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 친서민·공정사회론 등 "중도 좌파 포용하는 보수로"
민주당… 黨강령서 중도 개혁 삭제 15년 만에 진보 노선 채택
여야(與野)가 모두 이념 스펙트럼을 왼쪽으로 한 클릭씩 움직이고 있다. 한나라당은 '친서민·중도 실용'을 국정 운영의 기치로 내세운 데 이어 최근엔 당 정체성을 아예 '보수'에서 '중도'로 수정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민주당은 지난 3일 전당대회에서 15년간 이어온 '중도 개혁'을 당 강령에서 삭제하는 대신 '진보' 노선을 적극 반영했다.
한나라당은 최근 여의도연구소 산하에 비전위원회를 두고 2012년 대선 및 총선을 대비한 당 정체성 수정 작업에 착수했다. 나성린 비전위원장은 4일 언론 인터뷰에서 "보수에 기반하지만 가능하면 종북(從北) 좌파를 제외한 중도 좌파까지 끌어안으며 중도 쪽으로 많이 나아가려고 한다"고 했다. 그는 이어 "비전위는 통일된 선진·복지국가를 목표로 개혁적 중도 보수 노선을 추구한다"며 당 강령 개정 방향의 윤곽도 밝혔다. 지금까지 한나라당을 상징하던 '보수' 노선 대신 민주당이 강령에서 버린 '중도'를 가져온 셈이다. 이 밖에 한나라당 내부에서 최근 의욕적으로 논의 중인 하위 70%까지 양육수당 지급, 은행 영업이익 10% 서민 대출 지원, 감세 기조 철회 요구 등 일련의 서민 대책은 오히려 야권에서 추진할 만한 '파격성'을 담고 있다.
민주당은 '포괄적 성장'을 강조해 당내 일부에서 우경화라고 비판했던 '뉴민주당 플랜'을 사실상 폐기하고 '좌향좌'로 방향을 틀었다. 새 강령 및 기본 정책은 민주당의 정통성 부분에 '국민의 정부'와 '참여 정부'의 성과를 계승한다는 점을 명시했고, '중산층과 서민의 정당'임을 강조했다. 10·3 전당대회에서도 후보자들도 '담대한 진보', '정의로운 복지국가', '민주 진보 대통합' 등을 내세워 진보 바람이 강했다. 손학규 대표는 '새로운 진보'를 앞세우며 '생활 중심 정치'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여야의 이 같은 변화는 지난 6·2 지방선거에서 진보 정당까지 포함한 야권 연대가 무상급식 등 진보적 이슈로 승리한 것에 자극을 받았다는 분석이다. 여권이 선점한 '친서민'과 '공정사회'란 국정 운영의 기치가 기존 보수 노선에 비해 '민심 친화적'이란 것도 영향이 있다. 동아시아연구원·한국리서치의 지난달 25일 조사에서 국민들은 한나라당과 민주당 모두 이념 성향을 현재보다 왼쪽으로 약간씩 이동하기를 기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여야의 이런 변화에는 모두 약점이 있다"며 "한나라당이 인위적이고 급격하게 이념 성향을 가운데로 옮기면 지지 기반이던 보수층의 외면을 받을 수 있고, 민주당도 반전과 반핵, 인권 등 진보의 핵심 가치를 외면한 채 구호 수준에서만 진보로 이동하면 성공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