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2일 저녁 7시 경기도 수원시 화서동에 있는 경기지사 공관. 널찍한 잔디 마당이 있는 하얀 2층 양옥 건물로 승용차에서 내린 사람들이 잇따라 들어갔다. 1시간 30분 동안 지켜본 결과 7~8명의 사람들이공관으로 들어갔다. 이 중에는 한나라당 의원들도 보였다. 수도권 초선인 K 의원은 주간조선 카메라 기자의 사진 촬영에 신경을 쓰며 자신이 공관에 들어가는 모습이 공개될까 우려하기도 했다.
김문수(59) 경기지사가 기거하는 공관에는 요즘 ‘밤손님’들로 북적인다. 김 지사의 낮 일정이 ‘살인적’이라 저녁 시간밖에는 면담 일정을 내지 못하는 탓도 있지만 남의 눈을 피해 밤에 김 지사를 면담하려는 한나라당 의원들도 적지 않다. 지난 7월 한나라당 경기도당 위원장에 취임한 후 ‘인사차’ 들른 심재철 의원(3선·안양시동안을)을 비롯해 수도권·비례대표 의원 중 K, S, N이 최근 관사를 다녀갔다. 영남권의 C 의원도 관사에서 김 지사를 면담했고 P 의원(수도권), J 의원(비례대표)의 경우는 중간에 사람을 넣어 김 지사와의 면담을 타진하고 있다고 한다. 다음 총선에서 김 지사의 힘을 빌리지 않을 수 없는 수도권 의원들이 주로 김 지사를 찾는 분위기지만 ‘무늬만 친박’인 영남권 의원들 중에서도 김 지사를 만나러 오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차명진(경기 부천소사)·임해규(경기 부천원미갑) 의원 등 소수의 직계 의원만을 둔 김 지사로서는 당내 세 확대를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측근인 차명진 의원은 “누구누구라고 얘기할 수는 없지만 김 지사를 만나고 싶어하거나 직접 공관으로 찾아가는 의원들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공관을 찾는 것은 정치인들뿐만이 아니다. 김 지사는 최근 386 주사파에서 전향해 뉴라이트운동을 이끌어온 홍진표 시대정신 편집인과 김영환 시대정신 편집위원 등 뉴라이트 인사들과 공관에서 저녁식사를 함께 하며 늦게까지 대화를 나눴다. 이 자리에서 김 지사는 “요즘 사람들이 찾아와 ‘리더십이 위기인데 당신밖에 없다. 나서야 한다’고 말하는데 솔직히 두렵다. 내가 조직이 있느냐 뭐가 있느냐. 지사 4년 한 것밖에 없다”는 요지의 발언을 했다고 한다. 김 지사의 이같은 발언은 실제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자신을 찾아와 ‘대권행’을 재촉하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김문수 지사는 지난 8월 초 6일간의 여름휴가를 다녀왔다. 보통 3일을 넘지 않았던 예년의 여름휴가와 비교하면 두 배나 긴 휴가를 떠난 셈이다. 김 지사는 직접 운전대를 잡은 차에 부인 설난영(53)씨와 외동딸 동주(28)씨를 태우고 ‘전국 순례’를 했다. 처가가 있는 전남 순천과 전북 군산의 새만금 현장, 경북 영주 부석사, 세종시 등을 돌며 1500㎞의 강행군을 했다. 가는 곳곳마다 트위터를 통해 자신의 동정과 단상을 올린 김 지사는 부석사에서는 “현판은 이승만 전 대통령 글씨”라고 강조했고, 새만금 현장에서는 “누가 대한민국을 좁다고 하는가”라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여름휴가 때 큰 결심?
