과 국민의 이익을 추구하지 못하는 건 전통적으로 타협하는 문화가 부족한 영향도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대통령이든, 국회든 권력을 가진 쪽에서 권력을 절제해 사용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분열의 정치가 완전히 없어지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