▲ 지난 9월 2일 저녁 수원시 화서동 경기지사 공관에 사람들이 들어가고 있다. / 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
김 지사의 거침없는 언행과 관련해 측근들은 “김 지사가 여름휴가 때 뭔가 큰 구상과 결심을 한 것이 아니냐”는 해석을 하고 있다. 실제 김 지사는 “광화문광장에 이승만·박정희 동상을 세워야 한다”는 것과 같은 자신의 발언을 ‘돌출 발언’으로 보는 시각에 대해 “평소 자주 하던 얘기인데 왜 갑자기 이상한 식으로 해석하느냐” “할 말을 못하고 얄팍하게 하면 지도자가 아닌 정치꾼에 불과하다”며 소신 발언을 이어갈 작정임을 측근들에게 내비쳤다고 한다. 김 지사의 한 측근은 “김 지사가 지난 지방선거를 치르며 떠밀리듯이 대권주자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지만 이제 본인 스스로 대권 가도에 올라서는 것이 숙명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며 “경기도정에 전념하는 게 당장의 과제이지만 서서히 준비를 해 나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본인의 대권 결심 여부와 상관없이 ‘대권주자 김문수’는 요즘 들어 상승세다. 주위에 사람들이 몰리고 있고 지지율 상승도 주목할 만하다. 지난 8월 28일 동아시아연구원(원장 이숙종 성균관대 행정학과 교수)이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조사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김 지사는 차기 주자 지지율 조사에서 8.6%를 얻어 박근혜 전 대표(23.8%)에 이어 2위에 올랐다. 김 지사 뒤로는 유시민(7.6%), 한명숙(7.1%), 손학규(6.5%), 오세훈(5.5%), 정동영(3.8%) 순이었다. 지난 7월 같은 조사에서 박근혜(24.5%), 유시민(10.2%), 한명숙(9.1%), 오세훈(8.5%)에 이어 지지율 5위(5.3%)를 기록한 것과 비교하면 3계단이나 순위가 뛰어오른 것이다. 지난 3, 4월만 해도 2~3%대의 지지율에 머물렀던 것과 비교하면 눈에 띄는 상승세다. 이러한 지지율 상승에 대해 김 지사의 한 측근은 “최근의 발언들이 김 지사에 대한 보수층의 결집을 가져온 것 같다”고 분석했다. 실제 지난 7월 한국리서치 조사에선 한나라당 지지층만 따지면 오세훈 시장이 박근혜 전 대표에 이어 지지율(18.4%) 2위를 기록했고 김 지사는 3위(10.3%)에 머물렀지만, 이번 조사에선 거꾸로 김 지사가 17.5%의 지지율로 박근혜 전 대표에 이어 2위를 기록했고 오 시장은 12.2%로 3위가 됐다.
공관을 찾는 의원들의 예에서 보듯 “주위에 사람이 몰린다”는 말도 빈말이 아닌 상황이다. 한 측근은 “정치 브로커들도 있지만 진심에서 ‘같이 일하고 싶다’고 찾아오는 사람들도 꽤 있다”며 “하지만 김 지사가 사람을 쓰는 데 무척 신중한 편이라 쉽게 손을 내밀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 지사가 지난 지방선거를 거치며 위상이 달라진 것은 주변 측근들도 실감하고 있는 부분이다. 특히 이명박 대통령과의 관계에서도 주목할 만한 변화가 있었다고 한다. 과거 이명박 대통령에게 현안 보고를 하러 갈 때에는 대통령의 일정에 맞춰 급하게 약속이 이뤄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면담 시간도 30분에 불과했지만 지방선거 이후 ‘대우’가 달라졌다는 것이다. 예컨대 지난 7월 청와대에서 이명박 대통령을 면담했을 당시 사전에 서로 일정을 조율해 1시간30분간 시간을 냈는데 실제로는 배석자를 물리치고 3시간 가까운 대화가 이어졌다고 한다. 형식상 경기도 현안 보고 자리였지만 정작 현안은 이날 독대 후 따로 문서로 보고할 만큼 두 사람 간에 ‘다른 현안’을 놓고 심도있는 대화가 오갔을 것이란 추측이다.
이 대통령과 3시간 가까이 독대
본인은 ‘두렵다’고 표현하지만 김 지사 스스로 대권 준비와 관련해 자신감을 내보이는 듯한 발언도 하고 있다. 김 지사는 지난 8월 21일 대부도 청소년수련원에서 열린 ‘자유주의 정치포럼’ 워크숍에 초청받아 참석자들로부터 “현안에 대해 답을 준비하고 있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당시 김 지사는 자신이 대한민국의 미래와 관련해 고민하고 있는 주제를 △저출산 해결을 위한 보육·교육 문제 △고학력 청년백수들의 취업을 위한 일자리 마련 △중국 중심의 동북아 신질서 속에서 남북 문제를 해결하고 글로벌 선진국으로 발돋움하는 것 등으로 정리하며 “이 세 가지는 누가 다음에 리더가 되든 풀어야 할 시대적 화두다. 나도 이에 대해 공부하고 있고 나름대로 해법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당시 김 지사는 “참석자 중 청와대 모 행정관이 있으니 발언에 유의해 달라”는 측근들의 요청에도 아랑곳없이 오히려 “청와대에서 온 분이 있다는데 손 들어보세요. 언론에서 내가 자꾸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운다고 쓰는데 실제 그런지 잘 들어보라”고 말하는 등 거침없는 언행을 이어갔다고 한다.
사람이 몰리고 지지율이 오르고 있지만 김 지사의 대권 가도 진입은 아직 문턱을 막 넘었다는 것이 측근들의 말이다. 한 측근은 “본격적인 대선 캠프를 염두에 둔다면 10%의 그림도 그리지 못했다”며 “연말이 넘어서야 본격적으로 탄력이 붙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사실 김 지사 입장에서는 당장 본격적인 대권행보를 이어가는 게 상당한 부담일 수밖에 없다. 한나라당이 완패한 지난 지방선거를 치르면서 ‘낮은 곳에서 섬기겠다’며 도정 최우선을 강조해온 마당에 조급한 대권행보는 유권자들과의 신뢰에 금을 가게 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현재 ‘대권주자 김문수’와 함께 대권 가도에 올라선 ‘김문수의 사람들’은 오랜 기간 동지적인 관계를 유지해온 운동권 출신 중심의 이너서클 멤버들이다. 원내의 경우 차명진·임해규 의원이 대표적이다. 1990년 김 지사가 민중당 구로갑지구당위원장을 맡았을 때 지구당 사무국장을 맡아 함께 고락을 겪은 차명진 의원의 경우 김문수 국회의원 보좌관, 경기도지사 공보관, 김문수 경기도지사 후보 선대위 총괄실장 등을 거쳐 2006년 7·26 재보궐 선거 때 김 지사의 지역구인 경기 부천소사에 출마해 당선됐다. 재선인 임해규 의원도 민중당 시절부터 김 지사와 동지적 관계를 유지해 왔다.
김문수의 사람들이 모이고 있다
김 지사의 주변 인물들이 ‘운동권 출신의 동지들’이라는 점은 강점이자 약점으로 지적된다. 허심탄회하게 토론하고 끈끈한 유대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캠프를 본격적으로 확대할 경우 외부인사들의 수혈에 방해가 되는 벽이 될 수 있다는 단점도 있다. 한나라당의 한 중진 의원은 “김 지사는 우리 사회에서 일종의 비주류인 운동권 출신 측근들에게 둘러싸여 있는데 우리 사회 주류 인맥들과 어떻게 원활하게 소통하며 새 피를 수혈받는지가 앞으로의 관건”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김 지사의 정책 브레인으로는 이너서클 밖에 있던 전문가들도 하나씩 합류하고 있다. 예컨대 김 지사의 대표적 정책 중 하나인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아이디어를 낸 사람은 이한준 경기도시공사 사장이다. 그는 홍익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교통공학 전문가로서 김 지사의 정책을 돕고 있다. 또 한국개발연구원(KDI) 거시경제팀장 출신인 좌승희 경기개발연구원장과, 복지부 장관을 지낸 서상목 경기복지미래재단 이사장 등도 정책 브레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월간조선 편집장을 지낸 김용삼 정책보좌관은 최근 메시지 관리 등의 역할을 맡기 위해 합류했다.
김 지사가 대권에 이르기까지는 넘어야할 장벽이 하나 둘이 아니다. 당장은 친이계 내부에서 이재오라는 벽을 넘어야 한다는 관측이 많다. 과거 민중당 동지로 남다른 친분을 유지해온 이재오 특임장관이 만약 ‘킹 메이커’가 아닌 ‘킹’으로 직접 나설 경우 두 사람 간의 대결은 불가피하다. 아직 지지율에서 한참을 앞서고 있는 박근혜 전 대표는 ‘김문수 진영’에서 마지막 장벽으로 여기는 분위기다. 김 지사는 평소 “이 대통령을 만날 때마다 ‘박 전 대표를 끌어안아야 큰 정치를 할 수 있다’고 권유한다”면서 박 전 대표의 역할과 위상을 인정한다는 입장이지만 박 전 대표와 한 번은 피말리는 승부를 펼칠 수밖에 없다. 대권 가도에 막 올라선 것으로 평가받는 김 지사가 어떤 궤적을 그리며 고지를 향할지 주목된다.
최근 주목받은 김문수 지사의 발언들
■ “우리도 내각제·이원제를 하자는 논의가 있지만 대통령제가 리더십이 있고 책임감 있는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서울은 서울광장에 잔디만 교체해도 보도가 되지만 경기도는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웬만하면 보도가 되지 않는다.” (9월 1일 경기도청 월례조회)
■ “사실 4~5년간 계속 같은 말을 하는 건데 과거엔 거의 보도되지 않다가 최근 들어 주목을 받는 것이 한편으로는 반가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조심스럽다.” “중앙정부가 투자 유치와 관련해 모든 권한을 행사하려 하지 말고 지방자치단체에 과감하게 분권이양해야 한다.” “ 주변에서 너무 경기도에만 몰입해서 되겠느냐고 할 정도로 역사상 가장 경기도에 몰두하고 있다.” (8월 28일 경기지역 기관단체장 모임인 기우회)
■ “광복과 함께 이렇게 위대한 대한민국의 건국도 기념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상징거리인 광화문에, 초등학교마다 있는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의 동상을 또 하나 더 세워야 하나. 광화문에 세워야 할 동상은 대한민국을 건국한 이승만 대통령을 비롯한 박정희 등 역대 대통령이다. 다른 전직 대통령도 돌아가신 뒤 세워 드리면 된다.” (8월 27일 중앙일보 칼럼)
■ “대통령을 그렇게 얘기할 수 있느냐, 이런 말을 하는데 저는 언제 어디서든 누구라도 비판할 게 있으면 비판하고 박수칠 일 있으면 박수쳐 주는 인생을 살아왔다.” “우리는 예측 가능한 리더십이 가능하고, 안정적인지 봐야 한다. 국민들을 어떻게 통합해서 이끌고 나갈 수 있는가에 대해 다양한 정치와 노력이 약하다.” “이 대통령이 이번 광복절에 경축사를 하셨다. 광화문 복원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 문제이냐, 광복절에 조선왕조를 생각하는가, 대한민국을 생각하는가.” (8월 25일 제43차 한나라포럼)
■ “벌써 40년 전 박정희 대통령은 대학과 일자리, 잠자리를 (갖춘) 도시계획을 하지 (않았느냐) 어떻게 잠자리만 있는 도시계획이 있을 수 있냐.” “그나마 노태우 대통령은 통이 컸다. 규모가 일산이나 분당이 500만~600만평 되는데 이명박 대통령은 100만평 이내로 작게 한다. 그래서 (대통령에게) 왜 작게 하시냐고 했더니 ‘그린벨트이기 때문에 너무 크게 하면 환경단체가 떠들어서 못하겠다’고 한다.” (8월 18일 GTX 수도권광역급행철도 포럼 발족식)
■ “중국은 확실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엄청난 속도로 가고 있는데, 대한민국에선 리더십에 대한 합의가 없고, 성장에 대한 반감만 크다.” “우리나라의 리더십엔 ‘깜짝쇼’의 측면이 많다. 포퓰리즘도 작용한다. ‘비장의 깜짝 인사’는 안정, 신뢰와는 배치된다.” “박근혜 전 대표와 잘 못 지내는 게 한계다. 대통령은 싫어할지 모르나 나는 대통령을 만날 기회가 있을 때 늘 ‘박 전 대표가 당내 경쟁자였기 때문에 더 잘해야 한다’고 말씀 드린다.” (8월 16일 중앙일보 인터뷰)
■ “자고 일어나면 총리라고 나타나는데, (국민은) 누군지 모른다.” (8월 9일 경기도 월례조회)